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22. 본격적인 활동(3)
한동안 수련이 계속되었다.
영한과 소진이 합류한 수련은 전보다 더욱 활기를 띠었다.
주로 영한을 상대로 소진과 채연이 협공을 하는 형태가 자주 취해졌는데, 반만 걸친 오러 마스터여도 둘을 상대하는 데는 충분했다.
그리고 실전이 아닐 때엔 영한이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한 발을 걸치면서 느꼈던 깨달음을 둘에게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일단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갑자기 오러의 운용이 편해진 느낌이 들었어.”
세은은 옆에서 영한의 사례를 들으며 이계에서의 오러 마스터와 다른 점이 있는지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별로 존재하지 않는 반푼이 오러 마스터가 지구에 많은 이유가 가장 의문이었다.
깨달음은 보통 한 번에 찾아온다.
서서히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문 경우였다.
당연히 경계에 발을 걸친 마스터도 드물었다.
드문 사례로 깨달음을 얻다가 주변의 방해로 주저앉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또한 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한의 경험을 들으면서 왜 지구에는 경계에 걸친 오러 마스터가 많은지 어렴풋이 알 수가 있었다.
일단 체계적인 이론이 부족했다.
한국에 전달은 했지만 이론이 완전히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영한이 가장 먼저 길을 개척하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경계에만 걸치고 있어서 본인이 완벽하게 오러 마스터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단 게 문제였다.
‘다음에 타마로라도 오면 부탁해야겠어.’
일본에서의 한바탕 소란 후 꽤 친근해진 타마로는, 세은을 초대한 자리에서 한국으로 한 번 찾아올 테니 박대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만약 정말로 찾아온다면 부탁을 하는 방향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요즘 검도를 배우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 느낌이야. 검을 흐름에 따라 휘두르니까 오러가 더 잘 움직이는 느낌?”
“그래? 나도 검도를 배워야 하나?”
영한의 말에 채연이 물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세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배울 필요 없어. 검을 쓸 것도 아닌데 뭐하러 검을 배워?”
“그럴까요?”
“이미 충분히 성장이 빨라. 그건 원래 충분히 활을 수련해서 익숙한 영향도 커. 그냥 오러를 운용할 때보다 활에 싣는 게 더 편하잖아?”
“네! 맞아요.”
“그런데 뭣하러 검을 배워? 어차피 계속 활을 사용할 거면 오러의 운용에 집중하는 게 더 나아. 활은 더 이상 배울 것도 별로 없잖아.”
“그렇기는 하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활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채연 정도의 수준이면 기술을 배우는 단계는 이미 지난 지 오래였다.
세은의 생각으로는 활에 익숙하기 때문에 채연의 성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약적으로 빠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배울 필요 없고, 검은 검을 쓰는 사람들이 배우면 좋아.”
“전부 아는 척은…….”
영한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러나 얼마 전에 세은의 힘에 눌려 소파에서 미동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놓고 크게 말하지는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주변에 들리지 않지는 않았지만, 세은은 듣고 가볍게 한 귀로 흘렸다.
하루아침에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그리고 딱히 영한의 호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세은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영한도 더 이상 대놓고 세은을 자극하지는 않았지만, 싫은 티는 숨기지 않고 있었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동경의 시선을 받던 영한에게 세은 자체가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여튼, 그래도 지금 가장 수준이 높은 건 김영한이니, 평소에 이것저것 자주 물어봐.”
“네!”
“알겠어.”
세은의 말에 채연과 소진이 대답했다.
“그리고 이주 뒤에 중국으로 가야 할 거 같으니까 미리 일정 비워놓고.”
“중국예요?”
“나도?”
“누구 마음대로?”
중국에 간다는 말에 삼인삼색의 반응이 쏟아졌다.
세은은 우선 소진의 말에 대답했다.
“응. 셋 전부 다.”
“나는 길드 때문에 안 돼.”
“이 실장이 연락 안 했어?”
“아직 안 왔는데.”
“그럼 연락 갈 거야.”
말을 마친 세은은 영한에게 시선을 주었다.
“너희 길드장 마음대로.”
“나도 아직 연락 못 받았는데. 내가 왜?”
“그건 너희 길드장이랑 얘기해.”
어이없어 하는 영한을 뒤로하고 세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자율 학습해.”
이동하는 세은의 뒤로 영한과 소진이 각자 길드장과 이지호에게 급하게 연락을 보내고 있었다.
* * *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는 세은과 함께 채연과 재호, 그리고 영한과 소진이 몸을 싣고 있었다.
에린도 함께 가고 싶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하지만, 아직 학교를 잘 다녀야 한다는 판단 하에 이번은 함께 하지 않았다.
물론 에린 본인이 크게 토라졌지만.
그러나 중국에 놀러가는 게 아니라 굳이 어린아이를 데려갈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손이 너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벌써부터 실전에 투입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중요한 손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바로 이동하시지요.”
세은과 일행은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인원의 안내를 받아 바로 주석 집무실로 이동했다.
베이징의 중남해(中南海)에 있는 근정전은 인터넷에서조차 사진조차 구하기 힘든 중국의 심부다.
중화민국의 최고 권력자인 주석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보니 그 어느 곳보다 보안에 철저했다.
“당신이 그 유명한 세은인가?”
보안을 위해 일행은 귀빈실에서 대기한 채, 세은만이 중국의 주석인 시페이를 만났다.
시페이는 세은이 들어서자 검토하던 서류를 바로 덮고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이렇게 우리 의뢰를 받아줘서 고맙네.”
시페이가 정말로 반가운 표정으로 세은을 환대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석이 나설 거란 사실은 예상하지 못한 세은이었다.
중국도 대국이라고 자부하는 만큼 세은을 만나는 데 주석이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예상을 뒤엎고 시페이 주석이 직접 나섰던 것이다.
세은은 중국에 조금 더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현재 중국의 상황이 주석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자네의 얘기는 매일같이 듣고 있지. 특히 미제의 도시 하나를 구한 이야기와 일본 놈들의 심부에서 행한 영웅적인 행위는 내 가슴을 울렸다네.”
시페이의 말에 세은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국의 일은 당연히 알 것이라고 쳐도,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 일본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해주기를 부탁하네. 너무 반가워서 실언을 해버렸군. 이건 꽤 민감한 문제니까.”
시페이의 말처럼 단순하게 꽤 민감한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사안이 중했다.
그러나 세은과 관련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고맙군. 역시 듣던 대로 화통해.”
시페이가 다시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세은이 자신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음에도 시종일관 소탈하고 친근한 태도로 대화에 임했다.
“간단한 얘기는 우리 쪽 사람에게 전해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현재 산서성과 섬서성의 경계에 문제가 생겼지. 우리 측 각성자들이 진입을 하려 해도 불가능한 상황이야.”
“무슨 일인지 대충은 알 것 같은데 말이야.”
“그게 정말인가?”
시페이의 반문에 세은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을 가지려면 직접 현장에 가서 봐야겠지만, 받은 자료만 봐서는 마왕 중 44위를 차지하고 있는 샥스인 거 같아.”
“마왕? 지금 마왕이라고 했나?”
세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들이 활동하던 게 확인된 이상 각 나라의 수장들이 마왕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니까.
똑같이 피해를 당하더라도 알고 있다면 적어도 어이없는 피해를 막을 수가 있었다.
오션 시티에서는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중국과 러시아의 상황을 받아보고 나니 그 필요성이 느껴졌다.
“작은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하고 그 근본부터가 다른 존재야.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상대하지 않고 빠져나오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 현재 단일 국가로는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없어.”
상대가 없다는 말에 시페이가 그렇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아주 훌륭하고, 강력한 현대식 무기들이 있네.”
실제로 중국은 게이트를 토벌할 때 군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았다.
각성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돌격하지 않고 방어에 치중해 왔던 것이다.
그럼 그사이 뒤에서 포격을 쏟아부어서 정리하는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도심이 아닌 곳의 게이트는 손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영토가 넓고, 인구 밀도가 대도시에 극단적으로 밀집되어 있는 국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였다.
실제로 세은도 이전 연천의 게이트를 토벌할 때 예비군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도심에 있거나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곳에 생성된 게이트는 각성자들을 모아서 한 번에 들이쳤다.
워낙 인구가 많다보니 각성자들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수소 폭탄이면 모를까. 어중간한 무기로는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시페이는 세은의 말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말을 하는 세은의 눈에 미동 하나 없는 것을 확인한 시페이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휴우. 하긴, 그 땅은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긴 하지. 물론 요즘 일어나는 일들 중에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 얼마나 있겠냐만…….”
세은은 시페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정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가진 능력에 따라 시각, 청각, 이해력이 저하되거나 상실된다…….”
“맞네! 그래서 도저히 안에서 작전을 실행할 수가 없는 상황이지.”
“이 능력은 마왕 샥스의 고유 권능이야.”
“이게 누군가의 능력이라고?”
시페이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진 존재는 각성자가 생겨난 이후에도 들었던 적이 없었다.
세은이 다시 한 번 경악한 시페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나마 다시 영역 밖으로 나오면 회복된다는 사실이 다행이야. 아직까지는 제대로 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단 증거니까.”
만일 샥스가 정말 제대로 된 권능을 발휘했다면 영역 밖으로 나와도 사람들이 회복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왜 샥스가 본격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한 자리에서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지 알 거 같았다.
오션 시티에서의 무르무르도 그렇고, 아무리 게이트라는 매개를 통해 넘어온다고 하더라도 제약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제약이 있는 게 당연하기는 하지.’
차원들은 서로 다른 차원의 존재가 자신의 차원에 간섭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고, 배척한다.
그리고 힘이 클수록 차원의 벽을 넘을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도 극단적으로 누진되는 것이었다.
세은이 처음 이계로 넘어갔을 땐 그를 부른 에일린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주었다.
‘역시 일단 먼저 가보는 게 낫겠어.’
세은은 시페이와 대화를 하면서 더 정확한 정보를 얻었다.
역시 서면으로 전달받은 정보보다 모든 정보가 집중되는 수장에게 전달받으니 정보의 질이 다른 걸 느꼈다.
들을 만한 정보를 모두 얻은 세은이 바로 현장으로 이동했다.
* * *
“그러니까. 그 마왕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말이네?”
세은이 일행을 데리고 현장으로 향했다.
한국에도 마왕의 존재에 대해 알려주고 대처를 할 수 있게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전에 세은과 함께 마왕을 상대했던 사람들이 한국에 있지만, 계속해서 다른 마왕이 나올 것이란 가능성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동하면서 세은에게 마왕에 대해 설명을 들은 일행은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특히 단탈리안과 안드라스를 겪어본 채연과, 한라산에서 안드라스를 겪었던 소진의 이해가 영한에 비해 빨랐다.
“으으. 미국도 그렇고 한라산도 같은 경우인 거죠?”
“그렇지.”
“그런 놈들이 72명이나 있다는 거잖아?”
“흐음…… 몇 명 상대했으니 72명 전부는 아닐 텐데. 전부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고.”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봐선 72위의 마왕 모두가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흥. 너무 과장된 거 아니야?”
아직 마왕을 겪어보지 못한 영한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라산 같은 경우도 지금 표현하는 위협에 비해 사상자가 적은 편 아닌가? 소수 정예가 들어가서 5명이 사망한 건데 말이야.”
소진이 날카로운 눈으로 영한의 말을 지적했다.
“한라산에서 피해가 적었던 건 전부 세은이 덕분이야. 아니었으면 우리는 그냥 전멸이었다고.”
“끄응…….”
그 말에 울컥한 영한이 뭐라고 반박을 하려다 그냥 침음을 삼켰다.
세은의 능력은 이미 충분히 겪었기 때문이었다.
“뭐, 마침 이번에 좋은 경험을 하겠네요.”
채연 역시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소진을 거들었다.
영한은 채연까지 그렇게 나오자 한껏 풀이 죽은 표정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일행 사이에 침묵이 돌고 있을 때, 타이밍 좋게 중국 군인의 안내가 들려왔다.
“앞으로 10분 뒤에 경계에 도착합니다!”
그 말에 세은을 제외한 일행의 얼굴에 긴장이 가득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