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25화 (125/225)

# 125

37. 오해(2)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세은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존이 갇혀 있던 장소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보츠와나 전체와 싸울 것이 아니라면 일단은 몸을 숨길 장소가 필요했다.

“준비된 장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럼 일단 거기로 가지.”

세은의 말에 존이 앞장서기 시작했다.

“일단 이 도시에서 정보를 수집하기에는 그른 것 같습니다.”

존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세은에게 말했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조합이 흔한 게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세은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사실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 같습니다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가 애매하네.”

“그렇습니다.”

“다른 도시에는 요원들이 없었나?”

“예. 사실 아프리카에 이 정도로 신경 쓴 것은 최근이라…….”

세은의 물음에 존이 또다시 말끝을 흐렸다.

분쟁 지역이 아닌 이상 아프리카에 이 정도로 역량을 쏟아부을 만한 일이 최근에는 없었다.

대부분의 정보원들은 보통 중동과 그 근처 지역에 투입되어 활동하고 있는 상황.

그 와중에 가용 가능한 여유 자원을 최대한 가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머지는 도착해서 얘기하지.”

“예!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존 역시 처음 와보는 장소일 텐데도 불구하고, 마치 자주 와서 익숙한 것처럼 거침없이 세은을 안내했다.

아마도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5분 정도 이동하자 존의 걸음이 멈췄다.

“이곳입니다.”

처음 갔던 안가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안가를 선정하는 기준에 맞추다 보니 그런 듯했다.

무사히 안가로 도착해서 안전을 확보한 존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녁에는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의 말에 세은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하게 보고해 봐.”

“그러니까 제가 조심스럽게 최대한 여행객인 척하면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의 일이라 존은 자세하게 당시의 상황을 세은에게 전달할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사면서 자연스럽게 물어봤습니다. 도시에 여행을 왔는데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 같다. 원래 외지인을 별로 안 좋아하냐. 그러자 마트 사장이 그건 아니고 최근에 일이 좀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래서 그 일이 뭐냐. 뭔데 나만 보면 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어봤더니 그럴 만한 일이 있다고만 하고 대답을 피하더군요. 몇 번 더 물었지만 대답이 없어 근처의 다른 가게로 갔습니다.”

존은 호흡을 조절하고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다음에는 기념품이 될 만한 것들을 파는 가게로 갔습니다. 거기서도 마트와 똑같이 물었는데 대답을 안 해주더군요.”

“딱히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세은의 말에 존이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너무 노골적으로 외국인들을 경계해서 이 정도는 충분히 물어볼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저희 생각보다 사람들이 더 예민해져 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흐음.”

“거기에 제가 이렇게 물어보는 게 처음이 아니라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없어진 마을에 대해 물어보고 다녔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제 모습을 목격했던 것 같습니다.”

“운이 없었군.”

존이 원래 아프리카를 담당하는 요원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그가 어설프게 접근했을 리가 없었다.

존의 말대로 사람들이 과다하게 예민해져 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하긴, 마을이 한두 개도 아니고 여러 개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했으니까 그럴 만도 하겠어.”

세은의 말에 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특히 아직도 미신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한 번 소문이 퍼지면 그 공포감도 배로 전파되었다.

“일단 여기에서는 더 이상 정보를 얻는 것이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아.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몇 가지 떠오르는 방법이 있긴 한데, 전부 최선은 아닙니다.”

“일단 들어는 보지.”

세은의 말에 존은 자신이 생각한 몇 가지 방법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는 일단 돌아가서 본국의 지원을 받아서 움직이는 겁니다.”

“이 의견은 기각하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놈들이 정체가 마왕이 맞는다면 꼬리를 놓치기 전에 잡아야 하니까. 두 번째 의견은?”

“두 번째는 나미비아의 요원들을 이리로 부르는 겁니다. 다만, 이 도시는 이미 경계가 극에 달해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서 정보를 얻어 와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데리고 있는 포로들이 문제가 되겠군.”

“그렇습니다. 지금도 사실 포로의 수가 너무 많은 상황이라…….”

“그냥 놔줬다가는 어떤 일을 벌일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잠시 고민하던 세은은 존이 개진한 두 번째 의견도 기각시켰다.

“다른 방법은 없나?”

“지금처럼 도와 저 둘이서 움직이는 방법입니다.”

“으음…….”

확실히 세은이 생각해도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앞의 두 방법보단 마지막 방법이 가장 현실성이 있었다.

문제는 과연 둘이서 정보를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는가의 여부.

세은은 정보 수집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기에 결국 존 혼자서 정보를 모으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세은이 결국 몸으로 때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쩔 수 없지. 마을들이 자주 습격을 당한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대략적으로 들은 소문으로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곳은 없어진다고 하더군요. 사실 통신이 발달한 곳이 아니라 소식이 한 번에 몰려서 그런 건지. 정말로 일주일에 한 곳씩 당하는 건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소문이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워낙에 인프라가 열악하다 보니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여태까지 얻은 정보로 추리를 해야겠군. 일단 지도를 가져와 봐.”

세은은 존에게 지도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여기에 있습니다.”

존은 안가에 숨겨진 책장에서 이 지역의 지도를 가지고 나왔다.

넓게 펼쳐진 지도를 가리키며 세은이 존에게 말했다.

“일단 없어진 마을들이 어디에 있는지 표시부터 해보지.”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물론.”

존의 말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존은 세은과 함께 방문했던 마을부터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많이 알아내지 못했지만, 의심을 받기 전에 알아냈던 마을이 몇 군데 있었다.

“6군데밖에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많은데? 확실한 거야?”

“예. 불확실한 곳은 아예 배제했습니다.”

“그럼 불확실한 곳은 다른 모양으로 표시해 봐.”

불확실한 곳이 더 있다는 말에, 세은이 존에게 지시했다.

세은의 말에 존의 손이 거침없이 지도 위를 움직였다.

“이렇게나 많다고?”

“예. 아무래도 다 믿기에는 좀 그렇습니다만.”

“확실히…… 여기 사람들은 전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우리를 경계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존의 손이 움직임을 멈춘 지도 위에는, 처음의 표시를 합쳐서 거의 스무 개에 가까운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이 정도 숫자면 외부인을 이렇게까지 경계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공통점은 주로 북동쪽에 집중되어 있다는 건가?”

“예. 북쪽과 동쪽에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접점인 북동쪽에 가장 표시가 많습니다.”

“그럼 아무래도 여기로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움직여야겠군. 확실한 곳을 먼저 가보고, 불확실한 곳은 과연 정보가 진실인지 확인하러 움직이지.”

“예. 준비하겠습니다!”

세은의 말에 존이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그래, 바딘은 뭐라고 하더냐?”

어둠 속에 있는 소년, 바싸고가 바딘의 소식을 전해온 부하에게 물었다.

부하는 바싸고의 질문에 더욱 깊이 고개를 조아리고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도움에 감사를 표한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폐하를 본받아 영지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바싸고가 나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곳에는 시렌이 있어서 잘못하면 바로 들통이 날 텐데 말이야. 이 사실도 전달했나?”

“예. 전달했습니다.”

“그랬는데도 그렇게 한다는 말이지? 힘이 꽤 회복이 되었나 보군.”

“폐하께서 혼란을 주신 덕분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해서 회복하기가 한결 수월하다고 합니다. 이 정도 속도면 영지를 구성해서 회복 속도를 올리면 될 것 같다고 합니다.”

“하긴, 권역이 있으면 회복이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기는 하니.”

바싸고는 풍부하게 느껴지는 마기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자신이야말로 조금만 더 있으면 힘이 완벽하게 회복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마계에서 자신의 동료들을 불러올 수도 있으리라.

힘을 전부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시렌은 혼자서 상대하기엔 버거운 상대임이 분명했다.

만용은 죽음만을 부를 뿐이었다.

“하여튼 바딘이 조금 더 버텨주면 좋겠군. 모든 준비를 마칠 때까지 시렌의 시선이 여기로 향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예!”

“그건 그렇고, 수뇌부들을 세뇌하던 일은 잘 되어가고 있나?”

바싸고의 말에 여전히 납작하게 부복하고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현재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작업이 끝났습니다.”

“그 소수의 인원은 뭐가 문제지?”

“현재 아프리카에 파견되었다가 잡힌 사람과, 능력이 있어서 조금 더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부 인원입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하군.”

바싸고가 빙글 웃음을 지었다.

“한 달 이내로 짐이 그리로 갈 수 있게 준비하거라.”

“예!”

빠릿빠릿하게 대답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바싸고에게 물었다.

“폐하. 감히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윤허한다.”

“굳이 본부로 오시려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내의 질문에 바싸고가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뭐든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깨부수면 그 충격이 더한 법이니라.”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내가 쉬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바싸고는 추가로 설명을 해주었다.

“이런 변방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보다, 유럽이라는 대륙의 본부가 정복의 근원이라는 것이 더 충격이 크지 않겠느냐?”

“아…….”

그의 말에 사내가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바싸고가 워낙 시렌, 시렌하면서 그를 경계를 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본 사내의 생각은 달랐다.

차라리 그렇게 그가 두렵다면 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 거사를 시작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싸고의 말을 들으니 굳이 본부를 차지하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골의 도시가 공격당한 것보다는 수도가 공격당하는 것이 더 충격이 큰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이제야 사내가 자신의 뜻을 알아챈 것 같아서 바싸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알겠느냐?”

“감히 폐하의 심중을 알 수가 없습니다.”

“충분하다. 시키는 대로 잘해주고 있으니.”

“황공하옵니다.”

“그럼 우리는 바딘이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준비를 마치는 데 집중하도록 하지.”

“예!”

“차라리 바딘이 연대를 거절한 게 좋은 일인 것 같군. 그랬다면 시간을 벌기가 힘들었을 테니 말이야.”

만약 바딘이 처음 자신의 제안대로 자신과 손을 잡아서 유럽으로 넘어왔다면, 시렌의 시선이 유럽을 향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일을 벌이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

그러나 예상외로 시렌이 헤매고 있는 지금.

오히려 바딘이 연계를 거절한 것이 더 좋은 수가 된 상태였다.

“이번에는 지지 않을 것이야.”

자신에게 패배를 선물했던 시렌을 떠올리는 바싸고의 눈에, 순간 날카로운 빛이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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