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17화 (117/225)

# 117

35. 아프리카 정보전(4)

“아무래도 힘듭니다.”

“어떤 점이?”

“일단 일반적인 범죄자를 신문(訊問)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분부터 힘들군요.”

세은은 취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전문가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피어스를 취조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을 대비해 고문도 금지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중간한 회유는 통하지 않는 상대였으니까.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 생각을 해놓은 것이 있는데 말이야.”

세은은 자신이 떠올린 의견을 천천히 전달했다.

“일단 풀어주지.”

“예?”

갑작스런 세은의 말에 통역과 취조 전문가 둘 다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세은은 그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이대로 묶어놓는다고 해도 얻을 게 없다면, 알아서 물어오게 만들어야지.”

“아!”

거기까지 듣자 세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취조 전문가가 탄성을 내질렀다.

“일단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야 하니까. 경계를 맡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들을 선발해.”

“알겠습니다. 외부 경계에 대한 정보도 흘릴까요?”

“그건 조금 인위적이지 않나?”

“그래도 아무런 정보가 없으면 도망칠 엄두를 못 내지 않겠습니까?”

“글쎄…….”

잠시 고민하던 세은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괜히 안 하던 행동을 해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지.”

“알겠습니다.”

“그냥 세부 계획을 잘 짜봐. 탈출 동선을 예상해서 최대한 의심을 받지 않게 말이야.”

“예!”

세은은 손바닥으로 턱을 받치고 중얼거렸다.

“하도 경계를 철저하게 해서 자연스럽게 내보내는 것도 일이란 말이야.”

“그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모아보겠습니다.”

“그렇게 해. 누군가 한 명은 좋은 의견을 가지고 있겠지.”

세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리카의 일을 빨리 처리하려면, 유럽의 영향력을 몰아내는 게 가장 선점되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전장이든지, 정보에 우위를 가지고 있는 쪽이 이기는 건 당연한 사실.

슬슬 정보를 독점, 차단하기 위해 움직일 때였다.

* * *

“하아…….”

“왜 그래?”

“아니야, 그냥 배가 조금 아파서.”

“괜찮아?”

동료의 물음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폼이 구부정한 게, 아무리 봐도 꽤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정말 괜찮은 거야?”

남자는 대답 없이 배를 잡고 인상만 가득 찌푸리고 있었다.

동료가 그 모습을 걱정 어린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애슐린 피어스.

여태까지 아무런 틈이 없던 감시자들에게서 틈이 생겼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지만 탈출을 위해서는 작은 것도 소홀하게 넘겨서는 안 되는 일.

최소한 고문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자신에게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물론 온몸이 묶인 상태라서 화장실 같은 것을 갈 때 다른 각성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그 정도는 자신의 실력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경계는 조금이라도 허튼 행동을 못할 정도로 매우 날카로웠는데, 지금 처음으로 이상 상황이 생긴 것이다.

혹시나 해서 자신의 손발을 묶은 포박을 확인하고 있는 동안에도, 각성자 한 명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져 갔다.

“끄으응…….”

“이봐! 정말 괜찮은 거야?”

남자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목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피어스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같이 경계를 서던 여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괜찮은 거 맞아?”

그러나 여자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신음을 흘리던 남자는, 힘겹게 입을 떼며 말했다.

“자, 잠깐 화장실 좀.”

“뭐야? 배탈이었어?”

“단순 배탈이 아닌 거 같아…… 의무실에 가기 전에 일단 화장실을 가야 할 거 같아.”

남자의 말에 여자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어렸다.

순간적으로 여자의 시선이 피어스에게 향했다.

피어스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가만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그럼 빨리 다녀와. 가면서 다른 사람 만나면 지원해 달라고 말하고.”

“아, 알겠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남자는 다급히 신형을 이동했다.

하체에 잔뜩 힘이 들어간 게, 누가 봐도 화장실로 가는 모양새였다.

“어휴. 근무 중에 이게 대체 무슨 짓인지.”

남자를 화장실로 보낸 각성자가 한심하단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경계 근무 중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다니, 생리 현상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심스러웠다.

여자는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다시 한 번 피어스를 힐끗 바라보았다.

여전히 피어스는 아무런 미동 없이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 움직이나?’

여자 각성자가 다시 경계에 들어선 척 하면서 피어스의 눈치를 보았다.

피어스가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동료가 일부러 설사약을 먹어 연기를 한 보람이 사라진다.

일부러 경계 전에 포박을 꽉 매는 척 하면서, 조금만 움직이면 헐거워지는 느낌이 느껴지도록 조절까지 한 상황.

이 작전이 통하지 않으면 다른 상황을 설정해야 하는데, 너무 자주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더 의심을 살 것이 분명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애써 태연한 척 경계를 서고 있던 여자 각상자의 귀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인다!’

피어스가 무엇인가 행동을 취하는 소리가 여자 각성자의 귀에 들려온 것이다.

속으로 타이밍을 재던 여자가 적절한 시간에 뒤를 돌아봤다.

“아앗!”

그녀의 눈에 피어스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모습이 보였다.

“치잇!”

어느새 포박을 반쯤 풀어낸 피어스가 난처한 눈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들킨 이상 조용하게 포박을 풀어내는 건 그른 일.

순식간에 포박을 풀어낸 피어스가 자신을 지키던 각성자에게 달려들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상대니 무조건 방어만 해.」

혹여 계획을 시행하다가 사망자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전달한 사항이었다.

섣부르게 잡는 흉내를 내려했다가 재수 없게 당할 수가 있는 상황이니까.

굳이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펑― 펑― 퍼엉―

순식간에 3개의 마법이 피어스의 손에서 날아갔다.

가히 6서클 마법사다운 다중 캐스팅이었다.

그리고 피어스를 지키던 각성자는 미리 지시받았더 대로 적당히 마법에 밀려 날아가는 연기를 했다.

하지만 미리 알고 있다고 해도 마법으로 인한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쿨럭!”

의도치 않게 받은 내상으로 각성자는 피를 토했다.

그리고 비록 우연이었지만, 그 모습은 피어스로 하여금 더욱 의심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타앗―

피어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탈출을 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무조건 여기에서 도망쳐서 세은이 나미비아에 있다는 사실을 본부에 알려야 했다.

빠르게 도망치는 피어스를 보며 여자는 내상을 입은 와중에도 씩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임무는 이걸로 완벽하게 완수한 셈.

그렇게 토끼의 본진을 털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 * *

“헉! 헉!”

피어스는 가쁜 숨을 몰아시며 빠르게 달렸다.

정신없던 와중에도 틈틈이 뒤를 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침 세은은 없었는지 자신을 잡으러 오지 않았지만, 다른 미국의 각성자들이 죽을힘을 다해 자신을 쫒아오고 있었다.

개개인의 무력은 피어스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저 숫자를 모두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리고 상대를 해서 이긴다고 해도, 그사이 세은이 돌아오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

피어스는 온 힘을 다해 도주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다시 붙잡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제길! 대체 언제까지 따라올 셈이야?”

당장 지원을 요청하러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군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추적자들을 모두 섬멸할 수도 있을 테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세은이 온다면 반대의 결과가 나올 터였다.

지금 피어스가 할 수 있는 것은, 세은이 연락을 받고 자신을 잡으러 오기 전에 추격자들을 완벽히 따돌리는 일이었다.

“조금만 더!”

피어스가 더 속도를 올렸다.

거의 한계까지 치달았지만, 그녀가 이 정도로 힘들면 추격자들은 더 힘들 것이 분명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쫓기고 있단 부담감만 떨쳐내면 당연히 피어스가 이길 수 있을 경주.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추격자와 피어스의 거리는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가 벌어지는 것을 느끼는 만큼 피어스의 마음에도 안정이 깃들고 있었다.

‘놈은 일을 보러 멀리 갔나?’

여태까지 세은이 나타나지 않던 걸 보니, 상당히 멀리 일을 보러 간 것 같았다.

애초에 처음 취조하던 사람이 올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피어스를 보러 온 적도 없었다.

일부러 자신을 놓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피어스가, 자신의 천운에 감사하며 더욱 탈출에 고삐를 죄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추격자들의 기척이 이제는 상당한 거리까지 멀어졌다.

이 근처에 있는 안가로 들어가면 당장 추격을 뿌리칠 수가 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일이 잘못돼서 잡힌다고 해도, 자신이 얻은 정보를 본부에 보낼 시간은 벌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안가는 정기적으로 요원들이 와서 관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곳에 표식을 남긴다면 적에게 들켜 버린 안가라고 해도 방문한 요원이 흔적을 알아볼 수 있다.

“허억. 허억!”

필사의 힘으로 도주한 끝에, 피어스는 자신을 쫓아오는 추격자들을 따돌린 뒤 안가로 도착할 수가 있었다.

탁―

안가로 들어가서 문까지 걸어 잠근 피어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처음 세은에게 잡혔던 기억이 떠올라 흠칫 뒤를 돌아 사방을 경계했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번에는 세은이 자신을 따라온 것 같지 않았다.

아마 세은이 있었다고 해도 저번처럼 자신을 끝까지 따라오지는 않았을 게 분명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동료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피어스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안가에 흔적을 남겼다.

이제 자신이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잡힌다고 해도 본부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자신이 잡히지 않고 적들의 상황을 자세하게 전달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피어스가 다시 한 번 마나를 펼쳐 주변을 살피고는, 안가에 있던 침대에 누워 지친 몸을 쉬었다.

안가에는 보름 정도 머물 수 있을 식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때문에 보름에 한 번씩 관리인이 안가로 방문하게 되어 있었다.

피어스가 있는 안가에 관리인이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길어야 이 주만 버티면 관리인이 온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 이 주도 길다.

일주일 정도 안가에서 버티다가 이 곳이 발각당하지 않으면 바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다른 인원이 상주하는 다른 안가와는 달리, 이곳은 빈집인 것처럼 위장을 해야 해서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상황.

아마도 아주 긴 일주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피어스가 잔뜩 긴장한 상태로 바깥 상황의 동태에 주의를 기울였다.

* * *

“목표물, 완벽하게 작전대로 움직였습니다.”

“좋아. 수고했어.”

계획대로 피어스가 움직인다는 소리에 세은이 웃음을 지었다.

세은이 걸어준 신성 마법 덕분에 각성자들은 피어스를 충분히 쫓을 수 있던 상황이었다.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능력이 달리는 것처럼 천천히 거리를 벌려주던 일도 상당히 고된 작업이었다.

“의심스러운 빈 집 명단에 있던 지역에 마지막 목격되었다는 증언을 받았습니다.”

가까이 가면 들킬 것이 자명했기에, 피어스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시민들에게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역시나 의심스럽게 생각했던 집이 있는 지역에서 피어스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들키지 않게 사람들 깔아놔. 이동하거나 누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알지?”

“예!”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에 신이 난 요원이 세은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이제 정말로 믿을 만한 현지 정보원들을 주변에 깔아놔야 했다.

각성자들은 접근하는 순간 들킬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렇다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의심스러울 테니 탐색하는 척 적당히 연기가 필요했다.

계획의 첫 발을 잘 뗀 세은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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