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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꼬리잡기(5)
유럽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계사에 기록될 만한 거대한 사건에 모든 언론의 촉각은 세은과 관련된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런 마당에 헤리자우의 생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선 인터뷰는 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인터뷰도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는데, 세은이 별다른 대응 없이 있자 여론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정부에서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단 주장까지 나오는 중이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아직 세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애가 타는 쪽은 미국과 중국이었는지, 세은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보내 자세한 상황을 물어보고 있었다.
“도!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미국에서 청문회 날에 맞춰서 급하게 방한한 사노가 세은에게 물었다.
매우 황망한 표정의 사노와는 달리, 세은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유럽에서 수를 쓰나 보지.”
“아시겠지만, 이번에 피해자 인터뷰도 나왔습니다.”
“아아. 봤어.”
“덕분에 도에 대한 평판이 국제사회에서 아주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본국에서도 유례없는 극악한 테러범이라고 기사가 나오는 실정입니다.”
“좋은 기삿감이기는 하니까.”
“도의 무죄를 믿습니다만, 너무 태연하신 거 아닙니까? 여론이 정말로 좋지 않습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어쩔 수 없지.”
세은도 이지호를 통해 계속해서 외부의 소식을 듣고 있는 상황이었다.
매우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자신이 말을 해도 제대로 알려질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공신력 있는 자리에 나가 진실을 다투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노가 보기에는 한시라도 바삐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장 자신만 해도 세은의 집으로 오는 데 엄청난 기자들을 뚫었어야 했던 것이었다.
“지금 분위기는 도가 상상하시는 이상입니다. 특히 국제 여론이 문제입니다.”
사노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본국에서도 상당히 많은 국회의원들이 결과가 나올 때까지 도와 관계를 끊거나, 아니면 취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뭐, 그래?”
“오션 시티에서의 도움을 받은 우리가 이 정도입니다. 다른 국가들은 상황이 더 좋지 않습니다.”
“청문회가 오늘이니 오늘이 지나면 금방 괜찮아지겠지.”
“저희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돕겠습니다만, 아무래도 한 번 무너진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이미지는 상관없어. 어디 출마할 것도 아니고.”
“그래도…….”
상당히 일상생활 하기 불편한 건 분명했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됐어.”
세은이라고 지금 이 상황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귀찮음을 감수하고 마왕들을 잡기 위해 그렇게 뛰어다녔는데 이런 일이 터지다니.
그저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단 생각으로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세은도 사람인 이상 자신에게 쏟아지는 원색적인 비난과 의혹이 신경 쓰이지 않을 리 없었다.
그 때문에 요즘은 이지호가 가져다준 보고서도 열심히 보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당장 열심히 일을 해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거니와, 돌아오는 것이 거짓이 기반된 비난이란 사실이 의욕을 전부 사라지게 만들었다.
“일단 청문회부터 가고 나서 다시 얘기하지.”
그렇다고 해도 마왕들이 활개 치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은이 이렇게 불편한 감정을 추스르고 있을 때, 이지호가 방을 들어오며 세은에게 말했다.
“이제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슬슬 나가지.”
세은이 이지호의 말에 사노에게 말했다.
“나온다!”
“도세은 씨! 유럽 연합에 주장에 대한 입장은 어떻습니까?”
“이번에 피해자 인터뷰가 나왔는데 인정하십니까?”
“해외를 돌며 그 나라들의 게이트를 해결해 준 각성자인데 왜 그런 일을 벌였습니까?”
안보원 요원들에 의해 옆으로 밀려난 기자들이 세은을 발견하고 고성을 지르며 질문을 던졌다.
개중에는 이미 세은이 테러범으로 확신하고 질문을 던지는 황색 언론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세은은 아무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요원들이 만든 길을 따라 미리 준비된 차량에 탑승했다.
차량에 탑승하자 기자들이 차량으로 접근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왔으나, 각성자들로 구성된 요원들을 뚫을 수는 없었다.
잔뜩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을 따돌리고 차가 출발하니 이지호가 짜증을 내며 입을 열었다.
“참, 기자들이란 피곤한 족속들입니다. 특종을 위해서라면 경우를 몰라요.”
“원래 기자들이 다 그렇지요.”
같이 차량에 탑승한 사노가 맞장구쳤다.
일이 해결되기 이전에 추측성 보도를 쏟아내는 기자들 때문에 환장할 지경이었다.
일단 출발한 차량은 더 이상 방해를 받지 않고 쭉 청문회 장소까지 이동했다.
따라붙는 몇몇 차량이 있기는 했지만, 미리 준비된 사람들에 의해 추격이 모두 차단되었다.
청문회장에 도착하자 그곳에도 수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펑- 펑-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그칠 줄 모르고 터져 나왔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사노와 이지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도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지만, 마찬가지로 무시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번 청문회는 말이 청문회지, 사실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대외용 행정이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질의응답을 통해 세은의 무죄를 밝히겠다는 취지였기 때문에 질의자들은 국회의원들과 함께 현직 경찰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세은이 안으로 들어서자 웅성거리던 실내의 소리가 단숨에 멎어들었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이번 청문회는 생방송되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본 상황이었다.
“자리를 바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세은이 자리에 앉는 것과 동시에 의장의 발화로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질의자인 국회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은에게 질문을 던졌다.
“스위스 헤리자우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유럽의 주장이 아닌 당사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니만큼, 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유럽이 주장하는 바가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십시오.”
국회의원의 요구에 세은은 선선히 상황을 요약해서 답변했다.
적어도 국회의원 정도 되는 자리라면, 그동안 세은이 했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짧은 설명으로도 전달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세은의 답변이 끝나자 다음 질의자가 나서서 세은에게 물었다.
“그럼 최근에 공개된 피해자 인터뷰는 어떻게 된 겁니까?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허위 진술을 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허위 진술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유럽 연합의 본부인 브뤼셀에서 소동을 부렸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글쎄요? 지금 이 자리의 목적과 그 질문이 맞는다고 생각합니까?”
“물론입니다. 일신의 힘이 있다고 기본적인 국제사회의 질서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사람은 그 자체로도 범죄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거센 비난에 이지호와 다른 청문회 참가자들이 당황했다.
이 자리는 세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한 자리였지, 그를 공격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세은의 행동들이 국제법에 어긋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그건 나중에 해결할 일이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끄집어 낼 것은 아니었다.
“뭐, 너보다는 나을 거 같습니다.”
세은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했더니 성추행에 뒷돈까지 받아먹은 장본인 아닙니까?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잘도 이 자리에 있네요.”
세은에 거침없는 발언에 질의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금 질의자는 나요!”
“그런데?”
“이이! 나이도 어린 놈이!”
“흐음?”
세은은 새끼손가락 귀를 후비며 태연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질의자가 다시 고성을 내뱉으려고 할 때, 의장이 재빨리 휴정을 선언했다.
“현재 분위기가 너무 과열된 관계로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의장의 휴정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이지호가 세은을 데리고 대기실로 이동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오?”
“그러게 말입니다.”
예상외의 전개에 사노가 이지호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지호도 시작부터 계획과 어긋난 청문회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멀쩡한 사람이 저러면 정의감에 그러나 보다 하겠는데, 그렇지 않은 놈이 그러는 걸 보니 돈이라도 받았나 보지.”
세은이 신랄하게 말을 이었다.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었는데, 방금 전의 질의는 정말로 짜증이 솟구치게 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이지호와 사노가 다급하게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고 있을 때, 대기실로 한 명의 중국인이 찾아왔다.
“세은 씨.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에 세은을 중국으로 초빙하기 위해 한국에 사절로 왔던 장위건이었다.
“오랜만이군.”
“상당한 고초를 겪고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뭐, 고초라기보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
“거기에 한국의 국회의원 중에서도 배신자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장위건의 말에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이지호가 깜짝 놀랐다.
장위건이 대기실에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청문회 장소에 외국인이라고는 사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는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대체 보안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가 구멍인지 셀 수도 없는 상황.
그러나 장위건은 이지호가 옆에서 놀라든 말든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평화를 위해 노력한 영웅을 이렇게 대접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오기만 합니다.”
“얼굴에 금칠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
오래 말을 섞을 기분이 아닌 세은이 말했다.
장위건은 그런 세은의 태도를 이해한다는 듯이 만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희 주석께서 세은 씨를 돕고 싶어 하십니다.”
“주석이?”
“그렇습니다.”
“중국은 언론이 잠잠한가 보군.”
“하하. 서방과 달리 저희 언론은 항상 진실을 믿습니다.”
턱도 없는 소리였지만, 그 얘기를 듣는 사노와 이지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중국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주석께서는 세은 씨의 무죄를 믿고 계십니다. 이 기회에 중국으로 오셔서 평화를 위해 하시던 일을 그대로 하셨으면 하십니다.”
“중국을 위해 일해 달라는 얘기는 아니고?”
“하하. 세계 평화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저 본국의 각성자들을 조금 지도해 주시거나,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을 때 약간의 도움을 바라는 정도입니다.”
“흐음.”
세은이 장위건에 말에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일이 이렇게까지 되니 세은으로써는 한 번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였다.
다만 부모님이 타국인 중국에 가서도 잘 적응하시는지가 관건이었는데, 현재도 세은에 대한 비난 때문에 기자들이 집으로 몰려서 부모님도 시골로 대피하신 상황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부모님이 피해를 보고 있단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거기에 아무래도 중국의 지원 더 훌륭할 것이란 사실은 그 누가 봐도 알 수가 있었다.
세은이 흔들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자, 이지호가 다급하게 대화에 개입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세은 씨는 본국의 인재입니다.”
“그 인재를 내치려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미합중국도 도의 무죄를 믿고 있으니, 중국에서 나서지 않아도 되오.”
사노 역시 이지호를 지원하며 나섰다.
적어도 세은이 중국에 가는 것보다는 한국에 있는 것이 미국의 입장에서도 이익이었다.
“글쎄요? 미국에서도 딱히 뭘 해주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처음 임무를 받고 한국으로 들어온 장위건은 청문회에서 일이 터지자 크게 환호했다.
이건 완전히 자신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과 진배없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세은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뭐, 최후의 방법으로는 나쁘지 않겠어.”
“굳이 여기서 애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장위건이 계속 은근하게 세은을 설득했다.
하지만 세은은 부모님을 생각해서 무죄를 입증하는 걸 우선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치 도망치듯 해외로 나가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더 생각해 보지.”
“다시 개회하겠습니다.”
타이밍 좋게 직원이 다시 청문회의 재개를 알려왔다.
못내 이 자리에서 확답을 받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던 장위건을 뒤로하고, 세은은 다시 청문회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