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37. 오해(1)
“밤만 되면 악마들이 마을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저, 정말입니다!”
악마라는 말 자체를 믿지 않는 존이 인상을 찌푸리자, 흑인이 다급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마을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몰살당하는 일이 요즘 들어서 엄청 많습니다. 저주를 받은 겁니다!”
존은 별다른 반응 없이 흑인을 지긋이 노려보았다.
“그런데 왜 우리를 피하지?”
잠시 고민하던 존의 말에 흑인이 말을 더듬었다.
“소, 소문 때문입니다!”
“무슨 소문? 자꾸 이렇게 되묻게 하지 마. 알아서 쭉 말해 뒤지기 싫으면.”
존이 불편해진 표정으로 흑인을 압박했다.
그러자 흑인이 절실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도 똑같을 겁니다. 악마의 피부색이 하얗다는 소문이 있어서 다들 피하는 겁니다.”
“그 소문은 누가 냈지?”
“모, 모릅니다. 소문이란 게 원래…….”
“악마가 하얀색인 건 확실해?”
“저는 못 봤습니다. 악마를 보고 살아온 사람이 있을 리가요.”
“그럼 그 소문은 뭐야?”
“듣기로는 정말로 천운으로 살아난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흑인의 말이 존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이런 미신과 관련된 말에는 사람들의 주장이 엉망인 경우가 많았다.
“마을들이 없어지는 건 확실해?”
“무, 물론입니다. 정부의 각성자들과 군대들이 현재 비상사태입니다.”
“단순히 내전이나 그런 사태는 아니고?”
“사망자들이 대부분 머리가 터져 있거나, 온몸이 분해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흐음…….”
흑인의 말에 존이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 없어진 마을들 위치가 어디어디지?”
“자, 잘 모릅니다!”
비협조적인 태도에 존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그러자 흑인이 몸을 잔뜩 움츠리며 급하게 변명했다.
“저, 저는 악마가 있다는 소문 이후로 도시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괜히 나갔다가 악마에게 걸리면 죽으니까요.”
벌벌 떠는 모습을 보아하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존이 붙잡은 목덜미를 놓아주었다.
“꺼져!”
“예, 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흑인은 연신 온몸을 조아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존은 그런 흑인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세은에게 방금 입수한 정보를 전해주었다.
“그거 이상하네. 악마라고?”
세은의 표정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그런 짓을 할 놈들은 사람 중엔 없을 것 같은데?”
아프리카에 있는 다른 마왕이 활동을 시작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존도 세은의 의견에 동의했다.
확실히 사람이 한 짓이라고 하기에는, 머리를 터트리고 사지를 분해한다는 건 너무 잔혹한 짓이었다.
“확실히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도시 내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은 맞으니까요.”
“그런데 마을이 어딘지를 모르니까 문제군.”
세은의 말에 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좋아. 일단 움직여 보자고.”
“예!”
* * *
두 개의 인형이 어둠 속에서 솟아올랐다.
둘의 시야에서 멀리 보이는 마을에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저기가 확실해?”
“예. 힘들게 알아냈습니다.”
세은의 물음에 존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확실히 인기척이 안 느껴지기는 하는데…….”
“악마에게 당한지 이주가 된 마을이라고 합니다.”
“이주면 너무 늦지 않았나?”
“이 근방에서는 그나마 가장 최근인 마을입니다.”
“흐음.”
세은이 신음을 흘렸다.
이주나 지났으면 만약 마기가 남아 있다고 해도 확인이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다른 곳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쩝. 어쩔 수 없지. 일단 가보자.”
“예.”
세은이 먼저 마을로 신형을 날렸다.
탁―
마을의 입구로 들어서자 아직도 지우지 못한 진한 피냄새가 풍겼다.
비가 오지 않아 피를 가득 머금은 흙들이 아직 피를 머금고 있는 상태였다.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대번에 알아챌 수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건 사실인 거 같군.”
두 발 늦게 뒤따라 온 존에게 세은이 말했다.
“헉헉. 그렇습니까?”
세은을 따라오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존이 힘겹게 대답했다.
세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을 중심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을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오히려 피 냄새가 연하게 변했다.
“마을 외곽에서 가장 많이 죽었군. 딱히 무슨 의식을 치룬 것 같지는 않은데?”
만약 마을 사람들을 제물로 삼았다면 오히려 마을 중앙에서 피 냄새가 가장 진해야 했다.
그렇다고 외곽의 피 냄새가 일정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마구잡이로 죽인 것 같은 느낌.
세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단순히 사람들을 가지고 장난 친 것 같은 느낌인데. 마왕은 아닌 것 같아.”
“아, 그렇습니까?”
“응. 그러기에는 너무 두서가 없이 죽였어.”
“찾으시는 건 있습니까?”
“글쎄…….”
세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아니, 없는 것 같아. 그런데 이주가 지났다고 했으니 없을 수도 있어서 확신은 못하겠군.”
“그럼 다른 곳을 더 알아보겠습니다.”
“가능하겠어?”
이 장소도 힘들게 알아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세은이 물었다.
그러자 존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못해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존의 넉살에 세은도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좋아. 일단 이런 짓을 할 만한 놈들은 거의 없으니까. 마왕을 염두에 두고 일을 진행해 보자고.”
“예!”
* * *
세은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꽤 늦네.”
다른 정보를 수집하러 간 존이 자정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늦은 행보에 세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무래도 도시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 보니 불안한 가정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다고 말이 통하지 않는 세은이 나가서 존을 찾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일단 조금만 더 기다려 봐야겠군.”
혹시 일이 잘 풀리고 있어서 늦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세은은 조금 더 존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결국 새벽 세 시가 넘었을 때 세은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늦는데?”
아무리 일이 잘 풀려도 새벽 세 시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은 분명히 이상한 일이었다.
“말이 통해야 찾기도 할 텐데…….”
잠시 고민하던 세은은 일단 나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가서 각성자들이 있는 곳을 찾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적어도 가만히 기다리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끄응…….”
목을 좌우로 돌려 근육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밖으로 나가려는 세은의 기감에 상당히 많은 각성자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문제는 그 각성자들이 세은이 있던 건물을 중심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세은은, 확실히 각성자들이 자신들에게 온단 사실을 확신했다.
“아무래도 존이랑 관련된 일 같은데 말이야.”
세은의 한쪽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굳이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이렇게 찾아오니까 고마울 지경이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알아서 안으로 들어올 것 같았다.
“흐음. 어떻게 하지?”
세은은 잠시 고민했다.
들어오려는 놈들을 다 잡을지, 아니면 순순히 잡혀서 따라갈지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일단 잡혀가는 게 낫겠네.”
세은의 선택지는 일단 순순히 잡히는 것.
어차피 여기서 들어오는 놈들을 다 잡아서 붙잡는다고 하더라도, 저들 중에 한국어 가능한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세은은 일단 끌려가기로 마음먹고 침대에 누워 자는 척을 시작했다.
어차피 잡혀갈 거라면 이게 훨씬 수월한 방법이니까.
세은이 침대에 누워서 자는 척을 시작한 지 십 분쯤 지났을까?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느낀 침입자들이 안으로 은밀하게 진입하기 시작했다.
세은은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만약의 사태의 대비해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게 준비했다.
“&^%$.”
세은의 방 앞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아주 조용하게 지시를 전달했다.
영어가 아닌 것을 보니 보츠와나의 언어인 츠와나어인 것 같았다.
그리고 지휘관의 지시 이후로 침입자들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
그리고 순식간에 세은을 붙잡아 팔다리를 묶은 이들은, 세은은 커다란 자루에 담았다.
세은은 놀라서 잠에서 깬 척 적당히 연기를 하며 그들에게 보조를 맞춰주었다.
“%^^&%.”
세은을 자루에 담은 이들은 그를 둘러메고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존을 붙잡은 이들이든, 단순히 유럽 같은 곳의 사주를 받은 이들이든 한곳의 방해물은 제거할 수 있을 좋은 기회였다.
털썩―
꽤 긴 시간을 세은을 들쳐 메고 달려온 이들은, 어딘가에 도착하자 세은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는 자루를 거칠게 벗기고는 세은을 안에서 꺼냈다.
‘흐음.’
세은은 자루에서 나오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돌로 꽉 막힌 감옥 같은 건물.
“도!”
그리고 그 방의 구석에는 예상대로 존이 묶여서 나뒹굴고 있었다.
“&^&%$!”
존이 세은을 부르자 방에 서 있던 사람 중에 한 명이 거친 어조로 존에게 발길질을 했다.
“생각보다 멀쩡하네?”
세은은 예상외로 다친 곳이 보이지 않는 존에게 물었다.
존은 방금 전에 발길질로 걷어차인 것을 말고는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순순히 대답을 했습니다.”
세은이 있는 곳을 아는 건 존밖에 없으니 바로 그의 위치를 불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존의 태도를 이해했다.
자신이었어도 순순히 위치를 말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을 이용해서 자신이 여기 있다는 소식을 알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니까.
“당연히 도가 올 줄 알았습니다.”
“예상보다 너무 늦더군.”
“&&^&$!”
둘의 대화가 계속되자 흑인이 불쾌한 표정으로 고성을 질렀다.
세은은 우선 상황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정리부터 하고 얘기하지.”
세은은 말을 마치고 자신을 묶고 있는 포박을 순식간에 힘으로 해제했다.
“&^^&%$!”
너무 쉽게 자신을 묶은 포박을 푼 세은을 보며 놀란 흑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세은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순식간에 방 안에 있던 흑인들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퍽― 퍼억―
세은이 주먹이 내질러질 때마다 한 명의 흑인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채 이 분도 되지 않아 실내에 있던 다섯 명을 정리한 세은은, 존에게 다가가 그의 포박을 풀어주었다.
“무슨 일이야? 뭐 잘못이라도 했어?”
“잘못이라니요. 아닙니다.”
“그럼 왜 이래?”
“아무래도 저희를 그 악마들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뭐?”
말도 안 되는 존의 말에 세은이 되물었다.
“우리는 여기 온 지 하루도 안 됐잖아.”
“자꾸 캐묻고 다니니까 그 점이 수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이것들은 뭐야?”
“보츠와나 정부의 각성자들입니다.”
“휴우…….”
존의 말에 세은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여기서 편하게 활동하기 글렀다는 말이군.”
“……예.”
존이 안절부절 못하며 세은의 말에 대답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여기서 나간다. 나가서 자세하게 얘기해.”
나와야 할 사람들이 나오지 않자, 이 방으로 다른 각성자들이 몰리는 것을 느끼며 세은이 존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