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20화 (120/225)

# 120

36. 타오르는 분쟁의 불씨(2)

처억―!

정체를 알아챌 수 없게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일렬로 열을 맞춰 시립했다.

꼼꼼하게 얼굴을 감싸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보면 오직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그들의 눈이 먹물로 칠한 듯이 새카맣다는 점이었다.

보통 동양인들도 자세히 보면 아주 새카만 눈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는데, 이들의 눈은 복사라도 한 듯이 일정한 색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자유 시간이다.”

일렬횡대로 시립한 복면인들의 앞에서 다른 복면인이 음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음껏 날뛰어라. 축제다!”

그의 말이 끝나자 시립해 있던 복면인들의 눈이 광기로 반짝였다.

철저한 파괴와 혼란.

그것이 이들이 아프리카에 도착한 이유였다.

“자! 가자!”

광기에 차 고함을 지른 복면인을 필두로, 수십 명의 인원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 * *

“나미비아의 게이트에 대한 모든 조사를 마쳤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현지 사정이…….”

세은의 말에 보좌관이 고개를 숙였다.

적대 세력을 모두 정리해 줬음에도 나미비아를 확인하는 데 거의 2주가 소요된 탓이다.

물론 다른 치안 상황을 핑계로 될 수 있었지만, 보좌관은 그러지 않는 것을 택했다.

혹시나 세은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흐음. 후보지는 두 곳 정도인가.”

“그렇습니다.”

세은이 건네받은 보고서를 천천히 훑어보며 말했다.

나미비아에는 총 다섯 개의 게이트가 있었는데, 그중 두 곳이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게이트가 다섯 곳이나 있으니 치안이 불안할 만도 하네.”

세은이 게이트의 위치를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이라고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치안이 불안하니 국경 지대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자연스럽게 몬스터들이 국경을 넘나들던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민간인들이 스스로 총기로 무장해서 마을을 지키는 일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상황.

당연히 외부인의 접근에 예민했다.

보고서를 전부 확인한 세은이 보좌관에게 말했다.

“그럼 이 두 곳은 바로 확인하러 가보지. 유럽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나?”

“아직은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흐음.”

한 나라의 정보부가 궤멸이 되었으니, 어떻게든 움직임을 보일 만도 했다.

그러나 유럽은 마치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란 듯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공식적인 대응은 당연히 힘들다.

그러나 물밑으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니 오히려 미국에서 의아해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니 더 불안감이 느껴졌다.

“일단 나미비아 국외로 나가지 않아 그럴 수도 있습니다.”

보좌관이 세은에게 말했다.

“뭐, 그래주면 우리야 고맙긴 한데 말이야.”

그의 말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미비아의 세력이 뿌리까지 뽑힌 이상 단순히 이곳을 포기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이 둘 중에 찾는 게이트가 있으면 최상의 결과가 나오겠군.”

아프리카에 있는 마왕만 찾으면, 굳이 다른 곳으로 진출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 세은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일단 움직이지.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줄 필요는 없으니까.”

“예!”

세은의 지시에 보좌관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 말대로 유리한 입장에서 굳이 상대의 움직임을 기다려 줄 필요는 없으니까.

“바로 출발하실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움직임에 걸릴 게 없는 만큼, 세은의 지시와 동시에 이동 수단과 준비가 빠르게 끝났다.

포로들을 관리하고 있는 특수 상황 때문에, 세은을 보좌하는 건 보좌관 한 명과 통신 담당 한 명, 그리고 운전을 할 사람까지 총 세 명이었다.

“가까운 곳부터 가겠습니다.”

차량은 우선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게이트로 향했다.

다른 하나의 게이트가 보츠와나의 국경지대에 있었다.

아무래도 중앙군의 지원을 받지 못하던 국경지대의 치안이 더 안 좋은 건 사실이었다.

거리도 상당했기 때문에, 이왕이면 처음부터 당첨이 되기를 모두가 바랐다.

“여기가 아니군.”

“아…… 아닙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이 첫 번째로 방문한 게이트는 일반적인 게이트였다.

“어떻게 일단 돌아가시겠습니까? 다음 후보지까진 거리가 꽤 멉니다.”

“아니야, 바로 가지. 거기가 아니면 또다시 움직여야 하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세은을 태운 차량은 바로 보츠와나와의 국경지대로 출발했다.

국경지대로 갈수록 도로의 상태가 점점 엉망이었다.

지나가는 차량이라고는 오직 세은의 차량밖에 없었다.

두두두두―

“응?”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 달리는 소리에 세은의 시선이 돌아갔다.

세은은 지평선 위에 떠 있던 태양을 바라보며 소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미노타우로스?”

처음에는 머리만 보여 야생 소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소의 머리 아래 사람의 몸이 달려 있었다.

“저게 왜 여기에 있지?”

세은은 보좌관에게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 게이트가 있나?”

“이 근처라면…….”

애매한 질문에 보좌관이 말끝을 흐렸다.

“몬스터가 근처에 나올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지 물어본 거야. 저쪽에 몬스터가 보이는군.”

“몬스터가 있습니까?”

세은의 말에 놀란 그가 세은이 바라보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몬스터가 이곳까지 나올 만한 게이트가 없습니다.”

“그럼 저건 뭐지?”

다시 한 번 살펴봤지만, 저 멀리서 지축을 울리며 이동하는 소떼는 미노타우로스가 분명했다.

심지어 그냥 이동하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를 뒤쫓고 있었다.

흙먼지가 너무 비상해서 어렴풋한 실루엣만 확인이 가능했지만, 그 크기와 모양을 봐서는 차량이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본 세은이 보좌관에게 명령했다.

“차 돌려.”

세은의 지시에 따라 차가 방향을 틀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확인해 보고 가야지.”

차량이 도로를 벗어나 초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 * *

점점 가까워지던 미노타우로스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점점 강렬해졌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

가볍게 촬영을 하러 나왔다가 소의 머리만 보고 가까이 접근한 게 문제였다.

설마 이곳까지 몬스터들이 활개를 치고 다닐 줄이야.

차마 캠프로 돌아갈 수 없어서 최대한 반대로 도망치고 있지만, 차의 기름이 거의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어, 어쩌지?”

“일단 할 수 있는 만큼 밟아!”

제인의 말에 아이언은 쉼 없이 백미러로 뒤를 확인하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러나 초원의 특성상 계속 최고 속도를 유지하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더 밟아봐!”

“그러다가는 잡히기 전에 차가 뒤집혀!”

아이언은 거절했지만, 어느새 미노타우로스와의 거리는 훌쩍 가까워져 있었다.

“아! 그럼 그냥 이대로 잡힐 거야? 뒤집어져서 잡히나 그냥 잡히나!”

미노타우로스가 지척에 도달한 것을 본 제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장 가까운 도시로 도망치기에는 이제 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밟아!”

“젠장!”

또다시 제인이 독촉했다.

그렇지 않아도 백미러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아이언이 오른발에 힘을 주려고 했다.

“꽉 잡아!”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며 엑셀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쾅―

갑작스런 폭음과 함께 미노타우로스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순식간에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뭐, 뭐지?”

갑작스런 폭음에 심장이 더욱 놀라 널뛰었다.

다급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이야!”

“뭐?”

하얀색으로 빛나는 검을 든, 남자 한 명이 미노타우로스 무리 앞에 오연하게 서 있었다.

“가, 각성자인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가 멈췄다.

“왜 그래?”

“혼자서 저걸 어떻게 상대해! 위험하면 태우고 가야지.”

“너 미쳤어?”

“저 사람도 우리를 도우려고 뛰어든 거잖아.”

“각성자가 죽으면 우리 죽…….”

콰앙―!

제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폭음이 터졌다.

자연스럽게 둘의 시선이 폭음이 터진 곳으로 돌아갔다.

“대, 대단해…….”

아이언은 자신의 두 눈에 들어온 각성자의 움직임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각성자들의 능력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거대한 괴물들을 단신으로 상대하는 모습을 직접 보니 그 느낌이 남달랐다.

공기를 터트리며 사방에서 내려쳐지던 미노타우로스의 공격은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남자가 가볍게 뛰어올라 단숨에 미노타우로스들의 목을 베어 나갔다.

“꾸워어어!”

당황스러운 상황에 미노타우로스들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눈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간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가 없는 괴물이었다.

그러나 이미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미노타우로스들은 거친 울음을 터트리며 동시에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퍼엉!

남자의 신형이 미노타우로스에게 가려서 사라진 그 순간, 또다시 거대한 폭음 소리가 울렸다.

하얀색의 불꽃이 터져 올라 주변의 몬스터들을 화마로 감쌌다.

화마에 당한 미노타우로스들이 순식간에 고기 타는 냄새를 내며 바닥에 신형을 뉘였다.

“어? 이리로 오는데?”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제인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한 각성자가 자신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부르릉―

동시에 어디선가 차량 한 대가 그들에게 접근했다.

“괜찮으십니까?”

“가, 감사합니다.”

차량에서 내린 남자의 말에 아이언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비록 자신들을 구해주기는 했지만,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

현재 아프리카의 치안은 일행을 제외한 누구도 믿으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지금 말을 건 사람이 아프리카 현지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여기 주민이 아니신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동물학자들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남자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각성자에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을 걸었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 각성자는 동양인이었다.

아마도 동양의 언어 같았다.

“동물학자라고 합니다. 아마도 동물들을 연구하다가 쫓긴 것 같습니다.”

“저 몬스터들 어디서 마주쳤냐고 물어봐.”

“예.”

각성자, 세은과 간단하게 대화를 마친 보좌관이 다시 아이언에게 물었다.

“이 몬스터들은 어디서 마주치신 겁니까?”

“아…… 자세한 위치는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까.”

“흐음. 혹시 근처에서 다른 몬스터들은 보지 못하셨습니까?”

“거기까지 볼 정신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보좌관의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내지 못한 아이언이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다.

보좌관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세은에게 말했다.

“위치를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럼 안내를 해달라고 하지.”

“안내 말입니까?”

“이 근처에 게이트가 없는 것이 확실하면, 몬스터가 나타난 이유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게이트가 새로 생긴 것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확인하고 움직인다.”

“예!”

세은의 지시를 받은 보좌관이 아이언에게 부탁했다.

“그럼 혹시 몬스터들을 마주친 곳으로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보좌관의 말은 부탁이었지만, 사실 이 상황에서 거절할 선택지는 아이언과 제인에게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언이 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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