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74화 (74/225)

# 74

22. 본격적인 활동(2)

본격적으로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당장은 무리였다.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상황은 상당히 급해보였지만, 최근 세 달 동안 현상에 변화가 없다는 정보도 있었다.

미국에서도 겪었지만, 혼자서 여러 손을 당해내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지니고 있는 힘의 크기와는 다른 문제.

특히 도심에서는 퍼져 나가는 놈들을 일일이 잡는 동안 발생하는 피해를 막을 길이 없었다.

세은이 본질을 찾아서 제거하는 동안, 옆에서 보조해 줄 수 있는 케인이나 로이스 정도 수준의 동료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둘을 데려올 수도 없는 일.

세은이 알아서 자급자족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세은은 쉬지 않고 채연과 재호를 지도하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허억. 허억.”

사정을 봐주지 않고 지도하는 세은의 태도에, 먼저 나가떨어져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건 재호였다.

“흐음…….”

잠시 휴식을 선언하고 턱을 매만지던 세은이 불쑥 입을 열었다.

“채연아.”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고 있던 채연이 대답했다.

“네?”

“혹시 같이 수련할 만한 사람 없어?”

“오빠랑요?”

“아니, 너희랑.”

“글쎄요…….”

채연이 수건을 내려놓더니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녀의 얼굴에 잠시 고민의 흔적이 내려앉았다.

세은은 가만히 그런 채연의 생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몇 명 있긴 한데 다 오빠가 아는 사람들이에요. 저보다는 실장님한테 물어보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하지 않을까요?”

“그런가.”

채연의 대답에 세은이 다시 고민에 잠겼다.

아무래도 채연과 재호를 동시에 가르치는 건 효율성이 너무 떨어졌다.

오러와 마나는 그 근본부터 다를뿐더러, 지형지물을 충분하게 이용할 수 없는 실내의 특성상 재호가 채연을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차라리 재호를 따로 가르치고, 채연과 함께 수련할 오러 유저들을 같이 가르치는 게 더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또한 동시에 이 방법은 한국의 전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방법이었다.

“일단 오전 수련 마치고 연락 한 번 해보자.”

“네! 안 그래도 저한테 계속 오빠 요즘 뭐하는지 문자 와요. 연락하면 좋아할 거예요.”

“그래?”

너무 연락이 자주 와서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했더니, 채연에게 연락을 하는 모양이었다.

혹시나 지금 수련을 마칠까 고대하던 표정의 재호는 잔뜩 풀 죽은 표정으로 얼마 남지 않은 휴식 시간을 음미하고 있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하죠.”

“하아…….”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재호의 깊은 한숨과 함께, 다시 수련이 시작되었다.

* * *

“누구요?”

“세은 씨요.”

“제가 거기를 왜 갑니까?”

“정부에서 협력 요청이 왔습니다. 그래도 영한 씨 정도는 되어야 기준을 넘기니까요.”

김영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성우가 눈가의 웃음을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어차피 채연 씨도 있으니 일석이조 아닙니까?”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예상치 못한 이성우의 말에 김영한이 애써 무덤덤한 척 물었다.

그러나 이미 당황한 반응을 보인 다음이었다.

당황했단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김영한은 반대로 이성우에게 공격적으로 물었다.

“크흠. 제가 기준에 통과한다면 길드장님도 충분히 통과를 하셨을 텐데요? 왜 제가 가야 합니까. 저는 거절하겠습니다.”

이성우는 애써 담담하게 반론하는 김영한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영한 씨가 세은 씨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부길드장이라면 길드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길드장님이 가셔도 충분하단 말입니다.”

“맞습니다.”

“……?”

“그러나 제가 가는 것보다 영한 씨가 가는 게 업무 분담 면에서 효율적이니까요.”

이성우가 말을 마치고도 영한의 두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잠시 이성우와 김영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후우…….”

이윽고 시선을 아래로 내린 영한은, 한숨을 내쉰 뒤 나직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가서 뭘 하면 됩니까?”

“별거 아닙니다. 가서 세은 씨의 지도를 받으며 채연 씨와 같이 수련을 하면 됩니다.”

“그게 전부라고요?”

“네. 그게 전부입니다.”

이성우는 어이없어하던 김영한을 보며 싱긋 웃었다.

* * *

“어…… 음…… 그러니까. 세은 말은 이 힘을 주는 사람이 우리가 아는 지구의 그 어떤 신도 아니란 말이죠?”

“응. 잘 이해했네.”

“아니, 이해한 건 아닌데…….”

정부의 도움으로 외국인 학교에 바로 입학한 에린은 오후에 세은과 함께 수련을 하고 있었다.

보통 신성 마법의 종류와 사용 방법, 가장 효율적인 상황에 대해서 교육을 했다.

그리고 에린이 사용하는 신성력이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오는지에 대한 교육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에린에게 모든 것을 그대로 설명을 해야 할까?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에린은 자신의 말을 믿겠지만…… 굳이 알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에린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적어도 지구에서 그와 에일린으로 이어진 유일한 사람.

또한 에린이 더 정확하고 강하게 신성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하는 게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지금이 아니면 어제 또 마음 편하게 지도를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니까, 세은은 다른 세계에 불려갔다가 거기서 교황이 되었고. 다시 지구로 돌아왔다는 거죠?”

“응, 맞아.”

“그리고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그곳에서 서식하는 것들이고요?”

에린이 알지 않아도 될 일은 걸러서 말했지만, 그 정도로도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나중을 생각하면 세은 자신 말고도 게이트의 생성 원인에 대해 근본적으로 접근할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다른 그 어떤 사람보다도, 에일린의 검이 된 에린이라면 그 자격이 충분했다.

“그럼 세은은 게이트가 왜 생겼는지도 아는 거예요?”

“아니, 그건 나도 몰라. 지금은 그걸 알아내는 게 목표 중 하나야.”

“음, 그러니까.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기는 한데, 어쩐지 이해가 가요. 내가 처음에 힘을 얻기 전에 봤던 환상도 이해가 가고요.”

에린이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자신의 소매를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처음 힘을 얻을 때 만난 여자가 환상인 줄 알았거든요, 형태도 불분명하고. 물어볼 수 있게 되면 물어보려다가 잊어 먹고 있었는데. 하여튼 그게 환상이 아니라는 말이네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에린은 세은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글쎄. 일단은 게이트의 원인을 먼저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는요?”

“원인을 알았으면 제거해야겠지?”

“그게 끝이에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던 세은의 말에 에린이 물었다.

이런 엄청난 얘기를 자신에게 해줄 테니 무엇인가 더 엄청난 일을 해야 해서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에린의 생각과 달리 세은은 그저 살짝 웃음을 지었다.

“특별한 걸 하려고 할 필요는 없어. 누구라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돼.”

그의 손이 에린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어떤 책임감을 가지라고 해준 말이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고 싸우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 말한 거지.”

“언니나 아저씨는요?”

다른 사람들은 이 얘기를 모르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동안의 대화로 알 수 있었다.

왜 자신에게만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에린의 두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둘은 말해도 믿지 못할 테니까.”

“에이! 왜 안 믿어요?"

“믿기는 하겠지. 하지만 정말로 의심 없이 믿지는 못해.”

“왜요? 다른 누구도 아닌 세은이 하는 말인데!”

세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 말이니까 믿는 거라서. 만약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믿지 못하겠지. 그 차이야.”

“그게 무슨 차이예요?”

그러나 세은은 더 이상 에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짝!

가벼운 박수와 함께 주위를 환기시킨 세은이 본격적으로 수련에 들어갔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시간이 없어서 수련을 해야 해.”

“아, 얘기 끝까지 해줘요!”

“안 돼.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치이…….”

에린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난 에린은 목검을 들고 수련할 준비를 시작했다.

“자, 그럼 어제 배운 신체 강화 마법을 복습해 보자. 첫 번째로…….”

세은의 목소리가 한동안 실내를 가득 채웠다.

* * *

“둘이 끝?”

“응, 오랜만이야.”

“…….”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소진과, 대놓고 온 얼굴로 싫단 표정을 짓고 있는 영한이었다.

세은은 질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영한을 무시한 채 소진에게 다시 물었다.

“왜 두 명밖에 없어?”

“힘들게 왔는데 이러기야? 다른 곳은 여유도 없고, 허들이 꽤나 높았다고?”

“흥. 다들 자기처럼 한가한 줄 아나 보군.”

영한이 뾰족하게 중얼거렸다.

“흐음.”

세은은 대답하는 대신 가만히 소진과 영한의 수준을 파악했다.

놀랍게도, 영한은 오러 마스터에 반쯤 걸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 수준이 떨어져.’

세은이 둘의 수준을 파악하는 동안 소진이 빠르게 궁금한 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큰일이 있었다면서? 뉴스로도 보고 이 실장한테도 들었는데 대단하더라. 그리고 귀여운 외국인 소녀를 데려왔단 소문도 있던데. 그 애는 지금 없나 보네?”

반짝거리는 눈으로 질문을 쏟아내던 소진과 달리 영한은 가만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덜컥―

“벌써들 온 거예요?”

문이 열리며 채연과 재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채연아!”

“어? 영한아? 네가 온 거야?”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응. 잘 지냈지. 너야말로 얼굴 좋아졌네.”

방금 전까지 짓던 표정이 연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영한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풋.”

그런 영한의 모습에 소진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크흠.”

소진의 웃음소리를 들은 영한은 객쩍은 소리를 내며 차분하게 자신을 가라앉혔다.

“자, 그럼 사람이 다 모였으니까, 우리가 어떤 수련을 해야 하는지 말해줘.”

업무적인 태도로 돌아온 소진이 물었다.

“말 그대로 수련하면 돼. 아무래도 재호 씨가 마법사라 채연이와 함께 수련하기 불편한 점이 많아서. 오러 유저는 오러 유저끼리 수련하는 게 더 효과가 좋으니까.”

“그게 최종 목적은 아닐 거잖아.”

소진은 정확히 세은과 눈을 마주치며 다시 물었다.

“이걸로 원하는 게 뭐야?”

한 길드의 길드장답게 소진은 꼼꼼하게 파고들었다.

세은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조력자 확보 차원이라고 하면 되나?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주변을 믿고 맡길 실력자가 없어서 말이야.”

세은의 말에 영한이 눈을 날카롭게 하고 그를 노려보았다.

“거참 굉장히 오만하고, 재수 없네.”

한국의 각성자를 통틀어서 하는 말에 영한이 가시를 잔뜩 세우고 말을 이었다.

“들리는 걸 보면 실력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정말 싸가지가 없군.”

태연한 낯과 달리 소진도 그리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둘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당장 일본이나 미국 최고 수준의 실력자 셋만 와도 한국은 못 이겨. 자존심도 실력이 있어야 챙기는 거지. 실력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챙기는 게 오만한 거 아닌가?”

말하다가 현실이 파악된 세은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 한숨이 영한과 소진을 더 자극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채연과 재호가 어쩔 줄 몰랐다.

물론 세은의 말이 맞기는 맞다.

그러나 조금 더 부드럽게 돌려 말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을 했어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내가 말할 걸.’

지금의 상황을 보며 채연이 후회했다.

“뭐, 억울하면 말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든가.”

세은이 가볍게 던진 도발에 영한이 반응했다.

소진도 말은 안 했지만 한 번 시험을 해보고 싶은 눈치였다.

“지금 그 자리에서 움직이기만 해도 인정해 줄게.”

“뭐라고?”

우웅―

얼토당토않은 세은의 말에 영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

“윽?”

그러나 마치 둔부가 소파에 붙기라도 한 듯이 전혀 미동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응? 왜 안 움직여? 일어나면 인정해 준다니까.”

세은이 다시 한 번 영한을 도발했다.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확실하게 인식을 시킬 생각이었다.

그래야 가르치기도 편하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다른 한국의 각성자들에게도 현실을 알려줄 수가 있었다.

“으윽!”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영한과 소진을 보며, 채연과 재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져 있는 연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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