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35. 아프리카 정보전(5)
“이 정도면 된 건가?”
피어스는 안가 밖의 기척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처음 며칠간 자신을 찾는 듯이 급하게 움직이던 각성자들의 기척이 이틀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이 지역이 수색 대상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그녀는 내심, 자신이 안가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관리인이 안가에 방문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피어스가 안가로 도망치기 하루나 이틀 전에 관리인이 방문했는지 일주일이 된 지금까지도 안가로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피어스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장고에 빠졌다.
관리인 올 때까지 버틸 것인가? 아니면 지금 나갈 것인가?
사실 어느 쪽이 더 안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 관리인이 들어서는 모습이 우연하게라도 적들에게 들킨다면, 그 또한 낭패였다.
자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적들은 그런 사소한 것들도 놓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피어스가 나가는 것도 아주 안전한 방법이 아니었다.
당장은 적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지만, 도시의 다른 구역은 몰랐다.
아마 피어스가 목표로 하던 구역에 적들이 몰려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피어스가 쉼 없이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오히려 이틀 동안 적들이 느껴지지 않는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지금을 놓치면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관리인이 와서 피어스가 가진 정보를 무사히 본부에 전해준다고는 해도, 다시 이곳을 수색하기 위해 나타난다면?
아마도 정보는 무사히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피어스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일.
처음에야 당장 정보만이라도 넘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가에 숨어 있던 일주일은 피어스의 결심을 무디게 만들었다.
다시 그곳에 갇혀서 온몸을 포박당한 채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전에는 고문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미 한 번 도망친 이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피어스는 다시는 포로가 되고 싶지 않았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피어스는 새벽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움직이기로 마음을 정했다.
“좋아.”
피어스가 긴장한 상태로 밖의 동태를 확인하는 동안 어느새 노을이 지고, 달이 중천에 자리 잡았다.
그때까지도 별다른 적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다는 걸 확인한 피어스가 조심스레 안가를 나섰다.
구름이 가득 낀 밤하늘은 달빛도 잘 새어 나오지 않아 도주에 최적의 날씨였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던 골목을 벗어난 피어스가 최대한 담담하게 거리를 서서히 걸었다.
조용한 새벽에 괜한 움직임은 자신을 잡아가 달라고 광고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평범한 보행자처럼 움직이는 게 더 나았다.
터벅― 터벅―
적막한 밤거리에서는 오직 피어스의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
최대한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피어스는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이동했다.
너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행동도 금물.
쓸데없이 넓은 범위에 마나를 퍼트리는 행동 역시 금물이었다.
무조건 상대에게 걸릴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덕분에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피어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 왔다!’
다행히도 피어스가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섣부르게 행동하지만 않으면 다시 잡혀갈 일은 없을 게 분명했다.
똑똑―
피어스가 노크를 하자 안에서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12개의 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별은 12개가 아닙니다만…….”
“가장 처음의 별이자, 가장 완벽한 별.”
벌컥―
“어서 들어오십쇼.”
신분 확인이 끝나고 나서야 단단히 잠겨 있던 문이 열렸다.
남성이 다급하게 피어스를 안으로 인도했다.
“연락이 안 되셔서 걱정했습니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피어스의 얼굴을 확인한 남자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쩡하게 나타났으니 황당할 만도 했다.
“아아, 말하려면 길어. 일단 올라…….”
타악―
“응?”
느닷없이 들려온 소리에 남성과 피어스의 고개가 동시에 돌았다.
“허어. 사람 피곤하게 하는 데는 재주 있다니까.”
투덜거리는 말과 함께 문을 닫고 들어온 남자.
바로 도세은이었다.
“네, 네가 어떻게?”
피어스는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놀라 소리쳤다.
마찬가지로 남자도 너무 놀라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격에 비해 참을성이 좀 있네? 일주일이나 기다리게 하고 말이야.”
그랬다.
세은은 일주일 동안 기척을 숨긴 채 피어스가 있던 안가 맞은편에 머물고 있었다.
세은이 기척을 숨기기로 마음먹은 이상 피어스가 세은을 잡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그녀에게 익숙하지 않은 신성력이란 점에서 피어스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
마력이 없는 현지 정보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피어스의 안가를 지키다가, 그녀가 밖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여기는 분명히 나미비아 본부겠지?”
“하, 하아앗!”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남자가 뒤늦게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고함을 지른 것은 내부의 동료들에게 비상 상황을 알리기 위한 의도적인 고함이었다.
턱―
“자, 빨리빨리 끝내자.”
세은은 가볍게 남자의 공격을 막아낸 뒤 제압했다.
승산이 없다. 도망가야 한다.
피어스는 남자와 달리 안으로 도망가는 것을 택했다.
한 명이라도 내보내서 정보를 본부로 보내야 했다.
여기까지 들킨 이상 건질 건 세은이 나미비아에 있다는 이 정보 하나뿐이었다.
“어딜!”
그러나 세은은 피어스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타앗.
세은은 재빨리 피어스를 따라가 뒤에서 그녀를 공격했다.
뒤에서 쏟아진 공격에 피어스는 무력하게 세은에게 제압을 당하고 말았다.
“어휴. 이렇게 등을 보여주니까 더 쉽잖아?”
만약 피어스가 차라리 세은에게 대항하는 것을 택했다면, 적어도 폭음이 두 번 이상을 울렸을 것이다.
6서클 마법사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세은에 철저하게 두 번이나 당한 피어스였기에 그와 맞선다는 선택지를 아예 떠올리지도 못했다.
덕분에 세은은 힘을 덜 들이고 피어스를 제압할 수 있었다.
“이 시발 새끼! 개새끼!”
세은에게 또다시 붙잡힌 피어스가 걸쭉한 욕설을 내뱉었다.
악에 받친 표정과 악센트를 보아하니 세은도 피어스가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단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세은은 그런 피어스를 피식 비웃어 주고는 빠르게 안으로 진입했다.
내부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자료를 소거하기 전에 현장을 보존해야 했다.
펑!
세은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미리 준비된 마법이 날아왔다.
그러나 세은은 가볍게 신성력을 이용해 마법을 막아냈다.
애초에 이 정도 방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할 일도 없었다.
미리 예상했던 대로, 세은을 막는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 이곳에 있던 정보를 소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놔둘 수야 없지.”
무려 일주일 만에 꼬리를 잡은 곳이다.
단순히 여기의 인원들만 모두 소탕해도 충분한 성과를 이룬 것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더 좋은 성과를 이루면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는데 도움이 된다.
세은은 눈을 빛내며 양손에 신성력으로 된 몽둥이를 들었다.
* * *
“빨리 들어가!”
현지 정보원들의 연락을 받고 빠르게 지원을 나온 미국의 각성자들이 신속하게 건물로 진입했다.
세은이 들어갔으니 일이 잘 해결되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혹시나 빠져나가는 쥐새끼가 있을 수도 있었다.
주변을 철저하게 포위했으니 이제 현장을 정리하는 일만 남아 있던 상황.
그러나 실내로 진입한 각성자들이 할 일은 딱 두 개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나는 포박된 유럽 요원들의 이송, 그리고 미처 소각하지 못한 정보들의 정리.
세은은 이미 일을 끝내고 유유자적하게 거실의 소파에 앉아 쉬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아. 별일 아니야.”
세은은 정말로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통역에서 거의 보좌관이 되어버린 각성자에게 대답했다.
그러나 이 광경을 보는 다른 미국 각성자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이곳에는 세은의 업적을 귀로만 전해들은 각성자들도 꽤 있었다.
그래서 세은의 실력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던 이들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사람은 직접 본 것만 믿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러나 나미비아에 오자마자 습격자를 잡은 것도 모자라서, 적의 본거지를 혼자서 제압하는 신위를 보여주자 세은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소문을 완전히 믿는 눈빛들이었다.
거기에 이번 작전이 성공한 탓에, 고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간다.
여러모로 세은은 미국의 요원들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포로가 너무 많아 수감할 장소가 문제입니다.”
현장을 정리하던 각성자 중 한 명이 보고했다.
“하하하. 기분 좋은 문제군.”
세은의 통역, 보좌관이 보고를 받고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단순히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인원 중에 실력이 가장 좋아 상급자로 파견이 된 것인데, 쏠쏠한 공적을 세우고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마법사들은 써클별로 나눠. 별거 아닌 놈들은 모아놔도 별다른 위협이 안 되니까.”
“예!”
세은의 말에 보좌관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러나 써클별로 나눠도 수감할 공간 자체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 숙소 자체를 구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숙소를 구입해서 한 동을 임시로 개조에 들어간 것이다.
애초에 방이 작은 것이 문제였기 때문에, 방과 방 사이의 벽을 허물고 커다란 하나의 방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하니 일반인과 각성자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세부적으로는, 각성자들 중 오러 유저와 마법사들을 따로 나눠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것을 방지했다.
“완벽한 작전의 승리입니다.”
급하게 구입해서 벽을 허문 숙소에 포로들을 수감하면서, 보좌관이 다시 들떠서 세은에게 말했다.
세은은 그가 아이처럼 기뻐하던 모습에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일단 경계 더욱 철저히 하고, 사노에게 연락해. 인원 더 파견하라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랑 피어스 좀 만나러 가지.”
“네!”
“그럼 준비 다 되면 와.”
세은은 말을 마치고 먼저 방으로 이동했다.
보좌관은 포로들을 감시할 인원을 배치하느라 바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설득하는 것이 남았나.”
세은이 생각하기에 가장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 남아 있었다.
피어스를 어떻게 잘만 설득하면 아프리카에서 많이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피어스가 헤리자우의 진실을 알고 있냐는 것이다.
진실을 알고도 협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설득하기 상당히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세은의 생각에 피어스의 정도의 지위를 가진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고 동조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했다는 것은 그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무엇인가 얻는 이득이 있다는 것.
그 이득이 만약 세은이 채워줄 수 있다면 충분히 거래를 해볼 만했다.
그리고 나중을 위해서도 피어스와 아예 척을 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최소한 바싸고가 유럽에서 활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유럽은 아직 마왕의 무서움을 잘 모르는 만큼, 피어스와 얘기를 잘 해볼 필요성이 있었다.
물론, 끝까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문제가 생기면 최종적으로 마왕을 상대해야 하는 것은 세은이니까.
그저 처음 바람대로 힘이 빠진 마왕 정도는 피어스 정도의 실력자들이 모여서 알아서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지구 전체를 감시하고 막아내기에는 세은의 몸은 하나뿐이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