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36. 타오르는 분쟁의 불씨(5)
퍼석―
수박이 깨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발밑에 깔려 있던 사람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퍼지는 뇌수와 피가 바닥을 뒤덮었다.
“크하하. 소리 좋아.”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의 주변에는 몸의 여기저기가 터져 나간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시체로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역시 아무것도 없는 놈들이 벌레 잡는 것 같아서 재미있단 말이야.”
“크흐흐흐.”
남자의 말에 그와 같이 있던 다른 일행들도 웃음을 흘렸다.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중이었다.
거기다 너른 초원에서 부족 단위로 거주하는 아프리카의 특성상 도망치는 사람을 쫓는 재미도 있었다.
“끄어억…….”
“이건 내 거야.”
복부에 심각한 상처를 입고 기절해 있던 여자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여자가 의식을 차린 것을 확인한 다른 후드의 인형이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고통에 신음하는 와중에도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도망치려고 했지만, 고통에 잠식당한 몸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크하하. 기어가는 모습이 섹시한데?”
“다음에는 기어가는 걸로 경주 시합을 해도 되겠어?”
“오. 그거 좋은 생각이야?”
필사적으로 기는 여자를 보며 후드들이 광소를 터트렸다.
여자는 몽롱한 정신에도 그 소리에서 멀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악!”
“이제 지겨워.”
1미터쯤 기어갔을까.
여자에게 다가가 머리를 발로 밟은 남자가 발에 서서히 힘을 주었다.
발에 힘이 들어갈수록 서서히 머리에서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퍼억―
그리고 결국 힘을 이기지 못한 여자의 머리가 한 번에 터져 버렸다.
머리가 터지며 죽은 여자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크흐. 좋아. 이 느낌. 이 소리.”
남자는 쾌감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자를 안는 것보다.
마약을 하는 것보다.
사람을 죽일 때 느껴지는 쾌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이제 다른 무엇으로는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건 남자뿐만이 아니라, 남자의 동료인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죽이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살인에서 쾌락을 찾는다는 사실은 같았다.
“이제 다른 국가로 가자.”
“왜? 아직 여기도 벌레들이 많은데.”
그러자 다른 국가로 이동하자고 한 사내가 말했다.
“그래도 가끔은 반항하는 놈들을 잡는 맛도 좋지.”
“하도 잡아서 없잖아?”
“다른 곳에는 있을 거 아냐. 그리고 잊지 마. 우리 목적은 최대한 넓은 혼란이라고.”
“쳇.”
“자, 미국 놈들 장비 몇 개 던져놓고 이동하자고.”
사내의 말에 후드들이 주섬주섬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는 미국의 흔적을 남겨놨으니, 다른 곳에는 러시아의 흔적을 남겨놓을 차례였다.
“그냥 다 죽이면 되는 걸 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지 모르겠군.”
“캬하. 짐 들고 다니기도 번거롭고.”
두 명이 불평을 주고받았다.
그러자 처음에 다른 국가로 이동하자고 했던 사내가 둘에게 나직이 경고했다.
“이건 임무야.”
“흥. 혼자 잘난 척 하기는.”
사내에게 핀잔을 들은 한 명이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사내는 시비를 무사하고는 끝까지 미국의 흔적을 남기는 데 집중했다.
그라고 지금 이런 행동이 귀찮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만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그는 상부의 진정한 힘을 목격했다.
쾌락에 서서히 미친놈들이 폭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 고리.
그것이 사내의 용도였다.
사내의 머릿속에 깊게 박힌 공포가 최소한의 이성은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
‘휴우. 다시는 그 공포를 느끼고 싶지 않군.’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올라오는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료들은 상부의 무서움을 모른다.
일이 잘못되지 않으면 죽는 것은 개개인이 아니었다.
사내는 조금 더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며 현장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 * *
“이거, 분위기가 너무 안 좋은데?”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습니다.”
“대체 왜 이래?”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세은과 존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보츠와나의 분위기에 당황한 상태였다.
길만 걸어도 외지인의 대한 경계가 극에 달해 있는 상황.
그들을 노려보는 사람들은 물론, 보이기만 하면 도망치던 사람까지 있었다.
“아아. 됐어. 괜히 혼자 돌아다니다가 봉변당하지 말고. 여기 현지 정보원은 없어?”
세은의 물음에 존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연락을 시도해 본 상태였다.
“현재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보츠와나로 이동하는 동안 연락이 끊긴 상황이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네.”
세은의 얼굴에 짜증이 치솟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수월하게 풀리는 일이 없다.
하나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다른 일이 터지고 있으니 짜증이 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죄, 죄송합니다.”
세은의 말에 존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사실 그가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거나 문제가 생기면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하지만 세은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존에게 말했다.
“아. 됐어. 외부 문제니까 말이야. 일단 여기 분위기가 왜 이런지나 알아보자고.”
“예. 알겠습니다.”
미리 준비 된 안가에 짐을 푼 존과 세은이 밖으로 나가 분위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처음에 느낀 인상대로 사람들은 외부인에게 매우 배타적이었다.
“이상하네. 원래 이런 곳이 아닌데.”
보츠와나에 대한 정보를 그동안 꾸준히 받았던 존은, 직감적으로 무언가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가 다가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눈을 피하거나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순히 노점에서 과일을 사기만 하는데도 이런 식이었다.
먹고 살아야 하니 과일을 팔기는 하지만, 그저 존이 달라는 것만 딱 주고 돈만 받는 식이었다.
혹여 돈을 주고받다가 손이라도 스치면 소스라치게 경기를 일으켰다.
‘이거 난감하군.’
이런 식으로는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표정이 하나같이 귀신이라도 본 표정인데?”
“역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래서는 쉽게 대답을 듣기가 힘들겠는데 말이야.”
세은의 말에 존은 동의를 표했다.
그가 생각해도 이대로는 원하는 정보를 얻기가 힘든 상황.
“다른 방법은 없나?”
“하나 있긴 있습니다만…….”
“그럼 그 방법으로 하지. 어차피 이대로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그게…….”
“왜? 무슨 방법인데.”
“조금 과격한 방법입니다.”
존의 말에 세은의 물었다.
“힘을 써야 하나?”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지. 여기서 나오지도 않을 정보 붙잡고 시간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결국 존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 보자…….’
지금은 세은의 보좌를 하고 있지만, 존도 엄연히 현장에서 일하던 요원이었다.
살짝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한 존은 자신이 원하는 장소를 찾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여기군.”
그리고 탐색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찾던 장소를 발견했다.
“이쪽입니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네.”
세은은 자신의 앞에 보이는 골목을 보며 대답했다.
존이 말한 과격한 방법이 무엇인지 대충 감이 잡혔다.
존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먼저 도시의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세은이 뒤따랐다.
존과 세은이 뒷골목으로 들어가자마자 대로에서 느껴지던 인기척들이 확 사라졌다.
오물로 가득한 바닥과, 여기저기 잔뜩 금이 간 벽들은 마치 폐허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
그러나 그런 분위기거나 말거나 둘은 그저 담담히 더 깊숙한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골목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그리고 더 더러워졌다.
분명 처음 오는 것이 분명한 길이지만 존은 마치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이동했다.
세은은 별다른 말없이 그런 존을 따라 걸었다.
턱―
“어이. 어디들 그렇게 다니시나?”
마침내 존이 걸음을 멈춘 것은, 누군가 자신을 불러 세웠을 때였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당장 얌전히 뒤돌아서 꺼져.”
“양키가 애완용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는데?”
“크하하하. 거 참 웃기군.”
어느새 나타난 건장한 흑인 한 명이 존에게 말했다.
그의 뒤로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껄렁한 자세로 존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욕적인 언사가 흑인의 동료들에게서 튀어나왔다.
“참. 갈 때 주머니에 있는 건 다 두고 가. 통행료다.”
흑인의 뒤에 있는 남자들이 쉬지 않고 위협 섞인 욕설을 내뱉었다.
존으로써는 참아 들어주기 힘들 만한 모욕적인 언사들도 섞여 있었지만, 그는 꾹 참고 입을 열었다.
“도시 분위기가 왜 이런지 알고 싶은데?”
“앙?”
“이 양키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어이. 들었어?”
존의 말에 골목을 막아선 흑인들이 자기들끼리 킬킬거리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잠시 그렇게 웃던 흑인 중 처음에 존에게 꺼지라고 했던 남자가 인상을 더욱 험악하게 찌푸렸다.
“퉤! 뒤지려고 환장했나? 입 닥치고 얌전히 꺼져.”
“대답을 해주면 돈을 주지.”
“이거 진짜 미친 놈 아냐?”
흑인이 성큼성큼 다가와 존의 앞에서 주먹을 흔들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건방진 백인에게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억?”
흑인의 동료들은 들려오는 신음에, 이제 얼굴을 맞아 바닥에 형편없이 널브러지는 존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어?”
그러나 반대로 바닥에 쓰러진 것은 존에게 주먹을 휘두른 흑인이었다.
쓰러진 흑인 뒤로 나타난 존이 오러를 과시하며 말했다.
“내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히익!”
“도, 도망가!”
흑인들은 오러를 보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생각보다 빠른 대처였지만, 잡고자 하면 잡을 수 있는 상황.
바닥에 쓰러져서 신음을 흘리고 있는 흑인이 있기 때문에 존은 그들을 뒤쫓지 않았다.
“별로 폭력적이지도 않네.”
그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던 세은이 말했다.
그러자 존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혹시 각성자라도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요즘은 뒷골목에도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유난히 각성자를 겁내는 거 같은데?”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존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 정도 규모의 도시인데 뒷골목에 각성자 하나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왜?”
“뒷골목에도 엄연히 걸려 있는 이권이 있으니까요.”
“흐음.”
“아무래도 사람들이 저희를 두려워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잡은 놈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존은 바닥에 쓰러진 흑인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뭐 좀 물어보지.”
잔뜩 졸아들은 각성자가 황급하게 대답했다.
“예, 예!”
“도시 분위기가 왜 이러지?”
“아, 악마 때문입니다!”
“악마?”
뜬금없이 튀어나온 악마 얘기에 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더 자세히 설명해 봐.”
존은 잡고 있던 목덜미를 놔주며 물었다.
흑인은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눈초리로 옆을 힐끗힐끗 보았다.
“눈 돌리지 마라.”
“죄, 죄, 죄송합니다!”
“제대로 된 대답만 하면 보내줄 테니 빨리 대답해.”
“저, 정말이십니까?”
존은 더 이상 대답 대신 오러를 보였다.
“히익!”
그 모습을 본 흑인이 기겁한 표정으로 재빨리 입을 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