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30화 (130/225)

# 130

39. 반격(1)

“상부에 말 좀 잘해주세요. 보츠와나 정부에 붙잡히랴, 혼자서 차 몰고 정보 수집하랴, 거기에 마지막에는 불 끄느라 정말로 고생했습니다.”

세은과 헤어지는 공항에서 존이 너스레를 떨었다.

한동안 고생을 같이 했더니 꽤 친해진 느낌이었다.

“사노에게 한마디 하지.”

세은도 마주 너스레를 떨며 존과 인사를 나눴다.

바딘을 역소환시키고 난 세은은 바로 주변을 정리했다.

거세게 타오르던 불을 잡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거기에 보츠와나 정부와의 오해를 푸는 것 역시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 일은 존이 전담으로 맡아서 해결하기는 했다.

다만 세은이 존을 따라다니며 실력을 과시한 게 상당한 효과를 봤다.

거기에 이미 각 국가의 정보부쯤 되면 세은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유명 인사.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처리되었다.

거기에 원흉이 유럽이란 사실을 알려주니 아군이 생기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존으로서는 정말로 큰 전공.

본국으로 돌아가면 상당한 포상과 함께 승진이 될 건 자명한 일이었다.

세은과 존 모두 일석이조의 마무리였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일은 모두 정리하고 바딘을 잡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지금.

더 이상 도울 일이 없어진 세은은 먼저 귀국하는 것이었다.

“다음에 또 뵙기를 바랍니다.”

“한국에 오면 연락해.”

“예.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세은은 출국장으로 나섰다.

꽤 오랜 시간 비행을 해야 했지만 한국으로 돌아간단 사실이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지낸다고 해도 아프리카와 한국은 기본적인 인프라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세은이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이지호와 사노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세은을 맞이하는 둘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이 아프리카에서 잔혹한 짓을 저질렀단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에 변동이 생겼기 때문.

유럽의 발언권이 약해진 건 물론, 저지른 범죄에 대한 해명을 원하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었다.

“바로 회의실로 가시겠습니까?”

사노의 물음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장거리 비행으로 피로할 만도 하지만, 세은은 바로 회의를 하러 이동했다.

좁은 곳에 갇혀 있던 것을 제외하고는 괜찮은데다가, 일은 바로바로 해야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수습하기에 용이했다.

세은을 태운 차가 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했다.

차 안에는 사노의 흥겨운 콧노래소리가 차올랐다.

최근 몇 달 동안 귀국했을 때 이렇게 차 안의 분위기가 좋았던 건 처음이었다.

말 그대로 한 방에 판을 엎은 상황이니까.

특히 미국으로서는 유럽을 완전히 아래로 둘 수 있다는 사실이 기꺼울 만도 했다.

어차피 먼저 발톱을 드러낸 상대를 예전처럼 포용하고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차라리 완전히 눕히고 길들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었다.

미국의 우산 아래에 들어가 있는 한국한테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예전과 달리 동등한 동맹국으로서 합당한 대접과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미리 연락을 했으니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도착해 있을 겁니다.”

목적지에 차가 도착하자 사노가 말했다.

세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오셨습니까?”

“고생하셨습니다!”

사노의 말대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장위건과 이고르가 세은을 반갑게 맞이했다.

둘의 표정도 사노와 이지호의 표정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역시나 같은 이유였다.

특히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프리카는 그 잠재력만큼이나 앞으로의 세 다툼이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그걸 이번 일로 한 번에 처리했으니 기쁘지 않을 리가.

특히 각종 천연 자원의 부족함에 시달리던 중국으로선 더욱 기쁜 상황이었다.

탁―

자리에 앉은 세은의 앞에 다과가 놓였다.

다과가 들어옴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도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사노의 말에 장위건과 이고르가 열렬하게 동의를 표했다.

“자, 그럼 도가 만들어 준 이 천혜의 기회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노의 말에 이고르의 손이 먼저 올라왔다.

“먼저 한마디 하겠습니다.”

이고르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자신의 주장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흔들릴 때, 더욱 강공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부터 유럽 연합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국가들을 중심으로 탈퇴를 유도해야 합니다.”

“그 생각에는 동의합니다만,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조건을 제시해야겠죠. 유럽 연합에서 주는 이익을 대체할 수 있을 만한 무역적 이득이라든가. 물론 그 부분에 관해서는 더욱 세세한 협상이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그 부분은 각자 상부의 이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희 러시아는 이미 모든 결정권을 저에게 일임했습니다. 기존 유럽 연합의 조건보다 조금 높은 조건까지 자유롭게 제안이 가능합니다.”

생각보다 빠른 러시아의 행동에 장내의 모두가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외교관 한 명에게 그런 권한을 쥐어준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확실히 러시아의 스타일이 나타나는 부분.

그러나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장위건도 지고 있지는 않았다.

“러시아의 생각이 그렇다면 저도 상부에 바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보면 우리 중국도 러시아와 별다를 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장위건까지 그렇게 애기하자 결정권은 사노와 이지호에게로 넘어왔다.

사실 이지호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사노였다.

미국은 러시아나 중국처럼 이처럼 중대한 일을 한 사람에게 맡기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언론과 야당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때문.

역시나 사노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한 번 상부에 보고해 보겠습니다.”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어차피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나온 방안을 제외한 두 번째 방법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일단 러시아에서 말해준 방법으로 기존의 불만 세력들을 포섭한다고 해도, 핵심 세력을 와해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쟁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잘하면 쉽게 끝낼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말이야.”

가만히 회의를 듣고 있던 세은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세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느끼며 세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아프리카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 말이야.”

“어떤 점 말입니까?”

“아프리카에서 학살을 저지르던 마왕의 끄나풀들, 분명히 유럽에서 왔다고 했지. 그런데 너무 시의적절하게 우리를 방해했단 말이야.”

세은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마왕이 지구의 정세에 대해 그렇게 통달할 수가 없으니 분명히 누군가를 수하로 삼았겠지. 그리고 그 수하가 단순한 일반인이라면 우리를 방해할 리도 없어.”

세은이 거기까지 말하자 장내의 모두가 세은의 말을 이해했다.

모두 그 정도 말을 이해할 정도의 수준이 되는 두뇌들이었다.

“그 말씀은……?”

“유럽 연합의 상층부에 마왕의 부하가 있다는 말입니까?”

“단순히 심증이기는 하지만, 주변 상황을 조합해 봤을 때 가장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

“하긴, 너무 적절한 타이밍에 방해가 들어오기는 했습니다. 굳이 아프리카에 우리가 가는 것을 방해할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물증이 없는데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지호의 물음에 세은이 대답했다.

“소문을 내야지요. 소문.”

장위건이 세은의 말에 박수를 크게 쳤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군요.”

이고르도 한 마디를 보탰다.

“그런 소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럽 연합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거기에 이번 학살과 연관되어 정황 증거를 정확하게 뿌리면 더욱 타격이 크겠지요.”

“이런 방법으로 겉에서 흔들고, 처음 나온 방법으로 기존 불만 세력을 포섭한 다음 핵심 구성원에 대한 흔들기를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일이 정말로 많은 도움을 주는군요.”

다들 신이 나서 이번 정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상대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간에, 저희를 방해하려고 했던 일이 자충수가 된 꼴입니다.”

“그 오지에서 고생한 게 있는데 이 정도 대가는 있어야지.”

“이 방법이면 제대로 반격을 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은은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는 듯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남은 건 실무자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었다.

“감히 헛소문까지 퍼트려서 싸움을 걸어왔으니 본때를 보여줘야지.”

앞으로의 전략에 대한 논의로, 회의실은 점점 열기가 더해져 갔다.

* * *

달칵―

집으로 돌아간 세은은 우선 창문부터 열어 공기를 환기했다.

한동안 창문을 열지 않았는지 답답한 공기가 실내에 가득했다.

최근에는 기자들도 몰려들지 않아 창문을 열어도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가볍게 공기를 환기시킨 세은은, 방문을 열어 방 안을 확인했다.

“자고 있네.”

방에는 채연과 에린이 침대 위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던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혹시나 잠을 깨울까 세은은 가만히 방문을 닫고 방을 나서려고 했다.

“우웅…….”

그러나 이미 열린 방문으로 들어온 차가운 공기에 잠이 깼는지 에린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아, 잠에서 깼어?”

아직 잠에서 덜 깬 에린이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상체를 일으켜 세은을 바라보았다.

함께 이불을 덮고 있던 에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불이 걷히며 채연과 에린의 상반신이 들어왔다.

속이 비치는 얇은 슬립에 세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돌아갔다.

“우음?”

이불이 걷혀지며 느껴진 찬바람에 채연 역시 잠에서 깨어났다.

에린과 마찬가지로 지금 막 잠에서 깨어 비몽사몽한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던 채연은, 문 앞에 서 있던 세은을 보고 잠결에 인사를 건넸다.

“오빠 왔어요?”

“응. 깨워서 미안하네. 더 자.”

여전히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세은이 대답했다.

그러나 여전히 잠에 취한 상태로 채연이 역시 몸을 일으켰다.

덕분에 슬립으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상반신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래도 왔는데 누워서 인사를 할 수…….”

말을 잇던 채연은 상체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

잠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듯 멍하니 아슬아슬한 자신의 상체를 바라보던 채연의 시선이 옆의 에린에게로 향했다.

“꺄, 꺅?”

파바밧―

속이 다 비치는 얇은 잠옷을 입고 있단 사실을 깨달은 채연이 급하게 이불을 끌어올려 자신과 에린의 상체를 가렸다.

여전히 잠에 취해 있던 에린도 채연의 황급한 움직임에 비로소 상황을 파악하고 시뻘게진 얼굴로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렸다.

“뭐, 뭐예요!”

홍시처럼 시뻘게진 얼굴로 채연이 소리쳤다.

여전히 옆을 보고 있는 상태로 세은이 나름 차분하게 대답했다.

“응. 아무것도 못 봤어.”

“뭘 못 봤다는 거예요?”

“아니, 하여튼 못 봤어. 안 보이더라.”

그 말에 채연이 순간 발끈해서 소리쳤다.

“아니, 어떻게 안 보여요? 없는 것도 아닌데?”

안 보인다는 말에 순간 몸매에 대한 자부심이 발동한 채연이지만, 말을 하자 다시 부끄러움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후우.”

난감한 상황에 한숨을 내쉰 세은이 몸을 돌리며 방에서 나가며 말했다.

“하여튼 돌아왔다고. 이따가 봐.”

탁―

세은은 재빨리 밖으로 나가 방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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