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35화 (135/225)

# 135

39. 반격(6)

툭. 투두둑.

무너진 협곡 아래에 갇힌 세은의 머리위로 흙먼지가 내려앉았다.

마법진의 구조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연달은 발동으로 복면인들의 마기가 부족한 관계로 마법진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커다란 바위들이 얽히고설켜 몸을 운신할 만한 공간이 생겨났다.

쏟아진 돌덩이와 피어오르는 흙먼지.

세은이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아…… 이번에는 진짜로 갇혔네.”

헤리자우때와 비슷한 함정이었다.

그 규모에서는 궤를 달리하지만, 깊숙한 곳에 세은을 묻는다는 것에는 동일점이 있었다.

같은 인물이 만든 함정이라는 것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우우웅―

세은은 신성력을 퍼트려 주변을 확인했다.

다행히 헤리자우와는 달리, 평지 위로 협곡이 무너진 것이라 지하에 갇힌 것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우선적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양이 충분하게 느껴졌다.

그 말은 공간을 치고 나갈 여지가 충분하다는 말.

감각을 최대로 끌어올린 세은의 감각에 미약하나마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뚫고 나가기 충분한 깊이.

문제는 이곳에서 벗어난 다음에, 적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협곡의 주변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얼기설기 무너진 사방 중에서도, 가장 강한 바람이 느껴지는 곳을 찾아냈다.

“좋아.”

흐읍.

세은은 위로 치고 나가기 전에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이 이렇게 됐으니 일행들의 안위도 걱정이 되는 상황.

최소한의 힘을 이용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쾅―!

세은의 몸이 순식간에 위로 치솟았다.

신성의 검이 머리 위를 막고 있는 바위를 산산조각 냈다.

검에 의해 조각이 나서 머리 위로 쏟아지는 바위를 어느새 반대 손에 쥐고 있던 신성의 방패로 막아내고 있었다.

콰앙―!

벽을 박차고 또다시 위로 뛰어올라 한 번 더 위를 막고 있는 장애물을 파괴했다.

다시 울리는 강렬한 폭발음.

강력한 힘에 주변의 흔들리며 불안한 지반을 자극하고 있었다.

“흐읍!”

숨 쉴 틈도 없이 벽을 박차고 위로 뛰어오른 세은.

충격을 받아 주변이 다시 무너지기 전에 빠르게 빠져나가야 했다.

터엉―!

거듭되는 도약에 굉음이 쉴 새 없이 퍼져 나갔다.

장애물을 부수며 전진하다 보니 생각보다 한 번에 높게 도약하지 못하는 상황.

그러나 잔뜩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더 강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거의 다 나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콰아앙―!

여태까지의 그 어떤 굉음보다 더 큰 소리와 함께, 흙과 바위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그 틈으로 눈부신 햇살이 세은의 눈에 들어왔다.

“후우. 정말 좁은 곳은 질색이라니까.”

주변을 둘러보니 협곡이 사라진 곳에는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었다.

근처에 마을에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복면인들의 기척은 이미 전부 지워지고 난 뒤.

잠시 주위의 마기를 추적하던 세은은, 이내 포기하고 게이트가 생성되던 장소로 되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 * *

“멀리 한 무리의 인원이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나도 보이는군. 다들 긴장 풀지 말도록.”

팀원의 보고를 받은 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를 모를 무리의 사람들은, 얼마나 반짝이는 흰색의 갑옷을 입었는지 멀리서도 햇빛에 반사되어 그 위치를 파악할 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들도 일행의 존재를 파악했는지, 정확히 일행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경거망동하지 말고, 지시를 기다리도록.”

상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존의 음성에도 숨길 수 없는 긴장이 묻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세은이 마법처럼 짠하고 나타나주었으며 하는 바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존의 마음과는 달리 드디어 서로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두 무리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정지! 어디 소속인가?”

존의 경고에 상대의 걸음이 멈췄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난처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건가?”

자신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것 같은 상황에, 존이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팀원을 불러 경고를 건넸다.

“정지! 소속을 밝혀라!”

그러나 불어, 이태리어, 네덜란드 어, 노르웨이어.

그 어떤 언어도 상대방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심지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랍어까지 사용했지만 상대는 전혀 알아듣는 기색이 아니었다.

“eofbr rhddyddj gkf tn dlTsms tkfka djqtsk?”

“……저건 어디 말이야?”

심지어 상대가 말하는 말이 어떤 언어인지 아무도 모를 상황이 벌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qlrjqgks akrPdml whdwkemf ahen cjeksgkrpTek.”

“도대체 뭐라는 거야?”

사실 상대방이 말을 하는 것이 언어인지도 불분명했으나, 외형으로 보아 인간임이 분명해서 언어라고 짐작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잠시 자기들끼리 심각한 표정으로 쑥덕거리던 이들은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으로 일행을 노려보았다.

“쟤들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래?”

갑자기 공격적으로 변한 공기에 존이 당황을 금치 못했다.

갑자기 이렇게 태세가 변하는 이유가 없었다.

그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허공에 대화를 하고 있을 뿐이 아닌가?

하지만 상대 무리에게서 뿜어 나오는 공기는 분명히 적대감이었다.

그리고 팀원들 역시 어느새 바뀐 공기를 모두 느끼고 있었다.

“상황이 이상하니까, 다들 긴장해!”

“예!”

그렇게 두 개의 무리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 * *

“어후. 진짜 미치겠네.”

에일린 교단의 수석 성기사, 제른 티그리스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욕설을 내뱉었다.

“제른! 수석 성기사가 욕설을 내뱉어서야 되겠는가?”

그의 욕설을 들은 추기경, 헤이런 팔레스가 그를 꾸짖었다.

단호한 꾸중에 제른이 어깨를 움찔하며 중얼거렸다.

“거 참. 귀도 밝다니까.”

“어허!”

“아! 답답한 걸 어떻게 합니까?”

“어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수석 성기사란 자가 언행을 그렇게 하면 부하들은 어떻겠는가?”

“속마음 대신 말해줬다고 시원해하겠죠.”

“끄응!”

끝까지 지지 않는 제른의 말에 헤이런이 고개를 저었다.

교단에서 자신과 제른을 한 팀으로 묶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저히 제어가 되지 않는 야생마 같은 성격의 남자였다.

그동안 제른의 전공만 들었던 헤이런은, 이제야 다른 추기경들이 제른의 얘기가 나오면 고개를 저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늙은이들, 이런 놈을 나한테 맡겼다 이거지?’

다들 제른과 한 팀이 되기 싫어해서 헤이런에게 넘어온 이유가 있었다.

헤이런이 속으로 이를 갈면서 본단으로 들어가면 한바탕 난리를 쳐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지금이야 비상사태이니 성격을 부리지는 못하지만, 헤이런도 성격하면 어디 가서 지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전방! 오우거 발견입니다!”

“좋아! 처리한다!”

기사의 보고에 제른이 순식간에 돌진해서 오우거를 상대했다.

우우웅―

겁 없이 자신을 향해 단신으로 달려오는 인간을 보고 코웃음을 치던 오우거는, 그의 검에서 피어오른 신성력에 당황했다.

“차압!”

그리고 당황한 오우거의 틈을 놓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제른이 아니었다.

당황한 오우거의 품으로 순식간에 파고든 제른이 오우거의 급소에 망설임 없이 검을 꽂았다.

“오우우오!”

느껴지는 고통에 오우거가 거대한 몸을 사정없이 비틀었다.

그러나 그 난동은 뒤에서 신성 마법으로 지원을 하는 사제들에 의해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휴우. 어쨌든 몬스터가 있는 걸 보니 단순히 게이트 연결이 잘못된 거 같긴 한데?”

“하지만 식량이 없으니 길을 찾는 게 문제지.”

제른의 혼잣말을 헤이런이 차분하게 받았다.

마계로 열린 문을 처리하기 위해 나서 전력이니만큼, 무력으로는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식량은 문제.

애초에 단기전을 생각하고 움직이던 토벌대였기 때문이다.

“하여튼, 계속해서 이동을 해보는 수밖에.”

“그렇죠.”

헤이런의 말에 동의하며, 제른이 다시 이동을 지시했다.

다소 경망스럽기는 해도, 현장 지휘관으로서의 제른의 능력은 이미 공인된 상황.

헤이런은 뒤에서 보조를 해주면 그만이었다.

“제른 경! 앞에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

“예! 오러를 지닌 사람들로 보아 기사로 보입니다.”

“다행이야. 생각보다 사람을 빨리 만났어.”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말꼬리를 흐리는 기사의 태도에 제른이 물었다.

“옷차림이 이상합니다.”

“응?”

“마주친 사람들이 생전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거야 그럴 수도 있지 뭐가 문제지?”

“그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잇지 못하는 동료를 위해, 같이 척후조로 나섰던 다른 기사가 말을 받아서 이어 나갔다.

“직접 보시면 알 겁니다. 도저히 대륙에선 볼 수 없는 옷차림이었습니다.”

“흠. 뭐 그럴 수도 있지. 일단 사람은 확실한 거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일단 접촉을 시도한다. 앞장서서 안내하도록!”

“옛!”

척후조의 안내에 따라 교단은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제른의 기감에도 멀리서 움직이는 몇 몇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음?”

그러나 이내 더 전진을 하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기척이 그의 감각에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오러 유저나 마법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잠깐 멈춘다.”

제른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모두의 걸음이 멈췄다.

“전방에 수많은 오러 유저와 마법사가 있다. 그들도 우리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군. 혹시 모르니 긴장을 풀지 말도록.”

“예!”

“그럼 다시 이동!”

간단하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 제른은 다시 부대를 이동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이내 자신들을 경계하는 진형을 만들고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제른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평균적인 수준은 결코 경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 %$^^#?”

“……?”

난생 처음 듣는 언어에 제른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혹시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아니, 나도 모르겠군.”

혹시나 해서 헤이런에게 물어봤지만, 그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륙 공용어 할 수 있는 사람 없나?”

그러나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혹시 마계의 수작 아닐까요?”

“응?”

수하 기사의 말에 제른의 고개가 돌아갔다.

“마계로 넘어가는 게이트를 탔는데 이런 곳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흐음…… 일리가 있군.”

“일단 저들이 하는 게 언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추기경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글쎄…… 신중해야 한다고 보지만, 아예 일리가 없지는 않군. 일단 저들이 언제든지 우리를 공격할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는 합니다.”

그렇게 교단의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몬스터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뒤에서 몬스터가 몰려옵니다!”

“나도 느꼈다.”

어느새 제른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양동작전 같습니다.”

“그럼 그렇지. 마계로 넘어가는 게이트가 잘못될 리가.”

제른은 굳은 표정으로 부대에 명령을 내렸다.

“부대! 전투 준비!”

제른의 명령에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비장하게 바뀌었다.

“우선 앞을 처리하고! 몬스터를 처리한다.”

제른은 자신의 검을 뽑아 앞을 막고 있는 무리에게 겨눴다.

“비겁한 마계의 종자들 모두 처단하겠다!”

타다닥―

말을 마친 제른이 가장 먼저 선두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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