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53화 (53/225)

# 53

16. 6서클 대마법사(3)

케인은 온전한 6서클이 되고 더욱 많은 걸 볼 수 있었다.

특히 마나의 다양한 가능성에 눈을 떴다.

그동안 마법사들은 가장 기본인 4대 원소에 기반을 둔 마법만을 사용했다.

가장 표준의 마나가 불, 바람, 물, 땅이었으니 당연했다.

거기서 조금 발전해서 얼음 계열의 마법을 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마나를 볼 수 있게 된 케인은 마나가 4대 원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의 정신에 간섭할 수도 있었는데다, 국지적이지만 중력 같은 힘까지 간섭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나를 이용하여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도 가능했다.

말 그대로 마나의 활용도는 무한했다.

그리고 옆에서 세은이 툭툭 던져주는 말은 그런 케인의 시야를 더욱 넓혀주고 있었다.

크와앙!

“일단 잡다한 애들 좀 처리해 봐.”

“허허. 게이트 봉쇄 의뢰를 받아서 온 건 자네 아닌가?”

“뭐 별것도 아닌 애들 가지고그래?”

잔뜩 위협적인 자태를 뽐내며 울음을 터트리는 몬스터들을 앞에 두고, 둘은 태연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른 사람들로서는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긴, 도움받은 게 크니 이 정도야 흔쾌히 돕겠네.”

케인은 순식간에 마법 하나를 캐스팅하더니, 몬스터 무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파이어 레인!”

허공에서 수십 발의 파이어 볼이 땅으로 낙하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키는 세기말적인 광경에 함께 게이트에 들어온 사노와 채연, 재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치 처음 세은의 무력을 봤을 때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세은은 오히려 케인이 마법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그에게 조언을 더했다.

“이제 한 번에 마법을 동시에 시전할 수 있을 텐데? 도망가는 놈들도 한 번에 잡으면 되잖아.”

“흐음.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어쩐지 가능할 것 같구먼.”

“뭐, 재능이 있으면 6서클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게 더블캐스팅이기는 하지만.”

“허허. 내가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건가?”

“그런 뜻은 아닌데. 일단 마무리부터 해.”

케인은 세은의 말대로 양손에 각기 다른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키이잉―

케인의 왼손에 파랗게 빛나는 마나가, 오른손에 빨갛게 빛나는 마나가 모여들었다.

“헐…… 저게 가능해?”

일행 중에서 케인을 제외하고 유일한 마법사인 재호가 상식을 벗어나는 케인의 더블 캐스팅에 두 눈을 의심했다.

이윽고 완성된 두 개의 마법이 케인의 손에서 동시에 발현되었다.

“아이스 윌! 파이어 애로우!”

콰지직―

순식간에 세워진 얼음의 벽이 몬스터들의 퇴로를 막아 세웠다.

그리고 다량의 불의 화살이 퇴로가 막혀 우왕좌왕하는 몬스터들을 꿰뚫었다.

“한결 수월하구먼.”

“그렇지?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해.”

“그나저나 게이트 안이라고 해도 별로 다를 건 없는 것 같네.”

“어디든 다 비슷하지.”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이 유유자적한 세은과 케인의 대화에 비해, 주변의 풍경은 매우 엉망이었다.

화염 계열 마법에 죽은 몬스터들이 하나같이 고기 타는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정확히 무엇을 도와주면 되나?”

케인의 물음에 세은이 답했다.

“첫 번째는 탐색.”

“무슨 탐색 말인가?”

“게이트의 전체적인 지형이나 몬스터를 제외한 생명체의 탐색이지.”

“굳이 내가 필요 없는 작업인 것 같네만?”

“아무리 그래도 땅에서 보는 것보다야 하늘에서 보는 게 더 정확하지 않겠어?”

“그렇긴 그렇다네.”

탐색의 속도로는 세은이 케인보다 더 빠르겠지만, 전체적인 지형을 보는 것은 하늘에서 확인하는 게 더 정확했다.

그리고 6서클에 오른 케인은 플라이 마법을 쓰면서도, 혹시 모를 공중 몬스터에 자신을 지킬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보스 몬스터가 있으면 잡지 말고 위치만 파악해.”

“사냥하지 말고 확인만 하라는 말인가?”

“그래, 그거 잡으면 게이트 출구 열리니까.”

“열리면 안 되는 건가?”

“상관은 없는데, 열리기 전과 열리고 난 후를 한 번 비교해 보고 싶어서.”

“허어. 이거 우리보다 더 게이트에 대해 열심히 조사하려 하는군. 얼마 만나지 않았지만 이런 것에 의욕을 불태울 성격은 아닌 것 같네만.”

“맞는 말이긴 한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가만히 있기에는 걸리는 점이 많거든.”

“그렇군. 뭐 우리에게는 더 좋은 일이지. 자네 같은 실력자가 게이트를 조사한다니 말이네.”

케인은 허허롭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내게 부탁할 일은 탐색뿐인가?”

“아니, 더 할 일이 있는데 일단 나머지는 게이트를 정리하고 나서 해야 할 일들이야.”

“그렇군. 그럼 일단 탐색을 하고 오겠네.”

적극적인 케인의 행동에 세은이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그럼 그동안 여기서 할 일을 준비하고 있지.”

“알겠네.”

휘익―

플라이 마법을 발동한 케인이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았다.

그러고는 일행의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마법은 저게 부럽단 말이야.”

채연이 세은에게 물었다.

“뭐가요?”

“하늘을 날 수 있는 거.”

간단하게 질문에 대답한 세은이 채연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 근처의 몬스터를 잡고 있으면 되겠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지?”

“……알죠.”

대전의 게이트에서 충분히 겪어본 일이었다.

설마 했는데 이번 게이트도 수련의 연장이었다.

“에휴…….”

옆에서 재호 역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미국까지 와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그러게 말이야.”

“이번 일이 끝나면 놀게 해줄게.”

주거니 받거니 한탄을 하던 둘을 향해 세은이 당근을 던졌다.

“정말요?”

“정말입니까?”

순식간에 축 처져 있던 채연과 재호가 반짝이는 눈으로 세은에게 물었다.

세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사람이 조금은 쉬어야 효율이 높아지죠.”

‘조금은’이라는 단어가 조금 걸렸지만, 둘은 세은의 말에 의욕이 불타올랐다.

“그렇죠. 그럼 당장 시작할까요?”

“에이. 물어보지 말고 시작해요. 우리!”

채연과 재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싸울 채비를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있는 방향은 여기서 동쪽. 걸어서 이십 분 정도니까 조심해서 다녀와.”

이번 게이트에도 별다른 위협이 될 만한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채연에게 몬스터의 위치만 알려주었다.

자신은 여기서 케인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준비할 일이 있었다.

“네! 금방 다녀올게요!”

“다녀오겠습니다.”

“네. 무리는 하지 말고요.”

“하하, 알겠습니다.”

둘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세은이 품에서 하나의 돌을 꺼냈다.

“그것은 마나 스톤 아닙니까? 미스터 도?”

각자가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라지자, 세은과 둘이 남게 된 사노가 물었다.

“맞아.”

세은은 사노의 물음에 간단하게 대답하며, 마정석을 위치시킬 만한 적당한 공터를 찾았다.

“이 정도 넓이면 되겠지?”

세은은 적당한 공터를 찾아 중앙에 마정석을 위치시켰다.

“마나 스톤으로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이걸로 마법석을 만들어 보려고.”

“마법석?”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사노가 단어를 직역했다.

“매직 스톤이란 말인데, 그게 무엇입니까?”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돌.”

세은의 설명에도 사노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많은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

세은이 말한 마법석은 일종의 마법 스크롤이었다.

마나가 없는 사람이라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 물품.

제작자가 마나를 불어넣어야 하는 스크롤과는 달리, 마력석이나 마정석을 이용하면, 돌이 품고 있는 마나를 모두 소진할 때까지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순수한 마나의 집약체인 마력석과는 달리 마정석은 몇 번의 정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6서클 마법사가 있으니 굳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지.’

케인은 상당히 힘들겠지만 마정석을 이용한 마법 물품의 제작법을 얻게 되는 것이니 그리 큰 손해는 아니었다.

다른 것보다 이런 마법 물품은 위급 상황에서 사용자를 구해줄 수 있단 게가장 큰 메리트였다.

‘크기가 좀 작으니까 파이어 애로우면 되겠지.’

세은은 대충 필요한 마법진을 발로 쓱쓱 그려넣었다.

어차피 제대로 된 계산은 케인이 다시 해야 한다.

“이럴 때는 마법사가 부럽다니까.”

세은은 이계에서 마법을 배우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한 실패.

아예 마나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

신성력을 이용해 마나를 감지하는 것과 마나를 느끼는 건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각각의 장단점은 있지만, 치료와 정화 그리고 방어에 특화된 신성력보다, 전투에서는 마법이 훨씬 유용하다고 세은은 생각했다.

‘하긴…… 안 죽는 게 제일 중요하기는 한데.’

공격은 막고, 다치면 치료한다.

듣기로는 아주 단순한 이 행위는 세은의 생존에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다.

완전하게 신성력을 다루기 전까지 죽을 뻔한 위기도 숱하게 넘겼지만, 목숨만 붙어 있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성기사와 사제의 조합을 두고 합법적 언데드 군단이라 부르던 사람들까지 있었다.

“아, 혹시 지구에서도 사제나 성기사를 키울 수 있으려나?”

순간 머릿속을 번뜩이며 스쳐 지나간 생각에 세은이 눈을 빛냈다.

까다로운 조건이 붙겠지만 한 번 실험을 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같았다.

전투에서 사제가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

“하면 할수록 오히려 일이 많아지는 기분이야.”

게이트에 스스로 대비하게 만드는 게 결국에는 세은이 귀찮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차피 마왕이 게이트에서 나온 이상, 조용히 있는 건 불가능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오피뉴에서도 교단의 도움을 받아 겨우 막아냈던 마왕을, 현재 지구의 각성자들이 막기엔 요원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제로 만들어야 하지?”

자신이야 직접 여신을 만난 적이 있으니 그 존재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이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신성력을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

지구에서도 교단의 사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는 몰랐다.

“사이비 교주 소리 듣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흔히 지구에 퍼진 수많은 종교들을 떠올리며 세은은 피식 웃었다.

지구에서도 교황 노릇을 해야 할지도 모를 것 같았다.

“흠. 그런데 만약에 성공한다 하면 다른 종교들은 그대로 망하는 건가?”

세은의 인도에 따라 사제나 성기사가 생기면, 기존의 종교들은 아무래도 의심을 받을 것이 자명했다.

눈으로 보이는 이적을 행하는 종교와, 그렇지 않은 종교는 그 차이가 명백했다.

그 누구라도 눈에 보이는 이적을 행하는 종교에 쏠릴 것이 분명했다.

“뭐…… 일단 이것도 내 생각대로 된다는 가정이니까.”

마법진의 대략적인 모양을 그린 세은은 적당한 나무를 찾아 등을 기대고 휴식을 취했다.

하릴없이 그런 세은을 지켜보던 사노도 엉거주춤 세은이 쉬고 있던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한동안 아주 조용한 휴식이 이루어졌다.

“이보게! 세은!”

얼마나 그렇게 쉬었을까? 하늘에서 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그렇게 크진 않더군.”

“게이트마다 크기 편차가 큰 모양이네.”

마왕들이 있던 게이트의 크기가 아무래도 더 큰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일행들이 몬스터와 단둘이 싸우고 있더구먼.”

“설마 도와준 건 아니지?”

“허허.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는 사람이라네. 방해하지 않았지.”

“뭐, 두 사람은 잘 하고 있어?”

“그렇다네. 특히 마법사 쪽의 캐스팅 속도는 나도 놀랄 정도더군. 미국에도 그 사람보다 빠른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네.”

“그래서 데려온 거야.”

케인의 칭찬에 세은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봐줘야 할 사람이기도 하고.”

“괜찮군. 이왕 가르쳐야 한다면 재능 있는 사람이 재미가 있지.”

“글쎄. 마나에 대한 재능은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으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걸.”

“그런가? 그래도 자네 일행이니 범상치는 않겠지.”

“그건 나중에 직접 확인하고, 하여튼 특이한 점은 없었어?”

“그렇다네. 특히 강한 몬스터는 보스를 제외하고 없었어.”

“그럼 보스를 제외하고 마정석을 가지고 있을 만한 몬스터는?”

“없었다네.”

“아쉽네.”

아무래도 여기 코네티컷의 게이트는 대전과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일단 저 마법진 좀 봐봐.”

“음? 저건 무슨 마법진인가?”

케인은 질문과 동시에 마법진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처음 보는 마법진의 모습에 또다시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저기 가운데에 있는 것은 마나 스톤 아닌가? 왜 중앙에 있는 거지?”

“마법 물품 제작 마법진.”

호기심으로 가득 찬 케인을 보며 세은이 대답했다.

“마정석을 원료로 마법을 발동할 수 있게 하는 거지.”

“오? 마나 스톤의 마나를 이용해서 마법을 시전 한다는 말인가? 과연, 그럴 수도 있겠어. 하지만 마나의 흐름과 구성이…….”

케인은 세은의 말에 더욱 신이 나서 생각에 잠겼다.

“한 번 만들어봐.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테니까.”

세은은 불타오르기 시작한 케인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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