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33. 습격의 배후를 찾아라(2)
“역시 그대는 대단하군.”
“지랄.”
“감히 단언컨대 짐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쾅―!
세은이 검을 날려,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열심히 움직이는 비네의 입을 틀어막았다.
“히힝!”
처음으로 비네의 전마가 그 꼿꼿한 무릎을 굽혔다.
중첩되는 충격을 더 이상 버티기 힘든 것이 분명했다.
전마가 무릎을 굽히자 그만큼 비네의 키가 낮아졌다.
빈틈을 발견한 세은의 검이 그대로 비네가 착용한 사슬 갑옷의 취약한 부위를 파고들었다.
터엉!
“이 정도로 짐을 이길 수는 없다.”
비네가 정확하게 세은의 검을 옆으로 비껴냈다.
“젠장.”
사자의 상체를 지닌 비네는 그 모습만큼 강력한 완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한평생 검술을 연마한 그의 실력은 결코 경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채앵―!
또다시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비네는 밀릴 듯, 밀릴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빈틈을 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비네의 철벽같은 방어에 공세를 퍼붓던 세은의 손이 점점 다급해졌다.
아무리 상대가 비네인데다, 검술에 통달한 상대와 검으로 승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정도로 몰아붙이고도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지금!”
세은의 심경에는 아주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의 검을 맞상대하고 있는 비네에게는 그 작은 변화가 아주 크게 느껴졌다.
세은의 공격이 아주 살짝 어긋난 틈을 타서 비네가 빈 공간을 점유한 뒤 파고들었다.
챙!
비네가 세은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대검의 힐트를 사용해 세은의 검을 밖으로 쳐 냈다.
“큭!”
안에서 바깥쪽으로 가해지는 힘에 순간 세은의 팔이 밖으로 벌려졌다.
그리고 비네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왼손을 휘둘러 세은의 명치를 가격했다.
퍽―!
“크헉?”
불시에 당한 강력한 타격에, 세은의 허리가 살짝 꺾였다.
그러나 이 정도로 세은의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었다.
세은은 고통을 참아내며 재빨리 비네와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어림없다!”
비네는 힘겹게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마에서 완전히 뛰어내려 세은을 쫓았다.
“히이이잉!”
비네가 내린 애마는 스스로 세은의 뒷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돌진했다.
졸지에 앞뒤로 비네와 그의 애마의 협공을 받게 된 세은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나 미처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비네의 파상 공세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흐압!”
뒤에서 무거운 무게로 들이받을 기회를 노리는 전마에, 앞에서는 방어를 도외시하고 달려 들어오는 비네.
세은은 쉽게 호흡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크윽!”
원래라면 벌써 비네를 제압하고 마계로 돌려보냈어야 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로 내 감이 죽어 있는 건가?’
감이 부족하다고 말하던 비네의 말이 세은의 귓가에 울렸다.
정말로 비네의 말이 사실인 건가?
오랜 시간 동안 목숨을 건 대결을 한 적이 없는 것은 맞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본신의 힘에서 7할을 겨우 발휘하는 비네에게 이렇게까지 밀린다고?
세은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비네는 그런 세은이 고민에 잠길 시간을 주지도 않고 계속해서 그를 몰아붙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콰앙―!
검과 검이 부딪히면서 강렬한 폭음이 흘러나왔다.
비네가 마기를 극한까지 끌어오려 세은의 신성력과 대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오늘! 짐이! 복수를! 할 것이다!”
비네가 부리부리한 눈에 광기를 가득 담아 선언했다.
“고양이! 새끼가! 아주! 지랄은!”
기세에서 질 수 없는 세은도 마주 소리를 치며 더욱 강하게 비네의 검을 막아내었다.
쾅!
강렬한 폭음과 함께 발밑의 땅이 터져 나갔다.
해소되지 못한 힘이 바닥을 터트린 것이다.
사막에 가득한 모래는 순식간에 모든 시야를 제한했다.
‘좋아. 지금 호…….’
파앗―
잠시 소강상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호흡을 다듬으려던 세은은, 볼에서 느껴진 화끈함에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짐이 말하지 않았는가?”
팟!
또다시 모래를 뚫고 비네의 검이 찔러 들어왔다.
“그대의 감이 죽어 있다고 말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비네의 검이 정확히 세은의 급소만을 노리고 들어왔다.
세은도 비네가 어디에 있는지는 기운으로 알 수 있었지만, 비네의 공격과는 그것과 달랐다.
마치 세은이 어디에 있는지 두 눈으로 완벽하게 보고 있는 것 같은 공격이었다.
“예전의 그대였다면, 이 정도 모래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을 터.”
팟― 파앗―!
“흡!”
또다시 세은의 뺨에서 피가 튀었다.
“게으름의 대가를 치룰 시간이다. 에일린의 개여!”
“히힝!”
설상가상으로 뒤에서 비네의 전마가 세은의 등을 들이쳤다.
“이런 시발!”
세은은 다급히 땅을 굴러 옆으로 몸을 피했다.
쿵!
전마가 그 육중한 몸으로 방금 전까지 세은이 있던 자리를 찍는 소리가 들렸다.
푸욱―!
“커헉……!”
그리고 세은이 몸을 일으키는 틈을 타, 비네의 검이 세은의 복부를 정확히 관통했다.
“내가 그의 제안을 거절한 건 그가 싫어서가 아니다.”
오랜 대적의 배에 드디어 대검을 꽂아 넣는데 성공한 비네가,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짐 스스로의 힘으로 복수를 이루기 위해서. 그 말고 다른 이유는 없도다.”
모래가 걷히며 만족스럽게 웃는 비네의 거대한 송곳니가 햇빛에 반사되는 것이 보였다.
세은은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레모리…… 개년…….’
흐릿해지는 세은의 눈앞에 그레모리가 떠올랐다.
그녀와 맺은 피의 맹약만 아니었으면, 시작하자마자 천벌로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아냐…… 그게 문제가 아니지.’
세은이 천천히 감기는 눈을 들어 의기양양한 표정의 비네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한 번 이긴 상대다.
그것도 서로가 만전인 상태에서 힘과 힘의 대결로 찍어 누른 상대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만전의 상태가 아닌 상대를 상대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세은의 의식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쿨럭!”
재채기를 하며 세은이 피를 게워냈다.
기침을 할 때마다 횡격막이 움직이며 관통된 복부를 자극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강렬한 고통이 세은이 의식을 붙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래, 방심…….’
비네의 말처럼 오래 싸우지 않아 감이 죽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방심이었다.
지구로 넘어온 마왕들은 만전인 상태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상의 상태에서도 모두 한 번씩은 이긴 상대인데, 채 7할의 힘도 내지 못하는 상대들이 무서울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은연중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레모리와 피의 맹약을 맺은 것도, 적당히 추방을 하는 선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곳이 마계였다면 죽어도 그런 맹약을 맺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분명 세은이 대부분의 마왕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이기는 하지만, 실전의 결과는 단 한 끗 차이로 결정된다.
세은이 감이 죽은 것도 상대의 실력을 무시한 것이 컸다.
예전과 달리 매일매일이 긴장에 휩싸인 일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개…… 새끼야…….”
세은이 힘겹게 입을 뗐다.
말을 할 때마다 복부의 상처가 자극받아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대, 많이 괴로워 보이는군. 걱정 말게 그대의 숨통을 끊어줄 터이니.”
푸슉―
비네가 세은의 완전히 세은의 목을 치기 위해 대검을 복부에서 뽑아내었다.
“크허허억!”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에 세은이 또 한 번 몸부림쳤다.
“그대, 짐의 대적자여. 이제 그대를 사랑하는 신의 곁으로 가게나.”
파앙―
비네가 마지막으로 세은의 목을 치려는 그때.
갑자기 옆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에, 비네가 흠칫 놀라며 대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쳐 냈다.
“오빠!”
대결 중간에 비네와 세은이 소리치는 소리를 듣고 일행이 급하게 달려온 것이었다.
평소와 다른 세은의 행동에, 혹시나 해서 달려온 일행의 눈이 목격한 건 목이 잘리기 직전인 세은의 모습이었다.
에린이 앞뒤 잴 것도 없이, 다급하게 홀리 애로우를 비네에게 날렸다.
세은과 싸우느라 신성력에 예민해진 비네는, 설마 교단의 지원군이 온 줄 알고 황급히 에린의 홀리 애로우를 막아낸 것이었다.
“깜짝 놀랐군.”
비네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신을 놀라게 한 어린 소녀를 살펴보았다.
분명 신성력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기껏해야 주교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짐도 많이 약해져 있군.”
우우웅―
비네가 스스로를 자책하며 우선 세은을 처리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응?”
그러나 정신을 붙잡고 있던 세은은, 그 짧은 사이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치료했다.
세은에게서 터져 나오는 신성력의 빛에 비네가 다급하게 검을 휘둘렀다.
콰앙―!
그러나 신성력을 사용해 방어에 집중한 세은의 가드를 완벽하게 뚫어낼 수가 없었다.
마기와 신성력의 강력한 충돌에, 치료를 하던 세은의 신형이 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세은은 꿋꿋하게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집중했다.
“이익!”
쾅― 쾅― 콰앙―!
비네가 대검에 마기를 가득 담아 계속해서 세은의 방어막을 내려쳤다.
비네의 공격이 계속될수록 세은의 신형이 흔들렸다.
그럴수록 그의 회복도 더뎌졌지만, 완벽하게 잡은 승기가 상당히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감히!”
결국 비네의 분노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방해한 에린에게로 향했다.
세은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아직 조금의 시간이 남았다.
방금 전의 전투를 또다시 해야 했지만, 비네는 이번에도 세은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그의 대적인 시렌은 약해져 있었다.
비네는 우선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치게 만든 건방진 방해꾼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날리려고 했다.
채앵―!
“어디 가?”
어느새 어느 정도 회복한 세은이 비네의 앞을 막아섰다.
“그 몸 상태로 짐을 막아설 생각인가?”
단번에 세은의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 비네가 코웃음을 쳤다.
“완벽한 몸으로도 짐에게 무릎을 꿇었는데, 참으로 오만하구나. 저 인간들이 그대에게 그리 소중한 것인가?”
“개소리 마.”
세은이 비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몸이 가벼우니까 반칙을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단 말이지.”
세은이 검을 들지 않은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며 말을 이었다.
“패널티다. 이 고양이 새끼야.”
“하하. 하하하!”
너무 뻔히 보이는 도발이었지만, 비네는 세은의 도발에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그는 그 누구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전투에 환장한 마계의 사자두왕.
위협이 되지 않는 단순한 방해꾼의 처리를 위해 이렇게 걸어오는 도발을 무시하는 성정이 아니었다.
“좋다! 짐의 대적자여. 이렇게 나와야 짐이 그 오랜 시간을 복수만을 위해 기다린 보람이 있을 것이다.”
저벅.
비네가 다시 한 번 기수식을 취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턱―
세은도 마찬가지로 처음과 다르게 검술의 기수식을 취하며 자세를 잡았다.
“날도 추워지는데 모피 한 벌 해 입자.”
“어디 할 수 있다면 해보게나.”
짧은 신경전이 끝나고, 세은과 비네의 시선이 허공에서 강렬하게 얽혔다.
“하압!”
“흐압!”
동시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비네와 세은의 신형이 동시에 서로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