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98화 (98/225)

# 98

30. 꼬리잡기(3)

스위스 헤리자우의 모든 일이 정리되었다.

그러나 유럽 연합에서는 이번 일에 대한 충격을 아직 해소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다니?

그것도 마을 하나가 통째로 몬스터화가 된 대형 사고였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대대적인 침공하고는 전혀 다른 양상의 문제였다.

이번 일로 인해 각국은 국내의 치안을 다시 확인하는 데 주력하기 바빴다.

“끄응…… 이거 골치가 아프군.”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마르키시오를 대신해 상석에 앉은 웻지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마르키시오는 이럴 때 연락도 없이 어딜 다니고 있는 거야?”

웻지의 중얼거림을 들은 피어스가 그의 말에 동조하며 투덜거렸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변고를 알아채고 연락을 해올 만도 한데, 마르키시오는 어디 산골 깊숙한 곳에 처박힌 것처럼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이제 어쩌지?”

그러나 마르키시오는 이런 식으로 종종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일주일 정도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무 일도 없단 듯이 나타날 게 분명했다.

마르키시오가 나타나기 전에 어느 정도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서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했다.

피어스의 물음에 웻지가 대답했다.

“하여튼 도가 말하던 게 완전히 허무맹랑한 일이 아니라는 건 증명되었군.”

“뭐, 저 정도 능력을 가진 사람이 헛소리를 할 일은 없지만 말이야.”

세은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라 그런지 피어스는 순순히 세은의 실력을 인정했다.

웻지 역시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여 피어스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긴 하지. 하여튼 도의 말로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현장에서 발견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앞으로도 이상 현상에 대한 정보와 동남아 지역에서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웻지의 말에 협의회의 인원들이 각자 고민에 빠졌다.

마르키시오가 없는 상황에서 의결하기에는 상당히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물론 협의회는 민주적으로 운영되지만, 마르키시오의 발언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이 강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협조를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중년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마르키시오 경의 의견은?”

“경이 온다고 해도 달라지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중년 남자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던 사람도 동의했다.

“마을 주민의 절반 이상이 죽었고, 도의 도움을 받아 되돌린 사람들도 기억이 없는 상황이야. 이 상황에서 협조를 안 한다고?”

만약 다음에도 이 사건의 원흉이 유럽에 자리를 잡는다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 분명했다.

“이건 마르키시오 경이 돌아와도 협조할 게 분명해.”

중년 남성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더욱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보 공개와 동남아에서의 전폭적인 협조러란 건, 말로는 쉽지만 상당한 외교적 부담을 지게 되는 행동이었다.

제공한 정보들이 오롯이 본래의 목적대로만 사용된단 보장도 전혀 없었다.

“그나저나 생포한 몬스터들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됐습니까?”

쉽게 결정이 나지 않을 문제를 잠시 제쳐두고, 다른 주제로 화제가 넘어갔다.

인간이 몬스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그에 대한 대비를 위해 연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세은이 고칠 수 없다고 한 사람들을 다시 인간으로 돌리는 걸 연구하기 시작했다.

세은은 괜한 헛짓거리라고 평가했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마법사들이 바로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세포의 형질이 전혀 달라졌다는 것까지는 알아냈지요.”

소기의 성과가 있다는 말에 피어스가 대답했다.

“연구비는 증액해도 되니, 최대한 빨리 결과가 나오면 좋겠군요.”

간단한 대화가 끝나자 결국 다시 주제는 처음으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는 동안 계속해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웻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동남아 지역의 협조만 해주는 것으로 하죠.”

“동남아 지역만요?”

“예. 아무래도 우리 본토에 대한 정보는 마르키시오 경이 오면 다시 의논하는 것으로 하죠.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방비는 가능한 전력이니까요.”

“하지만 몬스터가 된 사람들의 치료는…….”

치료 능력이 있는 세은과 달리 유럽에는 치료를 할 수 있는 각성자가 없었다.

만약에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상황을 정리할 수는 있다고 해도, 사람들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웻지는 거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놓은 게 있단 듯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일단 그 문제도 마르키시오 경이 오면 다시 의논하죠. 아무리 그래도 바로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전까지 우리 연구팀의 능력을 믿어봅시다.”

웻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 가장 좋았다.

다른 국가에 부탁하는 행위는 어차피 전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종의 빚이었다.

결국 헤리자우 사태 때문에 열린 긴급회의는, 우선 세은에게 동남아에 대한 협력만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 * *

“고생하셨습니다.”

역시나 공항으로 마중 나온 이지호가 세은을 보고 밝게 웃었다.

안 그래도 세은은, 오기 전 동남아에 대한 전폭적인 협조를 해주겠다고 연락을 받은 상황이었다.

일단 나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오니 이지호 입장에선 세은이 너무나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동남아에서 유럽의 협력을 받으면 더욱더 활동이 용이해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것은 동남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데도 아주 긍정적인 신호였다.

유럽이 먼저 나서서 동남아 지역의 정부에 협력을 제공하도록 요청한다는 것은, 그들이 보기에 이쪽에 많은 것을 양보한 것으로 보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과 발언권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막상 이런 엄청난 성과를 가져온 장본인은, 매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국으로 귀국하던 동안에도 대체 어떻게 꼬리를 잡아야 하나 끊임없이 고민한 탓이었다.

밝은 표정으로 마중을 나왔던 이지호는, 세은의 기분이 영 좋아 보이지 않자 더 이상 아무 말도 걸지 않고 이동했다.

“…….”

차량으로 이동하면서도 이지호는 힐끗힐끗 세은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세은은 계속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탁―

마침내 차에 탑승을 완료했을 때, 세은의 입이 열렸다.

“유럽에서 보내준다는 동남아에 대한 정보, 바로 분석 가능한가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럼 전처럼 바로 정리해서 움직이죠.”

“바로 나가실 생각입니까?”

세은이 몸을 뒤로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채연과 영한, 소진이나 재호 같은 사람들의 실력을 끌어올려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허용하고 있지 않았다.

당장 이번만 해도 마을 하나가 완전히 초토화되지 않았던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힘을 회복하면 더 커다란 피해가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에린의 발전이 생각보다 빠르기는 한데…….’

아니면 케인을 포함한 다른 나라의 실력자들을 모아놓고 그곳에 에린을 합류시키면 마왕의 흔적을 찾는 별동대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세은이 보기에는 적어도 주교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을 실력이 되어야 했다.

아직 에린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일단 이번 일은 최대한 빠르게 처리를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렇게 급한 일입니까?”

“아,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했겠네요.”

“아무래도 유럽 쪽이라…….”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마을 하나가 통째로 당했습니다.”

세은은 간략하게 헤리자우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지호에게 설명했다.

이지호는 세은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얼굴이 심각해져 갔다.

“아, 그럼 혹시 국내에서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 아닙니까?”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일단 국내는 아닐 겁니다.”

한동안 한국에는 새로운 게이트가 생기지 않았다.

그 말은 그레모리가 말한 마왕들을 제외하고 더 넘어온 마왕이 없단 말이었다.

이지호가 세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나마 다행이군요. 하여튼 세은 씨 말대로면 정말로 한시가 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렇죠.”

“그럼 유럽에 바로 정보 제공 및 협력을 요청하겠습니다.”

일단 한국이 아니라는 말에 얼굴이 평안해진 이지호가 대답했다.

원래대로라면 이제 막 연락을 받은 만큼, 유럽과도 세부 사항을 조율하고 준비할 시간을 줘야 했다.

정부에서는 아직도 유럽에 파견할 외교관을 선발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듣고 보니 그 과정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부탁합니다.”

세은이 나직이 대답했다.

‘정말 짜증나네.’

가까운 거리도 아닌 곳을 이렇게나 여러 번 왕복하자니 귀찮아도 너무나 귀찮았다.

대체 술래잡기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었다.

끼익―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차가 멈춰 서자 세은이 가볍게 하차했다.

이지호는 세은을 따라 내리면서 말했다.

“그럼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세은은 인사를 마치고는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오빠!”

“오셨습니까?”

“잘 다녀온 거예요?”

세은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삼인 삼색의 인사가 그를 맞이했다.

세은은 고개를 끄덕여 한 번에 인사를 받고는 그레모리의 기운이 느껴지던 방으로 바로 들어갔다.

덜컥―

“야.”

“…….”

그레모리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만지던 기계를 살펴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후우.”

세은은 한숨을 쉬며 성큼 다가가 그레모리가 보고 있던 기계를 뺏어 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미친놈아?”

세은에게 기계를 뺏기자 그제야 그레모리가 세은에게 시선을 주었다.

세은은 그런 그레모리의 얼굴에 눈을 맞추며 물었다.

“이번에도 놓쳤어.”

“아, 어쩌라고?”

세은의 손에 들린 기계를 다시 뺏기 위해 팔을 쭉 뻗는 그레모리를 밀어내며 세은이 말을 이었다.

“예지를 써서 확인해 봐. 아무래도 내가 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말이 안 돼.”

“네가 가는 걸 어떻게 알아? 자기가 놓쳐놓고 헛소리야? 예지에 사용할 마력이 어디 땅 파서 나오는 줄 알아?”

그레모리는 별 정신 나간 놈을 다보겠다는 표정으로 세은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예지는 다른 그 어떤 마법보다도 많은 마력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그레모리는 마력을 아끼기 위해 육체도 지금의 어린아이로 재구성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예지를 하라니 어이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거기에 지금 세은이 요구하는 정도의 예지는 단순히 추상적인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닐 게 분명했다.

“마정석 줄 테니까 그거 이용해.”

“허? 미친놈아, 마정석 몇 개 가지고 될 줄 알아?”

그러나 세은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내 몸의 절반을 조금 넘는 크기.”

세은의 말에 다시 욕을 하려던 그레모리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정도면 안에 내재된 마력이 상당한 양이 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모자라면 다른 마정석도 얹어주지. 그러니까 예지해 봐. 지금 내가 놓치는 놈에 대해서.”

“너도 알겠지만 예지가 만능이 아니야.”

“알아. 하여튼 뭐라도 단서가 있어야 할 거 아냐.”

세은은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당분간 안 건드릴 테니 내일까지 준비해.”

“지랄. 아주 부하 대하듯이 명령하네, 이 새끼가.”

“남은 마력은 너 가져.”

확실히 마지막 제안은 흥미로웠다.

이미 지구에 온 후에 몇 번의 예지를 사용했던 그레모리는, 마력이 부족해서 이것저것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은이 말한 정도의 마정석의 크기라면 잔여 마력이 꽤 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원하면 마정석을 더 얹어준다고 하니 해볼 만한 거래였다.

“지시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은 더럽지만, 하기는 해주지. 마정석부터 가져와. 네가 말한 크기에다가 다른 것들 몇 개 더 얹어서.”

“바로 가져다주지. 대신 잘해야 할 거야.”

“너나 잘해 미친놈아.”

탁―

그레모리는 짜증을 내며 세은의 손에서 보고 있던 기계를 빼앗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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