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56화 (56/225)

# 56

17. 마왕 무르무르(3)

세은이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미국의 각성자들까지 이상한 것을 알아채고 게이트 주변에 가득 포진해 있었다.

“미스터 도!”

사노가 급하게 세은에게 달려와 물었다.

“갑자기 언데드가 사라지더니 게이트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언데드는 내가 다 처리했고, 게이트에서 사람들 전부 물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케인을 제외하고 전부 다 멀리 물러나라고. 지금 당장.”

세은의 말에 사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래도 무슨 일인지 설명은 해주셔야…….”

쿠르르릉―

그사이에도 진동과 굉음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세은은 척하면 척 알아듣지 못하는 사노에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놈이 나올 것 같으니 사람 다 물리라고!”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세은의 말을 이해한 사노가 급하게 각성자들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원형의 포위망 진형은 그대로 유지했다.

“무슨 일인가?”

뒤로 물러나라는 지시에 케인이 사노에게 다가와 물었다.

“미스터 도의 지시입니다. 전부 물리라고 하더군요. 꽤 위험한 놈이 나올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럼 오히려 다 같이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일단 그래서 포위를 유지하고 천천히 물리게 했습니다.”

“알겠네. 나는 남아 있어도 되겠지?”

“아, 그렇습니다. 어차피 케인은 예외라고 했습니다.”

“허허. 나는 인정한다는 말이구먼.”

사노의 말에 케인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겠네. 그럼 나는 세은의 옆에 자리를 잡겠네.”

“저도 금방 가겠습니다.”

사노가 포위망이 적당한 거리까지 물러난 것을 확인하고 세은에게 다가갔다.

그사이에도 게이트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피웅―

이윽고 강렬한 파공음과 함께 오션시티의 중심부에서 검정빛의 기둥들이 솟아올랐다.

애초 예상보다 더 넓은 범위에 세은의 미간에 금이 그어졌다.

“사기를 이용해서 마계와 비슷하게 바꾸는 건가?”

“무슨 말입니까? 미스터 도.”

살갗을 파고 도는 불쾌한 느낌에 세은이 중얼거렸다.

사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세은은 주변 상황의 정확한 파악에 나섰다.

지금 발동된 마법진은 언데드로 변해 버린 시민들의 원한과 사기를 이용해서 마법진 안을 마계의 환경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마왕이 맞나본데…….”

예상이 맞은 것을 확인한 세은이 난처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게이트와 함께 소환된 마왕들이 소기의 준비를 마치고 슬슬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정말로 운이 좋게도 미국은 자신이 의뢰를 받아 왔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앞으로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케인이랑 얘기를 해봐야겠어.’

점점 강해지는 마기를 느끼며 세은이 마음을 정했을 때였다.

“헤이! 케인!”

“로이스! 왔는가?”

“좀 늦었어. 그나저나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야?”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에 암갈색 눈을 가진 젊은 청년, 로이스가 가볍게 뛰어 들어오며 케인과 인사를 나눴다.

“여기 있는 세은의 도움으로 언데드는 모두 처리했습니다.”

케인을 대신해 사노가 로이스의 질문에 대답했다.

“호, 얘가 그 유명한 동양인이야?”

케인과 더불어 미국의 주요 전력인 로이스는 세은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세은을 잡기 위해 한국으로 파견을 방안까지 검토되었다는 얘기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네. 아주 강한 친구야.”

케인이 로이스의 눈에서 새어나오는 호승심을 읽고 말했다.

완전한 6서클에 오른 케인의 눈에 로이스의 부족한 점이 보였다.

‘전에는 로이스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겠구먼.’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세은을 로이스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스터 도, 인사하시죠. 미합중국의 기둥 중 하나인 로이스 마르코입니다.”

“헬로. 반가워.”

자신을 소개하는 거라는 걸 눈치챈 로이스가 먼저 넉살좋게 세은에게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세은도 가볍게 손을 마주 건네며 로이스의 손을 붙잡았다.

“도세은.”

“하하, 딱딱한 친구네. 이 친구 원래 이렇게 말이 없어?”

별다른 말이 없는 세은을 보며 로이스가 사노와 케인에게 물었다.

사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말이 없는 사람이니 이해해.”

“하하, 나는 과묵한 친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괜히 폼 잡는 것 같잖아.”

“허허, 로이스…….”

“응?”

“흐음…… 아닐세.”

로이스의 말에 경쟁심이 섞여 있다는 것을 눈치챈 케인이 경고를 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말로 해봤자 로이스의 자존심만 건드리는 꼴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실전에서 세은의 실력을 실제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로이스의 말투가 살짝 공격적이라는 것을 느낀 세은이 사노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였다.

쿠구구궁―

마법진의 발동이 모두 끝났는지 범위 안의 하늘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혔다.

“쯧. 코어를 찾을 수 있으면 더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너무 느껴지는 게 많아서 곤란해.”

리치들이 도시를 파괴하면서 여기저기 많은 장치를 해놔서 모두 부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그걸 부수러 간 사이에 마왕이 게이트에서 나오기라도 하면 그 피해가 더 막심할 것이 분명했다.

“나온다.”

게이트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마기에 세은이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세은의 경고가 아니어도 케인과 로이스는 강력한 힘을 느꼈다.

긴장된 표정으로 게이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스윽―

이윽고 게이트에서 거대한 매의 부리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적어도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몸통과, 날개를 가진 매, 그리폰이었다.

그리고 그 그리폰의 등 위엔 금과 각종 보석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는 비교적 왜소한 중년의 남성이 공작의 관을 쓰고 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무르무르.”

마왕의 모습을 확인한 세은이 마왕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무르무르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며 괴상하게 웅웅 울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짐의 새로운 백성들인가?”

가볍게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무르무르가 말을 이었다.

“모두 생기가 넘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게이트에서 사람이 나온 심상치 않은 광경.

포위를 구축하고 있던 모든 각성자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오! 짐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닐 텐데, 다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군.”

무르무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흑수정 지팡이로 땅을 짚었다.

“매우 기분이 좋으니…… 지금 충심을 갖고 자살하는 자는 짐의 특등 백성으로 삼을 것을 약속하노라.”

“미친 새끼.”

무르무르를 제외하고 침묵에 잠겨 있던 이 순간.

세은이 말이 침묵을 가르며 무르무르의 귀에 선명하게 박혀들었다.

“멀쩡한 놈이 하나도 없어. 한 번 죽었으면 갱생해야 하지 않아?”

무르무르가 고개를 돌려 세은을 바라보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허어. 어쩐지 짐의 충실한 선발대가 사라졌다 했더니…… 시렌, 그대군.”

무르무르가 한 손으로 자신의 코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에일린 그년의 천박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했네.”

“감이 많이 죽었네. 나를 못 알아보고.”

“결계에서 느껴지는 힘이 충만해서 잠시 취했을 뿐이라네. 개 한 마리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 진정한 왕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네.”

“병신. 바알도 못 이기는 새끼가 무슨 진정한 왕이야. 시골 동네 왕이겠지.”

“그 버릇없는 말버릇은 여전하군.”

무르무르의 말에 세은이 코웃음을 쳤다.

“이상하게 니들은 실력도 안 되면서 입은 살아 있다. 그렇지?”

“그대도 여전하군. 하지만 짐이라고 놀고만 있던 건 아니라네.”

쿵―

무르무르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흑수정 지팡이로 다시 한 번 땅을 강하게 짚었다.

세은이 리치들을 소멸시킴으로써 힘을 잃었던 언데드들이 동시에 부활했다.

“구워어어.”

“언데드가 부활했답니다! 지원 요청입니다!”

“젠장!”

무전이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다시 울려 퍼지는 언데드들의 울음소리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노는 재빨리 각성자들을 원래의 위치로 파견 보냈다.

“마계인 것처럼 힘을 막 쓰네?”

“짐의 충실한 수하들이 충심을 다한 덕분이지.”

세은은 자신이 소멸시켰던 리치들 역시 부활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사노.”

“예?”

세은은 우선 정신없이 지시를 내리고 있던 사노를 불렀다.

“로이스인가 뭔가 시켜서 리치들 다 잡으라고 해. 처음에 내가 잡으러 다녔던 그놈들.”

“아, 알겠습니다. 대체 저건 뭡니까?”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빨리 움직여. 그리고 케인한테는 나 도우라고 해.”

“알겠습니다.”

사노는 재빨리 로이스에게 지시를 하달했다.

그러나 로이스는 사노의 지시를 거부했다.

“무슨 소리야, 사노. 딱 봐도 저놈이 대장인데 나보고 어딜 가라는 거야?”

“여기는 저 두 사람이 맡아줄 테니 도시를 부탁해. 자네 말고는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

그러나 로이스가 바로 움직이지 않고 사노를 노려보았다.

미동조차 없는 사노의 시선에 강하게 불만을 내뱉으며 말했다.

“젠장. 이 문제는 나중에 꼭 따질 거야. 알았어?”

사노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로이스가 자리를 박차고 이동했다.

그사이 세은은 무르무르와 대치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해?”

“허어. 이렇게 스스로 굴러 들어온 곳을 포기하란 말인가? 정복이야말로 삶의 이유 아닌가.”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 하지 왜 무덤으로 기어 들어와?”

“자신만만하군. 그대의 강함은 익히 알지만, 결과는 해봐야 알 것이다.”

“안 해봐도 결과가 보이는데, 귀찮게 굴어.”

세은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빛의 검을 만들어서 무르무르에게 달려들었다.

화악―

그러자 무르무르가 그리폰을 조종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몸길이만 장장 3미터인 그리폰이 비행을 시작하자 주변에 엄청난 광풍이 몰아쳤다.

“그대는 하늘을 날 수 없지. 천벌을 사용하면 다른 인간들도 피해를 볼 것이야.”

눈앞의 인간 중, 자신의 비행을 구속할 만한 사람이 케인 한 명이란 사실을 알아낸 무르무르의 전략이었다.

일대일에선 절대로 세은을 이길 수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이들을 방패로 삼으면 충분히 견주어 볼 만했다.

“시발. 진짜.”

순식간에 빌딩보다 높게 솟아오른 무르무르를 보며 세은은 욕설을 내뱉었다.

옆에 있던 케인에게 짧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했다.

“헤이 케인. 디스, 그라비티, 다운. 오케이?”

“허허. 알겠네.”

다행히 단순한 단어로도 세은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그리폰의 비행을 저지하기 위해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에일린. 홀리 레인.”

6서클 마법사 한 명의 마법으로는 마왕을 끌어내릴 수 없을 게 자명했기 때문에 신성 마법을 발동해 무르무르의 움직임을 최대한 제한했다.

케인의 캐스팅을 방해하기 위해 땅에서 무르무르가 소환한 언데드들이 솟아올랐다.

쿠구궁―

“죽인다. 그분. 적.”

별다른 캐스팅이 없었음에도, 마왕의 소환물들답게 모두 이성이 있는 고위 언데드였다.

“에일린. 턴 언데드.”

부스스―

그러나 세은 역시 가벼운 시동어만으로 모든 언데드들을 다시 지하로 돌려보냈다.

상극인 신성력과 흑마법은 더 강한 힘을 지닌 자가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리고 단순한 힘으로 세은과 견줄 수 있을 마왕들은 적어도 서열 5위 내에 들어야 했다.

무르무르는 리치들이 열심히 만들어 놓은 결계의 힘과, 그리폰의 도움을 받아 세은과 싸울 작정이었다.

반대로 세은은 케인의 도움을 받아 무르무르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단숨에 그의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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