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19. 초대(3)
앤서니의 장관실은 매우 공기가 무거웠다.
펜은 불편한 표정의 앤서니와 마주하고 있었다.
직속상관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챈 펜이 가만히 분위기를 살폈다.
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앤서니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어 펜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비협조적이면 우리도 따로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앤서니의 말에 펜이 물었다.
“어느 부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겁니까?”
“각성자 육성법 말일세. 그걸 다른 나라에도 알려준다면 우리가 우위를 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그렇다고 해도 따로 방안이 있는 건 아닌지라…….”
펜이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세계의 경찰은 우리가 되어야지. 그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지 않은가.”
“그렇기는 합니다.”
“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협력을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다는 말이지…… 남미 쪽 상황은 어떤가?”
“아시겠지만 남미 쪽도 문제가 많습니다. 가뜩이나 치안이 불안정한 곳인데 게이트까지 나타나니 더욱 불안해져서…….”
“우리 요원들을 파견해서 치안을 잡고 협력을 하면 어떤가?”
“생각 안 해본 방안은 아니지만, 이번의 오션시티 사태로 인해 당분간 요원들을 국외로 파견 보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여론도 여론이지만 의원들도 상당히 놀란 눈치입니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대체 되는 일이 뭐가 있나? 그런 예외 상황까지 전부 고려하다가 주도권을 이대로 유로에 뺏기면 누가 책임지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하하하…….”
불만이 가득 어린 앤서니의 말에 펜이 어색한 웃음으로 답했다.
“하여튼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생각해 내! 지형적 이점을 이용해서 유럽이 저렇게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우리만 놀고만 있을 수 없지 않나? 일단은 일본과 멕시코, 그리고 캐나다에 연락해.”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 정부와 진행하고 있던 얘기는 잘됐나?”
갑작스런 질문에도 펜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처음에는 비판적인 입장이었지만, 이번 오션시티 사태와 치료 능력자의 인위적 각성에 대한 정보를 흘리자 태도를 바꿨습니다.”
“당연하지. 이제 이해가 좀 되는가 보군. 지금과 같은 시대에 알량한 자존심으로 버티는 게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과거는 과거로 묻어야 할 것 아닌가.”
“굳어 있던 일본의 관료들 역시 기존의 외교 관계로 해결하기 힘든 일들이 점점 일어나고 있단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다행이군. 적어도 일본은 확실한 우방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나마 들려온 긍정적인 소식에 앤서니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일본과 얘기는 계속 진행하고, 그 에린이란 각성자, 설득을 계속 진행해 봐. 어린애 하나 설득 못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그게…… 본인의 의지가 워낙 확고한지라.”
“그 동양인이 우리 앞에선 안 그런 척 해도 뒤에서 계속 설득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보고와 대화를 통해 세은의 성격을 파악한 펜이 대답했다.
에린이 스스로 세은을 따라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그게 더 문제 아닌가? 이 부분은 계속 진행해. 미합중국이 고작 남한에 인재를 뺏긴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일세.”
“……예.”
펜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매우 힘든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여기서 부정적인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에린을 설득해야 할지 그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 * *
각성자들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가장 어린 나이로 각성자가 된 사례는 10대 초반부터, 위로는 60대까지 다양했다.
당연히 마법사들의 연령대도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연령이 다양한 만큼 평소에는 관심 있어 하는 연구 분야가 각양각색이었지만, 최근엔 케인의 지휘 아래 하나의 연구 주제에 몰입해 있었다.
『인위적인 각성자의 육성.』
과연 저것이 가능한가? 라는 의심은 이미 실존 사례가 지워주었다.
개인 과제에 몰두한 일부의 마법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케인과 함께 방법을 찾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인위적으로 육성된 각성자 자체가 마법이나 오러 사용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연구는 아주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마법사들은 새로운 힘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선 최대한 빠른 결과를 내기를 원했다.
“대체 언제쯤 결과가 나올 것 같은가?”
“저희도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각성자가 한 걸 왜 우리는 못하는 건가 대체?”
“모든 마법사들이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지원은 얼마든지 해줄 테니 유럽에 완전히 주도권을 넘겨주기 전에 찾아내게!”
정부의 독촉과 풍부한 지원 아래 연구는 24시간 계속 되었다.
* * *
우웅― 우웅―
“쉬는 날에도 연락이 너무 와…….”
에린은 쉬는 날에도 울리던 휴대전화를 보며 짜증을 냈다.
“이 아저씨는 쉬는 날도 없나봐요.”
“정말 대단하네.”
에린의 짜증에 함께 쇼핑을 하고 있던 채연이 맞장구를 쳤다.
“어떻게 이렇게 하루도 안 쉬고 매일 같이 연락을 하지?”
“그러니까요…….”
무시하자니 케인의 성격상 답이 올 때까지 연락을 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에린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답장하고 쉬는 날엔 연락하지 말라고 해봐.”
“그럴까요?”
자신을 달래는 듯한 채연의 말에 에린이 축 쳐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연락을 하기는 해야겠네요…….”
에린은 간략하게 케인의 질문에 답장을 했다.
쉬는 날에는 연락을 자제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런다고 통할 것 같지는 않지만…….”
세은이 뉴 헤이븐의 게이트를 정리하기 위해 재호와 내려간 동안에도, 케인의 연구는 쉬지 않았다.
오히려 세은이 없으니 에린에게 더 적극적으로 질문을 퍼부었다.
어느 상황에서 어떤 것이 느껴지는지, 몸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점에 대한 질문이 에린에게로 쏟아졌다.
피곤했다.
질문이 올 때마다 일일이 답해주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벌써 일주일을 넘게 시달리고 있었다.
“쉬는 날이니까 자제해 달라고 했으면 휴대전화 보지 마.”
채연이 말했다.
“자꾸 받아주니 더 그러는 거야. 그냥 무시해.”
“그래도 될까요?”
“응. 바빠서 못 봤다는데 뭐라고 할 거야. 어차피 쉬는 날이잖아?”
“그렇긴 하죠…….”
잠시 고민하던 에린은 휴대전화의 설정을 무음으로 변경했다.
“무음으로 바꿨어요!”
“그래그래, 잘했어. 쉬는 날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놀자.”
“네!”
에린은 더 이상 휴대전화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후 채연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오랜만에 평범하게 즐거운 일상을 보낸 것 같았다.
오션시티 사태 이후로는 수련과 실험에 참가하느라 평범한 생활과 거리가 먼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퍼엉― 펑―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마천루를 뚫고 불꽃놀이가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와아…….”
같은 도시지만 뉴욕과 같은 대도시는 처음인 에린은 넋을 놓고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채연 역시 타국에서의 색다른 경험에 황홀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꺄악!”
“우아아아!”
불꽃놀이의 중심부에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꽃이 터져 나가는 강렬한 굉음과 합쳐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외침이 분명했다.
“앞에서 뭐하나 봐.”
“그러게요? 우리도 더 가까이 가볼까요?”
“사람이 많아서 들어갈 수 있으려나…….”
하지만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갑자기 밖으로 밀려 나오고 있었다.
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 탓에 이동이 매우 힘들었지만, 안쪽의 사람들은 필사적이었다.
불꽃놀이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밀려나오는 것이 이상했다.
동시에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비켜! 비켜!”
“꺄아아악!”
“사람 살려!”
분명히 들렸다.
중간에 섞여 있는 말을 포착한 채연이 시력을 집중해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데……?”
밀려 나오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던 채연이 말했다.
“다 보고 밖으로 나오려는 모습이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거 같아.”
“네?”
채연의 말에 에린도 시력을 집중해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런 거 같은데요?”
“무슨 일이 생겼나?”
펑― 퍼엉―
그러나 그 와중에도 불꽃놀이의 폭음에 다른 소리들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마지막으로 밀려 나오던 사람들의 뒤에서 놀 떼가 보였다.
놀들은 누런 송곳니를 드러내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고 있었다.
“몬스터야!”
비로소 온전히 상황을 파악한 채연이 몸을 날렸다.
그리곤 놀들을 저지하기 좋은 위치로 이동하려 했다.
“에린! 케인한테 연락해!”
“같이 가요!”
채연이 전화를 하라는 말만 남기고 혼자서 뛰쳐나가려고 하자 에린이 붙잡았다.
“저도 싸울 수 있어요!”
“아니야. 괜찮으니까 무리하지 말고 여기 있다가 케인이 오면 안내해!”
실전 경험이 없는 에린을 두고 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채연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타닥―
채연이 혼자서 이동하는 것을 본 에린은 우선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휴대전화는 이미 케인에게서 온 연락으로 알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케인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나? 큰일 났네! 지금…….
“알고 있어요. 놀 떼가 나타났어요.”
―지금 근처에 있나? 다행이군! 우리 각성자들이 그리로 갔으니 지원 부탁한다네. 부상자들이 생길 것 같아.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라니?
갑작스런 에린의 말에 케인이 되물었다.
이 급박한 와중에 조건이라니?
무리한 부탁일지도 모른단 케인의 생각이 에린의 말에 가볍게 부서졌다.
“저도 직접 전투에 참가하고 싶어요.”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지!
별것 아닌 에린의 부탁에 케인은 안심하며 대답했다.
―일단 현장 지휘관에게 전달을 해놓을 테니 합류하게. 그럼 지휘관에게 자네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겠네.
“좋아요.”
―좋아! 그럼 잠시 후에 보세.
케인과의 통화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에린은 현장 지휘관이 말하는 장소로 이동했다.
* * *
놀들을 눈앞에서 무방비로 달아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아무런 저항 없이 등을 보인 인간은 놀들에게 매우 쉬운 상대였다.
“아악!”
크륵― 크르륵―
놀들의 공격은 가차 없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투박한 둔기가 사람들을 공격해 왔다.
파앙―
“캥!”
신이 나서 인간들을 공격하던 놀 중 한 마리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그대로 즉사했다.
“크릉?”
갑작스런 상황에 놀들을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앙― 파앙―
“캐앵!”
“깽!”
그러나 그런 놀들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두 마리의 놀이 다시 쓰러졌다.
놀들은 갑작스런 공격을 대비하느라 사람들을 더 이상 쫓지 않았다.
그제야 도망치는 사람들과 놀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팡―
“깨앵!”
또다시 한 마리의 놀이 쓰러졌다.
잔뜩 주위를 경계하던 놀 대장의 귀에 공격이 날아든 방향이 포착되었다.
“크아앙!”
놀들의 대장은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가리키며 이동을 지시했다.
그리고 그 방향에서 다시 연달아 화살이 날아왔다.
파앙― 파앙― 파앙―
놀 대장을 파악한 채연의 화살이 대장을 노리고 날아왔다.
그러나 명색이 우두머리답게 놀 대장은 둔기를 휘둘러서 채연의 화살 하나를 쳐 낸 뒤, 두 대를 살을 스치며 어렵사리 피해냈다.
오히려 이번의 공격으로 채연의 위치를 더욱 정확하게 파악한 놀 대장이 놀들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크아아왕!”
놀 대장은 건방지게 멀리서 자신들을 공격한 인간을 잡아 죽일 생각이었다.
타다닷―
퍼엉― 펑!
그러나 놀들을 더 이상 이동하지 못했다.
어느새 놀을 막기 위해 미국의 각성자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펑― 펑―
사방에서 날아오는 마법에 놀 대장은 분노에 찬 외침을 토했다.
“크르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