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76화 (76/225)

# 76

23. 마왕 샥스(1)

뚜벅. 뚜벅.

임시로 설치된 간이 활주로에서 내리자 다섯 명이 일행에게 다가왔다.

척!

그중 가운데에 있는 사람을 향해 안내를 맡았던 군인이 절도 있게 경례를 올렸다.

간단하게 군인의 경례를 받은 남자는 바로 세은에게 말을 건넸다.

“도세은 맞습니까?”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 도착한 귀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바로 현장으로 이동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서 미적거릴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세은이 흔쾌히 승낙했다.

“아! 이런. 급한 마음에 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제 이름은 위대훈이라 합니다. 미약한 능력이지만 현재 산서 게이트 수비 총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위에서 따로 언질을 받았는지, 위대훈의 태도가 시종일관 정중했다. “도세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세은도 짤막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일단 바로 이동하면서 얘기하시죠.”

일행은 준비된 차량에 바로 탑승했다.

널찍한 차량이 출발하자, 위대훈이 바로 현장 브리핑을 시작했다.

“언제까지의 정보를 받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전선에 특이점이 생겼습니다.”

“특이점?”

“그렇습니다. 일단 영역이 넓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사방 10미터 정도 넓어지던 속도가 현재 15미터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별 차이 없지 않나.”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영한이 중얼거렸다.

“영한아!”

그러나 소진의 눈총을 받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러나 세은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자신의 할 말을 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우리를 도발하던 몬스터들이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응?”

처음 영역의 확장이 빨라지고 있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샥스의 준비가 거의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샥스가 적응을 거의 마친 상태라면, 몬스터들이 몸을 사릴 이유가 없었다.

무르무르처럼 오히려 반대로 활동을 활발하게 개시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아무래도 역시 직접 봐야겠어.”

샥스는 감각을 혼란시키는 권능을 제외하고는 본신의 무력이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다만 감각을 빼앗긴 상대가 본신의 무력을 채 절반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권능에 저항할 수 있던 세은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준비된 인원이 있나?”

“물론입니다.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본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다 해산시켜.”

“……예?”

세은의 지시에 위대훈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위험 지역으로 들어가는데 더 지원을 해달라는 말도 아니고 해산을 시키라고 하다니?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은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지원은 필요 없어. 괜히 짐만 되니까.”

반복되는 세은의 말에 위대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세은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받아보았지만, 중화민국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주석궁에서 세은의 기분을 거스르지 말고 어지간한 것은 다 들어주란 지시가 내려온 상태였다.

위대훈은 국가를 위해 사감을 접어두고 세은의 말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저희가 지원을 하지 않은 개 아니란 사실을 확실하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

세은은 흔쾌히 위대훈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정말 괜찮겠어?”

오히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소진이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세은에게 물었다.

“그래도 안에 들어갔던 사람들이랑 같이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 같이 가면 짐만 늘어. 지금도 마지막엔 나만 들어갈까 고민 중이야.”

일행들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기 위해 데려왔지만, 굳이 샥스를 상대할 때까지 짐을 주렁주렁 달고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안드라스처럼 불화의 권능이 아니지만,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흥. 자신감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영한이 옆에서 이죽거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채연과 소진도 영한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당장 넷이서만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각양각색의 생각을 가지고, 차는 본부를 그냥 지나쳐 바로 영역의 경계로 이동했다.

지원을 데려갈 필요가 없으니 굳이 본부에서 정비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는 조금 더 달려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섰다.

척!

위대훈이 차에서 내리자 보초를 서고 있던 인원이 경례를 했다.

그사이 위대훈이 도착했단 보고를 받은 경계 초소 책임자가 급하게 뛰어나오고 있었다.

“아아. 경례는 됐고, 현재 상황에 대해 바로 보고하게.”

책임자의 경례를 제지한 위대훈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

책임자는 긴장한 얼굴로 현재 상황에 대해 줄줄 보고하기 시작했다.

“현재 상황, 마지막 보고와 상동! 다른 문제없습니다.”

가장 최신 상황을 보고 받는 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세은은 마지막으로 영역의 크기를 질문했다.

“현재 대략 중심부를 기준으로 사방 25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안 넓네.”

셋을 데리고서 충분히 하루 안에 끝낼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정말 괜찮겠습니까?”

위대훈이 보기엔 정말 아무런 대비 없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일행들에게 말했다.

“가자.”

“네!”

“정말 괜찮은 거지?”

“…….”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일행은 세은을 따라 경계를 넘었다.

“샥스 맞는 거 같은데.”

대기에서 느껴지던 마력은 분명한 마기였다.

우우웅―

세은은 신성력을 일으켜 일행들을 보호했다.

마기에 불편함을 느끼던 일행들은 신성력이 몸을 감싸자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빠르게 이동하자.”

세은의 말에 일행들은 잘 따라주었다.

영한 역시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적어도 공사를 구분할 줄 알았다.

거기에 세은의 능력만큼은 영한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금만 하더라도 영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세은이 하는 것을 보았다.

사실 지금 정도면 세은을 인정할 만도 했다.

그러나 영한과 세은의 성격은 전혀 맞지 않았다.

거기다 채연이 세은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려는 행동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확실한 건 채연과 관련된 일이 영한의 심기를 가장 건드리는 건 분명했다.

지금도 채연은 세은에게 계속 조잘조잘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럼 이번 마왕이랑 다른 마왕은 다른 점이 뭐예요?”

“글쎄…… 다 그놈이 그놈이라.”

마왕들이 다 고만할 리는 없었지만, 세은이 보기에는 최상위 몇 명의 마왕을 제외하고는 다 고만고만했다.

“그럼 주의할 점은요?”

“그냥 안전하게 뒤로 빠져 있어.”

“그래도 좀 도움이 되고 싶은데…….”

“적어도 케인은 돼야 도움이 돼.”

“케인 정도면…… 오러로 마스터 말하는 거죠?”

“응.”

“오빠가 보기에는 제가 오러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능성은 충분하지.”

“정말요?”

의외의 대답에 채연이 환하게 되물었다.

“응. 성장 속도도 그렇고 재능도 나쁘지 않아. 무기를 다루는 숙련도도 매우 높고. 최근 상황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사람은 김영한이나 채연이 너 정도.”

“나는? 나도 비슷하잖아.”

옆에서 듣고 있던 소진이 물었다.

“흐음. 가능성이야 전부 있지. 다만 원래부터 무기를 다루던 사람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이렇게 말했지만 누가 먼저 마스터가 될지는 알 수 없는 거고. 내가 모르는 사람이 먼저 될 수도 있고.”

체계적인 수련을 하지 않는 것치고는 각 나라의 오러 마스터들이 몇몇씩 꼭 있는 게 신기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지구와 이계는 그 인구수부터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확률은 높다.

아주 단순한 확률 문제였다.

“지금 한가롭게 잡담이나 할 때야? 적진에 들어왔는데 몬스터가 하나도 없는 게 이상하지도 않아?”

가장 뒤에서 따라오던 영한이 퉁명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런데 몬스터들이 없네?”

“그러게? 왜 몬스터가 없는 거예요?”

영한의 말에 채연과 소진이 그제야 이상한 점을 느꼈다.

중심부로 달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을 막는 몬스터가 나타나기는커녕,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둘 중 하나지.”

채연의 질문을 받은 세은이 대답했다.

“중국이 꾸준히 밖으로 나오는 몬스터를 토벌한 게 효과를 거뒀거나, 아니면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겼거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겨요?”

그러나 다음부터는 확신이 아닌 추측이었기 때문에 세은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은의 예상이 맞는다면 생각보다 더 빠르게 일을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정은 둘.’

첫 번째는 샥스가 거의 준비를 끝내고 군단을 재편하고 있을 가능성이었다.

원래 마계에서 30개의 군단을 거느리던 샥스는 다른 마왕들에 비해 부족한 마력을 수하들로 벌충하는 경향이 있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생각보다 마기의 회복이 더딘 샥스가 몬스터들을 제물로 삼았을 가능성이었다.

마왕이 쓰기엔 질이 떨어지는 마기지만, 힘이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사용할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뭐, 어느 쪽이든지 상관없지만.’

몰려 있다면 한 번에 처리가 가능하다.

반대로 샥스가 마기를 흡수했다면 그 하나만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느 쪽이든 세은이 해야 할 일이 훨씬 준 건 자명했다.

“괜히 불안하다.”

그러나 일행들은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오히려 불안해했다.

공기가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은이 아무 말도 없이 계속 달리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 진짜 짜증나네! 뭐라고 설명이라도 좀 하지?”

그러나 하염없이 달리기만 한 지 30분 정도 계속되자 영한이 가장 먼저 불만을 터트렸다.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은이 아무런 설명 없이 계속 달리기만 하는 게 매우 불만스러웠다.

적어도 현재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공유해야 할 것이 아닌가.

채연과 소진은 짜증을 내지는 않았지만 영한과 생각은 비슷했다.

세은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알려주지 않자 답답함이 가중되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보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그러나 세은은 영한의 짜증을 받고서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별문제없어.”

“그건 우리도 알겠는데? 당연히 몬스터가 없으니 당장은 별문제가 없지. 하지만 지금 상황이 정상이 아닌 건 그 누구라도 알겠다!”

마침내 참고 참았던 영한의 답답함이 폭발했다.

가뜩이나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게 익숙하지 않은 영한이었다.

세은의 능력을 인정해서 사감과는 별개로 지시를 따르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불만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중요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하고, 또 정보를 바탕으로 지시를 내리던 입장에서, 받는 입장이 되니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는 소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은의 능력을 인정해서 그저 참고 있던 중이었다.

영한과 달리 소진은 세은에 대한 악감정도 없었다.

오히려 세은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목표였다.

영한이 이렇게 대신 말해주니 막힌 것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던지, 같이 여기까지 왔으면 최소한 정보만큼은 공유하는 게 맞을 것이었다.

“흐음. 확실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아서 말하지 않은 건데 말이야.”

“그 판단을 혼자 하는 것도 짜증난다고. 네가 무슨 생각이든지 중국까지 데리고 왔으면, 이렇게 방치하지 말아야 할 거 아냐?”

“그렇긴 하네. 그 부분은 미안하다.”

“그러니까 말…… 뭐라고?”

의외로 순순히 세은이 사과하자 영한이 당황했다.

그러나 세은은 이들과 다툴 목적이 아니라, 마왕이 나타날 때의 징조에 대한 실습 차원의 교육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태도였다.

“그래서 몬스터들이 없는 이유가 뭐야?”

당황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던 영한을 대신에 소진이 물었다.

“마지막 준비를 위해 모았거나, 아니면 회복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았거나.”

“첫 번째는 이해가 되는데 두 번째는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회복하기 위해서지. 원래 존재하던 곳이 아닌 데로 오면 환경에 적응하고 힘을 회복하는 기간이 필요해.”

“회복을 위해서 몬스터를 먹는다고?”

세은이 말을 듣던 일행이 역겹단 표정을 지었다.

자양분이란 말에 먹는다는 개념이 가장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은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정정했다.

“먹는 게 아니라, 힘을 흡수한다는 말이야. 힘과 생명을 빼앗는 거지.”

“그런 일이 가능해?”

상상도 하지 못한 개념에 소진이 반문했다.

“가능해.”

“하긴, 지금 세상 자체가 제정신이 아니니까.”

이내 납득한 소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뒤로 일행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계속 달리기만 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더 달렸을 때 세은이 이동을 멈췄다.

“멈춰.”

이미 세은이 멈추는 것을 보고 일행들이 의아한 눈으로 세은을 바라보았다.

세은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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