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32. 숙소 습격(3)
채연이 얼굴 가득 인상을 찌푸렸다.
동시에 재빨리 또다시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연속으로 또다시 한 발. 그리고 다시 또 한 발.
도합 세 발의 화살이 단 몇 초의 시간차를 두고 투안에게 날아갔다.
약을 흡입한 투안의 감각이 아무리 최고조로 예민한 상황이라지만,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채연의 화살 세 대를 근거리에서 전부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투안이 머리를 노리고 들어온 화살 한 대만 피하자, 왼쪽 허벅지와 오른쪽 팔에 화살이 박혔다.
약에 취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바로 고통에 울부짖으며 바닥을 뒹굴어도 할 말이 없는 공격이었다.
“으엑. 무슨 좀비 같네, 진짜.”
화살이 두 군데나 박히고도 멀쩡한 다리를 이용해서 자신에게 다가오던 투안을 보고 채연이 말했다.
달아오른 눈, 입가를 타고 흐르는 걸 넘어 상의까지 적시고 있는 침.
더 이상 그 더러운 꼴을 보기 싫었던 채연이 다시 시위를 당겼다.
파앗―!
그런데 채연이 시위를 놓기 전에, 갑자기 투안이 들고 있던 검을 채연에게 집어 던졌다.
미약하게 오러가 남아 있던 검은 날카롭게 채연을 노리고 날아왔다.
채연은 투안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라 재빨리 활을 휘둘러 검을 쳐 냈다.
그러나 그 충격으로 인해 오른손이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아 잠깐 동안 마비되었다.
투안은 채연이 자신의 급작스런 공격을 쳐 내는 것을 보고, 그대로 몸을 채연에게로 달려들었다.
“캬캬캬!”
투안은 멀쩡한 정신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검을 쳐 낸 채연의 오른손이 힘겹게 떨리는 걸 짐승처럼 포착해 낸 것이었다.
“언니!”
충격에서 벗어난 에린이 손을 떨던 채연을 보고 소리쳤다.
에린이 다급히 채연을 돕기 위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채연의 반응이 더 빨랐다.
“케?”
퍽!
광기 어린 눈으로 돌진하던 투안이 옆에서 느껴진 충격에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쓰러졌다.
채연이 멀쩡한 왼쪽 팔로 활을 옮겨 집고 오러를 담아 그대로 휘둘렀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쉬지 않고 수련을 한 보람이 있었다.
적어도 영한과 소진의 공격은 투안이 보이는 살의를 보이지 않았지만,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퍼억!
그리고 채연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앞에 쓰러진 투안의 머리를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목뼈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투안이 그대로 절명했다.
“후우. 이제 좀 몸이 풀리는 느낌인데?”
채연이 에린을 향해 걱정하지 말란 표정으로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 실전은 오랜만이어서 몸이 적응을 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개처럼 달려오는 투안의 살의 덕분에 어느 정도 긴장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크아아!”
자신들 중 가장 강한 투안이 너무나도 쉽게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습격자들이 뒤가 없는 것처럼 채연과 에린에게 달려들었다.
채연과 에린은 가벼운 움직임으로 습격자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에린이 앞에서 신성력으로 방어하고, 뒤에서 채연이 빠르게 화살을 연사해 갔다.
“파이어 볼!”
뒤에서 같은 편이 목숨을 도외시한 마법이 날아 들어왔다.
아무리 좁은 공간이라지만, 이래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마법사의 공격이었다.
“크헉!”
“이 개새끼!”
폭발에 휘말리거나, 겨우 벗어난 습격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마법사에게 걸쭉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원래 이들 사이에 동료애가 그리 진할 리 없었다.
마법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욕설을 무시하고 다시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파앙―
채연이 재빨리 마법사를 노리고 시위를 놓았다.
그러나 아직도 복도에는 많은 인의 장막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에린은 방금 전의 마법을 막아낸 충격 때문에 방어에 치중하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마법사는 파이어 볼 정도로 에린을 뚫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바로 더 강한 마법을 시전 했다.
“파이어 익스플로젼!”
콰앙―!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폭발이 호텔을 뒤흔들었다.
복도의 천장이 폭발로 인해 완전히 날아갈 정도의 강력한 공격이었다.
호텔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강렬한 충격.
순식간에 복도 옆으로 불이 옮겨붙으며 시커먼 연기가 복도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잡았나?”
마법사가 연기로 인해 잘 보이지 않던 복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단 한 명이라도 잡으면 된다.
그 후 바로 이곳을 빠져나가서 약속 받은 약을 지급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우웅―
마법사가 상황을 지켜보는 동안, 연기 너머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홀리 애로우.”
그리고 에린이 시전 한 신성 마법이 순식간에 마법사의 복부를 관통했다.
“크악!”
세은이 가장 공을 들여 가르친 공격 마법답게, 에린은 능숙하게 빛의 화살을 마법사의 복부에 박아넣을 수가 있었다.
“휴우. 언니 괜찮아요?”
배에 새로운 구멍이 생긴 마법사가 바닥을 뒹구는 동안, 연기가 걷힌 자리에 에린과 채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폭발로 인해 온몸이 거뭇거뭇하게 변하기는 했지만, 둘 다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다만 채연의 활은 거듭된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반으로 부러진 상태였다.
“응, 괜찮아. 에린 덕분에 살았네.”
말 그대로 에린의 방어막 때문에 충격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위로도 충격이 전해질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었으니, 이걸 정통으로 맞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습격자들은 이 폭발에 휘말려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정신을 잃은 상황이었다.
“괜찮습니까!”
드디어 아래층을 완전히 정리하는 데 성공한 미국의 각성자들이 채연과 에린에게 물었다.
미국의 각성자들 역시 온몸에 피칠갑을 한 상태였다.
에린이 가볍게 웃으면서 그들에게 대답했다.
“다행입니다. 다른 곳도 정리가 거의 되었다고 하니 내려가시죠.”
채연과 에린이 힘겹게 한 동을 정리하는 동안, 세은의 도움을 받은 다른 세 동이 말끔하게 정리된 상황이었다.
다만 이 사건의 배후를 캐낼 만한 머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라 습격의 배후를 찾아내는 건 난항에 빠질 것 같았다.
그나마 멀쩡하게 잡힌 놈들도 대부분 약에 취해 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던 단순 가담자들이었다.
“으아. 완전 난리도 아니네.”
밖으로 나와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건물을 바라본 채연이 중얼거렸다.
건물은 폭발이 일어난 곳을 기점으로 거의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저 정도의 폭발을 막아낼 정도라니, 새삼스럽게 에린이 다시 보였다.
“왜요?”
채연이 자신을 바라보자 에린이 물었다.
그러나 채연은 그런 에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수고했어.”
***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다시 숙소를 배정하자마자 사노와 세은 일행이 한 방으로 모였다.
방금 전에 습격이 있었지만, 경계는 더욱 삼엄해진 상황.
도심 한가운데서 일어난 사건에 근처 주민들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어서 도시는 더욱 적막했다.
“우선 여태까지 알아낸 것으로는, 이들은 이 도시 할렘가에 있던 주민들입니다.”
“그놈들이 우리를 왜 습격합니까?”
“습격에 참가하면 약을 준다고 했다는데…… 그 약속을 한 놈은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사노가 이지호의 말에 대답하며 채연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사노의 눈빛에 채연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호호. 정신이 없다 보니.”
“어차피 약에 취할 만큼 취한 놈이라 생포는 힘들었을 테니 이해는 갑니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니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중요한 단서요?”
“분명히 중간에 목표가 있다고 하고, 여기 있는 두 레이디가 있는 곳으로 놈들이 몰려갔다고 합니다. 그것도 뒤에서 공격하는 것도 무시하고요.”
“그 말은?”
“아마도 목표가 처음부터 도의 일행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들이 그걸 어떻게 알고요?”
“저희도 그 점이 의문입니다. 그리고 남미에서 도를 노리고 공격할 만한 세력이 어디에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사노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미까지 와서 이런 짓을 사주할 만한 세력은 현재로서는 단 한 군데였다.
“유럽.”
“맞습니다.”
세은이 꺼낸 단어에 사노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왜 굳이 남미까지 와서 방해를 하는지……”
“세은 씨의 이미지가 회복되는 걸 우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하여튼 현재로서는 증거가 없어서 문제입니다.”
“아니면 이곳이 마왕의 게이트가 맞아서 놈이 사주한 것일 수도 있지. 헤리자우처럼 말이야.”
이미 도시 하나가 몬스터화가 되었던 일을 경험한 세은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의 치안을 담당하고 이상한 사람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내일 게이트부터 다녀오고, 다음에 도시 한 바퀴 둘러보지.”
세은도 처음에 도시에 와서 마기를 느끼지 못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만약을 대비해서 한 번 돌아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이틀 동안 방비를 더욱 끌어올려야겠군요.”
조금은 방심하고 있던 탓에 생각보다 미국의 피해가 커졌다.
만약 이번 일의 배후가 자신들이 짐작대로 유럽이라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어야 했다.
미국은 절대 먼저 걸어온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그것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해 온다고 자부한 미국의 자존심이었다.
특히 이런 식의 비겁한 습격은 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이미 상부로 모든 보고가 올라갔으니, 정황 증거를 제외한 확실한 증거를 수집해야 했다.
아마도 치클라요의 할렘가는 이번 기회에 완전히 소탕될 게 분명했다.
도시의 주민들한테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럼 새로운 정보가 나오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노는 상황을 전부 알려준 다음, 후속 조치를 위해 먼저 방에서 나갔다.
일행만 남은 방 안에서, 이지호가 세은에게 물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집니다.”
“유럽이 한 일이면 진짜 문제 아니에요?”
“진짜 잘못하면 제대로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아주 큰 문제지.”
채연의 말에 이지호가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자신도 이 상황에 대해 바로 상부에 보고해야 할 정도로 아주 큰 건이었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건 중요했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에도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쪽은 실장님이 잘 처리해 주세요.”
세은이 이지호의 말에 긍정을 표하고는 채연과 에린에게 물었다.
“둘 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당연하죠.”
“누가 가르쳐 줬는데요.”
둘 다 상황이 종료되고 아직 씻지 못해 온몸에 폭발로 인해 생겨난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당당하게 괜찮다고 얘기하니 세은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네 생각만큼 잘해줘서.”
“그럼요. 앞으로 일이 있으면 꼭 맡겨주세요.”
채연이 가슴을 쭉 피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맞아!”
에린도 옆에서 채연의 말에 동의하며 칭찬해 달라는 표정으로 세은을 바라보았다.
세은은 그런 모습에 웃으며 둘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린은 익숙한 듯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지만, 채연은 세은의 손길이 머리에 닿자 살짝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하여튼, 둘 다 고생했어. 얼른 가서 씻어.”
“네!”
“네…….”
채연이 살짝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굴에 가득 묻은 그을음 때문에 달아오른 얼굴을 들키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일단은 씻고 다시 얘기하죠.”
“알겠습니다.”
채연과 에린이 나가자, 세은과 이지호도 간단하게 정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