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19화 (119/225)

# 119

36. 타오르는 분쟁의 불씨(1)

마르키시오는 보고를 받고 얼굴을 가득 찌푸렸다.

방금 전에 보고를 올린 보좌관은 흔하게 볼 수 없던 마르키시오의 불편한 모습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보좌관이 생각해도 이번 일은 사안이 너무 심각했다.

“그러니까…… 나미비아에서 아예 모든 연락이 끊겼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나미비아에 폭동이라도 일어났나? 아니,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전부 휘말려서 죽을 가능성은?”

마르키시오가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던 보좌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니, 그래서 나미비아의 현지 상황이 급변했나?”

“아닙니다.”

“그럼 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하지? 나미비아의 요원들이 단체로 적에게 항복이라도 했다는 말이야?”

“…….”

자신이 하는 말이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을 하고 있는 마르키시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이런 것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보고로 올라온 상황.

탕!

마르키시오가 탁자를 손으로 강하게 내려치며 보좌관을 다그쳤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 내로 확인해!”

“예, 예!”

보좌관은 더 이상 불똥이 튀기 전에 다급하게 마르키시오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번 일은 아무리 사람 좋은 마르키시오라도 화가 날 만한 사안이었으니까.

보좌관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급이 집무실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마르키시오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제대로 일을 하는 새끼가 없어. 모자란 새끼들을 데리고 큰일을 하려니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분이 풀리지 않아 한참을 허공에 욕을 하던 마르키시오가, 순간 갑자기 오한이라도 든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휴우. 결국 가야 하나. 대체 어떻게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

마르키시오는 엄습하는 두려움에 몸을 살짝 떨었다.

마르키시오가 조정할 수 없던 범위에서 일어난 변수라지만, 혹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었다.

“일단 최대한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고 가봐야지.”

두 손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양 어깨를 부여잡으며, 마르키시오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 * *

“이거, 일이 너무 잘 풀려도 문제군.”

사노가 나미비아에서 넘어온 보고를 받으면서 말했다.

“한 명의 도주자나 사상자 없이 적을 섬멸하니 수감할 곳이 부족해. 수감 시설도 임시로 만드니 감시하기가 힘들고 말이야.”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유럽과 달리 미국 정부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피해 없이 적의 정보망 중 하나를 무력화시킨 전과는 아무 때나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던 상황에서 전황을 완전히 유리하게 반전시킨 일이었으니, 쾌거도 이런 쾌거가 없었다.

“일단 최대한 빨리 추가 인원을 파병하고, 포로들을 본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해.”

“썰!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치고 다른 업무를 처리하려던 사노의 귀로 다른 보고가 들어왔다.

“아, 그리고 케인 팀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사노는 하려던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가볍게 대꾸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말에 사노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진행하던 연구가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그게 정말인가?”

“예. 다만…….”

“다만?”

“도의 조언대로 치료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아니라, 마나나 오러를 사용하는 각성자들을 육성하는 데서 성과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끄응.”

잠시 침음하던 사노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그래도 이게 어딘가? 당장 한 손이라도 부족한 판인데.”

“바로 실전에 투입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일반 병사에게 총을 쥐어주는 것과, 조금이라도 마나나 오러를 사용하는 병사에게 총을 쥐어주던 건 다르지.”

“그렇긴 합니다.”

“이 기회를 빌어, 나미비아에 완전하게 거점을 구축해 놓자고.”

“예!”

“어차피 놈들도 더 이상 섣부르게 도발할 생각은 하지 못할 테니까. 더 장기적으로 계획을 수립해 봐.”

“예. 알겠습니다.”

“일단 초안을 잡으면 바로 나한테 보고하고.”

“예. 그리고 하나 더 보고 할 일이 있습니다.”

사노는 말해보라는 듯이 턱을 까닥였다.

“바티칸을 위시한 종교 단체들에서 도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단 소식입니다.”

“끄응. 그건 좀 곤란한데.”

“아무래도 사람을 치유하는 일은 보통 모든 종교에 신의 증거로 많이 나오니까요.”

“그렇기는 하지. 여태까지 조용한 것도 이상했어.”

“일단은 지켜보려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하긴, 영향력이 있는 대부분의 종교는 유일신을 믿으니까 말이야.”

사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일단 도한테 여태까지 알아낸 정보 전부 전달해.”

“네!”

* * *

“여어.”

“치사한 새끼!”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오는 세은에게, 피어스가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었다.

“개새끼!”

“왜 혼자 흥분했어? 누가 때렸어?”

세은이 담담한 표정으로 피어스의 약을 올렸다.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다니!”

“지랄하네.”

입가에 비웃음을 지은 세은이 말을 이었다.

“먼저 치사하게 나온 게 누구인데 개소리야.”

“큭!”

세은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피어스가 바로 반박을 하지 못했다.

사실 자신이 한 일은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흥. 그래서 우리를 어떻게 할 셈이지? 국제 사회에 알려봤자 남은 건 전쟁뿐이야.”

마르키시오가 종교 단체들을 설득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단 사실을 아는 피어스는, 자신만만한 어조로 되레 세은을 압박했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피어스의 시도를 가소롭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받아쳤다.

“응. 전쟁해도 돼.”

“뭐, 뭣?”

“어차피 우리 집에서 전쟁 나는 건 아니잖아?”

세은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말이야.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유럽 주제에 이쪽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흥. 그건 해봐야 알겠지.”

“해봐야 안다고?”

피어스의 말에 세은의 눈이 휘어들었다.

“따로 준비한 게 있나 본데.”

“헙.”

그제야 피어스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세은은 유럽이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말이야.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얘기를 하는 것 보니까 뭔가 있기는 있나 보군.”

“…….”

세은이 가만히 피어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이런 일에 협조하는 이유가 뭐지?”

“뭐?”

“성격 상 이런 일에 동의를 했을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야.”

“흥. 지랄 마. 조국을 위해서 일하는 데 따질 게 뭐가 있어.”

“유럽 전체가 조국은 아닐 거 아냐?”

“유럽은 오로지 단 하나. 하나가 유럽이다.”

피어스의 태도는 완강했다.

세은은 주제를 바꿔서 헤리자우에서 있었던 일을 본격적으로 꺼냈다.

“그럼 말이야. 헤리자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

“뭐, 당연히 알고 있겠지. 상당한 고위직인데 말이야.”

세은은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는 피어스를 똑바로 직시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헤리자우를 그 꼴로 만든 놈이 아직 멀쩡하게 유럽을 돌아다니고 있단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이야?”

“응?”

전혀 예상하지 못한 피어스의 대답에 세은이 되물었다.

“보고 못 받았나?”

“무슨 보고?”

“내가 통역한테 아직 마을을 그렇게 만든 원인이 남았다고 잘 보고하라 했는데 말이야.”

세은의 말에 피어스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원인이 남았다고?”

“마왕에 대해서 설명까지 해서 보냈는데…… 표정을 보니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헤리자우의 일은 마르키시오에게 모두 들었다. 그런 말은 없었어.”

피어스는 세은이 자신을 기만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웻지는?”

“헤리자우에 대한 보고는 마르키시오가 돌아온 다음 올라와서 그에게 바로 올라갔지.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런 중요한 얘기가 있었다면 마르키시오가 자신에게 얘기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니, 아예 미중러를 견제하겠다고 이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부에 그런 커다란 문제점을 두고 이런 일을 벌일 정신 나간 사람을 없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피어스는 지금 세은이 자신에게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하찮은 수법으로 자신을 흔들려하는 것이 보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꺼져. 이딴 장난에 넘어가 줄 생각 없으니까.”

“흐음.”

세은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피어스의 반응을 봐서는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연기를 즉흥적으로 한다는 건 배우가 아닌 이상 어려운 일.

그렇다면 정말로 세은이 마왕에 대해서 전해준 정보가 피어스에겐 전달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세은은 더 이상 피어스와 대화를 해봤자, 정말로 나올 게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 * *

소년은 커다란 의자에 편한 자세를 취한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누군가가 공손하게 부복한 채 소년의 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일이 그렇게 됐단 말이지?”

“……예.”

소년이 담담하게 물었지만, 대답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심하게 겁에 질려 있었다.

남자가 벌벌 떨리던 목소리를 억지로 붙잡아 말을 이어 나갔다.

“명령하신 대로 움직였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뭐, 잘했어.”

소년은 나직이 대답했다.

“괜히 어설프게 나섰다가 일을 더 망치는 것보다야 낫지. 안 그래?”

하지만 남자는 소년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잘못 대답했다간 당장이라도 목이 날아갈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소년의 말은 담담했지만, 평소와 조금은 다르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심기가 틀어진 게 분명했다.

“그럼 어떻게 할까?”

“흐음…….”

소년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뱅뱅 꼬며 중얼거렸다.

설마 이 부분에서 계획이 어긋날 줄을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차선책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

“차라리 지금 치고 나가볼까?”

꼬던 머리카락을 놔두고, 소년은 남자에게 물었다.

“준비는 얼마만큼 됐지?”

“이, 이제 절반 정도 됐습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네.”

“그렇습니다.”

“하여간 능력 이상은 못 보여준다니까.”

“죄! 죄송합니다!”

소년의 말에 안색이 하얗게 질린 남자가 더욱 납작하게 부족하며 소리쳤다.

“아아. 뭐 탓하려던 건 아니고.”

소년은 싱긋 웃으며 남자에게 지시를 내렸다.

“완성된 반이라도 아프리카로 다 보내.”

“무, 무슨 말씀이신지…….”

“계획이 어긋난 곳을 제외한 다른 곳에 혼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걸 저쪽에 씌어.”

“벌써 움직여도 됩니까?”

“음? 조금 앞당겼다고 생각하지 뭐, 어차피 계획이 어긋난 상황이니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최대한 많은 혼란을 일으켜,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게 말이야. 알겠어?”

“예!”

“어차피 강한 놈은 살아남는다. 짐이 지배하는 세상에 약한 쓰레기들은 필요 없어.”

소년의 눈에 광기 어린 웃음이 차올랐다.

“하하하하.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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