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67화 (67/225)

# 67

20. 혼자서도 잘합니다 (1)

미국의 각성자들로선 일단 인파를 뚫고 놀에게 다가가는 것부터가 고생이었다.

등 뒤에 몬스터가 있다는 공포감은 사람들에게서 질서를 앗아가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현장에 도착한 각성자들의 지시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오러 유저들이 길을 뚫는 동안 마법사들은 근처 고지대로 올라가 놀들에게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어찌 된 일인지 놀들은 더 이상 사람들을 쫓지 않는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퍼엉― 퍼엉!

지면과 마법이 부딪히며 폭발하는 소리가 도시를 뒤흔들었다.

마법사들의 마법이 놀들의 정신을 빼놓는 동안, 오러 유저들은 드디어 사람들을 뚫고 놀들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오러가 담긴 공격이 가해지자 놀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반격에 들어갔다.

“크르릉!”

놀들이 대장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에 놀들의 지휘관을 알아챈 마법사들이 놀 대장을 노리고 마법을 발사했다.

다양한 계열의 마법이 놀 대장을 노리고 폭사되었다.

하지만 그때, 놀 대장의 앞에 반투명한 막이 생겨나더니 마법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 후 반대로 놀 대장의 뒤쪽에서 다양한 마법이 각성자들에게로 날아들었다.

쾅― 콰앙―

갑작스런 반격에 각성자들이 급하게 마법을 막아내었다.

“뭐, 뭐야?”

놀이 마법을 쓸 줄 몰랐던 오러 유저들은 크게 당황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부상자가 꽤 생겨났다.

우웅―

하지만 부상자들에게서 하얀빛이 생겨나더니 부상이 천천히 치료되기 시작했다.

“오오!”

말로만 듣던 치료 능력에 각성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적의 주인공인 에린의 동그란 이마에선 벌써부터 땀방울이 송골송골하게 맺혀 있었다.

“자! 죽지만 마라! 그럼 고칠 수 있다! 알겠나?”

“썰!”

지휘관은 때를 놓치지 않고 각성자들의 사기를 고양시켰다.

확실히 치료를 해줄 수 있는 능력자의 등장은 오러 유저들이 더 과감하게 놀들을 상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죽어!”

“크앙!”

오러 유저들과 놀들이 다시 맞부딪혔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견제해!”

지휘관의 외침에 마법사들은 공격보다 방어에 중점을 두고 전황을 살펴보았다.

“뒤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놀 다수 발견!”

후방에 위치한 놀 주술사들을 발견한 각성자가 빠르게 사방에 전파했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쓰는 놀들을 우선으로 처리한다!”

“썰!”

지휘관의 새로운 명령이 하달되자, 마법사들은 놀 주술사들을 목표로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에린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면서도 각성자들의 전투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파앙―

또다시 날아온 화살이 오러 유저와 대치하고 있던 놀의 목을 꿰뚫었다.

‘언니다!’

에린은 자신도 전투에 참가하고 싶은 깊은 욕구를 느꼈다.

그렇다고 지금 치료를 해야 하는 부상자들을 내팽개치고 움직일 수는 없었다.

치료를 하느라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중에도 에린은 최대한 빨리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힘을 아끼지 않고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

“좋아요. 다 끝났어요.”

“감사합니다.”

마지막 부상자의 부상을 치료한 에린이 소매로 이마를 훔쳐내었다.

가볍게 닦아냈을 뿐인데 소매가 흥건하게 젖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놀들은 어느새 얼추 정리가 된 상황.

“크허허헝!”

그러나 가장 중요한 놀 대장이 중앙에서 각성자들을 상대로 버티고 있었다.

팡―

놀 주술사들은 작정이라도 한 듯 오직 놀 대장에게 모든 지원을 쏟아부었다.

개인이 상대하기 힘든 놀 대장의 무력에 주술이 더해지니, 각성자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우선 뒤에 마법을 쓰는 놈들부터 처리해!”

퍼엉!

지휘관의 명령에 마법이 놀 대장의 뒤쪽에 작렬했다.

하지만 오직 방어에 치중하고 있던 주술사들에게 타격을 주는 일은 요원해 보였다.

탁―

“어어?”

부상을 치료받은 뒤 쉬고 있던 각성자의 무기를 집어든 에린은 누가 말리기도 전에 전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웅―

“홀리 웨폰!”

신성력이 에린이 들고 있는 검을 얇게 둘렀다.

“크앙!”

가장 약해보이는 에린의 모습에 놀이 괴성을 지르며 둔기를 휘둘렀다.

“마, 막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지휘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누가 막기 전에 에린의 검과 놀의 둔기가 부딪혔다.

서걱―

놀의 둔기에 맞은 에린이 피투성이가 되어 멀리 날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소리가 났다.

어설프게 휘둘러진 에린의 검이 녹슨 둔기를 갈라내 버린 것이었다.

동시에 놀의 복부를 반쯤 파고든 에린의 검이 모두의 시야에 들어왔다.

“깽!”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놀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야얏!”

에린은 힘차게 기합을 지르며 다시 검을 휘둘러 놀의 복부를 다시 베어내었다.

털썩―

완전히 내장이 상한 놀이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에린이 다시 다른 목표물을 찾아 깊숙이 뛰어들었다.

“뭣들 하고 있어! 최우선적으로 보호해! 전장에서 이탈시켜!”

“썰!”

지휘관은 상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부하들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그런 지휘관의 불안한 마음과는 달리 에린은 기분이 많이 상승된 상태였다.

오션시티의 사태 이후로 몬스터들을 직접 전투에 가담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세은을 만나고 신성력을 몸에 익힌 후, 실제로 몬스터를 만나자 그것과는 다르게 기분이 나빠지는 게 느껴졌다.

몬스터들에게서 풍겨오는 느낌이 에린의 신경을 매우 질척하게 건드리는 느낌.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과 적대감이었다.

“미스 에린! 이곳은 위험합니다. 뒤로 빠지세요!”

지휘관의 지시를 받은 각성자들이 에린에게 다가와 그녀를 제지했다.

그러나 에린은 그들을 무시하고 더 앞으로 전진했다.

에린에게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던 각성자들은 전전긍긍하면서 에린을 보호하며 따라 움직였다.

“크아앙!”

“컹!”

각성자들이 에린을 보호하는 진형을 취하자, 그곳이 약점이라고 생각한 놀들이 부나방처럼 에린에게로 달려들었다.

스걱―

그러나 홀리 웨폰으로 강화된 에린의 공격과, 그녀를 보호하는 각성자들이 놀들을 쉽게 처리해 나갔다.

“크르르르…….”

갑자기 놀들의 비명소리가 한 곳에서 자주 들리자 놀 대장의 시선이 에린에게로 향했다.

놀 대장의 눈에 에린의 검에 쌓인 신성력이 들어왔다.

불쾌한 신성력으로도 모자라, 그 검에 부하들이 빠르게 죽어가는 모습에 놀 대장의 주둥이가 씰룩거렸다.

쿵―

부하들과 비교되지 않는 크기의 둔기가 강렬하게 땅을 찍어냈다.

그 강렬한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놀 대장에게로 향했다.

에린과 놀 대장의 눈이 마주친다.

잠시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된다.

동시에.

타닥―

터덩―

놀 대장과 에린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갑작스런 에린의 돌진에 그녀를 호위하던 각성자들조차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에린!”

저격을 멈추고 현장에 합류한 채연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 질렀다.

달려가기엔 늦었단 판단 때문에, 채연은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았다.

파앙―

그러나 화살이 날아가던 속도보다 빠르게 에린과 놀 대장의 무기가 부딪혔다.

쾅!

일반 놀들의 둔기와는 달리, 놀 대장의 둔기는 신성력으로 감싼 검에도 쉽게 잘려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강렬한 충돌음과 함께 반동이 에린의 팔을 흔들었다.

“흐읍!”

처음 느껴보는 힘에 자신도 모르게 에린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쉐에엑!

놀 대장은 아무런 반동이 없었는 듯 바로 이어서 후속타를 내려쳤다.

에린도 재빨리 팔을 들어 공격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저린 팔이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쉣!”

우려했던 상황에 지휘관이 욕설을 내뱉었다.

탕!

“크릉!”

그러나 다행히 그가 우려했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뒤늦게 도착한 화살을 막아내기 위해 놀 대장이 둔기의 방향을 바꿔 휘둘렀기 때문이다.

채연의 화살은 막혔지만, 덕분에 에린이 회복할 시간은 벌어주었다.

“에린!”

그리고 각성자들이 달려와 에린을 보호하며 진형을 갖추었다.

“이제 뒤로 빠지세요. 이놈은 무리입니다!”

각성자 중에 한 명이 에린에게 말했다.

“아니요. 싫어요.”

하지만 에린은 단호했다.

뒤에서 치료만 하기 위해 힘을 가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에린 자신도 왜 이러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허무하게 죽은 가족의 복수?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직 가족의 죽음이 체감되지 않았다.

시체도 발견하지 못한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짧은 시간.

거기에 세은과 채연, 재호와 함께 생활하다 보니 단순히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

가끔 아무런 연락이 없는 휴대전화를 볼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러나 처음 부모님이 자신을 대피시키기 위해 언데드에게 잡혔을 때부터, 세은의 신위를 봤을 때까지.

에린의 속에서 자라나던 힘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 지금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소망이 이루어진 지금.

부모님의 뒤에 숨었던 것처럼 숨고 싶지는 않았다.

에린의 속에서 휘돌고 있는 힘이 그녀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하압!”

에린은 다시 자신을 만류하던 각성자를 제쳐두고 다시 달려들었다.

“이런!”

그런 에린의 모습에 다른 각성자들도 그녀를 따라 놀 대장에게 뛰어들었다.

파앙― 파앙―

에린이 다시 놀 대장에게 뛰어드는 모습을 확인한 채연이 활로 지원 사격에 나섰다.

“제길! 마법사들은 견제와 방어에 치중해!”

지휘관이 자신의 전술이 어긋나는 것을 느끼며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확실한 지원이 오기 전까지 차륜전으로 상대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다수의 힘으로 놀 대장을 밀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웅―

“홀리 웨폰!”

다시 한 번 에린의 마법 발동과 함께 에린을 포함한 가장 가까이 있던 두 명의 각성자의 검에 신성력이 깃들었다.

“크아아앙!”

가소롭게도 자신에게 달려드는 인간들을 보며 놀 대장은 포효했다.

타앙!

에린의 검과 놀 대장의 둔기가 다시 부딪혔다.

방금 전과 같은 결과가 재현됐지만 상황은 전혀 달랐다.

다른 각성자 둘이 놀 대장의 옆을 노리고 무기를 휘둘러 들어오고 있었다.

“하압!”

그러나 여태까지 놀 대장은 이러한 협공을 잘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가소로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둔기를 휘두르려던 놀 대장의 귀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캉― 카앙!

재빨리 둔기를 휘둘러 채연이 쏜 화살을 쳐 낸 놀 대장은 순식간에 지근거리를 허용하고 말았다.

“크엉!”

왼쪽 각성자의 공격은 몸을 돌려 피했지만, 반대로 들어온 공격은 미처 막아낼 수가 없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놀 대장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이야압!”

그리고 다시 정면으로 에린이 파고 들어왔다.

놀 대장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에린의 검을 막았다.

그러나 신성력이 깃든 공격은 놀 대장에겐 우습게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에린에게 신성력 버프를 받은 각성자 두 명이 양옆에서 아주 성가시게 놀 대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파앙― 팡!

동시에 멀리서 채연의 화살이 계속 놀 대장의 감각을 교란해 댔다.

“커헝!”

특별히 강한 인간이 없음에도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 놀 대장이 짜증이 가득 담긴 울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기세를 탄 각성자들은 여세를 몰아 놀 대장을 밀어붙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지휘관은 놀 주술사들을 견제하던 마법사 일부를 공격으로 돌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지원군이 오기 전에 놀 대장을 처리한 뒤 사태를 수습하면 자신의 고과가 올라갈 건 자명한 일이었다.

한 번 모험을 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신성력 버프를 받은 각성자들과 에린, 그리고 채연의 견제로도 버거운데 마법사들의 마법까지 쏟아지니, 놀 대장의 손이 점점 어지러워지는 것이 보였다.

놀 대장의 둔기가 마법을 쳐 냈다.

펑!

마법이 터지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사이를 오러 유저 한 명이 파고들어 놀 대장의 허벅지를 노렸다.

텅!

순식간에 둔기의 방향을 바꾼 놀 대장이 공격을 막아냈다.

둔기를 아래로 휘두르느라 빈틈이 보인 놀 대장의 어깨를 노리며 다른 각성자가 파고들었다.

놀 대장은 허벅지를 막기 위해 아래로 휘둘렀던 둔기를 밖으로 쳐올리며 각성자의 검을 간신히 튕겨내었다.

터엉!

그러나 매번 온 힘을 다해 쳐 내려니 몸의 균형이 무너져 버렸다.

동시에 둔기를 밖으로 쳐올리느라 선명하게 드러난 놀 대장의 가슴으로 에린이 빠르게 돌진했다.

파앙―

놀 대장은 균형을 잃은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에린의 공격을 막아내려 했다.

그러나 정확히 미간을 노리고 쏘아져 오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그 짧은 순간.

서걱―

“컹!”

에린의 검이 놀 대장의 가슴을 강하게 베어내었다.

놀 대장의 가슴에 가로로 혈선이 길게 그어졌다.

“이얍!”

에린이 기합소리와 동시에 놀 대장의 안으로 더욱더 파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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