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30. 꼬리잡기(1)
쾅―!
세은은 그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교회로 뛰어들었다.
교회 안에서 미사를 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세은에게로 향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마을 주민들 같지만, 세은은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짙은 마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정도의 마기라면 적어도 제일 처음에 세뇌된 사람들이 분명했다.
“누구시오?”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태연하게 물었다.
세은이 문을 부수고 들어온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아주 평온한 태도였다.
그러나 노인의 시선은 세은이 손에 쥐고 있는 빛의 검에 향해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다.
어차피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세은이 대답 대신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우웅―
“캬악!”
세은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남성이 괴성을 지르며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마기에 물든 몸이 신성력한테 느끼던 거부감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다.
서걱―
세은이 가볍게 검을 휘둘러 사내의 몸을 반으로 잘라 버렸다.
남자는 반으로 갈리고 난 뒤에도 숨이 끊어지지 않고 버둥거렸다.
상당히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지만, 더욱 기괴하게도 반으로 잘린 사내의 몸 안에는 내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기묘한 체액이 주르륵 바닥을 적시고 있을 뿐.
이미 속까지 마물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되돌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는 전혀 없으리라.
세은이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며 마왕이 있는지 확인했다.
교회의 이곳저곳에 그려진 마법진이 세은의 감각을 방해했다.
너무 사방에서 동시에 마기가 진하게 느껴지니, 쉽사리 마왕의 기척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
“키아악!”
그리고 더 이상 세은의 행동을 지켜보지 않고 노인이 괴성을 질렀다.
“크아악!”
“끼약!”
노인의 괴성과 동시에 교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흰자를 희번덕거리며 세은에게로 달려들었다.
퍽!
제일 먼저 달려 들어온 여성의 머리가 간단하게 부서졌다.
“크아악!”
허공에 흩뿌려지는 살점의 뒤에서 다른 마물의 손이 뻗어 들어왔다.
세은은 미동도 없이 검을 휘둘러 자신을 공격해 오던 마물의 팔을 잘라내었다.
빛의 검이 순식간에 마물의 팔을 절단했다.
“끼아아아악!”
마물이 되어버렸다고는 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었기에 울부짖는 소리가 교회를 넘어 밖까지 울려 퍼졌다.
이제 이 소리를 듣고 다른 마물들이 몰려올 게 분명했다.
서걱―!
어느새 세은은 옆으로 다가온 다른 마물의 목을 간단하게 날려 버렸다.
빛의 검이 닿는 곳마다 족족 깔끔하게 절단이 되는 것이 보였다.
세은이 남은 인원도 가볍게 정리했다.
채 5분도 지났을까.
교회에는 처음 세은에게 말을 걸었던 노인만이 남아 있었다.
노인은 꽤나 상급 마물로 진화를 했는지 눈에서 핏빛 정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투둑― 투두둑―
세은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파악한 노인은 변태를 시도했다.
왜소하던 노인의 체격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옷이 찢어지며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근육이 보였다.
세은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노인의 알몸에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거 참 더럽게.”
“쿠와아아!”
얼굴의 크기는 그대로지만, 몸은 거의 오우거에 맞먹을 정도로 커진 노인이 우렁찬 고함을 내질렀다.
흉물스러운 몸이 세은의 시야에 박혀들었다.
세은은 살짝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건 또 이것 나름대로 상당한 데미지를 주고 있었다.
“쿠워억!”
쿵― 쿵―
세은이 잠시 역겨운 광경을 털어내는 동안 노인이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세은에게로 달려들었다.
낡은 교회 건물이 노인의 발걸음에 따라 크게 진동했다.
“휴우…….”
세은은 크게 한숨을 쉬며 강하고 빠르게 빛의 검을 두 번 휘둘렀다.
서걱― 서걱―!
“쿠우?”
이제 막 세은의 머리를 내려찍기 위해 주먹을 치켜들었던 노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 의문을 표했다.
스르륵―
그리고 노인이 채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네 등분으로 깔끔하게 잘려 몸이 조각났다.
쿵― 쿵―
네 조각이 된 몸이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교회를 채웠다.
“어디 보자……”
세은은 소란을 듣고 마을의 다른 마물들이 달려오기 전에 일을 처리하기 위해 교회를 다시 살펴보았다.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니, 목사가 강연을 하는 강단 아래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여긴가?”
교회 안에는 아무리 살펴봐도 마왕이 없었다.
중세의 오래된 건물에는 지하실이 있는 경우도 많았다.
콰직―!
세은은 다른 곳과 다른 모양을 보이는 바닥을 강하게 찍어 내렸다.
추리가 맞았는지 바닥이 부셔지며 돌로 된 좁은 계단이 나타났다.
“찾았다.”
세은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망설임 없이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에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걸음을 옮기던 세은은 아무런 거침이 없었다.
“흠……”
아래로 내려갈수록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세은의 코를 강하게 찔러 들어왔다.
교회의 지하실은 생각보다 컸다.
계단을 완전히 내려오니 짧은 복도가 세은을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에 있는 횃불에는 누군가 이곳에 있다는 걸 증명하듯이 불이 붙어 길을 밝혔다.
다행히 복도가 이어진 길은 하나였다.
세은은 아래로 내려오면서 더 강렬하게 피부를 찌르는 마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세은은 혹시 모를 마법진이나 기습에 대비하며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그러나 세은의 대비가 무색하게도, 복도를 모두 지나오는 동안 아무런 마법진이나 기습을 만날 수가 없었다.
“뭐야? 끝이야?”
복도의 끝에는 조금 광장과 몇 개의 방이 있었다.
“이게 마법진이기는 한데…….”
광장에는 끊임없이 마기를 생산하고 있는 마법진이 있었다.
콰직―!
세은은 우선 마법진을 구성하고 있던 코어를 파괴했다.
우선 이 정도만 해도 마을 외곽이나 마물화가 아직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사람들은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마기를 내뿜던 마법진을 간단하게 처리한 세은이 본격적으로 안을 탐색했다.
“……대체 뭐지?”
하지만 샅샅이 찾아봤지만, 그곳 어디에도 마왕은커녕 마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진짜 이상한데?”
그 점이 오히려 세은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적어도 이곳에는 마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 전체가 이렇게 마계화가 된 것을 설명할 길이 전혀 없으니까.
그리고 마을에서 마기가 가장 강한 곳이 여기라는 건 이미 마을을 지켜보면서 확인한 상황이었다.
이 정도로 마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왕이 겨우 마법진보다 보유한 마기가 적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세은이 우선 이곳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마왕이 마기를 최대한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차피 심각하게 마물화가 진행된 사람들은 모두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마을을 정리하면서 다른 단서를 찾아야 했다.
쿠구궁―
“응?”
하지만 갑자기 위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진동에 세은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쿠구구궁!
“젠장!”
세은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단단하게 지하 공간을 지탱하고 있던 천장이 천천히 무너지고 있던 것이었다.
타다닥―
세은은 재빨리 광장을 빠져나가 복도로 향했다.
그사이에도 진동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챙!
그때 처음에는 전혀 발동되지 않았던 구식 함정이 발동했다.
마법진이 아닌 오직 수제로 이루어진 기관이라 탐지에 걸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단순히 화살이 여러 발 날아오는 별 것 아닌 트랩이었지만, 재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하는 세은에게는 일 분 일 초가 아쉬웠다.
“젠장. 어떤 새끼인지 머리를 잘 썼는데.”
아무래도 교회 지하는 함정인 모양이었다.
제아무리 세은이라도 돌로 된 이곳이 무너지면 위험할 터였다.
무너진 지반은 강한 힘으로 밀어낼수록 계속 무너진다.
그걸 벗어나기 위해선 아주 강한 힘으로 한 번에 밀어내는 수밖에 없었는데, 좁은 공간에서 그 정도의 파괴력을 내는 건 세은 스스로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컸다.
그 상황에서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밖에 만약 마왕이 기다리고 있으면 아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챙― 채앵―!
쉼 없이 날아오던 수많은 화살을 쳐내며 세은은 복도를 달렸다.
가끔은 갑자기 천장에서 단창이 쏟아져 내려오기도 했다.
쿠구구구궁!
그리고 그 와중에도 진동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천장에서 자잘한 돌무더기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쩌적―
“시발!”
천장에 기다란 금이 가는 꼴을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질 것 같이 보였다.
다행히도 복도가 아주 길지는 않았기에 어느새 내려왔던 계단이 보였다.
쾅―!
쿠구구구구구궁!
세은이 거의 계단에 다다랐을 때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흡!”
그리고 바로 세은의 발끝이 계단에 닿았다.
동시에 완전히 무너진 천장이 세은을 덮쳤다.
“하압!”
퍼석― 퍽―!
세은은 양손으로 빛의 검을 만들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려오는 돌덩이들을 부수며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다행히 바닥의 계단은 위에서 만들어 낸 충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퍼억―!
반으로 잘라냈지만 미처 피해내진 돌덩이가 세은의 등을 무겁게 짓눌렀다.
신성력으로 몸을 잔뜩 보호하고 있었으나, 돌덩이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다.
퍽― 퍼억―!
“흐아압!”
또다시 묵직한 무게가 자신을 압박하는 것을 느끼며 세은은 기합을 터트렸다.
얼핏 갈라낸 돌덩이 사이로 계단의 끝이 세은의 시야에 들어왔다.
세은은 한 걸음 한 걸음을 힘겹게 옮겼다.
그러나 계단이 거의 끝을 보일 무렵, 힘겹게 버티고 있던 계단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앙―!
그리고 때를 맞춰 또다시 묵직한 충격이 천장을 강타했다.
‘어떤 새끼인지 잡히면 죽는다. 진짜.’
그레모리와의 맹약 때문에 진짜로 죽이지는 못하지만, 정말 최대한의 고통을 줘서 추방시킬 것이었다.
그러나 겨우 보인 출구가 갑자기 멀어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충격으로 계단이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세은은 걷는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이야아아압!”
서걱―!
세은이 뛰어오른 반동으로 계단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머리 위에 있는 천장을 완전히 반으로 가른 세은은 힘겹게 지상으로 올라올 수가 있었다.
“허억. 허억.”
심리적인 압박감에 세은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쿠구궁―
이내 완전히 땅 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며 바닥이 폭삭 꺼져 들어갔다.
저곳에서 있었다면 빠져나오는 데 정말로 상상 이상의 애를 먹었을 것이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땅굴을 파서 단단한 지반을 찾아 위로 솟아올라야 할지도 몰랐다.
아무리 세은이라도 그것은 사양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다.
쉐엑―!
그러나 미처 숨을 돌리기 전에 세은에게 날카로운 공격이 들어왔다.
텅!
반사적으로 공격을 막아낸 세은이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간의 모습을 한 수많은 마물들이 교회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세은을 공격한 건 처음의 노인처럼 거대화가 진행된 마물이었다.
아마도 이 녀석이 천장을 계속 내려쳤던 주범인 것 같았다.
세은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마물을 올려다보았다.
“너냐?”
“캬악!”
그러나 거대한 마물은 대답 대신 들고 있던 무기를 재차 세은에게 휘둘렀다.
세은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그런 마물을 향해 빛의 검을 휘둘렀다.
“크륵?”
처음의 마물들과 다를 바 없이 깨끗하게 절단된 마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주변의 모든 마물들이 세은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