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51화 (51/225)

# 51

16. 6서클 대마법사(1)

본부 앞의 공터에는 어느새 몰려든 사람들이 커다란 원을 만들며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원 안에는 세은과 케인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내가 그려준 마법진은 잘 확인했어?”

“물론, 비율이 맞지 않아 조금 고민은 했지만 말이네.”

“대충 그 정도 그려줬으면 딱 보고 알아야지. 온전한 6서클이라며?”

“허허. 도발이 수준급이군. 하지만 마법진을 보니 입만 산 것만은 아닌 것 같군. 주변의 마나를 집약하는 마법진인가?”

“그래도 보는 눈은 있네.”

“허허. 당연하지. 어떻게 이런 마법진을 생각했는지 신기하군. 본때를 보여줘서 내 밑에서 일하게 해주지.”

“할 수 있으면 해봐.”

짧은 대화를 마치자 세은은 케인이 마법진을 그릴 수 있게 공터에서 비켜났다.

마지막으로 마법진의 견적을 계산이 끝난 케인이 천천히 마나를 이용해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와. 저게 마법진입니까?”

아직 3서클에 머물러 있는 정재호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케인을 관찰했다.

마나를 이용해서 아직 한국에서는 마법진 작업 자체가 희귀했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는 해줘야 합니다.”

“예?”

갑자기 치고 들어온 세은의 말에 정재호가 당황했다.

“뭐, 당장은 아니지만요. 도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하……. 저도 저 정도 수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5서클까지는 어느 정도 재능이 있으면 노력으로 가능하고, 그 이상은 조금 다른 것들이 필요해요.”

“다른 것이라면……?”

“깨달음 같은 거요.”

“영화나 소설에 자주 나오는 그런 깨달음 말입니까?”

“네. 그거요.”

“무슨 판타지 같네요.”

“마법 같은 게 등장했을 때부터 벌써 판타지죠.”

“하긴 그렇죠? 하하.”

둘이 대화를 하는 동안 케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마법진을 거의 완성하고 있었다.

케인의 얼굴에서 비 오듯이 흐르는 땀을 본 채연이 세은에게 물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데 엄청나게 힘들어 보이네요?”

“체내의 마나를 이용해서 그리는 거니까. 마나 소모는 물론, 고도의 집중력까지 요구되지.”

“아하!”

“자! 다 만들었네.”

그사이 마법진을 완성한 케인이 세은에게 말했다.

“잘 지켜보게. 이제 발동할 테니.”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친 케인이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마나가 마법진으로 주입되는 소리가 공터를 가득 채웠다.

마나와 마법진이 서로 반응하는 공명음이 커질수록 케인의 표정은 일그러져 갔다.

서서히 마나를 머금은 마법진이 파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오오. 성공인가?”

점차 환해지는 마법진에 구경하던 누군가가 외쳤다.

“서, 성공하는 거 아니에요?”

이윽고 중앙에 서 있던 케인의 신형이 빛이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채연이 불안한 말투로 물어봤다.

“아니, 실패야.”

“네?”

그러나 세은만이 담담하게 그런 채연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크윽?”

눈부신 빛무리를 뚫고 케인의 침음성이 들려왔다.

쾅!

동시에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마법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케인!”

갑작스런 폭발음에 미국의 각성자들이 케인을 애타게 불렀다.

“괘, 괜찮네!”

케인의 목소리가 들리고도 연기가 모두 걷힐 때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연기가 걷히자, 탈진해 바닥에 누운 케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케인! 괜찮아?”

각성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케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케인은 오른손을 들어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단순한 마나 고갈이니까 안으로 옮겨.”

세은이 근처에 있던 사노에게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사노는 세은의 조언에 따라 케인을 안으로 옮겼다.

채연과 재호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원이 케인을 따라 안으로 이동했다.

일행만 남자 그제야 재호가 세은에게 질문했다.

“실패할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랬잖아요. 반푼이라고.”

“그걸 어떻게 보기만 해도…….”

“제대로 된 6서클 마법사를 자주 보면 알게 됩니다.”

“6서클 마법사를 본 적이 있다고요? 어디서요?”

“있어. 한국은 아냐.”

채연의 말에 세은이 대충 둘러댔다.

이계에서 봤다고 해봤자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런데 저 마법진은 무슨 용도입니까?”

“마나를 한곳으로 집중시켜 주는 건데요. 수련에 도움이 되죠.”

“마나를 한 곳으로 모아준다고요?”

“간단하게 똑같이 소화해도 영양소가 많은 음식이 몸에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됩니다.”

“아하. 같은 양을 흡수해도 아예 양 자체가 다른 거네요?”

“그렇지.”

“그렇게 좋은 게 있는데 왜 한국에서 사용 안 하셨습니까?”

“한국에는 6서클 마법사가 없잖아요.”

“아…….”

명쾌한 세은의 말에 채연과 재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세은 씨가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합니다. 가끔 보면 저희와 다른 세상에 사시는 분 같아요.”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

세은은 재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주제를 전환했다.

“오늘 게이트에 들어가기에는 틀린 것 같으니 우리도 들어가서 쉬죠."

"네!“

“예. 알겠습니다.”

* * *

“끄응…….”

급격한 마나고갈로 인한 후유증으로 기절했던 케인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대체……?”

기억을 더듬어보니 마법진의 발동에 실패해서 쓰러진 것까지는 떠올랐다.

아마도 그 이후에 동료들이 자신을 본부로 데려온 것 같았다.

“끄응……. 실패할 만한 마법진이 아니었는데?”

케인은 일단 병실을 나섰다.

밖으로 나온 케인을 확인한 동료들이 호들갑을 떨며 그를 맞이했다.

“팀장! 괜찮아? 이게 무슨 일이야?”

“아, 걱정하지 말게. 괜찮다네.”

“마법진을 실패하다니, 그 동양인이 일부러 이상한 마법진을 준 거 아니야?”

“그건 아니니까 걱정 말게. 그 동양인은 어디에 있나?”

“방에서 태평하게 쉬고 있어.”

“그 방이 어딘지 알려주게나.”

동료에게서 세은이 머물고 있는 방을 알아낸 케인은 지체하지 않고 세은을 만나러 이동했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는가?”

“케인?”

마침 세은과 함께 있던 사노가 대신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 맞아. 영어를 못했지. 사노 자네가 여기 있어서 다행이구먼.”

당장 궁금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무작정 세은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노를 보고서야 통역 없이는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 잘됐네. 사노! 당장 통역 좀 해주게나.”

“아니, 그것보다 몸은 괜찮은 겁니까?”

“물론! 단순한 마나 부족 현상이네. 전에 많이 겪어봤어. 우선 빨리 통역 좀 해주게.”

학구열에 불타는 케인의 표정을 본 사노는 또 병이 도졌다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사노의 한숨을 무시한 채 케인은 무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세은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자네가 준 마법진은 분명히 6서클 마법진이네. 안에 들어간 공식을 보면 알 수 있지. 그런데 왜 내가 발동에 실패한 건가? 혹시 내가 실수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인가?”

사노의 통역을 들은 세은이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제대로 된 6서클 마법사가 아니니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

세은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케인이 물었다.

“지금의 수준에 오르고, 나는 알 수 있었네. 여태까지 우리가 쓰던 마법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나의 특성, 마법의 시전 원리, 그리고 내 심장을 감싸고 있는 마나의 이유까지. 그래서 나는 미국의 마법사들에게 심장에 마나를 쌓게 만들었지. 그리고 나의 지식으로, 나는 6서클 마법사라네.”

“제대로 된 다른 6서클 마법사를 본 적이 없잖아?”

“그럼 자네는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있단 말인가.”

“물론.”

그 말에 케인은 당장이라도 세은에게 달려가서 손을 꽉 붙잡을 것 같은 표정으로 요청했다.

“그 사람을 만나게 해주게!”

“그러고 싶지만 불가능한 게 아쉽군.”

“대체 왜? 무슨 이유 때문인가?”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설마 죽었나?”

그러나 세은은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하여튼, 링만 6개면 뭐해.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았는데. 6서클이 되기 전에 마나 링을 만든 게 아니잖아?”

“그렇다네. 6서클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마나 링이 생겼지.”

“그건 6서클부터는 마나 링이 아니면 그만큼의 마나를 체내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야. 고육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생긴 거지.”

“그게 뭐가 문제인가?”

“애초부터 자리를 잡으면서 천천히 생긴 거랑.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만들어진 거랑 똑같겠어?”

세은의 말에 케인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나 말고 다른 마법사들은 괜찮다는 말인가?”

“다른 마법사들이 6서클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보다는 낫겠지.”

“하긴, 아무것도 모르고 걷다보니 정상에 오르기는 했지만, 내려다보니 어떻게 올라왔나 까마득하더군.”

“하여튼 당신은 마나 링을 정비할 필요가 있어.”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지 않았는가?”

“내가 왜 더 알려줘야 하지?”

“그게 무슨 말인가?”

“내기에서 이겼는데 그냥 알려달라니 너무 염치가 없는 것 아닌가.”

“아!”

그제야 내기를 했다는 사실을 상기한 케인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세은에게 물었다.

“그렇군. 내가 너무 급해서 실례했네. 그러니까……. 음.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고 있었군. 사노 이 사람 이름이 뭔가?”

“세은 도입니다.”

“그래, 세은! 원하는 게 뭔가?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들어주겠네.”

“좀 힘들 텐데?”

“자네가 졌으면 내 부하 직원이 됐을 텐데 뭘 그러나. 부담 없이 얘기하게.”

세은에게서 마나 링을 정비할 방법을 듣고 싶은 생각에 케인이 대답을 재촉했다.

케인의 재촉에 세은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한국에 와서 마법진을 그려줘.”

“음? 비행시간을 제외하고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군. 다른 부탁은 없나?”

생각보다 간단한 부탁에 케인이 오히려 의문을 가졌다.

더 큰 것을 요구해도 들어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미국에 있는 기간 동안 내 일행 중에 한 명을 좀 지도해 줬으면 좋겠군. 아무래도 마법사는 마법사가 지도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그것도 어렵지 않군.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대신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재미없을 거야.”

“허허. 최선을 다할 것을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네. 그러니 이제는 어서 방법을 알려주게나!”

당장 알려주지 않으면 바닥에라도 드러누울 것 같은 케인이었다.

세은은 빨리 케인을 내보내고 쉬기 위해 마나 링을 정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일단 마나 링을 흩어버려.”

“마나 링을 없애란 말인가?”

“재건축하려면 일단 부서야지. 안 그래?”

“아니? 지금 이 말이 진심인가?”

“믿을 수 없으면 믿지 마. 굳이 내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 그렇기는 하네만…….”

“하여튼 마나 링을 흩어버린 다음에, 다시 1서클부터 만들어. 반쪽이지만 6서클이니 알겠지. 모든지 시작이 중요해. 1서클의 링이 마나 링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니까.”

“알고 있네. 자네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는가? 아무리 봐도 마법사는 아닌데 말이야.”

자신이 6서클에 올라서야 깨달음을 얻어 알게 되었던 사실들을 세은이 알고 있자 케인은 의문이 들었다.

“그건 네가 내 기준에 찰 정도로 실력이 되면 알려주도록 하지.”

“허허. 자신감이 넘치는구먼. 하여튼 자네의 말이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했네.”

케인은 꾸벅 고개를 숙여 세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게 동양식 인사가 맞는가? 하여튼 사노!”

“예?”

“수련실 중에 하나를 쓰겠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하게나.”

“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에 전파하겠습니다.”

“그럼 나는 먼저 가보겠네. 일단 든든히 속을 채워야겠어.”

“알겠습니다.”

케인은 세은과 사노에게 인사를 하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케인이 사라지자 사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은에게 물었다.

“괜찮은 겁니까?”

“뭐가?”

“케인 팀장 말입니다.”

“본인 능력에 따라 달린 거지.”

“아무리 그래도 마나 링을 흩었다가 다시 만든다는 얘기는 처음입니다. 그게 한번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못 믿겠으면 지금이라도 따라가서 말리든가.”

“……아닙니다.”

잠시 주저하던 사노는 결국 케인을 따라가지 않았다.

자신이 본 세은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럼 게이트에 내일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아니, 좀 연기하지. 생각이 바뀌었어.”

“예? 그럼 언제…….?”

“케인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합류할 수 있을 때 들어가지.”

이계에서 고위 마법사의 효용을 충분히 느꼈던 세은은 케인의 능력을 빌려 게이트를 한층 심도 있게 탐사할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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