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50화 (50/225)

# 50

15. 미국의 의뢰(3)

“최대 기한은 한 달. 그 이상은 협의를 통해서 연장. 다른 조건은 불만 없어.”

“나쁘지 않군. 다만 게이트 정리가 끝난 다음부터 한 달로 했으면 하네만.”

“그 정도는 받아들이지.”

“하하. 시원시원해서 좋군. 그럼 바로 서명하지.”

매우 짧은 흥정이 끝나고, 서명을 마친 세은과 펜은 계약서를 한 장씩 나눠가졌다.

“서명도 끝났으니 이제 솔직히 얘기하는 것이 어때? 미국 인구를 보면 게이트 숫자에 비해 각성자가 넘칠 것 같은데, 굳이 게이트를 닫으려는 이유를.”

“하하.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네.”

세은의 말에 펜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모든 대화가 사노의 통역 아래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 뉘앙스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했다.

“사실 게이트를 닫는 게 목표가 아니고, 게이트 내부의 탐사가 목표라네.”

“그럴 것 같아.”

“하지만 모든 것이 불분명한 이상 게이트에 어중이떠중이를 보낼 수도 없으니 난감해. 그렇다고 정예를 보냈다가 정예가 전멸이라도 한다면? 그게 아니라도 사망자가 생기면? 아주 큰 손해일 수밖에 없지.”

펜의 말에 세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왜 굳이 잘 관리되고 있는 게이트 내부를 탐사하고 싶어 하는 거지?”

“학자들의 불타는 학구열…… 때문이라고 하면 믿지 않겠지. 우리는 몬스터 사체를 가지고 연구를 하다가 신비한 물질을 발견했다네.”

“신비한 물질?”

“그 물질은 보라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돌이야. 놀랍게도 그 돌은 정제되지 않은 마나를 가득 품고 있다네.”

“마정석이군.”

펜의 말을 들은 세은은 단번에 그가 설명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챘다.

“뫄정숵? 한국에서는 그걸 그렇게 부르나 보군. 우리는 마나 스톤이라 부르지.”

“뭐,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하여튼 그래서?”

“우리는 그 물질의 놀라운 효능을 알아냈네. 더 적은 마나로 더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힘. 어떤 학자들은 석유를 대체 하는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잘 사용하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미국의 마법사들이 그 정도 수준이 되나?”

“미스터 도만큼은 아니지만 미합중국에도 훌륭한 능력자들이 많다네.”

“어떤 수준인지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군.”

세은은 마정석의 가치를 알아본 마법사가 궁금해졌다.

‘적어도 6서클, 확실히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다르긴 다르네.’

“그럼 거대 몬스터를 잡았나?”

“물론! 상당한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요즘은 많이 익숙해진 상황이야.”

“흥미롭군. 생각보다 오기를 잘한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군.”

“계약서에 조항 하나를 추가하고 싶은데.”

“얼마든지 말하게나.”

“마정석의 가치를 알아본 마법사와 만나보고 싶군.”

“하하하. 오히려 그가 미스터 도를 만나고 싶어 안달 났으니 걱정하지 말게.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꼭 만나고 싶다 신신당부를 하더군.”

‘하여간 마법사들은 거기나 여기나 다 비슷한가.’

펜의 말에 세은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정말 6서클이면 상당한 도움받을 수 있지도 모른다.

거대 마정석을 이용한 마나 집약진도 만들 수 있었다.

보통 왕국의 로열 기사단들의 수련을 위해서 설치되던 마나 집약진은 그 효과가 탁월하다.

적어도 세은이 가지고 있는 마정석의 크기 정도면 일주일 정도 마법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오늘은 일단 푹 쉬게. 내일 점심에 출발하도록 하지.”

펜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세은에게 악수를 청했다.

인사를 끝낸 펜은 많이 바쁜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미스터 도. 그럼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호텔 직원 중에 한국어 가능한 자들을 준비시키라 했으니 식사나 룸서비스는 리셉션 데스크에 연락하면 됩니다.”

“룸서비스!”

정재호가 신이 나서 외쳤다.

채연 역시 말을 안 했지만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사노까지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정재호와 채연이 호텔에 구비된 메뉴판을 들고 열심히 룸서비스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고기.”

세은은 말을 하고 그대로 소파에 축 늘어졌다.

* * *

“도착했습니다.”

한적한 길을 달려서 차가 멈춘 곳은 푸른 녹지로 가득 찬 공원이었다.

“뉴헤이븐의 웨스트 리버 기념공원(West River Memorial Park)입니다.”

“여기에 게이트가 있다고?”

“예.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섬에 있습니다. 가시죠. 보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넓긴 넓네…….”

광활한 공원의 면적에 정재호가 감탄을 내뱉었다.

“확실히 규모가 달라요. 그죠?”

채연도 한국과 규모가 다른 공원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정도 공원이 시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광활한 자연을 이계에서 질리도록 본 세은만이 별다른 감흥 없이 사노를 따라 걷고 있었다.

“바로 저기 보이는 섬입니다.”

보트 선착장에서 바로 보이는 섬을 가리키며 사노가 말했다.

“지금은 세은 씨가 와서 평소보다 상주하던 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와 있습니다.”

사노의 말에 어제 펜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 세은이 물었다.

“마법사들?”

“예. 꼭 세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더군요.”

“급하게 게이트로 들어갈 필요는 없으니까.”

“하하. 마법사들이 들으면 좋아하겠군요.”

부아앙―

보트의 엔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바로 도착하니까 그냥 서 계셔도 됩니다.”

사노의 말대로 보트는 채 5분도 되지 않아 반대편에 도착했다.

오히려 선착장에 정박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이 정도면 수영으로 가도 되겠는데요?”

“전 그냥 보트 타고 다니겠습니다.”

“저도요.”

“노, 농담인데요…….”

재호의 농담에 세은과 채연이 장난을 쳤다.

재호가 땀을 삐질 흘리며 둘의 장난을 받았다.

“바로 본부로 이동하시죠.”

일행이 사노의 안내를 받으며 게이트를 관리하기 위해 설치된 본부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꽤 많은 인원이 밖으로 나와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노 실장! 뒤에 국장님이 말하던 그 사람인가?”

반백의 수염을 멋들어지게 정돈한 신사가 사노에게 물었다.

“아, 맞습니다.”

“오오오! 그렇단 말이지?”

남자는 멋진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두 눈을 강렬하게 빛내며 세은에게 달려왔다. 그러곤 세은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안녕하신가? 나는 특수국토안보부의 연구팀을 총괄하고 있는 케인 카펠로라 하네.”

“뭐라는 거야?”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영어에 세은이 사노에게 물었다.

세은이 알아들은 건 케인 카펠로라는 남자의 이름밖에 없었다.

“평범한 자기소개입니다. 케인 총괄 팀장.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저돌적인 케인의 행동에 사노가 그를 말리며 말했다.

“아하. 내 정신 좀 보게. 너무 반가운 나머지 손님에게 실수했지 뭔가.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

케인은 말을 마치고 먼저 몸을 홱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앉게!”

본부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일행을 맞이하기 위한 다과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벌써 자리를 잡고 앉은 케인의 눈이 한층 더 초롱초롱해졌다.

그는 세은이 자리에 앉자마자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은 채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게이트를 닫았다는 게 사실인가? 아니, 사노가 직접 확인했다니 사실이겠지.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 내 연구로는 갑작스런 차원 간의 에너지 이동으로 경계가 비틀어…….”

“진정하고 천천히 좀 말하세요. 통역하기가 힘듭니다.”

사노가 진땀을 흘리며 케인에게 부탁했다.

기관총처럼 쏟아지는 케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던 세은이 사노에게 말했다.

“한 번에 질문 한 개씩 하라 해.”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사노는 케인에게 원활한 통역을 위해 더 차분하게 대화에 임할 것을 부탁했다.

“험험.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지. 하여튼 그럼 가장 먼저. 게이트를 어떻게 닫는 건가?”

“힘으로.”

“힘으로? 자네는 마법사나 오러 유저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케인의 말에 사노가 통역을 멈춘 채 그에게 물었다.

“보고서 읽으신 거 아니었습니까?”

“읽긴 읽었지, 시간이 없어서 결론만 봤지만.”

“그래서 그렇군요. 세은 씨의 능력은 여기 있는 그 누구와도 비교가 안 됩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가 사용하는 힘이 마나나 오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니? 그게 정말인가?”

조금 진정된 것처럼 보였던 케인이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두 개 말고 다른 힘이 있다고? 이런! 왜 우리나라는 그런 능력자가 없는 거지?”

“뭐라는 거야? 제대로 통역하는 거 맞아? 왜 자꾸 흥분해?”

“세은 씨가 쓰는 힘이 마나나 오러가 아니라 하니까, 학구열이 불타오르나 봅니다.”

“자꾸 이러면 대답 안 한다고 해.”

“알겠습니다.”

사노가 세은의 말을 정확히 전달했다.

그러자 케인이 조금 풀이 죽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거 참. 너무하는구먼. 국장의 얘기를 들어보니 오래 머물 것도 아니라면서.”

“꼭 오래 머문다고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긴 한데…….”

잠시 말끝을 흐린 케인이 도발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자네. 정말로 강한가? 의심해서 미안하네만 아무리 봐도 아무 힘이 느껴지지 않아서 말이지.”

순간 사노는 이 말을 그대로 통역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이미 세은은 자신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은 씨의 능력이 궁금하답니다.”

대신 최대한 온화하게 질문의 내용을 수정했다.

“그런 것치고는 말투가 공격적이던데.”

“하하하. 그럴 리가요.”

“뭐, 됐어. 원래 사람들이란 게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니까.”

세은은 마찬가지 역시 도발적으로 케인을 직시하며 말했다.

“궁금하면 따라 들어오든가.”

“오! 그래도 되나? 항상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 정부에서 자꾸 막는단 말이야. 어때 사노. 국장님에게 물어보면 되나?”

“괜찮습니다. 세은 씨가 들어간다면 국장님께서 허가하실 겁니다.”

“그래?”

확신에 찬 사노의 행동에 케인은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과 로이스가 함께 들어가겠다고 해도 그토록 반대하던 국장이 고작 동양인 한 명이 추가되었다고 승인을 한다고?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지녔는지 기대되는군.”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미 충분히 세은의 능력을 실감한 사노가 케인에게 호언장담했다.

“그나저나, 이젠 내가 질문할 차례군.”

“나에게 궁금한 게 있는가?”

“마정석의 용도에 대해 알아낸 것이 당신인가?”

“마나 스톤? 그렇다네. 내가 그 용도를 발견했지.”

“흠……. 이상한데?”

“뭐가 말인가?”

“당신은 제대로 된 6서클 마법사가 아닌데 어떻게 마정석의 가치를 알아봤지?”

“내가 제대로 된 6서클 마법사가 아니라니?”

“내 말은 알아듣나?”

“물론, 심장 근처의 링 개수를 말하는 것 아닌가?”

“호오. 잘 알아듣는 것을 보니 나름 선구자는 맞는데 말이야. 완전하지 못해.”

“허허. 지금 나를 도발하는 건가?”

“내가 왜? 어느 정도 경계는 넘어선 것 같은데. 완벽하지는 않아. 일본 야쿠자 새끼도 그렇고, 다들 왜 이런지 모르겠군.”

“허허. 초면치고는 참 무례하군. 자네 말에 책임질 수가 있나?”

처음과는 달리 세은의 말에 조금씩 굳어가는 분위기를 느끼며 사노가 지금이라도 통역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다.

더 대화를 진행하다가는 무언가 사달이 나도 날 것 같았다.

“책임? 얼마든지.”

세은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신성 마법을 발동했다.

“내가 요구하는 마법진을 그려내면 인정하지.”

“마법사도 아닌 사람이 내게 마법진으로 시험을 내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구먼.”

“겁나면 안 해도 되고.”

“허허. 만약 내가 이긴다면 자네는 내게 뭘 줄 수 있나?”

“뭐. 원하는 건 전부 다 주지.”

세은의 말에 놀라 대답한 건 오히려 사노였다.

“정말입니까?”

“물론.”

세은은 사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오히려 쐐기를 박아주었다.

“미국 귀화? 해주지. 아니, 아예 특수국토안보부에 들어가 줄게.”

“약속하신 겁니다?”

“그럼.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아.”

“알겠습니다.”

사노는 세은의 말을 케인에게 전달했다.

통역이 진행될수록 케인의 얼굴에도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오빠! 정말 괜찮겠어요? 6서클이면 전에 실장님한테 등을 맡겨도 될 정도의 실력자라고 했다면서요?”

“헉? 그 정도입니까?”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채연과 재호가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세은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문제없어. 온 김에 선물 하나 더 받고 가지 뭐.”

“예?”

이해할 수 없는 세은의 말에 채연이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