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33. 습격의 배후를 찾아라(3)
콰앙―!
비네와 세은의 검이 부딪히며 또 다시 강렬한 폭음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그 엄청난 기세에 세은을 쫓아왔던 일행들은 자신들도 모르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대, 대단해.”
처음의 충돌을 제외하고, 세은과 비네의 검은 단 한 번도 맞부딪히지 않았다.
서로의 빈 공간을 노리며 날카롭게 파고들어가던 공격은, 서로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 광경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부드러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미리 합을 맞춘 대련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전투를 하고 있던 당사자인 세은과 비네의 집중력은 점점 최고조로 치닫고 있었다.
방금 전에는 서로가 힘으로 밀어붙이던 양상이었다면, 이번에는 빈틈을 노려갔다.
비네로서는 방금 전과 똑같이 힘으로 부딪히는 전개를 만들어 가고 있었으나, 세은이 철저하게 비네와의 맞부딪힘을 피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쉬익―
그러나 아직 비네의 감이 조금 더 위였다.
비네의 거대한 대검이 아슬아슬하게 세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
상처에서 터져 나온 피가 허공을 수놓았다.
세은에게서 피가 터져 나오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행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세은은 이 정도 상처,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 비네와 검을 섞었다.
방금 전 세은의 목이 잘리기 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봤던 일행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둘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팟―!
또다시 세은의 뺨에 진한 혈선이 한 줄 그어졌다.
비네는 자신과 검술 대결을 시도하는 세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현재 상황에선 세은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그 방법을 가정하고 세은을 잡을 준비를 했고, 실제로 결과를 얻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세은이 이렇게 기교로 승부한다고 해서, 자신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
강하게 검을 휘둘러 세은과의 거리를 벌린 비네가 말했다.
“지금 그대의 상태로, 검술로 짐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세은을 배려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절치부심해 온 대적과의 결투의 끝이 너무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세은의 장기는 검술보다 그 압도적인 힘.
자신의 장기를 쓰지 못하고 다른 방법으로 선회한 대적을 이기는 일은 그리 유쾌한 게 아니었다.
“…….”
쉐엑―
그러나 세은은 그런 비네의 말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그대로 검을 휘둘러 달려들었다.
집중력이 최고조로 오르고 있는지, 세은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아쉽군.”
비네가 세은의 검을 막아내며 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봐줄 수는 없는 일.”
다그닥― 다그닥―
비네의 애마가 주인의 신호를 받고 뒤에서 세은을 들이쳤다.
세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볍게 애마의 돌진을 피해냈다.
그러나 비네의 당초의 목적이 다시 애마에 탑승하는 것이었다.
휘익―
세은을 떨어트리고 비네는 다시 자신의 애마에 가볍게 올라탔다.
“이번에야말로 그대와의 결전의 끝을 보겠다.”
완전히 처음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갔다.
비네가 자신의 전마에 탑승한 다음에는, 세은이 단순히 검술로만 비네를 공격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높이에서부터 불리하고, 공격 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기 때문이었다.
타앗―
그러나 세은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비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비네의 계산과는 달리, 여전히 힘으로 부딪히는 짓을 하지 않았다.
비네가 순간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신의 장점을 버리다니! 포기한 것이냐!”
세은은 정말로 포기라도 한 것처럼 비네의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반대로 세은의 머릿속은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비네의 말에 틀린 점은 없다.
분명히 세은은 감을 잃었고, 그 감을 찾아야 할 시기였다.
당장이야 비네를 만났지만, 만약에 10위 안에 드는 마왕들이 나타난다면?
그레모리와의 맹약 기간 안에 나타나서 천벌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순식간에 자신이 당할 것이 분명했다.
설마 그럴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는 않겠지만, 목숨이 달린 일에는 ‘만약’이라는 말이 달리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고 맹약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왕이 나타나면 더 피해가 커지기 전에 잡아야 했고,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알아챈 자신의 문제점을 없애야 했다.
세은은 신성력을 극한으로 집중해서 기감을 되살리는 데 집중했다.
세은의 주변에 넓게 퍼지는 신성력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비네의 검의 경로를 미리 알려준다.
어느 방향에서 어디로,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어떠한 속도로.
전마가 내뿜는 거친 호흡소리와, 땅을 딛는 소리도 세은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신성력을 주변으로 넓게 퍼트려서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일은 상당한 심력을 소모했다.
그리고 당연히, 천벌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기술이었다.
기사가 오러를 사용해서 상대의 기감을 읽어내 듯, 세은도 신성력을 이용했다.
다만 다른 점은, 신성력은 오러처럼 스스로 사용자의 기감을 상승시켜 주는 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 말은 결국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용자가 활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이었고, 세은은 그 누구보다 그런 점에서 뛰어난 재능을 자랑했다.
‘조금만 더!’
당장 잡힐듯, 잡히지 않는 무엇인가가 세은의 앞에서 아른거렸다.
한 번 관통된 복부로 인해 세은의 긴장과 감은 상당히 상승했다.
비네와 이 정도로 검을 섞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이 정도로 세밀하게 신성력을 컨트롤 한 게 언제 적 일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거의 완성된 퍼즐의 한 조각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하압!”
비네가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여전히 자신과 검을 섞고 있던 세은을 내려다보았다.
쉬지 않고 애마와 자신의 빈틈을 노리던 세은의 공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날카로워졌다.
오랜만의 피 튀기는 실전이, 세은의 감을 다시 되찾아오는 게 분명했다.
그 증거로 처음의 두 번을 제외하고는 비네의 검은 세은의 몸에 닿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비네의 마음이 조금은 다급해졌다.
자신감 있게, 끝을 내주마! 호언장담했지만 현재 둘의 힘의 차이는 현격했다.
세은과 비네의 수준에서 3할의 차이라면, 정말로 메우기 힘든 간극이었다.
그나마 세은의 복부를 한 번 관통한 덕분에 세은의 전력도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매우 커다란 차이였다.
‘감을 더 찾기 전에 죽여주마.’
비네는 대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세은이 검술로 상대해 오면 상대해 주면 그만.
그는 누가 뭐라 해도 마계의 마왕, 사자두왕 비네였다.
“시렌!”
그래, 상대가 어떻게 들어올지 예상하고 그에 맞춰 확실하게 처단하겠다는 것도 어찌 보면 협잡이 아닌가.
비네는 세은을 무릎 꿇리고 안일해졌던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고함을 질렀다.
“크아앙!”
거대한 사자의 울음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둘의 살 떨리는 전투를 보고 있던 일행들이 저도 모르고 귀를 손으로 막았다.
비네의 울음소리는 묘한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세은은 오히려 자신의 입술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그런 비네를 상대했다.
콰앙!
드디어 둘이 검이 또 다시 굉음을 일으켰다.
비네와 그의 전마가 동시에 힘으로 세은을 밀어붙였다.
치이익―
세은의 몸이 뒤로 밀리며 바닥에 자국을 만들어 냈다.
우웅―
세은은 당황하지 않고 아무 것도 없는 왼손에 신성력의 방패를 만들었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완벽하게 모양을 갖추고 있는 방패였다.
“고맙다.”
콰앙!
세은이 방패의 옆 날로 비네의 전마를 후려치며 말했다.
“덕분에 잊었던 것들이 생각났어.”
그래, 거추장스럽다고 방패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천벌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였다.
천벌을 사용하고 나서의 힘의 공백도 교단의 수하들이 지켜주는 것으로 메울 수 있었으니까.
충분히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힘들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감을 퍼트리는 것도 초창기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 항상 유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익숙해지고 나서는 전투에 참가할 때만 사용했고, 나중엔 아예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굳이 힘들게 사용하지 않아도 교단의 도움으로, 세은에게 다가올 수 있는 자들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세은은 오랜 평화로 인해 감을 잃고, 교단이 없는 지금에도 당시의 완벽한 서포터가 있던 상황처럼 싸우고 있었다.
“항상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도, 정말로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지.”
터엉―
비네의 대검이 세은의 방패에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시피, 현재 비네의 힘은 본신의 7할.
그 정도의 힘으로 세은의 방패를 파괴하는 일은 어불성설이었다.
“안 찔리면 안 죽는단 사실을 왜 잊어 먹고 있었는지 모르겠네.”
세은이 한결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공세를 강화했다.
처음과 달리 비네가 세은의 공격을 더욱 힘들게 겨우 막아내는 데 급급했다.
“크윽!”
주변에 넓게 퍼진 신성력이 세은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몸으로 다시 전달하던 건 상당한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비네와의 계속 된 전투로 집중력이 최고조로 치솟은 세은은 예전과 다름없이 그 일을 무리 없이 해내고 있었다.
세은은 방금 전과는 반대로, 자신의 공세를 막아내느라 대답할 여유도 없는 비네에게 말했다.
“덕분에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 배 한 번 뚫린 것과 비슷한 값어치야. 이걸 공정 거래라고 해야 하나?”
“크아아앙!”
세은의 조롱에 점차 수세에 몰리던 비네가 포효했다.
그러나 이미 신성력으로 주변의 공간을 점유한 세은의 감각을 뛰어넘기에는, 비네의 힘이 부족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이면 되는데!”
힘의 8할만 회복했어도 지금처럼 처참하게 밀리지는 않았을 거다.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든다면 2할의 힘 정도는 어떻게 상쇄해 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지금 세은의 왼손에 들린 방패를 파괴할 수 있단 확신이 들지 않았다.
처음과 달리 감을 거의 되찾은 세은이 비네가 간간히 날리던 반격을 모두 가볍게 막아내고 있었다.
“이이익!”
비네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손에 잡혔던 세은의 목숨이, 한순간의 방해로 인해 날아갔다.
“그리고 말이야.”
퍼억!
세은의 검이 전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나보고 방심했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너도 방심했잖아?”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 세은의 행동에 비네도 마음을 놓은 부분이 있었다.
두 번을 붙어도 무조건 이길 수 있단 확신을 가진 사실 자체가, 비네가 방심을 했단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세은은 무조건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너무나 감각이 떨어진 세은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승리를 확신한 것이 잘못이었다.
쩌엉―!
비네가 바로 자신의 목 앞에서 세은의 검격을 막아냈다.
한 번 손이 어지러워지니 공격을 막아내는 건 더욱 어려워졌다.
세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전마가 입고 있던 갑옷의 이음새를 노렸다.
푸욱―!
“히이이잉!”
거대한 전마가 고통을 호소하며 두 발을 하늘 위로 높게 치켜들었다.
비네는 다급히 전마에서 몸을 날려 바닥을 굴렀다.
다닥― 다그닥―
고통에 찬 전마가 바닥을 마구 훑으며 난동을 부렸다.
그 난리에 마른 바닥에서 흙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아까와 같은 상황이었지만, 전개까지 똑같지는 않았다.
쾅― 콰앙―!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흙먼지 안에서, 세은과 비네의 검이 쉼 없이 부딪혔다.
파앗―
그러나 이번엔 반대로 비네의 뺨에서 피가 튀었다.
신성력으로 느껴지던 감각은, 흙먼지가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힘에서 밀리던 비네의 검이 둔해지는 게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비네, 고맙다.”
우우우웅―
비네의 검에 실린 마기가 현저히 야해진 것을 확인한 세은이 자신의 검에 신성력을 더욱 불어넣었다.
밀려들어 오는 신성력에 빛의 검이 울음을 토해냈다.
콰아아앙―!
또 한 차례의 격돌에, 비네의 대검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다.
아무리 강한 금속으로 만든 검이라도, 계속되는 충격의 중첩되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충격을 견디게 해줄 마기도 약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커헉…….”
이번엔 비네의 복부에 세은의 검이 깊숙하게 틀어박혔다.
비네는 흙먼지로 인해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고개를 들어 세은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내가 이겼다.”
조금은 지친 목소리로, 세은이 비네에게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