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16. 6서클 대마법사(2)
케인이 세은의 조언을 듣고 수련실에 들어간 지 어느새 사흘이 지나고 있었다.
사노는 절대로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케인의 신신당부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되자, 사노는 물론 다른 각성자들까지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미스터 도. 정말 괜찮은 겁니까?”
“괜찮다니까.”
“그래도 케인은 벌써 3일이나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정 그렇게 걱정이 되면 들어가 보든가. 대신 뒷일은 알아서 책임지고.”
세은의 말에 사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리를 싸맸다.
조금만 있으면 케인이 수련실에 들어간 지 나흘이 된다.
그리고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케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세은이 이렇게 얘기하니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그런데 전에 세은 씨가 대화하는 걸 들어보니 6서클은 뭔가 다른 것 같은데, 대체 뭐가 그렇게 다른 겁니까?”
정재호가 세은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마법사이다 보니 궁금한 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세은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6서클부터는 마나가 보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나가 보인다는 말이……?”
“아, 실제로 보이는 건 아니고, 너무 선명하게 느껴지다 보니 보인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하더라고요.”
“단순히 그런 차이입니까?”
세은은 고개를 저었다.
“마나가 보인다면 모든 게 보이는 겁니다. 마나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마법의 발동할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 심지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나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자신을 공격해 와 마나가 흐트러지면, 바로 알 수도 있죠.”
이른바 초인의 경지였다.
다른 사람의 수준이 보인다.
누구가가 다가오거나 공격해 오면 마나가 흐트러지는 것도 느낀다.
“또한 마나가 보이니 더 정밀하게 컨트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갑자기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세은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던 재호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재호 씨가 6서클이 되면 알게 될 겁니다.”
더 이상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세은은 추가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럼 오빠는 그런 걸 다 느끼는 거예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채연이 세은에게 물었다.
채연의 물음에 사노와 재호의 시선도 세은에게로 향했다.
“나는 조금 다른데.”
“어떻게요?”
“그러고 보니 그게 제일 궁금합니다. 마법사도 오러 사용자도 아니신데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알고 계시는지. 아! 물론 세은 씨의 능력이라면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궁금합니다.”
“나는 마나를 보거나 그런 게 아니야.”
“그럼요?”
세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세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필요할 때마다 내 힘을 사용해서 탐색하는 거지.”
“그게 무슨 힘입니까?”
“흐음.”
“에이. 이제 알려주세요. 엄청나게 비밀이에요?”
“그건 아닌데.”
잠시 고민하던 세은은 굳이 끝까지 숨길 필요가 없을 사실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신성력이라고 하면 되겠네.”
“신성력이요?”
“지구에 있는 신은 아니고, 다른 곳에 있는 신?”
“에?”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말에 모두의 얼굴에는 더 깊은 의문이 깃들었다.
세은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뭐, 이해할 필요는 없고. 하여튼 내가 필요할 때 힘을 이용해서 마나랑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그럼 항상 그런 건 아닙니까?”
“그렇죠. 굳이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 필요까진 없으니까요.”
세은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면 느낌이 오기는 합니다.”
말을 하면서 세은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사노를 바라보았다.
만에 하나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처신하라는 의미였다.
세은이 경고를 알아들은 사노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안 그래도 케인은 물론 로이스도 능력 테스트에서 그런 말을 하더군요. 주변에 일정 거리로 다가오는 것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로이스? 그 사람도 마법사인가?”
“아! 로이스는 모르시겠군요. 로이스는 오러 각성자입니다.”
그 말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러 마스터인가 보군.”
“맞습니다. 바로 이 둘이 미합중국 전력의 핵심입니다.”
듣다보니 사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세은이 물었다.
“그런데 로이스란 사람도 심장에 오러 홀을 만들었나?”
“그렇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놈도 반푼이네.”
세은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한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 명확한 태도에 사노가 세은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말하는 겁니까?”
“전에도 말했지만 오러는 심장에 쌓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오러 마스터란 놈이 심장에 오러를 쌓아? 이미 거기서부터 잘못이야. 걔 제대로 싸우기는 해?”
세은의 말에 사노가 당당하게 말했다.
로이스는 난전이 되기 십상인 몬스터 웨이브에서는 오히려 케인보다 걸출한 활약을 펼치기 때문이다.
“물론입니다! 아마 단일 전투 능력으로는 세은 씨와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노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세은이 뭐라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실 이계에서도 마계의 침략을 물리치고 나서 평화로웠던 기간이 꽤 길었다.
그로 인해 자신의 감이 상당히 죽어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위험이 될 만한 적이 보이지 않는 지구에 있다 보니, 한창 전투와 함께 살던 시절에 반도 미치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물론 마왕들도 몇 번 만났지만, 과거엔 최상위 서열의 마왕들을 제외하고는 긴장할 것도 없었으니까.
이래저래 세은이 제대로 힘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 사람도 나중에 한번 봤으면 좋겠군.”
“하하. 로이스도 세은 씨를 뵙고 싶어 합니다.”
“나중에 보자고 해, 그럼.”
“상부에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접객실은 다시 침묵으로 물들었다.
과거에도 세은을 만나고자 하는 오러 마스터나 6서클 마법사들이 많았다.
세은의 후원을 받는다는 건 어느 왕국에서나 영향력을 꽤나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자유 신분의 초인들은 거의 통과의례처럼 세은을 찾아왔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오히려 세은이 그런 사람들을 찾아야 했다.
세은이 들어가 본 게이트의 수준에 비해, 지구의 전반적인 수준이 너무 낮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가장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찾아서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게 도와주면 된다.
어느 지역이든 선구자 한 명만 있으면, 평균적인 능력치는 오르게 되어 있었다.
“하여튼 미스터 도가 문제없다고 하니 기다리기는 합니다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케인이 계속 걱정이 되는지 사노가 불안한 어조로 말했다.
확실하게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계속 이럴 것 같은 불안감에 세은이 케인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신성력을 퍼트렸다.
우웅―
의지에 따라 신성력이 주변의 모든 감각을 세은에게 전달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신성력의 감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본부 안에서 세은을 제외하건 가장 존재감이 큰 케인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구분해 낼 수 있었다.
‘열심히 재구축 중이네.’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는 4서클의 구성을 끝낸 후 5서클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나오겠네.”
“일주일 말입니까?”
“일반적인 상식으로 판단하지 않는 게 좋을걸.”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미 마나나 오러라는 것이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은은 자신의 말에 수긍하는 사노를 보며 다시 한 번 케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군.’
사실 아무리 한 번 밟았던 단계라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긴다면 원래의 경지보다 퇴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은은 마나 링 없이 6서클에 오른 케인의 재능을 높게 봐서 이 방법을 권유한 것이었다.
‘이게 아니면 다른 마법사가 재구축을 도와줘야 하니까.’
그러나 케인 이상의 마법사는커녕, 케인만 한 마법사를 찾기도 힘든 상황에서, 두 번째 방법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또 어떤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성공하면 지구의 마법사 중에서는 수위를 다툴 건 분명해.’
세은은 온전한 6서클 마법사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미리 체크하며, 케인이 마나 링의 재구축에 성공해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 * *
케인은 모두의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수련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노는 시간이 흐를수록 케인을 걱정한 사람들이 수련장으로 들어가 보자고 하는 것을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적어도 세은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없었거니와, 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사노도 일주일을 넘어가려고 하자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쿠구궁―
“뭐, 뭐야?”
갑자기 케인이 들어가 있는 수련장이 굉음과 함께 진동하기 시작했다.
본부의 있는 모두가 진동을 느끼고 밖으로 뛰쳐나올 정도였다.
“지진인가?”
하지만 진동은 오직 본부에서만 느껴졌다.
“거의 다 끝났네.”
어느새 밖으로 나온 세은이 사노에게 말했다.
“무엇이 말입니까?”
“마나 링 재구축.”
“아! 이 상황이 케인 때문인 겁니까?”
“응. 거창하게 일을 벌이네.”
너무 거세게 지속되는 진동에 본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대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었던 늦은 밤이라 모두가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진동을 느끼고 세은의 방에 먼저 가느라 늦게 나온 채연과 재호가 그제야 밖으로 대피했다.
“오빠!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 아저씨가 일을 크게 벌이는 일.”
“아, 케인인가 하는 마법사 말입니까?”
“네. 마나 링 재구축에 성공한 것 같네요.”
“그럼 세은 씨가 말한 대로 제대로 된 6서클 마법사가 되는 겁니까?”
“그렇죠. 성공했으니까요.”
대화를 하는 중에도 본부를 울리던 진동은 점점 거세졌다.
모든 인원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본부에서 더 뒤로 멀어졌다.
하지만 세은을 제외한 사람들은 다들 불안한 표정이었다.
게이트 경계를 위한 인원들이 한동안 비박을 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쿠구구궁―
모두의 시선이 본부로 가 있을 때 한 번 더 굉음이 울리며 진동이 거세졌다.
그리고 동시에 파란 빛의 기둥이 본부의 천장을 뚫고 일직선으로 솟아올랐다.
“확실히 재능이 있긴 있네.”
이계에서, 특히 전장에서 많이 본 빛의 기둥에 세은이 중얼거렸다.
느껴지는 마나의 유동을 보니 세은의 생각보다 더 큰 성과를 얻은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정재호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어.’
“와, 그런데 진짜 신기해요.”
채연이 감탄을 내뱉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말은 안 했지만 채연과 같은 마음이었다.
파란 빛의 기둥이 직선으로 치솟던 장면은 가히 장관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파앙―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된 빛의 기둥은 가벼운 파공성을 내며 공중에서 화려하게 터졌다.
마치 꽃가루가 날리듯이 파란 마나의 가루가 허공을 수놓았다.
“와아…….”
처음 보는 아름다운 광경에 누군가의 입에서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세은이 그 모습을 보며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모든 마나를 흡수하지 못했어. 얼마나 발전했을지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네.’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마나의 비에 정신을 팔려 있을 때, 본부에서 중년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케인!”
사노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케인에게로 향했다.
“허허. 다들 밖으로 나오게 했구먼, 미안허이.”
“케인? 수염이랑 머리카락이?”
완전한 6서클로 오른 케인은 반백이었던 털들이 다시 검정색으로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됐다네.”
“기분은 어때?”
세은이 케인에게 물었다.
재빨리 통역에 들어간 사노의 말을 들은 케인이 활짝 웃으며 세은의 말에 대답했다.
“자네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네. 나는 무언가 결핍되어 있었어.”
“당연하지.”
“그리고 자네한테서 느끼지 못한 무엇인가가 느껴지네. 자네,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었구먼.”
마나나 오러와는 다른, 신성력의 힘을 느낀 케인이 나직하게 감탄하며 말했다.
너무나 생소해서 정확히 무슨 힘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세은의 능력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단 사실은 알 수가 있었다.
그런 케인의 태도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세은이 말했다.
“그걸 느끼는 걸 보니 제대로 되긴 한 것 같네. 앞으로 꽤 도움이 되겠어.”
“물론! 약속은 지킨다네.”
“그럼 일단 내일 게이트로 들어가지. 들어가서 당신이 할 일이 많아.”
“허허. 정말로 기대되는구먼.”
“그럼 자세한 건 내일 얘기하지.”
“알겠네. 다시 한 번 정말로 고맙네.”
케인은 다시 한 번 세은에게 감사를 표했다.
자신의 경지가 얼마나 불완전했는지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은은 본부로 걸음을 옮기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내일 잘 부탁하지.”
케인과 얘기를 나누던 세은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미국의 각성자들이 너도나도 궁금한 점을 묻기 위해 케인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