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26화 (126/225)

# 126

38. 마왕 바딘(1)

“흐아.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드디어 끝났다는 기쁨을 담아 존이 말했다.

“흐음…….”

세은은 여태까지 방문했던 장소들과 마찬가지로 주변을 살폈다.

허탕인 곳도 있었지만, 존이 알아냈던 대부분의 장소는 정말로 마을이 사라져 있었다.

정부에서 사람들의 시체와 피 냄새는 처리했지만, 마을의 흔적까지 지울 수 없는 일이니까.

이 정도의 마을이 단기간에 없어졌으니 이렇게 외지인을 경계할 만도 했다.

“수법이 잔인하기는 한데…… 너무 늦어서 그것 말고는 알 수가 없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까지 했는데 단서가 없다는 사실에 맥이 빠져 버린 존이 물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 세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었다.

물증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워낙 땅이 넓고 정보가 없다 보니 상대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이상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딱히 여기만의 일도 아니어서, 세은은 정말로 짜증이 치솟았다.

그러나 지금 짜증을 낼 수는 없는 상황.

차분한 목소리로 존에게 물었다.

“대충 어떤 기준으로 마을이 당했는지 알 수 있나?”

“끄응…… 별 기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위치가 너무 제각각이고 부족도 다릅니다.”

존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북동쪽에 피해 지역이 몰려 있다는 점 하나뿐입니다.”

“북쪽에는 뭐가 있지?”

“죄송합니다. 저도 자세하게는 모릅니다. 소금 호수와 습지대가 있다는 정도입니다.”

“습지대?”

세은이 되물었다.

“예. 습지대가 있습니다.”

“그럼 거기로 가지.”

습지대가 있다는 말을 들은 세은이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그 모습에 존이 물었다.

“혹시 뭐라도 발견하신 겁니까?”

“아니.”

세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일단 마왕이 있다고 가정을 하면, 보통 자신의 근거지 근처에서 활동을 하겠지. 그게 기본이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소금 호수와 습지대 중에서 마왕들이 더 선호하는 환경으로 가봐야겠지. 습지대는 좋아하는 놈들이 꽤 있어도 소금 호수는 거의 없으니까.”

“아…….”

세은의 대답에 존이 낮게 탄성을 내질렀다.

마왕의 특성에 대해 하나도 모르던 존으로서는 알 수 없는 정보였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실마리를 잡았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 넓은 곳을 아무런 단서 없이 다녀야 한단 말이었으니까.

“그럼 바로 이동하지. 오래 있어 봐야 얻을 것도 없으니까 말이야.”

“예!”

존은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오카방고 델타 습지대의 방향을 확인했다.

그렇게 둘은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습지대로 이동을 시작했다.

오카방고 델타 습지대는 결코 바다를 찾지 못하는 강이라고 불리는 곳.

강이 바다가 아니라 사막으로 퍼져가는 것이 그렇게 불리던 이유였다.

그러나 앙골라에서 시작해 나미비아를 거쳐 보츠와나에서 생성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 삼각주인 장소였다.

덕분에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오지 중에 한 곳으로 손꼽히던 곳이기도 했다.

장소를 확인하고 정보를 검색한 존의 설명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본거지가 아니어도 마을을 습격한 습격자들이 숨어 있을 만한 장소일 법했기 때문.

오래 머물거나 최근에 머문 흔적이 있다면 세은이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다.

적어도 소금 호수보다는 이곳이 훨씬 단서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잠깐.”

끼익―

세은의 말에 차가 이동을 멈췄다.

존은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알기 위해 세은을 바라보았다.

세은은 가만히 어느 한 지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확실히, 잘 찾아온 것 같은데?”

“뭐라도 찾으셨습니까?”

세은은 진지한 표정으로 존에게 지시했다.

“일단 나중에 얘기하고 저쪽으로 가보지. 긴장하고.”

그 말에 존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세은이 가리킨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을 하다 보니 그도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동물이…….”

오카방고가 동물들의 낙원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동물이 한 곳에 몰려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차가 다가감에도 불구하고 동물들의 수는 그리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동물이 상당히 많습니다.”

존이 이상한 점을 느꼈다.

동물들 중에서도 새 종류가 너무 많이 몰려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독수리 종이 가장 많았다.

마지막으로 저 멀리 차를 보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던 하이에나 떼가 보였다.

“피 냄새?”

“…….”

그리고 존도 드디어 비릿한 냄새를 맡았다.

동물들이 서로 잡아먹을 수 있으니 충분히 피 냄새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직감적으로 이게 동물들의 피 냄새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은이 긴장하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디서 이미 배를 채웠는지, 동물들을 차를 경계하면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두 눈에선 나른함이 뿜어져 나오는 여유로운 태도만 보였다.

하지만 세은이 이상한 점을 느낀 건 피 냄새가 아니었다.

“계속 가.”

세은이 살짝 당황한 존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잠시 예상치 못한 환경에 당황했지만, 자신의 옆에 세은이 있다는 것을 상기한 존이 다시 조심스럽게 엑셀을 밟았다.

물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처음보다는 더 조심스럽게 속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천천히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세은이 손을 들어 존을 제지했다.

“멈춰.”

끼익―

세은의 지시에 차가 바로 멈췄다.

그러나 세은의 말이 없더라도 존 역시 차를 멈췄을 게 분명했다.

눈앞에 보이는 상당히 널찍한 공터에 여기저기 찢긴 옷가지와 살점이 여기저기 널려 있던 것이다.

독수리를 포함한 세 때가 차를 발견하고 뒤늦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으윽…….”

존도 사람이 죽은 것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역겨움이 차올랐다.

탁―

그러나 세은은 그런 존을 두고 차에서 내려 현장으로 다가갔다.

여기저기 널려진 핏자국, 산산 조각난 신체 부위들, 사람이 머물렀을 것 같은 캠핑 용품.

마지막으로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차량 한 대.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는지 썩은 악취가 올라오지는 않고 있었다.

세은은 가만히 공터의 중심으로 가 바닥을 살펴보았다.

뒤늦게 존이 세은을 뒤따라 차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도 이미 당한 것 같습니다.”

다른 마을들은 이미 보츠와나 정부에서 정리를 한 상태라 정리된 현장만 볼 수 있었다.

여태까지는 대체 왜 현장보존 같은 걸 하지 않고 그랬을까 의문이었는데, 이 모습을 보니 정리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을 것이 분명했다.

괜히 범인도 잡을 수 없는 와중에, 현장을 보존한답시고 이렇게 갈가리 찢긴 시체들을 그냥 놔둬 봐야 흉흉한 소문만 더 돌 게 당연하니까.

차라리 시체라도 치워서 사람들의 공포감을 더 줄이는 게 나은 선택이었을 터였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군.”

“아! 드디어?”

세은이 말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존이 반색하며 대답했다.

이런 꼴까지 봤는데 드디어 단서가 나왔다니 조금이나마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타이밍을 그나마 잘 맞춘 것 같군. 아직 미약하게나마 마기가 남아 있어.”

“휴우. 다행입니다.”

세은의 말에 존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조금만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세은이 쓴웃음을 지으며 존에게 말했다.

그러자 존도 미간을 굳히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들이 조금만 더 이곳으로 왔다면 더 수월하게 꼬리를 잡는 것은 물론, 사람들도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이미 늦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범인을 잡아서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의 복수를 해주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때까지도 주변의 마기를 계속 체크하던 세은이 앉아 있던 몸을 일으키며 존에게 말했다.

“자, 그럼 이동하지.”

* * *

에르난데스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오지를 헤치고 걸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상당한 시간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마음껏 사냥을 할 수 있단 쾌감이 이 정도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습기? 벌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을 죽이면 피가 튀어 옷이 축축해지니까.

벌레 정도야 받은 힘을 조금만 퍼트리면 감히 접근도 하지 못했다.

땅이 질척거리는 것도 같은 이유로 참을 만했다.

어차피 피에 젖은 땅은 질척거리니까.

특히 이번에 목표로 잡은 이 습지대는 오히려 그 습기 때문에 사냥감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오히려 이 습기에 감사할 수밖에.

오늘도 한 건 하고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다음 목표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굳이 속도는 내지 않는다.

마약을 한 번에 흡입할 필요가 없듯이 사냥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만족감과 부유감이 천천히 사라지면 그때 새로운 사냥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에르난데스와 동료들 사이에 있는 유일한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대다수가 사냥을 원할 때까지 천천히 이동만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처음에는 한 덩이로 뭉쳐 다녔던 무리들이 지금은 각자의 사이클에 맞게 여러 단위로 나눠져서 사냥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에르난데스의 무리는 오늘 아침에 간단하게 사냥을 한 이후로, 절반 정도가 다시 사냥을 원하고 있는 상태.

물론 에르난데스도 그중 한 명으로, 가장 앞장서서 다음 사냥터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 근처라고?”

동료 한 명이 그의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사냥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다들 멀쩡했다.

물론 그건 에르난데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동료의 질문에 자신감 있는 어조로 대답했다.

“물론, 아침에 남은 한 마리를 사냥하기 전에 물어봤지.”

“크흐. 대단하군. 어떻게 그런 참을성을 발휘하지? 나는 도저히 못 참겠던데 말이야.”

“다음 사냥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니까 말이야.”

“너와 같이 사냥하기를 잘한 것 같단 말이야. 다른 놈들은 물론이고 나도 그러기가 쉽지 않아.”

동료의 칭찬에 에르난데스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다른 팀들은 아마 한 번의 사냥이 끝나고 다음 사냥감을 찾을 때까지 상당히 헤매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프리카의 땅은 넓고,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으니까.

혹시나 찾는다고 해도 일정 이상의 수가 아니면 오히려 욕구불만이 쌓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에르난데스는 항상 다음 타깃의 소재지를 확인하고 사냥을 맞췄다.

그건 피만 보면 광기에 휩싸인 다른 이들은 따라하기가 힘든 일이었다.

“흐흐. 이거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군. 거의 다 왔으니 얼른 가서 다시 손맛을 보자고.”

“그거 좋지!”

에르난데스의 말에 동료가 광기와 희열이 뒤섞인 얼굴을 하며 소리 질렀다.

“거의 다 왔다고 한다!”

“끼야호!”

“히이!”

그의 외침에 뒤의 동료들도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자! 가자!”

동료들의 호응에 기분이 상승한 에르난데스가 앞장서서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타다닥―

속도를 올려서 조금 더 달리자, 눈앞에 사냥감이 말했던 또 다른 캠프가 들어왔다.

에르난데스는 사냥감이 보이는 순간 허리춤에서 소도를 꺼내들며 가장 먼저 사냥을 시작했다.

“사냥이다!”

에르난데스가 익숙하게 사냥감의 힘줄을 끊어냈다.

“컥?”

그런데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린 이는 오히려 사냥감이 아닌 에르난데스였다.

그의 신음소리에 뒤에서 달려오던 동료들의 시선이 동시에 에르난데스에게로 향했다.

동료들의 시선이 모인 그곳에는, 에르난데스의 신형이 천천히 허물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에르난데스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주인공은 손에 쥔 하얀빛의 검을 휘두르며 사내들에게 말했다.

“어디, 나도 사냥 한 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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