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48화 (48/225)

# 48

15. 미국의 의뢰(1)

“흐음…….”

리자드맨에게서 다시 수거한 마정석을 보며 세은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걸 어디에 쓰지?”

세은은 뒤쪽에서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정재호를 바라보았다.

마정석의 보편적인 사용처라 하면, 마법사들이 연구재료나, 마도 공학에서의 에너지원이었다.

그러나 정재호에게 줘봤자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를 게 분명했다.

“마법사들의 수준이 올라갈 때까지 묵혀둬야 하나.”

나중에 마법사들이 마정석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 되면, 그때는 비싼 값에 팔아치울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특히 이 정도 크기의 마정석은 이계에서조차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니면 이걸 이용해서 마법진 연구를 시켜볼까? 부족한 마나를 이걸로 채울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세은이 현재 상황에서 마정석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저, 세은 씨?”

휴대전화를 손에 쥔 정재호가 세은에게 다가왔다.

“네.”

“이지호 실장님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사표 수리 안 해준데요?”

제안을 받아들였던 재호는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안보원에 사표를 제출했다.

갑작스런 사표였지만, 세은과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 덕분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아닙니다. 사표는 수리됐습니다. 그게 아니라…… 미국에서 세은 씨를 뵙고 싶다고 했답니다.”

“또요?”

“지금 이리로 오고 있다는데요?”

재호의 말에 세은이 미간을 찌푸렸다.

“말도 없이 여기 위치를 알려줬다는 얘기네요.”

“그, 그렇죠?”

“연락해서, 여기 위치 막 알려주지 말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미국 사람들은……?”

“이미 온다는데 어쩔 수 없죠. 무슨 일인지 들어나 보고요. 잘못한 게 있으니 대충 오지는 않겠죠.”

“아, 네. 그럼 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마친 뒤, 세은은 다시 마정석의 용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법진을 사용하면 다른 각성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한데…….’

마정석을 활용할 줄 알게 된다면 마법사 전력에 여유가 생길 수도 있었다.

다만 그러기엔 마정석의 공급이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일단 생각만 해두고 가지고 있어야겠어.’

세은이 생각이 정리하고 있을 때 재호가 두 명의 미국인을 데리고 다가왔다.

“세은 씨. 미스터 사노와 미스터 스미스가 왔습니다.”

익히 봤던 얼굴들이 재호의 뒤에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헬로! 미스터 도. 잘 지냈습니까?”

“더 잘 지낼 수도 있었지.”

“하하하. 여전히 유쾌하시군요.”

세은의 뼈 있는 대답을 능글맞게 넘긴 사노는 말을 이었다.

“이번에 의뢰를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뜻밖의 말에 세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의뢰라니 대체 무슨 귀찮은 일을 맡기려는지 벌써부터 짜증이 났다.

“아, 미스터 도에게도 절대로 손해가 아닐 겁니다.”

세은의 기분이 언짢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노가 급하게 말했다.

“미스터 이에게 듣자하니, 팀을 새로 구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팀 차원으로 의뢰를 맡기려 합니다. 물론 수당은 절대 부족함이 없도록 챙겨드리겠습니다.”

미국에서 세은 개인이 아닌 팀에 의뢰를 한다는 말에 옆에 있던 재호의 눈이 반짝반짝하게 빛났다.

적어도 미국의 의뢰라면 푼돈이 들어오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세은의 제의를 받아들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의 게이트에서 세은의 배려로 가지고 나온 와일드 피그의 시체도 상당한 고가에 판매를 마친 상태였다.

“거절한다.”

“왓? 아직 의뢰 내용은 말하지도…….”

“안 들어도 뻔하지. 미국으로 와서 게이트를 봐달라는 거 아냐?”

“그렇습니다. 미스터 도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미국까지 언제 가. 너희 돈 안 받아도 충분히 먹고살아.”

“아, 아니. 그래도 저희가 준비한 조건을 들…….”

“거절.”

단호한 세은의 태도에 오히려 더 애가 타는 것은 재호였다.

재호가 용기를 내서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일단 들어나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조건이 엄청 나게 좋을 수도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일단 저희 조건을 들어보시고 결정하십시오, 미스터 도.”

세은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재호와 사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일단 팀으로 영입한 이상 들어줄 수 있는 만큼은 들어주는 것이 좋았다.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쉬며 사노에게 물었다.

“그래서 조건은?”

“미합중국의 시민권과, 게이트에서 나오는 모든 부산물 절반의 권리입니다.”

사노의 말에 세은이 코웃음을 쳤다. 당당한 것치곤 조건이 너무 빈약했다.

“그게 전부야?”

“물론 아닙니다.”

사노가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개인당 500만 달러를 기본급으로 지급하고, 게이트를 저희가 원할 때 닫아주시면 추가로 500만 달러를 더 지급하겠습니다.”

“5, 500만 달러?”

옆에서 사노의 제의를 듣고 있던 정재호가 숨이 막혀 당장이라도 혼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거, 거, 거, 거의 60억 아닙니까?”

“맞습니다. 거기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부산물의 절반을 미합중국에서 정가로 구매하겠습니다.”

“허억!”

상상하지도 못한 액수에 정재호가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러나 정작 세은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사노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그게 전부?”

“예?”

이 정도 조건이면 세은도 수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노.

하지만 여전한 세은의 반응에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미국까지 가서 돈 안 벌어도 돼. 미국 시민권도 필요 없어.”

‘아니, 이 양반은 대체 왜 이래?’

옆에서 세은의 말을 듣던 재호는 답답해서 복창이 터질 지경이었다.

도대체 왜 저렇게 말을 하는지 그의 입장으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채연을 불러 이 조건을 들려준 뒤 세은을 설득하고 싶었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재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냉소적인 말투로 사노에게 말했다.

“그리고 게이트를 원할 때 닫아달라는 말은, 닫을 때까지 미국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데. 언제 닫아달라고 할지 어떻게 알고?”

“아, 그 부분은 서로 협의가 가능한…….”

“헛소리 말고 제대로 문서화해서 세부 사항까지 적어와. 그다음에 어떻게 할지 결정할 테니까.”

“세은 씨!”

단호한 세은의 말에 정재호가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고 세은을 불렀다.

오히려 사노는 담담하게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품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내 세은에게 건넸다.

“그러실 줄 알고 여기 서류를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게이트는 안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소탕한 뒤, 안을 조사하고 싶습니다.”

세은은 사노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서 흘깃 살펴보았다.

“영어잖아?”

“번역가를 불러서 번역하시면 됩니다. 최대한 명확하게 적었습니다.”

너무 당당한 태도에 세은의 입매가 미묘하게 치켜 올라갔다.

“미국에선 나한테 이 정도 돈을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보지?”

엄밀히 말하면 팀한테 쓰는 돈은 나한테 쓰는 돈이잖아?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노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세은의 말에 동의했다.

“물론입니다, 미스터 도. 처음에는 당신이 그저 게이트를 닫는 열쇠라고 생각했지만, 일본에서의 일과 제가 목격한 당신의 능력을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미합중국은 편견으로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실력! 실력으로 대우합니다.”

은근히 한국 정부와 자신들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흐음.”

세은도 그 점은 동감이었다.

아직까지도 한국 정부는 자신에 대해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적어도 무엇인가 움직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이지호를 통해 연락이 왔어야 하니까.

‘미국이 움직이니까 가만히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모든 가능성보다는 미국이 움직이니까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게 가장 타당한 거 같았다.

그렇다면 미국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한국 정부는 자신에게 별다른 접근을 하지 않은 채 지금 같은 관계를 유지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미국이 자신을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미국을 한번 다녀오기는 해야겠어.’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갑자기 심장에 오러를 쌓는다는 미국의 각성자들이 생각났다.

굳이 미국을 도와주겠단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방비할 수 있는 것은 중요했다.

마왕이 한국에만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신이 갈 때까지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세은은 사노가 건네준 서류를 둘둘 말아 접으며 말했다.

“서류를 검토 후 생각해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좋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미스터 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 사노는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 * *

사노가 가는 것을 확인한 세은은 재호에게 물었다.

“채연이는요?”

“오늘은 약속이 있다고 저녁에 수련하러 온답니다.”

“그럼 기다리면 되겠네요. 혹시 주변에 영어 잘하는 사람 없나요?”

“영어야 하는 사람이야 많지만…….”

“방금 들어서 알겠지만 계약서를 전문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는데요.”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동창 중에 영문과나 정치외교학과 나온 친구들도 있으니 알아보면 그쪽 계통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계약서 내용을 완전히 숙지해야 우리끼리도 대화가 가능하니 최대한 빠르면 좋겠네요. 일당은 많이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네! 지금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재호는 500만 불이 걸린 이번 일에 얼굴 한가득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빠르게 번역가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세은이 그런 재호를 잠시 바라보다가 게이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전의 게이트는 분명히 하나의 행성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 행성이었다면 사람의 마을이 하나만 있지는 않을 터였다.

‘그럼 마계처럼 따로 떨어져서 나왔다는 말인데…….’

그건 게이트가 어느 차원과 이어질지 모른다는 말과 같았다.

‘옷이나 마정석을 보면 오피뉴 같은데 말이야.’

그러나 마정석이 세은이 소환 당했던 차원에만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었다.

‘그럼 대체 왜 이런 식으로 이상하게 연결되는 거지?’

세은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차원과 차원의 벽은 매우 두텁고 강력하다.

에일린도 세은 한 명을 상처 없이 소환하는 데 신력의 절반을 소진했을 정도였으니까.

그 생각을 하면 자신이 다시 과거의 지구로 돌아온 일도 이해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다니까.’

여태까지는 게이트를 그냥 닫아왔다. 하지만, 앞으론 조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세은이 혼자서 모든 게이트를 다 돌아보는 것은 매우 시간이 많이 드는데다 귀찮은 작업이었다.

‘제일 좋은 건 사람들을 이용하는 건데…….’

일단 앞으로 한국의 게이트는 이지호에게 부탁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한국의 각성자들은 지금도 세은의 알려준 수련법으로 열심히 성장을 하고 있었다.

저번처럼 뜬금없이 마왕이 튀어나오지 않으면 무난하게 게이트를 탐사할 수준까지 금방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숫자에는 장사가 없으니까.’

배포에 조건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어지간한 길드 역시 수련을 하는 중일 것이었다.

“야쿠자 두목 같은 새끼가 한국에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좀 편했을 텐데.”

반편이 오러 마스터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가르치기가 쉽다.

한발을 걸쳤으니 나머지 발을 딛는 법만 가르치면 되니까.

하지만 한국엔 김영한이 그나마 오러 익스퍼트의 끝자락을 보고 있었다.

이것도 채연이 자기 친구가 엄청나게 발전을 했다고 말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미국에 다녀와서 더 커져 있으면 실력을 좀 봐야겠어.’

하는 짓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가장 가능성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게 효율적이리라.

마법사 중에선 국정원 소속의 박정훈과 이지호가 가장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둘도 나중에 다시 한 번 실력을 좀 보고……. 미국은…… 이번에 가면 수준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유럽은 어떨지 궁금하네.’

이지호가 유로 가입국을 중심으로 국제 각성자 협회를 만들어서 게이트에 유기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애초에 유로로 연결되어 있는 나라들이라 그런 연계가 잘되어서 부럽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었다.

단일 단체로는 가장 영향력이 강해, 게이트와 각성자에 대한 관리가 보다 체계적이라고 했다.

“뭐, 알아서들 잘하면 좋은 거지.”

전에 한라산에서 열렸던 게이트가 협회 기준으로 A급이라고 했다.

하지만 안에 들어 있는 게 뭔지 알았으면 그런 얘기를 못할 거라고 이지호가 투덜거린 것도 생각났다.

“유럽은 등급을 어떻게 나누는지 좀 알아봐야겠어.”

게이트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상한 점을 느낀 세은은, 본격적으로 게이트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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