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57화 (57/225)

# 57

17. 마왕 무르무르(4)

“그대, 짐을 너무 우습게 보는군.”

겨우 케인 한 명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던 세은의 시도에 무르무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폰과 함께 허공을 날고 있었지만, 웅웅 울리던 목소리는 바로 앞에 있는 듯이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박혀들었다.

“시렌, 그대는 몰라도, 저런 저급한 이들로 짐을 막으려 하다니. 자존심이 상하는군.”

“6서클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했어? 방심했다가 뒤통수 맞으면 가는 건 마찬가지지.”

“허어, 걱정하지 말게. 그대를 만난 이상 짐에게 방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말을 마친 무르무르가 그리폰을 조종해서 더욱 높이 솟아올랐다.

세은의 신성 마법이 끊임없이 방해를 했지만 방어에 전념하던 무르무르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긴 힘들었다.

“일단 짐의 힘을 더 키우러 가야겠군.”

펄럭펄럭―

그리폰의 거대한 날개가 지상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급하니 뭐니 하더니 도망가네?”

세은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무르무르에게 말했다.

“허허, 전략이라네.”

세은의 도발을 가볍게 넘긴 무르무르가 그리폰을 조종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캐스팅을 하면서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케인이 급히 캐스팅을 취소했다.

케인이 캐스팅 취소를 하는 것을 기다린 세은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사노를 불렀다.

“사노!”

사노는 세은의 부름에 재빨리 옆으로 다가왔다.

“케인보고 잘 따라오라고 해. 그리고 섣불리 먼저 공격하지 말고, 언제든지 기습에 대비할 수 있게 하라고도 하고. 내가 신호하면 바닥으로 처박으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사노는 빠르게 세은의 지시를 케인에게 전해주었다.

케인은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사노의 말을 들었다.

저 거대한 그리폰이 도시를 휘젓고 다니면 얼마나 많은 피해가 생길지 도저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세은은 케인이 모든 사항을 전달 받자 먼저 몸을 날렸다.

사노를 데려간다면 좋겠지만, 단순히 통역을 위해 지금 사노를 데리고 다니는 건 낭비였다.

타다닥―

거대한 그리폰은 어디를 가든지 눈에 띄었다.

단순히 고개를 들어 그리폰이 보이는 곳으로 달리면 되는 것이었다.

“컨벤션 센터 쪽으로 가는구먼.”

케인이 이동하면서 지속적으로 무르무르의 이동 경로를 전파했다.

세은은 무르무르의 이동 경로를 보면서 이상한 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저쪽은 정확히 리치가 있는 곳인데?”

아마도 자신의 권능을 나눠주었던 리치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감이 안 잡히네.”

파아앙―

세은은 달려가면서도 간간히 빛의 화살을 날려 무르무르를 견제했다.

그러나 작심하고 방어를 하는 마왕에게 이 정도론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가 없었다.

“폐하!”

부활해서 각성자들과 대치하고 있던 리치가 반가운 목소리로 무르무르를 맞이했다.

다행히도 이곳엔 사노의 지시를 받고 지원을 나온 로이스가 있었다.

“짐의 충실한 충복이여. 수고했다.”

“황공하옵니다.”

“이곳에는 좋은 재료가 많이 있구나.”

“폐하의 성에 찰지 모르겠습니다.”

“충분하다. 이곳에서는 시렌, 그자만 조심하면 될 것 같다.”

“에일린의 교황 말씀이십니까?”

리치는 자신을 소멸시켰던 고위 사제를 떠올렸다.

“그렇다. 그자도 이곳에 있더군. 역시 우리만 왔을 리가 없지.”

“어쩐지 강하다 했습니다.”

“허허, 그대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콰앙―

갑자기 달려든 로이스가 리치와 무르무르의 담소를 방해했다.

“더러운 몬스터들! 전부 처리해 주마!”

“호오. 이자는 꽤 쓸 만한 데스나이트가 될 자질이 있구나.”

“신이 봐도 가장 좋은 재료 같습니다.”

리치를 향한 로이스의 공격을 원거리에서도 가볍게 막아낸 무르무르는 눈을 빛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무르무르!”

쾅!

“이런이런. 그대, 역시 빠르군.”

어느새 쫓아온 세은이 로이스의 무모한 행동을 보고 무르무르를 제지했다.

탁―

가볍게 로이스의 앞에 도착한 세은이 자신의 앞에 있던 리치에게 빛의 검을 휘둘렀다.

콰앙―

하지만 공격은 막히고 말았다.

무르무르가 공중에서 마법을 이용해 빛의 검을 막은 것이다.

“허허. 짐의 충실한 충복에게 이 무슨 무례한 짓인지.”

“더러운 시체 애호가 새끼.”

방금 전의 행동으로 무르무르의 전략이 뭔지 알아챈 세은이 욕설을 내뱉었다.

도시의 모든 각성자와 시민들을 언데드 군단으로 만들어 영역을 넓힐 생각인 것이다.

무르무르 자신은 하늘에서 사람들을 방패로 삼으며 세은을 견제하는 동안 리치들을 이용해 세를 불리는 전략이었다.

알지만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기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은으로서는 그 전략에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르무르를 추락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무슨 방식을 사용해서라도 요격해서 소멸시켜야 했다.

새은이 케인에게 새로운 지시를 하달했다.

“케인! 버드, 윙, 어택. 오케이?”

“허허, 이해했네.”

무르무르가 지형적 이점을 가지게 해주는 이동수단인 그리폰부터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6서클인 케인이 그리폰을 집중적으로 노리면 무르무르로서도 행동에 제한이 걸린다.

그런 식으로 무르무르의 이동을 방해서 잡을 생각이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내 앞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격의 마나, 적의 심장을 관통하는 전격의 심판. 콜 라이트닝!”

꽈릉!

케인이 만들어 낸 번개가 그리폰의 날개를 노리고 내려쳤다.

“흥, 가소롭다.”

무르무르가 방어막을 펼쳐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에일린. 홀리 스피어!”

빛으로 된 화살이나 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빛의 창이 세은의 손에서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파괴력이 조절이 되지 않아 도심에서는 쓰기 힘들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중을 향해 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콰아앙!

여태까지 들렸던 그 어떤 폭발음보다 강렬한 소리가 도시를 가득 채웠다.

무르무르의 마기와 세은의 신성력이 부딪혀 엄청난 충격파를 만들어 내었다.

“크윽. 시렌 이놈! 에일린이 만든 반칙답다.”

“니들이 72마리나 있는 게 더 반칙이지.”

세은은 쉬지 않고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유일하게 방금 전의 충격파에서 몸을 가눌 수 있었던 케인 역시 바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놈!”

리치가 노호성을 지르며 세은을 공격해 들어갔다.

스걱―

그러나 갑자기 옆에서 오러가 끼어들어 그런 리치를 방해했다.

“헤이, 네 상대는 나라고.”

어느새 균형을 회복한 로이스가 리치에게 달려들었다.

어차피 자신은 공중에 있는 무르무르를 잡지 못한다. 그럴 바에는 리치를 잡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당장은 공명심보다도 자신의 조국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니까.

단 한 명의 동료나 시민이라도 더 이상 언데드가 되는 것을 막고 싶었다.

“이익! 방해하지 마라!”

“방해는 네가 하는 거지!”

리치는 로이스의 빠른 공격에 당황했다.

그리고 그것은 무르무르도 마찬가지였다.

세은을 상대하는 데 집중하자니 오직 그리폰만을 노리는 케인이 위협적이었다.

그렇다고 케인을 노리자니, 세은의 공격이 언제 자신을 향할지 몰라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허. 진퇴양난의 상황이군.”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하는 방법도 있었다.

아니면 방어에 치중하면서 저 마법사의 마나가 다 고갈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괜찮았다.

하지만 딱 하나.

마왕의 자존심이 그런 장기전으로 넘어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쾅!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세은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에일린의 총애를 받는 세은의 신성력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중간계뿐만이 아니라 천계까지 아울러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의 실력자. 아니, 최고의 위치를 다툴 수 있을 정도의 존재였다.

결국 무르무르는 자존심을 한 번 접기로 마음먹었다.

‘이 치욕은 죽음으로 갚아준다.’

참고 참았다가 한 번 공격을 감행해서 대세를 바꾼다.

상대가 방심하고 있을 때 한 번의 공격으로 유리한 위치를 잡고 수세에서 우세로 돌아서야 했다.

반대로 세은은 당장 무르무르를 끝장내겠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쾅― 쾅― 콰앙―

세은의 신성 마법과 케인의 마법이 잠시의 휴식도 없이 공중에서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로 일어난 먼지로 인해 무르무르와 그리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경천동지할 전투였다.

그러나 정작 무르무르에게 아무런 타격이 없다는 것을 세은과 케인은 느낄 수 있었다.

“세은! 이대로는 마나가 부족할 것 같구먼.”

대충 케인의 말을 알아들은 세은은 혀를 찼다.

자신과 무르무르라면 몰라도 케인은 마나가 고갈되는 시점이 분명히 온다.

되도록이면 그전에 승부를 봐야 했다.

세은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마땅한 높이의 건물이 있는지 탐색했다.

마침 적당한 높이의 건물 하나가 그리폰의 근처에 우뚝 서 있었다.

문제는 건물로 올라가서 무르무르에게 뛰어드는 그 시간 동안, 케인 혼자서 견제가 가능할지였다.

“흐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케인의 마나가 고갈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결국 결정을 내린 세은이 케인에게 말했다.

“헤이, 맥시멈 파워.”

“아, 알겠네.”

케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을 요구한 세은은, 무르무르가 케인에게 신경을 뺏길 순간을 기다렸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내 앞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염의 마나, 어리석은 적의 죄악을 정화하는 화염의 폭풍…….”

평소보다 더 긴 캐스팅이 이어질수록, 막대한 마나의 유동과 함께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모두 물러서!”

케인이 발동하는 마법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로이스가 다른 각성자들에게 경고를 내질렀다.

후우우웅―

그리고 동시에 케인의 앞에서 허리케인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작게 시작한 허리케인이 점점 커다랗게 그 크기를 불려 나갔다.

“……우리의 적에게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라. 파이어 스톰!”

화르륵―

케인의 캐스팅이 끝남과 동시에 허리케인에 뜨거움 화염이 작열했다.

온통 불길로 뒤덮인 허리케인은 마치 지옥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좋아.”

무르무르는 그리폰이 화염의 폭풍에 휩쓸리지 않게 조금 더 위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세은은 무르무르가 자신을 견제할 수 없는 그 짧은 틈을 노렸다.

파앗―

순식간에 건물 옥상까지 오른 세은이 그리폰의 등을 목표로 뛰어올랐다.

“감히!”

그동안 쌓인 먼지와 파이어 스톰에 가린 탓에 이제야 세은을 발견한 무르무르가 다급하게 세은을 공격했다.

쾅!

세은이 빛의 검을 휘둘러 무르무르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폭발의 반탄력으로 세은의 몸은 추진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젠장!”

자신이 추락하는 것을 느끼자 세은은 일단 급한 대로 눈앞에 보이는 그리폰의 날개에 빛의 검을 꽂아 매달렸다.

콱―

“꾸에에엑!”

세은의 검에 날개가 관통당한 그리폰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진정해라!”

그러나 마기에 길들여진 그리폰에게 세은의 신성력을 극약이었다.

날개가 불타는 고통에 그리폰은 허공에서 이리저리 몸부림쳤다.

쾅!

몸부림치던 그리폰이 결국 빌딩에 그 육중한 몸을 부딪쳤다.

세은은 반대 손에 다른 빛의 검을 소환해 다시 그리폰의 날개에 박아넣었다.

“꾸어억!”

결국 그리폰은 견디지 못하고 또 다른 빌딩에 다시 부딪혔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무르무르도 더 이상 그리폰의 등 위에서 농성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렌! 이 무엄한!”

무르무르가 먼저 세은을 떨어트리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

적어도 매달린 동안 자신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할 것이었다.

콱!

“꾸엑!”

그러나 세은은 끈질기게 손을 번갈아 가며 그리폰의 날개를 난도질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고통에 그리폰은 거의 추락하기 직전이었다.

너무나 흔들리는 그리폰의 비행에 무르무르 역시 제대로 세은에게 공격을 적중시키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콜 라이트닝!”

무르무르가 날개에 매달린 세은에게 정신을 집중한 사이, 케인의 마법이 그리폰의 반대 날개에 적중했다.

“꾸어어억!”

결국 그리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거대한 빌딩과 부딪힌 그리폰이 힘을 잃고 도로를 힘차게 쓸며 추락했다.

이미 도시의 상황은 아수라장.

“자, 이제 이차전이다.”

두 발을 땅에 디딘 세은이 고통으로 널브러진 그리폰 위의 무르무르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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