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01화 (101/225)

# 101

31. 마녀 사냥(1)

휴정을 마치고 다시 재개된 청문회는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계속해서 같은 질의자가 사사건건 세은의 도덕성을 물고 늘어진 덕분에 제대로 된 진행이 불가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세은의 도덕성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공개되자 언론의 보도는 더욱 선정적으로 변했다.

그에 맞춰서 여론도 다시 돌아올 줄을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에서도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는 중국에서 세은을 영입하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경주하는 중이란 사노의 보고를 받고, 우선 대책을 세우기 위해 관계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케인 팀장,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도가 그럴 만한 인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그렇지.”

“그래도 유럽이 이번 처사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군요. 그 저의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야. 차라리 목적이라도 확실하면 거짓이라는 것을 확신 할 텐데, 저들이 이런다고 얻는 것도 없지 않은가?”

“일단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도가 중국으로 포섭되는 것을 막는 일입니다.”

“중국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줄을 몰랐어.”

“아무래도 거리가 가까우니까 가능한 일이죠.”

“우리도 움직인다고 움직였는데,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달랐으니까 말이야.”

펜과 케인의 심각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이대로 세은이 중국에 넘어가면, 여전히 진행하고 있는 각성자 육성에 대한 연구에 도움받을 가능성이 거의 완전히 사라진다고 봐도 무방했다.

“중국에서 도가 무죄라고 믿는다는 게, 단순한 립서비스인지 증거가 있는 건지도 중요한 문제야.”

“맞습니다. 저희도 헤리자우에 사람을 파견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유럽의 경계가 너무 삼엄합니다.”

“그게 이상하단 말이야. 그들의 말이 사실이면 이렇게까지 경계가 삼엄할 필요가 없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단순한 정황이 증거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케인의 말에 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황 증거는 유럽이 거짓으로 국제사회를 속이고 있다는 걸 가리키고 있었지만, 피해자 인터뷰까지 나온 이상 단순한 정황 증거만으로 여론을 반전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일단 사노의 보고를 들으면, 도가 무죄를 받고 싶어 하는 게 확실합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도는 전에도 가족 때문에 야쿠자 조직 하나를 초토화시킨 적이 있습니다. 저희 조사에 따르면 가족들이 기자들을 피해 시골로 내려갔다고 하더군요. 그의 성정상 가족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원치 않을 겁니다.”

“그래도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되면 어쩔 수 없지 않겠나?”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끄응…….”

복잡한 상황에 펜이 침음했다.

중국과 달리 미국은 언론의 통제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죄가 입증되지 않은 세은을 포섭하는 건 매우 커다란 부담이었다.

“우리가 도의 무죄를 입증할 수가 있겠나?”

“일단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당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청문회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건 어떻게 되었나?”

“아무래도 유럽 쪽에서 한국 의원들 몇을 포섭한 것 같습니다.”

“청문회 참가자를 바꾸면 되지 않나?”

“그게 이미 기사가 나간 상황이라 마음대로 질의자를 바꾸면 그거에 대해서 말이 많을 것이 분명합니다.”

“정말 짜증나는군.”

“거기에 그 한 명만 포섭했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실제로 이번 의원도 청문회 시작 전까지는 아무런 징조가 없었다고 합니다.”

“끄응…… 완전히 돈에 나라의 미래를 파는군.”

“평소 같으면 우리에게 좋은 일이지만, 지금은 상당히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하여튼 도의 무죄를 입증할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봐. 다른 건 몰라도 무죄를 입증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회유를 하면 우리 쪽에 넘어올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현재 상황을 봐서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좋아!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게 빨리 빨리 움직이고, 도의 가족에 대해서도 어떻게 대우를 해줄 건지 미리 준비해 놔.”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파견하는 요원들 숫자도 대폭 늘려. 아무래도 구린 냄새가 난단 말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짝―

“좋아! 그럼 빠르게 움직이자고!”

펜은 박수를 치며 주위를 환기시키고 회의를 종료했다.

이제부터는 다른 국가에 세은을 뺏기지 않기 위한 시간 싸움이었다.

* * *

청문회가 지속적인 방해를 받는 동안, 세은은 여전히 별다른 움직임 없이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사실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했다.

직접 증거를 찾기 위해 유럽으로 가는 건 당연히 비행기 자체가 입국 거부가 될 게 분명했다.

유럽은 세은을 체포해서 인도하란 압박을 계속 보내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한국 정부가 수사관을 파견하겠단 요청도 협조할 명분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있었다.

덕분에 난감한 것은 이지호였다.

마땅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

사노와 지속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건 그도 매한가지였다.

“거 봐. 인간들은 도와줄 필요가 없다니까.”

어느 정도 현대에 적응한 그레모리가 세은의 심기를 긁었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세은이 한동안 가만히 있는 것이 이상해서, 주변 인물들을 통해 돌아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황이었다.

그레모리가 여 봐라는 듯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하여간 자기들 도와주는 사람들도 몰라보고 이렇게 나온다니까. 우리로서는 좋기는 한데 말이야.”

세은은 그레모리의 말에도 묵묵부답 이였다.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데다가,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마음 고생하지 말고 너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사실 여기만 지키면 되는 거 아니야?”

“지랄은 아주.”

세은이 옆에서 깝죽거리던 그레모리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말 자체가 기분 나쁘다기보다, 그냥 옆에서 종알종알 시끄럽게 구는 것이 거슬렸다.

세은의 집 앞에 아예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 때문에 채연이나 재호, 에린이 아예 방문을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딱히 괴롭힐 사람이 없어진 그레모리가 세은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세은이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청문회에서 세은을 물고 늘어졌던 의원은 사무실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의원님, 아주 잘해 주셨습니다.”

“뭐, 당연한 일이지요. 국격을 위해서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을 잘 선별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의원의 반대편에 앉은 사내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역시 의원님이야말로 한국을 이끌어 가실 분입니다.”

“허허허. 당연한 일을 가지고 이렇게 칭찬을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말을 마친 의원은 이내 눈을 빛내며 은밀하게 사내에게 물었다.

“그런데…… 약속한 보수는?”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드리겠습니다.”

사내의 말과 동시에 뒤에 시립해 있던 부하가 검정색 가방 하나를 탁자에 올려놨다.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탁―

가방의 걸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가방의 내부가 공개되었다.

“흠흠.”

내용물은 확인한 의원은 다시 가방을 걸어서 잠가 버렸다.

“역시 신용이 있군요.”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의원님에 대한 당연한 보답입니다.”

“허허. 누구나 해야 할 일입니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던 의원은, 이내 표정을 굳히고는 사내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조사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요?”

“그렇습니다.”

“이미 예상한 사실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이렇게 나오니 조금 부담은 되는 군요.”

“의원님께서 실수만 안 하시면 저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할 겁니다. 심증은 있겠지만 물증이 없으니까요.”

“그렇겠지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허허. 내 잠시 불안해서 물어봤습니다. 중국에서도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가 있어서요.”

“전부 저희가 사전에 알려드린 대로군요.”

“그래서 크게 걱정은 되지 않지만…….”

말끝을 흐리는 의원의 모습에 사내는 속으로 조소를 지었다.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더 많은 대가를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욕심만 많은 돼지 새끼들.’

그러나 이미 이것도 예상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중국과 미국이면 만만치 않겠습니까?”

상대의 생각은 꿈에도 모른 채 의원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의원이 말을 들은 사내가 속마음을 숨긴 채 웃으면서 의원의 말을 받았다.

“하하. 당연하죠. 의원님이 불편하시지 않게 다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준비는 철저한 게 좋겠지요.”

의원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내는 그런 의원에게 마주 웃음을 지어주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시오. 내 당연히 정의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 * *

“아무리 찾아도 인터뷰를 한 피해자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확실해? 다른 곳으로 이주한 거 아니야?”

“아닙니다. 인터뷰 이후로 갑자기 사라졌다고 합니다.”

“원래 거기 주민은 맞고?”

“예. 조사 결과 원래 거기 주민인 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근처 도시 사람들이 더욱 의견에 신뢰성을 갖기도 한 것이고요.”

“헤리자우 주민들과는 여전히 접촉이 불가능한가?”

“경비가 너무 삼엄합니다. 몰랐으면 그곳에 무슨 군사 비밀 시설이라도 있는 줄 알았을 겁니다.”

“이상해…….”

이지호는 정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동원해서 사건을 파헤치고 있었다.

중국은 이미 세은을 포섭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미국과는 협력을 하고 있다지만 온전히 믿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세은이 말은 안 하지만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라도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원색적으로 가족들에게까지 비난과 욕설을 퍼부으면 정신적으로 힘들 게 당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죄의 증거를 잡아낸 국가가 무죄를 밝히는 조건으로 이민을 권유한다면, 세은이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청문회에서 장위건과의 대화 내용이 이 생각에 힘을 더해주었다.

다른 부분에서 조금 소홀해지더라도, 다른 국가보다 세은이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의 여론을 폭발적으로 반응하게 만든 피해자 인터뷰가 거짓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

인터뷰가 거짓말이라는 사실만 밝혀낼 수 있다면, 다른 모든 주장에 신빙성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쉬운 그 방법은 인터뷰를 한 당사자를 도저히 찾지 못해 난항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이럴수록 더욱 세은의 무죄에 심증이 굳혀져가고 있었다.

“다른 부분은 좀 소홀해져도 되니까. 우선 그 인터뷰 당사자 신원 확보에 주력해!”

“예. 알겠습니다!”

“애초에 헤리자우를 아예 공개하지 않고 피해자를 내세워서 여론을 호도한다면, 그 당사자를 잡는 수밖에.”

이지호는 계속해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 그리고 도세은 부모님의 신변 보호는 잘되고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집을 여러 개 구해놓고, 일정 기간마다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정보 밖으로 새지 않게 단속 잘해.”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보다 부모님이 문제가 크단 말이야. 가족 때문에 야쿠자 조직 하나를 없앤 사람이라고.”

이지호는 말을 하면서 살짝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세은의 인내심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모르지만, 만약에 인내심이 바닥난다면 큰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세은이 나름 힘에 맞는 자제력을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런 자제력을 발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자신이 할 일은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사건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것이었다.

“자! 이번 일은 최대한 빨리 해결 할수록 좋다. 그러니까 밤을 새서라도 빨리 해결해!”

이지호의 재촉과 함께 다시 부하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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