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30. 꼬리잡기(2)
서걱― 서걱―!
세은이 마물을 썰어버리는 소리가 들리는 만큼, 무너진 교회 건물 근처에는 마물의 시체들이 산을 이루기 시작했다.
“끝이 없네. 이거?”
한 번에 정리를 하려고 했으나, 사이사이 정화가 가능한 주민들이 섞여 있었다.
그런 주민들은 제압해서 구석에 던져 놓다보니 단숨에 전체를 제압할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마물들을 처리하고, 제압을 하면서도 세은은 신성력을 확장시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더 뛰어난 마기를 지닌 존재의 기척은 감지되지 않았다.
“여기에도 없을 리가 없는데?”
“캬악!”
푹―
괴성을 지르며 정면으로 짓쳐 들어오던 마물의 입에 검을 박아넣으며 세은이 중얼거렸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마물의 체액을 허공에 가볍게 털어버린 세은이 주변에 남은 마물의 수를 확인했다.
“이거 끝이 없네.”
인구가 15,000명이라더니, 그 모든 수의 마을 주민이 교회를 향해 몰리니 끝이 보이기는커녕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가감 없이 정확히 15,000명이 몰려온다면 언제 정화할 사람들을 선별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곳을 정리하기 위한 도움을 받기 위해 잠시 물러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이미 신성력의 흔적을 남긴 이상, 이번에 잡지 않으면 다시 힌트도 없는 추격전을 해야 할 게 분명했다.
“어떤 새끼인지 잡히기만 해봐라 진짜. 시발.”
세은이 미간을 잔뜩 구기며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 쥐여진 검은 쉬지 않고 마물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부릉― 부르릉―
“캬아악!”
“크아아약!”
“응?”
조금 멀리서 자동차 엔진 소리와 함께 마물들이 발광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멀쩡한 사람들이 있었나?”
혹시 마을 주민들이 이상해진 마을을 탈출하기 위해 차를 타고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세은은 고개를 들어 엔진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후우. 따라오지 말라니까.”
세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급하게 세은을 따라서 마을로 진입한 분석관이 탄 차가 보였다.
“으악! 밟아, 밟아!”
분석관이 차에 달라붙던 마물들에게 오러를 휘두르면서 운전자에게 한껏 소리치고 있었다.
타닥―
세은이 점유하고 있던 자리를 포기하고, 분석관과 운전자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마물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서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세은은 우선 분석관을 크게 불렀다.
“이쪽으로!”
“도!”
마물들의 괴성과는 다른 세은의 외침에 고개를 돌린 분석관은, 세은을 발견하게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저기로 가! 저기로 밟아!”
부아아앙!
다행히 험한 스위스의 산길을 달리기 위해 준비된 차가 어찌어찌 마물들을 밀고 들어왔다.
“제발, 제발!”
그러나 계속해서 마물들과 부딪히다 보니 서서히 속도가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태까지는 처음에 올려놓은 속도를 바탕으로 밀고 들어왔지만, 상황을 보니 세은과의 거리를 절반도 줄이지 못할 것 같았다.
“더,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터엉―
차량의 속도가 느려지자 마물들이 차량의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악! 살려줘!”
차량이 거의 멈추기 직전이 되자 패닉에 빠진 분석관이 소리쳤다.
세은이 그 모습을 보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
분명히 여기도 아직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사람들이 섞여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을 살리기 위해 눈앞에 있는 멀쩡한 두 명이 죽는 것을 지켜볼 순 없었다.
우우웅―
“에일린. 홀리 애로우.”
세은은 직선으로 길을 뚫기 위해 검을 없앤 뒤, 대신 활을 쥐었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길게 울음을 토해냈다.
파아앙―!
시위를 놓는 것과 동시에 강렬한 파공성이 허공을 수놓았다.
마치 화살이 지나간 곳만 지우개로 지워 버린 것처럼, 차량과 세은 사이에 한 줄의 공백이 생겨났다.
“으어어…….”
아직 패닉에 빠져 있던 차량을 향해 세은이 몸을 날렸다.
터엉―
차량의 지붕에 안착한 세은이 분석관에게 말했다.
“죽기 싫으면 정신 차려.”
“아, 아!”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털어낸 분석관은 세은에게 다급히 물었다.
“뭐, 뭡니까? 대체 왜 마을 주민들이 이렇게 된 겁니까? 마치 좀비처럼 말입니다.”
아직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마물들이 많았기에 분석관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세은은 차량으로 접근하던 마물들을 처리하며 지시했다.
“우선 차부터 움직여. 마을 외곽으로 간다.”
“예, 예!”
우선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 놓고 상황을 정리해야 더 빠르고 성가시지 않을 게 분명했다.
세은이 차량의 지붕에서 길을 만들면, 바퀴가 맹렬하게 돌며 빈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이, 이건 도대체…….”
세은의 합류로 여유가 생긴 분석관은 경악에 찬 눈으로 마을과 주민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정말로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세은은 그런 분석관에게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것 같기는 한데, 마을이 이미 점령당했어.”
“점령 말입니까?”
“점령이라기보다는 식민지화라고 해야 하나?”
점령이라고 하기에는 완전히 미쳐 버린 주민들의 모습에 분석관이 의문을 표하자 세은이 정정했다.
“주민들은 왜 이러는 겁니까?”
“몬스터화 된 거지 완전히.”
“몬스터요? 하지만 생긴 멀…….”
쿵― 쿵―
분석관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대화가 된 마물들이 커다란 진동을 울리며 차량을 맹렬하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저, 저……!”
조금 진정하는 듯싶던 분석관은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거대 마물들의 모습에 다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파앙―!
세은이 화살을 날려 거대 마물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었다.
혹여 거대한 사체가 쓰러지며 차량을 덮치는 걸 방지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세은은 손을 쉬지 않으면서 분석관에게 지시했다.
“마을 밖으로 보내줄 테니까. 근처 안전한 곳에 가서 지원 요청해. 혼자서 다 처리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처, 처리라면 다 죽여야 하는 겁니까?”
분석관이 당혹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물들의 외형은 완전히 사람들과 같았다.
“글쎄…… 그건 봐야지. 신체에 아무런 변형이 없으면 다시 돌릴 수 있어.”
“아,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지원 요청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최대한 전 방위로 들어가라고 해. 같이 들어가서 한 번에 밀어버리지 말고.”
정말로 이곳에 있던 마왕이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전 방위에 각성자들을 두고 이상한 점을 보고하라고 하는 게 나았다.
“혹시 이상한 경향을 보이거나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면 꼭 말하라고 하고.”
마왕은 마왕인지라 만약 도주를 한다고 해도 이들이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의문은 있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뭐라고 해봐야 했다.
어지간하면 이번에 꼭 붙잡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거리던 분석관을 태운 차가 어느새 마을 외곽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탁―
차량의 뒤쪽에 더 이상 마물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세은이 가뿐하게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쭉 빠져나가서 바로 지원 요청해.”
“예!”
세은 덕분에 겨우 목숨을 구한 분석관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자를 재촉해 마을을 벗어났다.
“쿠오오오?”
마물들은 갑자기 세은이 차에서 내려 떡하니 길을 막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진짜 다 언제 처리하지…….”
소리를 따라 세은 쪽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던 마물의 파도를 보며 가득 짜증을 냈다.
제발 이 난리를 피우는 게, 도망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을 하기 위해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만 아니면 놈이 어떻게 나오든 전부 파훼하고 붙잡을 수 있을 수 있단 자신감이 있었다.
“휴우. 일단 이것들부터 처리해야지.”
세은은 가볍게 손을 털어내며 다시 빛의 검을 손에 쥐었다.
* * *
“설마 벌써 빠져나갔나?”
세은은 다시 교회가 있었던 장소로 돌아와 마을을 살펴보고 있었다.
유럽 연합에서 지원이 온 이후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마왕의 흔적을 잡아내는데 집중했지만, 특별히 다른 기운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여기에 없었다거나…….”
하지만 함정을 발동하기에는 마물들의 지능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도 아니면 처음 세은이 교회 지하에서 빠져나오고, 차량을 엄호해서 마을 밖으로 내보내는 초반에 도망쳤다는 말이었다.
“애초에 내가 올 걸 알고 함정을 만들어 놓고 도망쳤다고? 그게 말이 되는 건가……. 미리 알고 있지 않은 이상 말이야.”
하지만 세은이 이곳에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이 마을은 후보지들 중에 한 곳이었지, 처음부터 딱 찍고 온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고서의 분석이 끝난 것도 불과 어제였다.
“그것도 아니면…….”
아니면 가장 생각하기 싫은 가능성 중 하나로, 유로에 마왕의 끄나풀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가정은 가장 말이 되지 않았다.
“분명히 아무런 마기도 못 느꼈는데?”
만약 유럽의 협의회 중에 마왕의 끄나풀이 있다면, 세은이 그들을 상대했을 때 마기를 선명하게 느껴야 했다.
하지만 세은이 모두를 상대했을 때도 마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래 직급 사람들이 끄나풀이라고 하기에는 목적지는 일급 비밀로 처리되고 있고…….”
세은의 목적지는 협의회 내에서도 상부의 일부만 알고 있을 정도로 엄중하게 보안이 관리되고 있었다.
알려도 큰 상관은 없었지만, 보안 규정에 따른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왕이 세은이 오는 것을 미리 알고 도망갈 준비를 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레모리가 말한 대로라면 먼저 지구로 넘어온 마왕들은 세은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해야 정상이었다.
마왕들은 그 힘만큼이나 자존심 높고 오만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놈들이 이렇게 인간을 피해 미리 도망갈 함정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상황에 세은은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그레모리와 다시 얘기를 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더 이상 이상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태지역도 마찬가지.
북중미 지역은 미국이 포괄적으로 정보를 모아 다시 보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럼 남은 지역은 제대로 된 협조를 얻기 힘든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남미와 동남아, 각종 도서지역이었다.
“동남아는 어찌어찌 될 것 같기도 한데…….”
태국에서는 유럽의 방해 때문에 제대로 된 협조를 받지 못했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오히려 유럽이 동남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단 게 도움이 되었다.
유럽을 통해서 동남아의 이상한 낌새가 있는 곳을 먼저 찾아보면 그 지역은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다른 지역들은 정말로 문제네. 전부 발로 뛸 수도 없는 거고.”
각종 도로망에 대한 인프라도 문제였지만, 하나같이 치안이 불안정하다는 게 문제였다.
잘못 엮이면 무장 단체 하나를 처리하는 것보다 더 큰 정치적 역학 관계에 엮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놈들은 정말로 앞만 보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은 채 막 달려들기 때문에 위험하다.
세은은 위험해지지 않겠지만 가족들의 신변에 위협이 가해질 수도 있었다.
한국 공항의 보안 검색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비행기를 탑승할 때도 본인이 아닌 사람을 태우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까.
“세은 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세은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부득불 세은을 쫓아왔던 그 분석관이었다.
“현재 사로잡은 모든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놓았습니다.”
“아, 가지.”
마을이 완전히 초토화되었다는 말에 주변의 모든 각성자들이 이곳으로 파견되었다.
덕분에 꽤 피해를 입었지만, 멀쩡한 주민들의 대부분을 사로잡을 수가 있었다.
“저것들은 뭐야?”
세은은 딱 봐도 신체 일부분이 변형된 마물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혹시 몰라서…….”
“이러니 피해가 커지지.”
세은은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그래도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작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인데…….”
“뭐, 직접 보는 게 빠르겠지.”
세은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우선 아직 신체에 아무런 변형이 일어나지 않은 주민들에게 다가갔다.
우우우웅―
신성력이 주민들에게 깃든 마기를 씻어내기 위해 강렬한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세은의 양손에 모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