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07화 (107/225)

# 107

33. 습격의 배후를 찾아라(1)

한 번의 습격 이후로 오히려 도시의 분위기는 더욱 평화로웠다.

약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할렘가를 벗어나는 놈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반인 중독자는 전부 치료소로 보낸 반면, 약물에 중독된 각성자들은 정보원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이 되면 가차 없이 목숨을 끊었다.

매우 비인도적인 일이었지만 반쯤 미쳐 있는 각성자들을 치료소로 보낼 순 없던 것이었다.

따로 그들을 수감할 곳이 없는데다가, 그렇다고 그냥 풀어주기엔 이미 그들의 습격으로 상당한 수의 미국 각성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어차피 습격을 방어할 때 둘러대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미국은 국제 법을 위반하는 일을 태연하게 저질렀다.

이지호와 세은은 그 일을 알았으나, 채연과 에린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포로를 처형한 건 굳이 말해서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지호 역시 같은 계통의 사람으로서 미국의 입장을 이해했고, 세은도 굳이 약에 중독된 위험 분자들을 살릴 당위성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은 단순한 약물 중독자가 아니라, 이미 그들을 습격한 습격자들이었다.

“여기는 완전 사막 기후네요.”

치클라요 인근의 게이트로 이동하면서 채연이 말했다.

페루 북부의 치클라요는 낮에는 덥고 저녁에는 쌀쌀한 사막 기후라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했다.

물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각성자들은 온도에 커다란 영향을 받지 않지만, 문제는 허공을 비산하던 미세먼지였다.

기관지를 간질이는 아주 작은 모래 먼지들이 차량을 따라 화려하게 공중을 수놓았다.

미리 손수건을 준비하지 못한 일행이 차에서 내리며 손으로 먼지를 가렸다.

전날 받은 습격의 영향인지 게이트 주변을 지키는 미국 각성자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사노는 그런 각성자들을 격려하며 세은과 함께 게이트의 입구까지 들어갔다.

“어떻습니까?”

“잠깐 들어가 보지.”

세은은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게이트는 마치 미국의 서부처럼 넓고 황량한 광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은이 먼저 들어가자, 사노와 일행들도 뒤따라 들어왔다.

가만히 게이트의 기운을 느끼던 세은은 눈을 번쩍였다.

“잘 찾았군.”

“여기 맞습니까?”

“네. 여기가 맞네요.”

이지호의 질문에 세은이 대답했다.

다행히 동남아에서처럼 헛걸음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헤리자우에서 함정에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세은은 혼자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세은은 일행에게 지시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나 혼자 다녀올 테니, 여기에 있다가 몬스터들이 오면 수련이라도 하고 있어.”

“우리도 같이 가요!”

“아니야. 이미 일이 충분히 많아. 어제 습격한 놈들의 배후도 잡아야 하고.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다녀올게.”

일리가 있는 세은의 말에, 같이 가겠다고 했던 채연과 에린도 포기하고 입구 근처에 남아 있기로 했다.

세은은 일행을 두고 바로 마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지나가면서 몬스터들이 보였지만, 세은은 깔끔하게 그것들을 무시했다.

어차피 크게 위협이 되는 놈들이 없었다.

지금은 심부로 이동할수록 점점 진하게 느껴지는 마기를 쫓는 것이 더 중요했다.

만약 이곳에도 없으면 벌써 두 명의 마왕이 게이트를 벗어나서 지구를 활보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그레모리가 알려준 남은 한 명의 마왕도 게이트에 남아 있을 것이란 보장이 전혀 없었다.

“이번에는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세은의 바람이 통한 것 같았다.

점점 진해지는 마기는, 이곳에 마왕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비네!”

옆에 거대한 검은 전마를 묶어놓고, 거대한 몸에 사슬 갑옷을 걸치고 있는 사자머리의 마왕이 세은의 눈에 들어왔다.

황량한 주위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자신의 권능으로 축성한 권좌에 앉아 있던 비네는, 세은의 부름에 감고 있는 눈을 가만히 떴다.

“왔는가?”

마치 세은이 올 것을 알았다는 담담한 태도에 세은이 물었다.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나?”

“그렇다네.”

“어떻게 알았지?”

비네는 예지 능력이 있는 마왕이 아니었다.

예지는 매우 드문 능력 중에 하나로, 마왕들 중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은 소수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비네는 예지가 아닌 축성과 천둥에 대한 권능을 가진 마왕이었다.

“미리 알려준 이가 있었지.”

비네의 말에 세은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태국!’

아마도 태국의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마왕이 세은을 만났던 게 분명했다.

“누가 알려줬지?”

“짐이 그 사실까지 알려줄 것 같은가?”

비네가 오연하게 말을 이었다.

“비록, 수준 낮은 협잡에 어울리기 싫어 제안을 거부했지만. 그래도 동족을 배신할 순 없는 법이지.”

“그럼 다른 걸 묻지.”

세은은 바람에 휘날리는 비네의 풍성한 갈기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제 습격, 네가 지시한 건가?”

“습격이라니?”

비네는 날카롭고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짐을 몰래 습격이나 하는 소인배로 보인단 말인가?”

“그래? 그럼 어제 우리를 공격한 놈들은 누구지?”

“짐은 모르는 일.”

“흐음…….”

습격자들에게서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어제의 배후가 비네가 아니라면, 정황상 배후는 유럽이 거의 확실했다.

“이 개새끼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짐을 앞에 두고, 무슨 말을 그리 혼자 하는가?”

비네는 거대한 몸을 서서히 권좌에서 일으켰다.

“짐이 그대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기다렸네.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도 그대와의 결전을 위한 일. 지난번의 패배를 갚아주겠다.”

“갚긴 뭘 갚아?”

세은이 비네의 말을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니까 힘도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건 그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비네가 태연하게 세은의 말을 받아쳤다.

“짐이 듣기로, 그대는 우리와의 결전 이후로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

“대체 어떤 새끼가 내 정보를 팔고 다니는 거야?”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은의 상태에 대해 이것저것 알고 있는 것을 보니, 동남아에서 도망친 마왕은 예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놈 중에 하나가 틀림이 없었다.

하긴, 그러니까 미리 세은이 올 것을 알고 도망을 치고 헤리자우에 함정을 팔 수 있던 게 분명했다.

“후우. 그대의 힘이 강한 것은 사실이나.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서는 감각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지.”

비네가 말을 하며 자신의 애마에 훌쩍 뛰어올랐다.

“히이잉!”

그의 애마는, 2미터가 넘는 비네를 충분히 태울 수 있을 만큼 커대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대에게 패한 이후. 오직 복수를 생각하며 검을 갈고 닦은 짐의 실력을 받아보게나.”

스릉―

비네가 허리춤에 있던 거대한 대검을 뽑아 들었다.

우웅―

세은도 마찬가지로 손에 빛의 검을 만들어 쥐며 대답했다.

“힘의 차이를 보여주지.”

달그닥― 달그닥―

비네가 먼저 기마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세은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애마는 무거운 갑옷을 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빠르게 가속을 붙여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타닷―!

세은도 마찬가지로 그런 비네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앗!”

신장이 더 크고, 무기도 더 긴 비네의 사정거리가 먼저 잡혔다.

비네는 기합 성을 내며 세은에게 대검을 휘둘렀다.

세은은 그런 비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신성 마법을 시전 했다.

“에일린, 홀리 웨이브.”

동시에 세은의 앞에 빛의 파도가 생성되어 파도처럼 밀려 나갔다.

비네의 공격만 막는 것이 아니라 말의 돌진력까지 막기 위한 마법이었다.

콰직―

비네의 검이, 빛의 파도를 가볍게 흩어버렸지만, 이미 그로 인해 말의 돌진력이 상당히 죽은 다음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세은이 공격할 차례였다.

쉬익!

세은의 검이 비네의 애마를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기마를 주로 사용하는 기사들은, 자신들의 무기 중 하나인 말만 사라져도 전투력의 절반은 잃는다.

하지만 비네의 애마가 차고 있던 방어구는 당연히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흠집도 낼 수 없는 특수한 방어구였다.

때문에 굳이 멀리서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근접전을 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텅!

그러나 비네는 검을 회수하면서 역수로 세은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군.”

비네가 다시 한 번 세은의 심기를 자극했다.

동시에 또다시 자신의 검을 사선으로 강하게 내리그었다.

세은은 이번에는 비네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동시에 강렬한 폭음이 울리며 비네와 세은의 공격이 완전하게 상쇄되었다.

아직까지는 동률.

그러나 비네의 표정은 세은과 섞을수록 실망으로 변했다.

“그대, 예전의 그때와는 다르군. 온 몸이 평화에 찌들었음이야.”

“개소리하네.”

세은은 빠르게 달려들어 또다시 비네의 애마를 노렸다.

하지만 말의 주인인 비네가 말의 약점이 어딘지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비네는 차분하게 세은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었다.

“말만 아니면 넌 이미 끝이야. 사자 새끼야.”

세은의 도발에 비네가 전혀 동요하지 않은 어조로 되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비네가 생각하기에, 세은의 실력은 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퇴보했다.

물론 지닌 신성력은 그대로지만, 전장에서의 날카로운 감각과 판단력이 그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뎌진 상황이었다.

비록 세은과 같은 강자가 무뎌진 이유는 이해하지만…….

“끝까지 이런 상태라면, 이번에는 짐의 검이 그대의 심장을 가를 것이다.”

비네는 언제나 세은의 심장에 자신의 대검을 박아넣던 꿈을 꿨다.

세은과의 일기토에서 처참하게 치욕을 당한 다음의 일이었다.

그 뒤로, 자존심 강한 비네는 세은을 잡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대적은 오랜 평화로 감이 죽어 있었다.

“힘이 부족한 짐과, 감이 부족한 그대. 아주 적절한 조합 아닌가?”

“미친 사자새끼.”

세은이 걸쭉하게 욕을 내뱉었다.

비네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 비네에게서 느껴지는 정도의 힘이라면, 벌써 세은이 비네를 참살해야 할 정도.

그러나 오히려 대등하게 싸움이 붙고 있지 않은가.

물론 천벌을 사용하면 비네를 이길 수는 있겠지만, 세은은 오기가 생겼다.

거기에 천벌은 어지간해서는 추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다, 그레모리와의 맹약 때문에라도 사용을 자제해야만 했다.

“이제 제대로 가겠네.”

비네가 진중하게 대검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전투 중에 갑자기 검을 아래로 내리는 행동에 세은이 당황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을 노려 비네가 권능을 사용해 애마와 함께 천둥처럼 세은에게 들이쳤다.

쾅―!

“크윽!”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비네의 공격을 막은 세은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비네는 잡은 주도권을 놔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세은을 강력하게 몰아쳤다.

비슷한 기세로 서로의 검을 맞부딪히는 것과,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공격을 막는 것은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세은은 말 그대로, 아슬아슬하게 비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대로는 밀려.’

그러나 확실히 현재 지니고 있단 힘의 차이가 있었다.

전력을 다했을 때의 비네라면 당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우웅―

세은의 검이 더욱 화려한 빛을 내뿜으며 환하게 빛났다.

자신의 검을 통해 밀려드는 신성력에 비네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세은이 그 틈을 타 비네의 공격을 강하게 쳐 냈다.

쩌엉―!

일순간 강해진 세은의 일격에 비네의 신형이 뒤로 흔들렸다.

처음과 전혀 다른 세은의 묵직한 공격에 비네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미 이 정도의 격차는 알고 있었다.

비네는 더욱 진지해진 표정으로 세은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가 복수를 위해 수련을 하면서 복기했던 세은과의 대결.

세은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어떤 명검보다 날카롭게 날이 서 있던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 명검은 오랜 평화에 무뎌져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세은과의 대결을 기다리며 머릿속으로 수천, 수만 번의 대결을 펼쳤던 비네는 느낄 수 있었다.

기다린다. 끝까지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리면 빈틈이 분명히 온다.

비네는 세은의 강력한 공세 아래에서 형형한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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