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34화 (134/225)

# 134

39. 반격(5)

세은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협곡으로 들어왔다.

게이트는 존을 차석(次席)으로 한 팀원들이 있어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기를 뿌리면 자신을 대놓고 유인하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따라 들어왔다.

상황을 보면 지금 당장 마왕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리고 마왕을 제외하면 세은을 막을 만한 것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는 교묘하게도 무력이 아닌 다른 부분을 파고 들어왔다.

세은이 아닌 그 누구라도, 발밑이 단단하지 않으면 본신에 지닌 무력의 절반도 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허공을 날 수 있는 마법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난감한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무력.

그리고 자신의 무력의 한계를 잘 파악하는 판단력이었다.

여기서 얼마나 힘을 써야 할지.

안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의 힘을 조절할 필요가 없는 적들과 싸워왔던 세은으로서는 조금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키이잉―

세은이 아주 잠깐 고민에 빠진 사이 또다시 다른 마법진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생각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마법진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안개인가?’

호흡기를 파고드는 운무, 그리고 몸을 적시는 비.

마지막으로 공간을 빈틈없이 점유하는 안개까지.

세은의 사방이 독으로 가득 찼다.

“후우…….”

우우웅―

세은의 손에서 검이 사라지고, 화려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에일린. 홀리 파이어.”

불길이 세은의 주변을 감싸며 안개를 밀어냈다.

안개와 비가 아예 주변을 불로 말려 버리는 것으로 처리했다.

화르륵―

아예 이참에 화염의 세기를 키워 축축하게 젖은 바닥까지 말렸다.

질척거리던 늪이 다시 모래 늪으로 변했다.

“그나마 좀 낫네.”

순식간에 몇 가지 함정을 처리한 세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발을 끌어당기는 유사가 가장 큰 걸림돌.

다른 건 몰라도 유사를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질척거리는 습기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세은의 활동이 조금 더 편해지기는 충분했다.

쩌정―!

허공에는 신성의 화염을 유지하며, 다시 한 손에 검을 쥐어들었다.

강력하게 내려친 일격이 앞을 막고 있던 마법진을 타격했다.

세은의 강공에 조금 금이 가나 싶더니, 또다시 빠르게 보수되기 시작했다.

“흐흐. 우리의 마기가 고갈되지 않는 한 마법진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복면인이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세은을 도발했다.

“뭐, 그럼 쉽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 텐데.

자신감에 취해 복면인은 세은에게 충분한 단서를 넘겨주었다.

“적어도 내가 먼저 쓰러지지는 않겠지. 어디 한 번 할 수 있는 만큼 해봐.”

쩡―!

쩌정―!

한 번. 두 번.

세은이 마법진을 계속해서 내려쳤다.

그때마다 마법진이 비명을 지르며 금이 갔다가, 수복되기를 반복했다.

“끄응…… 역시 안 되는 건가? 주군의 말씀이 맞군.”

그 엄청난 광경을 지켜보던 복면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바싸고가 심혈을 기울여 미리 준비해 놓은 마법진에, 마기를 부여 받은 부하 9명이 계속 마기를 충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점점 세은의 강공에 마법진의 수복이 느려지는 것이 보였다.

“뭐, 그래도 생각보다 시간은 더 충분히 벌었으니까.”

시계를 보니 바싸고가 지시했던 시간만큼은 충분히 벌었다.

애초에 이 정도로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가 말했으니 부담도 없는 상황.

복면인은 부하들에게 지시해 슬슬 위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응?”

협곡의 끝에 등을 지고 자신을 상대하던 복면인들이 이동을 하자 세은의 눈에 의아함이 어렸다.

이동을 하면서 세은의 강공을 막다 보니 마법진의 수복이 당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쩌적―!

때를 놓치지 않고 더 맹공을 퍼부어진 세은의 공격에 마법진이 드디어 조금 깨져 나갔다.

“조금만 더 버텨!”

어느새 세은의 등 뒤로 아예 돌아간 복면인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역시나 바싸고가 조심스럽게 생각할 만한 무력.

자칫 잘못하면 여기서 복면인까지 한 번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지.’

겨우 힘을 받았는데, 이런 곳에서 잡혀서 죽는 건 절대로 사양이었다.

부하들을 쥐어짜서 완전히 빠져나갈 준비를 마칠 때까지 마법진을 겨우겨우 유지한 복면인은, 최후의 함정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콰앙―!

동시에 세은의 공격에 마법진이 드디어 깨져 나갔다.

“지금이다!”

깨진 마법진의 파편이 바닥으로 스며들어 또 다른 마법진의 원천이 되었다.

키이잉―

애초에 세은이 그 장소에 자리를 잡게 협곡을 등에 두고 있던 이유가 있었다.

세은이 현재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새로운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이번에는 단순한 독이 아닌 물리적 충격을 줄 수 있는 마법진.

쾅― 쾅― 쾅―

연달아 폭음이 울리며, 오망성의 위치에서 마기가 폭사되어 세은에게 쏟아졌다.

“흥.”

그러나 갑작스런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세은은 신성력을 펼쳐 공격을 막아내었다.

터엉―!

마기와 신성력이 부딪히며 강렬한 격돌음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이다!”

복면인은 세은의 주변에서 충격파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끼며, 부하들을 이용해 협곡에 설치된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콰콰쾅― 콰쾅―

방금 전까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폭음이 협곡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충격의 여파로 협곡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미리 이 사태를 알고 도주하고 있던 복면인은 여유롭게 폭발의 여파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그의 부하들은 마법진을 발동하기 위한 위치에 서 있어서 협곡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꾸르릉― 꿍!

협곡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이런 거대한 장면에서도 세은이 살아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주인이 그렇다면 믿을 수밖에.

이미 마법진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보인 세은의 무력은 대단했다.

콰아아아―

마지막까지 쓸고 내려가던 산사태가 보였다.

이걸로 복면인의 임무가 모두 완수했다.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한 일.

바싸고가 지시한 만큼의 시간은 충분히 벌고도 남았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일이었다.

타닥―

폭발의 여파로 여전히 뿌연 모래 먼지를 일으키고 있는 협곡을 뒤로 하고, 복면인은 지체하지 않고 도주를 시작했다.

* * *

게이트의 내부.

들어가서 밖으로 밀려들고 있던 몬스터 무리를 한 번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게이트의 크기가 큰 것 치고는, 기존의 몬스터 웨이브에 비해 그 크기가 상당히 작았다.

“몬스터가 적어서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통계와 다른 일이 일어나서 불안하다고 해야 할지.”

존이 게이트 내부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을 들은 채연이 그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원래 이 정도 크기의 게이트면 몬스터가 이거의 세네 배는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적어요. 그렇다고 주변에 다른 몬스터들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은의 동료였다.

별것도 아닌 정보를 숨길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면 팀장님이 안 오셔도 저희끼리 정리가 가능할 겁니다.”

게이트의 몬스터들은 새로 생겨나지 않는다.

즉, 무에서 유가 창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게이트 내부를 정리하지 못해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끊임없이 쏟아진다고 알려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졌다.

한 마디로 몬스터를 모두 정리하면 게이트는 그저 신기한 공간일 뿐이었다.

그리고 게이트에서 간혹 발견되는 희귀한 광물이나, 그곳의 토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럼 계속해서 토벌을 진행하죠. 팀장님이 오기 전에 끝내 놓으면 다음 일정을 진행하기에도 수월할 테니까요.”

예상보다도 더 적은 위험에, 존은 그대로 이동을 지시했다.

그래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가장 탁 트인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언제 어느 방향에서 몬스터들이 몰려와도 확인이 가능한 지형.

존을 비롯한 팀원들은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속도를 유지하며 게이트를 가로질렀다.

“저쪽에 오크 한 무리가 있습니다!”

“좋아. 오크 쪽으로 이동한다. 혹시 모르니 주변 경계 늦추지 말고.”

“예!”

이런 식으로 천천히 보이는 몬스터들을 정리해 나가며 게이트를 전진했다.

팀원의 대부분이 게이트를 수십 번 경험한 경험자들이다.

거기에 몬스터들의 수도 적으니 이동 시간이 단축될 수밖에 없었다.

팀원들의 태도에 여유가 깃드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러나 너무 긴장만 하고 있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기에 존도 얼마간의 여유는 제지하지 않았다.

“몬스터가 너무 적지 않아요?”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더 이동했을 때, 채연이 존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몬스터가 너무 적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채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여유를 만끽하던 다른 각성자들도, 슬슬 이상한 점을 느끼고 주위를 더욱 경계하고 있었다.

“정말 강한 놈이 몬스터들을 통제하고 있거나, 아니면 원래 적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두 번째가 좋죠.”

그러나 게이트의 크기와 몬스터의 숫자가 비례하는 것은 통계로 입증된 일이었다.

한 마디로 존이 말한 첫 번째 가설이 맞을 확률이 가장 높다는 말이었다.

일행들은 다시 긴장을 가득 채우고 게이트를 탐사했다.

“잠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본격적으로 척후조를 운용하던 존이, 척후조가 보내온 신호에 전진을 멈췄다.

긴장이 어린 존의 말에 모두가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을 준비를 마쳤다.

타다닥―

“사, 사람입니다!”

“뭐?”

신호를 보내고 다급히 돌아온 척후조가 믿을 수 없는 보고를 올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저 앞에 저희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방금 전에 막 생성된 게이트 안.

거기에 팀원들은 입구를 지키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뒤늦게 따라 그들을 앞질러 간 사람들도 없는 상황.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앞에 있다는 사실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옷차림이 매우 특이했습니다.”

척후조는 빠르게 보고를 이어 나갔다.

“옷은 온통 하얀색으로 빛나는 갑옷이 대부분, 사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몇 보입니다.”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존의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사제복? 설마 바티칸인가?’

각성자들이 생기고, 각 종교 단체에서도 이적을 행하는 힘이 생겼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힘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니, 우리를 앞서간 사람들은 없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바로 이쪽입니다. 이대로라면 그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대로 물러나느냐, 아니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과 마주치느냐에 대한 선택이 존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세은이 없는 상황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 부담감에 가슴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사람은 확실한가?”

“예! 사람은 확실합니다.”

“그럼 천천히 뒤로 물러나서 진형을 만든다. 저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게 더 중요할 것 같군. 사람이라니 다짜고짜 공격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존의 지시에 따라 팀원들이 조금 뒤로 물러나 유리한 진형에서 본격적으로 진형을 구축했다.

다들 척후의 보고를 전달 받았기 때문에, 긴장된 표정으로 사방을 주시했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팀원을 사이를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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