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02화 (102/225)

# 102

31. 마녀 사냥(2)

웻지는 영국 국적의 각성자였다.

그는 EU에 가입하지 않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을 포함해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강자였다.

그는 유럽 연합에 합류하고, 다른 각성자들하고 모두 한 번 대결해 볼 만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단 한 명.

오직 마르키시오를 볼 때만큼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무리 머릿속에서 마르키시오와 대련도 해봐도, 그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요원했다.

그래서 그는 세은에게 브뤼셀 본부가 초토화 당했을 때도, 마르키시오가 오면 되갚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직위가 직위인지라 겉으로 그런 의견을 표출하지는 못했지만, 내심 기대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웻지의 기대가 무색하게, 마르키시오는 세은이 한국으로 귀환하고서야 외유를 마치고 돌아왔다.

벌려진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질책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마르키시오에게 보고서를 올릴 때만 해도, 웻지는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좋아. 아주 좋아.”

웻지의 보고를 받은 마르키시오가 아주 기꺼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좋다고? 스위스에서 마을 하나가 초토화될 때까지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고, 게이트에 마왕이 있다는 사실도 세은을 통해 알았다.

거기에 마르키시오를 제외한 각성자들이 세은 한 명에 전부 당해 버린 일까지 있었다.

정보와 무력, 모두에서 밀렸는데 저렇게 기꺼운 웃음을 짓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하지만 마르키시오는 한참을 웃더니, 이내 웻지에게 상상도 하지 못한 지시를 내렸다.

“그 동양인이 민간인 마을을 학살했다고 알려.”

“응?”

귀를 의심하는 지시에 웻지가 되물었다.

그러나 방금 전에 엄처난 말을 내뱉은 마르키시오는 매우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지시했다.

“헤리자우는 몬스터화가 된 적이 없는 거다. 놈이 우리 본부에서 힘으로 행패를 부리고, 민간인 마을을 학살하고 귀국했다고 언론에 뿌려. 유엔에도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마르키시오? 그게 무슨 말이야?”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식 밖의 지시에 웻지가 또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그러나 웻지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마르키시오는 다시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

“들은 대로야.”

“하지만 그런 거짓말을 하면 그는 완전 매장이야. 거기에 거짓말이 통할 것 같아?”

“헤리자우 철저하게 통제하고, 살아남은 생존자 중에서 믿을 만한 사람 한 명 포섭해서 피해자 인터뷰 준비시켜.”

“마르키시오!”

몇 번을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을 말도 안 되는 지시에 웻지가 마르키시오를 힘주어 불렀다.

그러나 마르키시오는 안색 하나 변하는 것 없이 태연하게 물었다.

“그럼 이대로 당하고 끝낼 거야? 우리 기밀을 꼬박꼬박 바치면서?”

“그, 그건…….”

말을 하지 못하는 웻지에게 마르키시오가 다시 한 번 지시를 내렸다.

“어차피 이대로 넘어가도 말이 많아지는 건 마찬가지야. 그럴 바에는 우리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게 낫지.”

“하지만 이건…….”

마르키시오가 몸을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웻지를 설득했다.

“잘 들어 웻지. 끝까지 가자는 게 아니야.”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마르키시오는 진지한 표정으로 웻지의 두 눈을 직시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자의 국제적인 명성을 조금 깎아 내리기만 하면 돼. 그럼 나중에 무죄가 밝혀지더라도 지금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겠지.”

“아니, 무죄가 밝혀지면 반대로 우리 입지가 곤란해지잖아.”

“아니야, 아니야.”

마르키시오의 희고 긴 검지가 좌우로 까닥거렸다.

“우리도 몰랐다고 하면 돼. 어차피 헤리자우에 개입된 사람들은 그 동양인을 제외하고는 전부 우리 측 인원들이야.”

“아니, 나는 동의할 수 없어. 이건 분명히 내부에서 양심선언이 나올 일이라고. 오히려 커다란 역풍을 맞을 거야.”

탁―

단호하게 거부하는 웻지의 태도에 마르키시오가 대답했다.

“아니, 내부 고발자는 아무도 없을 거야. 그건 내가 장담하지.”

“마르키시오. 지금 자네의 얘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말이 되지 않아.”

“흐음……”

계속되는 설득에도 웻지가 자신의 지시를 거부하자, 마르키시오는 앉고 있던 의자를 빙글 돌려 등 뒤의 창을 바라보았다.

탁― 탁―

마르키시오가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잠깐의 침묵의 지나고, 마르키시오가 다시 먼저 입을 열었다.

“좋아. 웻지. 그럼 우리 이렇게 하는 게 어때?”

“……?”

“이번 일에 대해 우리가 거짓을 말한 것이 들통 나면, 모두 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아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웻지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자네 하나의 단체가 아니라, 연합이야. 밖에서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왜? 왜 못 믿겠어?”

화악―

동시에 마르키시오의 몸에서 마나가 유형화되어 흩뿌려졌다.

“크윽.”

갑작스런 마르키시오의 행동에 웻지가 신음했다.

“내 실력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웻지는 그 말에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더 강해진 건가?’

지금 느껴지던 마르키시오는 전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져있었다.

마치 불과 얼마 전에 겪은 세은과 비교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마르키시오는 다시 의자를 빙글 돌려, 완전히 얼이 나가있는 웻지에게 마지막으로 지시했다.

“좋아. 웻지. 마지막 지시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리고 헤리자우 정리에 참가했던 각성자들을 전부 한 곳에 모아. 그쪽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웻지에게 축객령이 내려졌다.

* * *

웻지는 지난 일을 생각하면서 헤리자우에 도착했다.

헤리자우에는 피어스가 접근하는 다른 국가의 요원들을 막기 위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러 유저인 웻지나 막스보다는, 마법사인 피어스가 경계 근무에 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피어스는 온몸으로 경계근무가 불만이라는 것을 표출하고 있었다.

덕분에 상당한 미인임에도 불구하고, 피어스 주변에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오죽하면 다른 각성자들이 불똥이 튀는 것을 염려해 쉬는 시간에도 피어스 근처에 가는 것을 꺼릴 정도였다.

“언제 끝나?”

피어스가 웻지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웻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주변에 다른 각성자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피어스가 웻지에게 투덜거렸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협잡질을 하게 됐냐고? 그냥 힘으로 이기면 될 거 아냐?”

“목소리 좀 낮춰.”

“어휴. 시발.”

웻지의 경고에 피어스가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피어스를 말리기는 했지만, 웻지도 같은 생각이었다.

도대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쓴웃음을 짓고 있는 웻지에게 피어스가 물었다.

“막스 그 새끼는 왜 안 와?”

“다른 임무를 받아서 나갔어.”

“참. 그 새끼는 완전히 무슨 마르키시오 부하라니까.”

거침없는 발언에 웻지의 입가에 또 다시 쓴웃음을 고였다.

“다른 사람을 앞에서 이런 말 하는 건 아니지?”

“내가 무슨 병신인 줄 알아?”

피어스는 그동안 쌓인 짜증을 풀어내기라도 하듯이 한 없이 짜증을 표출했다.

결국 피어스의 짜증을 받아내는 건 웻지의 몫이었다.

이렇게 한 번씩 이곳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오는 것 외에도, 피어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게 매우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한참을 그렇게 피어스의 짜증을 받아주던 웻지는, 조금 잠잠해졌다 싶었을 때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하여튼 아직은 문제가 없다 이거지? 가서 좀 쉬다 와.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그제야 피어스의 입가에 미소가 담겼다.

단 두 시간이라도 규정된 업무 시간에 쉴 수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었다.

“좋아. 그럼 디저트도 먹고 간단하게 쉬다 올 테니 잘 지키고 있어.”

피어스는 팔을 쭉 위로 들어 기지개를 피면서 말했다.

그녀의 기다란 몸이 한껏 긴장된 근육을 풀어내었다.

피어스는 웻지의 어깨를 툭툭 치며 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수고 좀 해줘.”

웻지는 웃음을 지으며 피어스를 보냈다.

피어스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자, 웻지는 그제야 짙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 이러나저러나 일하기 참 힘들어.”

타닥― 타닥―

불빛에 이끌린 날벌레들이 랜턴에 달려들어 짧은 생을 마감했다.

적막한 산골 마을이라 아주 작은 소리만 들려도 멀리까지 퍼졌다.

얼마간 고요를 즐기며 웻지는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흐음. 이놈인가?”

눈을 감고 있던 웻지의 귀에 갑자기 허공에서 낯선 목소리가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누구냐?”

웻지가 황급히 눈을 뜨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화려하게 금과 보석으로 세공된 왕관을 쓰고 있는 미소년이 서 있었다.

소년은 대답 대신 웻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뭐,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누구냐고 물었다!”

웻지가 허리춤에서 애검을 꺼내 소년에게 겨눴다.

당당하게 소리쳤지만, 속으로는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눈을 감고 있다고는 하지만, 경계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상대는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것처럼 아무런 소리 없이 나타났다.

아마 소년이 입을 열지 않았다면 자신의 목이 날아가는 순간까지도 몰랐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여튼, 아직 인간의 감정이 남아있어서 귀찮단 말이야. 그래서 도움이 되는 거기도 하지만.”

소년은 웻지가 겨누고 있는 검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좋아. 아해야. 운이 좋은 줄 알아라.”

“그게 무슨 개소…….”

웻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년이 순식간에 웻지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이 끝날 때까지 잠시 쉬고 있거라.”

화르륵―

소년의 손에서 검은 불길이 타올랐다.

푹!

“크헉?”

소년은 그대로 검은 불길을 웻지의 복부에 박아넣었다.

복부가 관통되는 고통에 웻지는 강렬한 쇼크를 받았다.

“걱정하지 마라. 죽지는 않으니까.”

이윽고 소년의 손이 웻지의 복부에서 빠져나왔다.

웻지의 복부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소년의 손에서 타오르던 검은 불길만이 사라져 있었다.

“이 정도면 됐군.”

퍼엉!

소년은 일부러 발로 땅을 내려찍어 작은 폭발음을 만들었다.

이제 이 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 분명했다.

이것으로 소년의 일을 모두 끝났다.

타다닥―

“웻지! 무슨 일이야?”

안에서 잘 쉬고 있던 피어스가 갑작스런 폭발음에 놀라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소년은 피어스가 오는 것을 느끼고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웻지!”

급하게 달려 나온 피어스의 눈에 들어온 건 바닥에 앞으로 엎어져 있던 웻지의 모습이었다.

피어스가 다급히 웻지의 몸을 돌려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수, 숨은 쉬는데?”

심장 박동까지 확인한 피어스는 다급히 웻지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이건 뭐야?”

그러나 웻지의 몸에서 공격당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복부에 주먹만 한 크기의 검정색으로 착색된 부분이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원래 웻지의 몸에 있었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피어스는 다른 곳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왜, 왜 이러는 거야?”

“무슨 일입니까?”

피어스보다 한 발 늦게 다른 각성자들이 폭발음을 듣고 달려왔다.

그들은 쓰러진 웻지를 보고 더욱 빠르게 달려왔다.

“이, 일단 옮겨!”

“예!”

각성자들은 쓰러진 웻지를 업고 다급하게 의무실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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