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63화 (63/225)

# 63

18. 새로운 제안(5)

“그럼 저 마법진은 안 쓰는 겁니까?”

에린을 지도하던 김에 재호와 채연도 틈틈이 봐주고 있던 세은에게 질문이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명상을 하던 재호가 어느새 눈을 뜨고 세은에게 질문을 해왔다.

“아, 저거요?”

그제야 마법진의 존재가 생각난 세은이 잠깐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본 재호가 열흘 동안 마치 발전소처럼 고생하며 마나를 쥐어짜 낸 게 생각났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세은에게 거의 하소연하듯이 말했다.

“제가 저거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지 않습니까. 저렇게 그냥 사용도 못해 보고 버려두자니 너무 아깝습니다.”

“흐음…….”

재호의 말에 세은이 고민했다.

에린에게 마법을 가르치려 했는데 신성력을 사용 할 수 있으니 딱히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럼 재호 씨가 쓰세요.”

“그러니…… 예?”

당연히 불필요하단 말이 나올 줄 알았던 재호는 뜻밖의 말에 당황했다.

세은은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마나를 조금 더 잘 느끼게 해주는 마법진이니까, 재호 씨가 한 번 써보세요. 마나야 원래 느끼고 있지만, 더 민감한 곳에서 수련한다고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도움이 더 될 겁니다. 효과는 미미할 수도 있겠지만요.”

“제가 써도 효과가 있는 겁니까?”

“글쎄요……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을 것 같네요. 조금이라도 효율이 생기면 좋은 거죠.”

“아! 그럼 저거 사용법은……?”

열흘 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은 물론, 자신의 수련에 사용하란 말에 다시 기분이 상승한 재호가 물었다.

대놓고 훤히 보이는 재호의 모습에, 세은이 에린을 잠시 두고 마법진으로 다가갔다.

한창 열심히 배우고 있던 에린이 살짝 짜증난 표정이었지만, 방금 전 대화를 들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법진의 시작에 가볍게 마나를 불어넣으면 됩니다. 대신 스스로 수련하는 거니까 조절을 조금 하세요. 너무 지치면 마법진이 발동되어도 수련하기 힘드니까요.”

“아, 네!”

“가지고 있는 마나의 절반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안에서 명상을 하면서 마나를 더 깊이 느끼려고 하면 됩니다. 원래 마나를 조금 활동적으로 만드는 마법진이라, 그 이상의 효능은 없어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열심히 하세요.”

“예!”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다시 에린에게 돌아오니 여전히 짜증이 사라지지 않은 표정으로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세은이 살풋 웃으며 에린에게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아니에요.”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에린은 시치미를 뗐다.

“아닌 표정이 아닌데?”

“진짜 아니에요.”

“에이.”

아직 어린아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한테 하는 것에 비해 세은의 태도가 많이 부드럽고 온화했다.

거기에 가족을 다 잃었다는 안쓰러움도 조금은 포함되어 있었다.

옆에서 집중력 강화 훈련을 하던 채연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에린이는 오빠한테만 심통 부리네?”

“아, 아니에요!”

너무도 확실한 반응에 채연과 세은이 웃음을 지었다.

둘의 웃음 때문에 에린의 얼굴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평소 에린과 하루 종일 붙어 있던 채연은 에린이 세은을 좋아한단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크게 숨기는 것도 아닌데다가, 대화의 거의 모든 주제가 세은으로 흐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채연 자신도 세은에게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에린이 워낙 어리다 보니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마치 연예인을 좋아하는 십대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에린이 나이가 채연 자신과 비슷했다면 신경이 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엔 에린의 나이가 상당히 어렸다.

’진짜 귀엽다니까.‘

완전 귀여운 동생 같은 에린의 모습에 채연이 미소를 지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세은이 에린에게 하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더 길게 말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직까지 서로 존댓말을 하는 재호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자, 다시 시작하자. 한 번에 다 쓰지 말고 기운을 이렇…….”

다시 에린의 지도를 시작한 세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채연이 고개를 몇 번 털어내고 다시 훈련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미국 시민이 세은과 같은 치료 능력을 지니게 됐다고?”

“통역이 전해온 소식입니다.”

“정말인가?”

“미스터 도 일행의 대화를 들어본 결과 확실하다고 합니다.”

“치유 능력자를 키울 수가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마나랑 오러가 아니었는데.”

사노의 보고에 미국 특수 국토 안보국의 펜 국장과 케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물론 케인은 마법사로서의 호기심이 더 강한 표정이었다.

당장 사상 초유의 오션시티 사태를 수습하느라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펜 국장은 급하게 올라온 중요한 보고에 큰 한숨을 내쉬었다.

생기려면 좀 빨리 생길 것이지.

당장 오션시티를 수습하는 데도 치료 능력자가 있으면 일이 더 수월할 건 자명했다.

중상자들을 다 치료해 주긴 했지만, 복구 과정에서 생긴 부상자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제라도 미국인 중에서 치료 능력자가 생겼다는 사실에 감사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각성자를 인위적으로 키우는 것이 가능한 건가, 케인 팀장?”

“허허, 잘 모르겠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석연치 않은 케인의 말에 펜이 다시 물었다.

“있었는데?”

“세은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수준에 오르니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런데 왜 보고를 하지 않았나?”

“아직 이론일 뿐인데다가 오션시티 복구로 여념이 없는 상황이라…….”

“이런 건 미리 말해서 지원을 받아야지! 자네는 당장 연구를 시작하게. 이게 훨씬 중요한 사안일세. 언제 다시 이런 재앙이 닥칠지 몰라!”

“알겠습니다.”

오션시티의 상황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기쁨에 케인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그 와중에 사노가 펜에게 말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왜 각성자의 육성이,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보고가 된 적 없는 치유 각성자의 육성이 가능했는데도 한국에선 그러지 않았냐는 점입니다.”

“한국 정부와 사이가 안 좋지 않았던가?”

“그래도 기본적인 유대 관계는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게이트를 소멸시키기도 했습니다.”

“흐음…….”

사노의 말에 펜의 침음을 삼켰다.

“그 점은 충분히 의문이군. 케인 팀장. 어떻게 생각하나?”

펜의 질문에 케인 또한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고민했다.

“허허. 저의 생각으로 혹시 재능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군요.”

잠시 고민하던 케인이 입을 열었다.

“각성자가 되는 기준은 모르지만, 세은은 그 기준을 알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너무 비약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만, 제가 본 세은이란 사람은 그럴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끄응. 그 정도인가?”

케인의 칭찬에 펜이 다시 침음을 삼켰다.

오션시티에서의 보고를 전부 받았지만 세은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미합중국의 최고 전력인 케인과 로이스가 서로 그를 이기지 못할 것 같다 할 정도라고 할 때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둘이 합공하면 어떤가?」

「그래도 안 됩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로이스. 우리가 합공해도 안 될 사람이라네.」

「케인. 그건 해봐야 알지.」

「아닐세. 내 보기에 자네도 약간 불완전하구만.」

「그게 무슨 소리야? 시비거는 거야 지금?」

「아니, 진심이라네.」

펜은 세은에 대해 물었다가 로이스가 케인이 크게 다퉜던 사건을 떠올렸다.

자존심이 강한 로이스가 케인에게 달려들었지만 케인은 전과 다르게 쉽게 로이스를 제압했다.

‘그리고 했던 말이 가관이었지.’

갑자기 더 강하진 이유를 묻자 케인은 세은의 도움을 받아서라고 말했다.

그 말을 떠올리던 펜이 갑자기 두통을 느꼈다.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런 인재가 나오다니 미치겠군,’

당장은 우연히 미국으로 때맞춰 초청을 해 오션시티의 사태에서도 도움을 받았지만, 이런 일이 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없었다.

게이트를 당장이라도 전부 닫아버리고 싶단 욕구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러나 게이트는 계속 생길 것이다.

결국 게이트에 대해 완벽하게 조사해서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대처였다.

펜은 잠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케인에게 물었다.

“그럼 그에게 물어보는 게 어떤가?”

“통역의 말로는 며칠 동안 명상만 시켰다고 하더군요.”

“명상을?”

“예.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는 힘을 신성력이라고 했답니다.”

“신성력? 설마 바티칸과 연관이 있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본인이 모시는 신의 이름을 에일린이라고 했답니다.”

“그건 어디 신인가?”

“아무리 조사를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문헌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걸 왜 지금 보고 하지?”

“아직 확실한 것이 없어서 더 모아서 보고를 올리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됐어. 다음부터는 세은에 관한 건 바로바로 보고해.”

“예!”

세은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일단 최대한 호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노와 케인이 입을 모아 말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세은 하나만으로도 유럽에서 주도하던 각성자 협회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흠. 하긴 유럽 쪽이 기고만장하기는 하지.”

마치 공평하게 분배라도 한 것처럼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최상위권의 능력을 지닌 각성자가 한두 명씩은 꼭 있었다.

유럽은 그 점을 이용해서 모든 유럽 연합의 각성자들을 모은 뒤 유럽을 권역으로 나누어 파견을 내보냈다.

고급 각성자들의 숫자가 많으니 국제 사회에서도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중국이나 러시아, 또는 미국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물론 작은 나라에선 여러 불만도 많았다.

그러나 전체적인 전력에서는 큰 차이가 났기 때문에 일각의 불만으로 그치고 있었다.

“예. 그가 있다면 태평양을 중심으로 뭉쳐서 유럽이 쥐고 있는 주도권을 가지고 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펜 국장은 사노의 제안에 오늘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또 뭔가?”

또다시 문제가 있다는 말에 펜 국장은 좋았던 기분이 살짝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얼마 전에 미스터 도와 일본 야쿠자들이 충돌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 거기에 그런 일까지 있었으니…….”

“이미 다 끝난 일 아닌가?”

“저희와 야쿠자, 일본 정부는 얘기가 끝났지만 정작 미스터 도에게는 아직 제대로 된 보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게 왜 아직도 안 갔나?”

질책이 담긴 펜의 말에 사노가 재빨리 대답했다.

“야쿠자 쪽에서 무엇인가 준비는 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에서 다른 야쿠자 조직들을 이용해 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자존심이 상한답니다.”

일본의 3대 야쿠자 조직 정도가 되면 단순히 조직 폭력배가 아니라 정치에도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하나가 겨우 한국인 한 명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조공식의 선물을 바친다 하니 일본 정부에서 막고 있던 것이었다.

“쯧. 한 번 잘 처리해 봐. 이번 사태로 느낀 건 어중간한 여러 명의 각성자보다 한 명의 확실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이니까.”

“네!”

“그렇다고 일본 정부 심기를 너무 거스르지 말고. 위에서 싫어해. 아무래도 바다를 끼고 있는 일본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기가 더 좋거든.”

“알겠습니다.”

“뭐,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시국이 아니기는 한데 말이야. 위에 밉보이면 아예 일도 못하니까.”

씁쓸한 현실을 담담하게 얘기하며 펜은 다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조금 더 오션시티 마무리하고 며칠 있다가 세은과 그 일행을 이곳으로 초청해.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해봐야겠어. 그동안 우리가 제안할 만한 것과 줄 수 있는 것들 다 정리해 놓고. 그 우리 국민인 치유사도 미리 대접을 해야겠지.”

“아! 미리 준비해 놓겠습니다.”

“케인 팀장은 바로 연구 들어가고. 연구비는 리미트를 걸지 않을 테니. 정말 중요한 연구야.”

“감사합니다. 꼭 결과를 내겠습니다.”

연구비에 제한이 없다는 말에 케인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짝!

“좋아. 이제 다시 열심히 일을 해보자고.”

펜의 박수를 기점으로 케인과 사노는 국장실에서 각자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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