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38. 마왕 바딘(3)
단순히 마기를 흘리고 다니는 놈들을 발견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불쾌함이 느껴졌다.
주변의 풍경 자체가 일반적인 자연 환경과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처음 습지대에서 잡은 습격자에게 얻은 정보로 시작해서 하나씩 역추적을 하면서 도착한 장소.
바로 바딘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확실히 불쾌하네요.”
존이 사방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이게 좋을 놈들은 여태까지 오면서 잡은 놈들밖에 없지.”
세은이 존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 다른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마왕이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왔다는 말이 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세은이 잡아낸 놈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유럽에서 왔다고 말을 했다.
거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스위스에서 이미 일이 한 번 일어났던 것은 세은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굳이 마왕이 유럽에 소환되었다가 아프리카까지 올 필요가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유럽에 있다가 아프리카로 온 게 바딘이라면, 마왕은 지금 동남아에서 유럽으로, 그리고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넘어온 것이니까.
“많이 이상한 겁니까?”
“일단은 그렇지.”
마왕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던 존이 물었다.
세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존의 말에 대답했다.
“제대로 힘을 회복하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옮겨다니는 것부터 이상한 일이지.”
세은의 말에 존이 충분히 이해를 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내가 오는 것을 미리 알아챘다고 하기에는, 지금은 자리를 잡고 있잖아?”
아직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마왕이 누구인지 모르던 세은은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행동에 일관성이 없으니 오히려 무슨 일인지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말씀을 듣고 나니까 떠오른 일인데, 원래 아프리카에 마왕이 하나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럼 지금 잡으러 가는 마왕이 원래 있던 마왕이 아니라 동남아에서 유럽까지 거쳐 이곳으로 왔다고 하면, 마왕이 하나 더 남아 있다는 말이 됩니다.”
“끄응…….”
존의 말에 머리가 더 복잡해진 세은이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유럽만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어도 동시에 확인하면서 일을 진행할 수 있는데, 유럽 하나 때문에 일이 전부 복잡해지고 꼬인 상황.
잠시 고민하던 세은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뭐, 일단 여기 있는 놈부터 잡아야겠지.”
“하긴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존의 생각에도, 지금 가진 정보로는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물론 정보가 더 있었다면 달라지겠지만.
습격자들에게서 세은이 얻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일단, 습격자들은 모두 다 유럽 출신이었다.
생김새는 당연히 모두 달랐지만, 세은이 어디서 왔는지 물었을 때 모두 유럽이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이 거짓일 가능성도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었지만, 존은 거의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들은 원래 미약하나마 각성자였다.
세은이 확인해 준 것이니 확실한 사항이었다.
그 말은 누군가가 각성자인 사람들을 모아서 마기를 이용해 힘을 늘려줬다는 말.
조력자가 있거나, 최소 사회에 잘 파고들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굳이 아프리카 오지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고?’
확실한 물증은 없고 오직 심증만이 있었지만, 존은 지금 이곳에 있던 마왕이 유럽에 있던 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지금 세은과 존은 우연히 원래 아프리카에 있던 마왕을 찾은 것이었다.
한 마디로 본래의 목적을 잘 찾아온 상황.
문제는 존의 생각대로라면 유럽에 마왕이 여전히 있고, 그 마왕은 상당히 자리를 잡았을 것이란 사실이었다.
“거의 다 왔으니 여기서 기다려.”
생각에 잠긴 존의 귀에 세은의 지시가 들려왔다.
존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 세은은 먼저 속도를 올려 앞으로 치고 나갔다.
어쨌든 존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혼자 남게 되었다.
존을 두고 앞으로 치고 나간 세은은 점점 강렬해지던 마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바딘?”
세은의 시야에, 뱀의 꼬리를 가진 남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떡 벌어진 어깨에 잘 발달된 근육,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그의 애마까지.
마계 18위의 바딘이었다.
세은이 대번에 그를 보자마자 위화감을 느꼈다.
바딘은 물론 상위의 마왕 중 한 명이지만, 그에겐 예지력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동남아에서 유럽으로 이동하고, 유럽에서 세은이 올 것을 미리 안 것처럼 함정을 파놓았다?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시렌.”
그러나 그런 세은을 바라보던 비네의 표정 역시 썩 좋지는 않았다.
설마 벌써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장소를 들킬 줄이야.
조금만 더 있었으면 힘이 완전히 회복되는 데 그 약간의 시간이 모자랐다.
온전한 몸 상태여도 이길 수가 없는 상대를 아주 좋지 않은 상태일 때 만난 것이다.
“이 지역의 난리들은 네가 한 짓이었군.”
“무슨 소리야?”
바딘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하하. 이 뱀새끼가?”
바딘의 말에 세은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마기를 가진 놈들을 잡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뭐?
“잘도 부하들을 시켜서 사람들을 학살하고 다녔던데 말이야.”
“아? 아아. 걔네들?”
“모르는 척 잘하네?”
“모르는 척 하기는? 신경 쓸 필요도 없을 정도라 잊고 있었을 뿐이지. 너무 날카로워져 있는 거 아니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좀 웃으라고.”
바딘이 능청을 부렸다.
“여기가 마계였으면 좀 웃어줬을 수도 있지.”
우우웅―
“하지만 마계라서 웃어줄 수가 없겠다.”
말을 마친 세은의 양손에, 신성의 방패와 검이 생성되었다.
그 모습을 본 바딘이 질겁하며 말했다.
“우아. 시작부터 너무 공격적이네.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었어? 아무리 개라도 말이야…… 처음에는 바로 물지 않는다고.”
바딘이 호들갑을 떠는 척 하면서 세은의 신경을 긁었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천천히 바딘을 향해 다가갔다.
너무 여유로운 모습으로 보아 혹시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비네와의 대결에서 크게 당한 세은은 더 조심스럽게 바딘에게 접근했다.
휘익―
세은이 천천히 자신과 거리를 좁히던 걸 본 바딘이 자신의 애마를 소환했다.
바딘을 닮아 꼬리가 뱀으로 된 애마가 순식간에 바딘의 옆으로 뛰어 들어왔다.
바딘은 자신의 애마에 가볍게 올라타고서 자신에게 다가오던 세은에게 말했다.
“후후. 아쉽지만 그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군. 나중을 기약하지.”
“뭐?”
그러나 그 말에 세은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바딘은 애마를 재촉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세은이 순간 멈칫했다.
그다음에는, 도주하는 것 자체가 함정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후우.”
그러나 만약 함정이라고 하더라도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거기다 바딘은 마왕 중에서도 민첩하고 빠른 것으로 유명한 마왕이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면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도망칠 게 분명했다.
우우우웅―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온몸에 신성력을 더 두른 세은이 바딘을 쫓기 시작했다.
바딘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가 지나간 길엔 진한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마기를 따라가면 그를 놓칠 일은 없다.
“다행히 함정은 아닌가 보군.”
거기에 얼마간 바딘을 쫓았지만, 함정 같은 것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바딘은 정말로 그저 도주를 한 것 같았다.
‘이게 더 이상한데 말이야…….’
세은은 함정이 하나도 없는 바딘의 도주를 쫓으며 또다시 위화감을 느꼈다.
바딘은 분명 세은이 올 것을 몰랐다.
그렇다면 유럽이나 동남아의 일은 바딘이 한 게 아니라는 말이 된다.
만약 그 둘도 바딘이 한 것이라면 지금은 모르는 것처럼 연기를 하나는 것인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결국 바딘은 원래 아프리카에 있던 놈이란 말인데.’
결국 세은도 아까 전의 존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 남은 건, 바딘을 잡아 돌려보내기 전 그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일.
세은은 더욱 추격에 박차를 가했다.
“헛수고를 하는군.”
바딘은 자신의 권역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확실히,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면 마기가 하나도 없어서 바딘의 도주로가 더욱 바로 들킬 테니까.
권역 안엔 그동안 쌓인 마기가 있어 계속 이렇게 도망치다 보면 특별하게 마기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 역시 속도로는 따를 자가 없다는 마왕 바딘.
세은은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단 사실을 깨닫고 일단 존에게로 향했다.
“도?”
생각보다 세은이 빨리 돌아오자 놀란 존이 그를 불렀다.
“조심해.”
“예?”
세은은 짧은 경고만 남긴 채 부가적인 설명 없이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에일린. 홀리 파이어.”
화르륵― 화륵―
순식간에 거대한 신성의 불이 허공에서 타올랐다.
세은은 망설임 없이 그 불을 자신의 뒤쪽으로 집어 던졌다.
물도 증발시키는 고온의 불에, 순식간에 사방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허, 허억?”
갑작스런 세은의 행동에 놀란 존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하지만 세은의 행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홀리 파이어.”
또다시 화염을 생성한 세은이 이번에 자신의 옆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세은의 옆도 화려하게 불꽃을 일으키며 타올랐다.
순식간에 화마가 번지는 모습이 보였다.
“도, 도? 대체 이게?”
그러나 세은은 존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바로 다음 신성 마법을 시전 했다.
“에일린. 홀리 웨이브.”
불이 존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앞에 방어막을 설치까지 하는 것으로 일을 마친 세은이, 다시 존에게 지시했다.
“여기서 가만히 있어.”
“예?”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존이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몸을 날려 자신이 불을 붙이지 않은 방향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마왕의 권역은 결계로 보호된다.
안에서 불을 지른다고 밖으로 퍼지지는 않을 터.
결국 권역 안이 불에 타오르면 바딘이 있을 수 있는 덴 한정적으로 될 것이었다.
물론, 바딘을 역소환시키고 나면 불을 잡는 건 세은의 몫이었다.
타닥― 타다닥―
나무들이 불에 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마치 서라운드 스피커로 소리를 듣는 기분.
히이잉―
“시렌 이 개새끼야!”
조금 기다리다 보니 역시 바딘이 악에 받쳐 세은이 있는 안전한 곳으로 달려왔다.
신성력으로 타오르는 불꽃은, 아무리 바딘이라고 해도 오랫동안 참기 힘들었다.
“왔어?”
“이 개새끼!”
잔뜩 열이 받은 바딘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세은은 그런 바딘의 욕설을 가볍게 받아넘기며 말했다.
“그러게 왜 도망을 가? 사람 귀찮게 그치?”
“이 시발 새끼! 에일린의 남창 새끼!”
바딘의 욕설이 점점 심해졌다.
하지만 이미 그런 욕설에 익숙한 세은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아니면 차라리 권역 밖으로 도망치지 그랬어? 그건 또 무섭지? 뱀새끼야. 적어도 권역 안에 있어야 나랑 할 만하니까.”
“크으!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하긴, 약한 놈이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겠지.”
우웅―
세은은 또다시 양손에 방패와 검을 생성해도 들었다.
“자,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