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31. 마녀 사냥(3)
세은을 향한 유럽의 여론 공세는 더욱 심화되어 갔다.
세은에게 도움을 받았거나, 협력 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세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유럽의 정보 보호가 매우 삼엄해졌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입국 심사도 매우 까다로워졌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죄, 죄송합니다.”
가장 빠르게 세은에게 접근한 중국은 물론.
“국내 여론이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어. 왜 가만히 있냐는 말이 너무 거세.”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결과를 보여. 최선을 다하지 말고.”
가장 먼저 전략적으로 손을 내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럽 연합에서 아예 우리 국민에 대한 입국 제재를 더 강화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켕기는 게 있긴 있어. 더 확실하게 조사해!”
“예!”
거기에 더해 러시아에서도 열심히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쏟아붓고 있었지만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삼국이 공통적으로 얻은 성과는 딱 하나, 모든 정황 증거가 유럽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황 증거를 가지고 국제 여론을 뒤집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막말로 피해자 인터뷰를 한 사람이 없어진 이유를,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하면 할 말이 없었다.
그사이 유럽은 미친 듯이 여론을 통한 공세를 퍼부었다.
결국 가장 세은을 영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던 중국이 먼저 칼을 빼들었다.
『중국, 최근 유럽의 파렴치한 거짓 행동에 대해 강력한 성토!』
중국은 작정한 듯이 직접 주석이 나서서 세은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입장을 표명했다.
“유럽이 이기적인 사리사욕을 위해서, 국제적인 영웅을 음해하고 추락시키는데 앞장을 서고 있다. 특히 우리 중국을 포함한 러시아와 미국 지역에서 게이트의 준동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한 영웅을 끝도 모르는 비인격적인 테러범으로 선동하는 행위를 강력히 성토한다. 유럽은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대한 핵심 증거를 모두 공개하고, 테러를 당했다 주장하는 마을의 공개를 하지 않는 이상 국제 사회가 그들의 주장을 믿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시페이의 연설은 길었지만 짧게 요약하면, 현장의 공개 없이 우리는 너희들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정황 증거가 너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얘기한단 것이었다.
“범세계적으로 화합과 통합, 그리고 협력이 필요한 지금 시점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지역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단호히 반대한다.”
시페이의 입장 표명과 함께,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언론이 특보로 이 소식을 실었다.
동시에 원래 유럽과 자주 마찰이 있었던 러시아도, 옐친 대통령이 중국에 동조하는 입장을 표명해서 지원에 나섰다.
그러자 이 일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도 모두 이번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 유럽은 거의 독재가 집권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중국과 러시아에서, 단순히 힘을 보고 반인류적인 범죄자를 옹호한다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세은이 자국에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나라의 국민들은, 아무래도 자국의 입장 표명을 믿는 분위기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한국의 언론들과 여론은 더욱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세은을 취재하기 위한 언론의 열기는 더욱 불타올랐다.
세은에 대한 얘기를 모르는 국민들이 없을 지경이었다.
언론이 끊임없이 재생산해 대던 관련 뉴스는 항상 댓글이 가득 차 격렬한 찬반 토론이 벌어졌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이지호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 표면으로, 국내외의 여론이 조금 잠잠해지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다른 상황은 더 안 좋습니다.”
“어떤 상황이 가장 문제일까요?”
“아무래도 중국과 러시아가 그동안 해온 일이 있다 보니, 우리 미합중국에서는 유럽의 편에 서서 두 국가를 규탄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히 있습니다.”
“허 참…….”
사노의 말에 이지호가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가 해온 일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하는 행동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정부도 작금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니 금방 대처가 나올 겁니다.”
“사노가 보기에는 어떤 대처가 나올 것 같습니까?”
“적어도 유럽의 의견에 동조하지는 않겠죠.”
사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옆머리를 꾹꾹 눌렀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을 겁니다. 어떻게든 의견은 내야 합니다.”
“그렇다는 건?”
“아마 이번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손을 들어줄 겁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생기는 문제는, 세계가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진단 거겠죠.”
사노의 말에 이지호가 물었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 같은 의견을 내는데 다른 곳에서 어떻게 반발하겠습니까?”
“적어도 하나로 뭉친 유럽은 그만한 저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미 세력을 뻗친 곳도 많습니다.”
사노는 세은의 무죄를 알아내기 위해 그동안 수집했던 정보 중에 일부를 풀어내었다.
“일단 유럽과 가까운 아프리카 북부는 물론입니다. 중동 지역은 이때구나 하고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려 하겠죠. 동남아는 아시다시피 최근에 유럽에서 먼저 발을 들인 지역입니다.”
“생각보다 많군요.”
“어차피 현대의 전쟁은 핵의 보유로 갈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저쪽도 만만치가 않은 터라…….”
미국이 입장 표명을 한다고 해도, 유럽이 하는 것에 따라 새로운 냉전이 도래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여태까지 유럽이 취하는 자세를 보면 적어도 미국이 가세한다고 해서 공세를 늦출 것 같지는 않았다.
“거기에 유럽이 단합이 잘 되어 있다고 느꼈단, 세은의 말 대로면 적어도 헤리자우 정리에 참가한 각성자들 중에서 양심선언이 나올 만도 합니다. 그 모든 각성자들이 이런 범죄 행위에 동조했을 리는 없으니까요.”
“그게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는 건 내부 단속이 아주 잘 되어 있거나, 아니면 그들의 주장이 맞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후자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으니 전자겠지요.”
“그렇게 견고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유럽의 유대가 상당히 돈독합니다?”
“게이트가 발생한 이후로 함께 협력하면서 생각 이상으로 관계가 돈독해진 것일지도 모르지요.”
사노는 잠시 쉰 뒤,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모두를 휘어잡을 만한 강한 지도자가 나타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정상들은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굳이 정치인들이 아니어도, 각성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과연 각성자가 강하다 한들, 정치인들까지 모두 휘어잡을 정도로 카리스마나 실력이 있을까요?”
“이제부터 확인해 봐야겠지요.”
이지호와 사노가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정보전이었다.
미국의 대처가 어떻게 내려지든지, 앞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은 확실했다.
* * *
『백악관, ‘미합중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 동의’ 표명. 레이튼 “유럽은 사기극 그만해야.”』
『<투데이 일보=김해민 기자> 미국은 최근 국제적으로 커다란 논란이 되고 있는 스위스 헤리자우 사건에 대한 공식 입장을 처음 공식적으로 밝혔다.
레이튼 대통령은 20일 백악관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각성자 도세은의 범죄 논란과 관련해.
“미합중국은 세은 도의 무죄를 믿으며, 최소한 유럽이 범죄 현장이라고 주장하는 곳을 공동 조사를 위해 개방하지 않으면 그들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의심 할 수밖에 없다.”
며 도세은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공식화했다.
(하략)』
―이 정도면 신 냉전시대 아님?
―미중러에서 같은 의견 내기는 또 처음인 거 같네.
―하여간 힘 있는 놈들은 범죄 저질러도 그냥 넘어간다니까.
―윗놈 그러다가 고소당한다. 조심해라.
―솔직히 상황 보니까 일방적인 유럽 주장이더만 뭔 범죄?
―실드 칠걸 쳐라. 피해자 인터뷰 나온 순간 끝 아니냐?
―다른 증거가 없잖아. 그렇다고 뭘 공개하는 것도 아니더만.
뉴스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리며, 요즘 가장 뜨거운 감자임을 증명했다.
기자들은 늘어나는 조회 수에 웃음을 지었지만, 그 글을 모니터링하던 안보원 요원들은 아직도 여론이 엇갈리는 걸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국내에서 세은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라는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요원들은 밤잠을 아껴가며 세은의 무죄를 주장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나 인터넷이란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항상 반대 의견을 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보원 요원들은 그런 사람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세은이 인터넷을 잘 하지 않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미중러 세 곳이 세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자, 처음보다는 세은에 대한 의심이 많이 줄어든 건 확실한 상황이었다.
대충 한숨 돌린 안보원은 계속해서 인터넷을 살펴보는 한편,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의논할 필요성을 느꼈던 국가들이 책임자를 한국으로 파견했다.
마왕에게 덴 적이 있던 국가들은, 세은이 현재 진행하던 일이 어떤 일인지 충분한 정보를 받은 뒤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도 일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럼 유럽이랑 동남아는 포기한 뒤, 찾아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장위건의 말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지.”
“만약에 유럽에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사노의 질문에 세은 대신 러시아의 이고르가 대답했다.
“뭐 어떻게 합니까? 자기 발등 자기들이 찍는 건데요.”
“우리도 일단은 알아서 하게 놔두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장위건이 이고르의 말에 동의했다.
사노는 살짝 찝찝했지만, 둘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강제로 유럽을 조사하려고 해봤자 분쟁의 씨앗밖에 못 된다.
세은이 그레모리가 표시해 준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대략적으로 이 지도에 표시된 지점에 있어야 해.”
“동남아에 한 곳, 남미에 한 곳, 그리고 아프리카 쪽에 한 곳. 총 세 곳입니까?”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그럼 동남아는 이미 세은 씨가 확인을 했고, 유럽에 있던 흔적이 동남아에서 옮겨간 것인지, 아니면 다른 개체인지가 중요하군요.”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걸 알 수가 없으니까.”
“그럼 일단 가능한 곳부터 해결을 해야겠군요.”
사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남미.”
“확실히 아프리카는 무리가 있지. 남미라면 미국에서 가깝기도 하고.”
장위건과 이고르의 말에 사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남미가 원래 치안이 불안한 지역입니다. 거기에 게이트까지 터지니 완전 무법지대가 따로 없죠.”
“좋습니다. 러시아도 지원하겠습니다.”
“우리 중국도 지원하겠습니다.”
“한국은 나 혼자 가지.”
세은의 말에 사노가 당연하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당연합니다.”
“그럼 일단 지도에 표시된 곳이면 어디지?”
“이 위치면 페루입니다.”
“그럼 다른 곳 제쳐두고 일단 페루의 치안을 안정화시키는 데 집중해야겠군요.”
장위건이 말했다.
페루는 생각보다 커다란 나라.
영토 면적으로는 세계 20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선 페루 정부에 연락을 해서 파악된 게이트의 위치를 전부 알아내고, 게이트 근처의 도시만 정리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럼 게이트가 있는 장소가 파악되면, 그때 가서 다시 나누기로 합시다. 어차피 국가 별로 따로 움직이는 게 훨씬 편할 테니까.”
이고르의 말에 다른 둘이 동의를 표했다.
미중러 삼국이라면 어설프게 연합을 하는 것보다, 딱 지역을 정해서 책임을 지는 편이 지휘에도 훨씬 수월했다.
“좋아. 시간을 그동안 허비했으니 빨리 움직이자고.”
한동안 의욕이 없던 세은이, 그나나 부모님에 대한 주변 시선이 호의적이 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조금 마음이 편안해진 상황이었다.
우선 처리할 수 있는 것을 처리하고 유럽한텐 나중에 되갚아 주겠다 마음을 먹은 상황이었다.
어차피 다시 마왕이 준동하면, 유럽은 싫어도 세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판이었다.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고.’
세은은 눈을 빛내며 유럽에게 진 빚을 되돌려 줄 시간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