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39. 반격(2)
빠르게 합의를 마친 국가들은 바로 움직임을 시작했다.
잡은 기회를 질질 끌다가 놓쳐 버릴 수는 없는 일.
특히 유럽의 상부에 마왕이 개입하고 있다 생각하던 세은의 입장에서도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은 상황이었다.
평소 하나의 유럽이라는 구호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국가 하나를 포섭하는 데 성공한 연합은, 그 국가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당연히 세은 역시 그리로 이동.
이번에는 채연과 에린, 그리고 재호와 그레모리도 함께 했다.
다른 곳은 모르지만, 일단 여태까지 발견된 마왕 중에서는 마지막인 상대.
특히 유럽의 협력이 없다면 혹시라도 새로 넘어올 마왕에 대한 경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모든 국가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전력을 동원하려던 중이었다.
“어디로 가든 언니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해.”
“네. 걱정하지 마세요.”
채연의 걱정 어린 말에 에린이 대답했다.
세은은 에린을 데려오고 싶지 않았지만, 채연과 세은이 함께 움직이자 데려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노에게 말해, 만약 자신이 없을 때는 둘이 항상 같이 움직이도록 하는 정도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일단 이 국가의 게이트들부터 확인을 해보지.”
“그렇지 않아도 미리 위치와 정보를 받아놨습니다.”
“좋아. 바로 가자고.”
이미 세은과 꽤 오랜 시간 일해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익숙한 사노의 준비에 일을 척척 진행되었다.
세은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바로 게이트들을 돌아다니며 확인을 했다.
혹시나 있을 단서를 확인하는 것과 더불어, 유럽에서 벗어나도 게이트에 대한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런 방법이 효과를 얻어 일 이주 뒤에는 다른 국가들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일이 생각보다 아주 수월합니다!”
사노가 기쁜 표정으로 세은에게 보고했다.
“다행이야. 아프리카로 갔던 일이 지금 생각하면 잘한 일인 것 같아.”
“그렇습니다. 거기에 요즘 유럽 연합의 수뇌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국가가 느끼고 있더군요.”
“결국 그쪽이 제일 의심스럽다는 말이군.”
“예. 게이트가 새로 생기거나 몬스터 웨이브가 생겨도 전과 달리 최소한의 각성자를 파견하는 일에 그치는 것도 많다고 합니다.”
사노의 말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마왕이 거기에 있으면 혼란을 잠재워서 좋을 일이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야.”
지금 게이트나 몬스터를 완전히 죽여서 좋은 것은 오직 사람들밖에 없었다.
심증이지만, 정황 증거가 하나둘씩 모이니 어디가 문제인지 조금씩 확실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포섭이 가능한 국가들은 거의 다 포섭이 끝났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글쎄…….”
다음 방법?
잠시 말꼬리를 흐린 세은이 생각에 잠겼다.
“뭐, 어떤 방법을 써도 피해가 없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그럴 것 같습니다.”
사노가 약간 무거워진 어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섣불리 다음 움직임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혹시 좋은 방법이 있을까 해서…….”
사노의 말에 세은이 설핏 웃으며 대답을 했다.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어차피 뭘 해도 피해가 있는 건 마찬가지니까 제일 쉬운 방법으로 가지.”
“제일 쉬운 방법 말입니까?”
“그래, 제일 쉬운 방법.”
“제일 쉬운 방법이라고 하면……?”
조심스러운 사노의 질문에 대답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나왔다.
“힘으로 누르는 거지.”
세은이 씩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바로 내부를 휘젓고 다니지. 어디부터 움직여야 하는지 계획을 짜봐.”
그 태도에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감정이 묻어 나왔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 태도.
사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세은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상부에 보고를 해야겠지만, 세은이 하겠다고 하면 막을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한 일.
이제는 정말로 거의 전면전만 남았다고 해도 되는 일이었다.
* * *
유럽 연합에 협조하지 않는 국가나, 협조하는 국가나 겉으로 보기에는 다 비슷한 풍경이었다.
어차피 같은 유럽에 속해 있으니 그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 안의 분위기는 천차만별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탁탁탁―
세은을 필두로 한 수십 명의 각성자들이 대놓고 걸음을 옮기며 다른 국가들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들을 앞에 둔 유럽 연합의 각성자들이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미 처음에 들이쳤다가 세은에게 호되게 당한 이들은 멀리서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는 상황.
멀리서 단순한 정보 수집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세은도 굳이 없는 시간에 멀리 있던 놈들까지 쫓아내진 않았다.
어차피 완전히 쫓아내기는 불가능한 일.
정보가 새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쫓아낸다고 해도, 죽이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올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다 죽인다고 해도 다른 각성자들이 파견될 일은 당연한 상황이니, 다 죽일 수도 없었다.
만약 죽이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살계를 여는 꼴이 되니까.
거기에 민간인들의 제보로도 정보가 퍼지기에, 굳이 멀리서 자신들을 감시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우웅―
“여기도 문제가 없네.”
순식간에 게이트 하나를 확인하며 세은이 말했다.
“아, 여기도 문제없어요?”
그의 말을 들은 채연이 물었다.
세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이거 유럽도 워낙 넓어서,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죠. 땅이 넓으니, 아무리 이렇게 대놓고 다닌다고 해도 이동 시간이 걸리니까요.”
채연의 말대로, 유럽은 상당히 넓었다.
그리고 게이트의 숫자도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마왕이 유럽 연합의 상부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까지는 확신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힘을 키우려면 게이트 근처에 있는 게 제일 나았다.
몬스터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혹시 헤리자우 같은 일이 있을까 지나치는 지역마다 민간인들을 상대로 정보를 수집하고도 있었다.
그러나 여태까지는 별다른 정보가 들어오지 않아 막막한 상황.
그래도 그 어떤 방법보다 지금처럼 힘으로 밀고 들어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설프게 정보를 찾고 움직인다고 요원들을 투입하면서 기다리면 언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이제 헝가리쯤인가?”
“예. 곧 루마니아를 벗어납니다.”
아프리카에서 세은과 단 둘이 호흡을 맞춘 경력을 인정받아, 이번에도 참가하게 된 존이 지체 없이 빠르게 대답했다.
“지금 우리 이동 경로가,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 마지막으로 벨기에 맞지?”
“예. 브뤼셀까지 가는 최단거리입니다.”
“이왕이면 거기까지 가기 전에 흔적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거침없이 움직인다고 해도 전 유럽을 전부 탐색할 수 없는 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차라리 브뤼셀을 치면 꼬리가 나올 것이란 판단을 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세은이 간다면 마기를 잡아 낼 수 있으니 이왕 힘으로 밀고 들어갈 것이라면 빠르고 좋은 방법 중 하나였다.
“좋아. 그럼 조금만 더 쉬고 움직이지.”
“예.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오빠!”
세은과 존의 대화가 끝나자 에린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세은을 불렀다.
“응?”
“아까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에린은 실전을 겪으면서 사용하는 신성 마법에 대한 궁금한 점을 세은에게 열심히 물어봤다.
세은도 눈에 띄게 실력이 향상한 에린을 지도하며 가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에린의 성장 속도가 세은이 보기에도 꽤 놀라울 정도였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사람은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수준.
자신이 없어도 부상자들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이것저것 물어보던 에린에게 세은은 열심히 지도를 해주었다.
“자, 이건 이렇게 해서…….”
그렇게 한참을 지도하다 보니, 어느새 다시 이동할 시간이 되었다.
“이제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존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들은 세은이 에린을 지도하던 것을 멈추었다.
“자, 이제 다시 이동할 시간이라네. 나중에 다시 하자.”
“네! 고마워요, 오빠.”
에린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다시 채연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세은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존에게 지시했다.
“그럼 바로 움직이지.”
“예!”
세은의 지시에 따라 다시 이동이 시작되었다.
별다른 방해가 없으니 일행의 이동은 쾌속했다.
꿍!
“응?”
그렇게 더 이동을 했을 때 저 멀리서 강한 울림과 함께 충격음이 들렸다.
동시에 모두의 걸음이 동시에 멎었다.
세은 역시 강한 울림과 함께 느껴지는 강한 힘에 얼굴이 살짝 굳었다.
마기는 아니었지만, 지구에 와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강한 힘이었다.
아니, 이계에서도 쉽게 접하지 못한 강한 힘이었다.
쿵. 쿵.
또다시 두 번의 울림과 함께 이번에는 힘의 파동이 더욱 여실히 느껴졌다.
“이거 뭐야?”
여태까지 구석에서 기계나 만지작거리며 따라오던 그레모리가 두 눈 가득히 흥미를 담아 세은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레모리로서도 느껴보지 못한 미지의 힘이었다.
거기에 이 정도로 강한 파동을 내뿜고 있는 것이라면, 이용하기 여하에 따라서 굉장한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그레모리의 속내를 눈치챈 세은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뭐든 너한테 연구를 맡기는 일은 없을 테니까 기대 접으시지.”
“하. 웃기고 있네. 그러다가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어쩌려고?”
“다른 건 몰라도 이 정도 힘을 너한테 맡기라고?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라.”
“완전 의심병 말기 환자네 이거. 다른 사람들 치료하지 말고 너부터 치료해.”
꿍. 쿵.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에도 또다시 울림이 울렸다.
“일단 가봐야겠어.”
세은은 손을 들어 존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가 먼저 접근할 테니 약간의 거리를 두고 천천히 따라와.”
“예!”
“아, 같이 가 인마!”
세은이 먼저 달려 나가자, 그레모리가 그 뒤를 빠르게 따랐다.
그리고 존의 지시하에 일행들이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이건……?”
세은이 있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진 울림에, 세은과 그레모리는 힘이 느껴진 근원지로 금세 도착할 수가 있었다.
뭉클뭉클.
그리고 그 장소에 도착한 세은은 평생 처음 보는 광경을 목도할 수가 있었다.
허공에서 거대한 아지랑이가 꿈틀거리며 공간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아, 뭐야 별거 아니었잖아.”
“이게 뭔데?”
눈앞의 현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레모리의 태도에 세은이 물었다.
그러나 그레모리가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며 대답했다.
“내 도움 필요 없다며 미친놈아.”
“모르는 거면 안 맡긴다고 했지, 언제 알고 있는 걸 안 물어본다고 했어?”
“씨발 말은 아주…….”
그러나 아직 맹약에 묶여 있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레모리가 얼굴 가득 인상을 찌푸리며 세은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거 게이트야.”
“이게 게이트라고?”
“어, 딱 보니까 만들어지고 있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건 마계에서는 마기를 중심으로 게이트가 만들어졌는데 여기는 마기가 없어서 그런가? 처음 보는 힘으로 만들어지네.”
“그럼 여기 몬스터 웨이브가 생긴다는 말이군.”
“그렇겠지.”
“혹시 모르니까 처리하고 가야겠어.”
“네이네이. 마음대로 하세요.”
그레모리가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주머니에 넣어뒀던 기계를 꺼내 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게이트가 생성되는 과정을 처음 보는 세은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 이건 뭡니까?”
뒤늦게 따라온 존이 놀란 표정으로 세은에게 물었다.
세은은 그레모리에게 얻은 정보를 존에게 전했다.
“게이트가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니 주변에 진형 갖추고 쉬게 해. 게이트 생기면 바로 진입해서 정리하고 이동한다.”
“예!”
“와…… 정말 신기해요.”
“이런 거 처음 봐요.”
채연과 에린도 어느새 옆으로 와서 감탄과 경이가 뒤섞인 표정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는 장면은 경이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