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14. 단서는 작은 것부터(3)
“네? 어떤 거요?”
그러나 세은은 대답하지 않고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았다.
그러나 분명히 게이트 출구에 세워놓았던 마정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 굴러갔을 리도 없고, 어디 간 거야?”
세은은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빠. 뭐 찾으시는 거예요?”
“마정석.”
“아! 전에 그 보라색 보석 같은 거요?”
“응.”
“그게 여기 있었어요?”
“크기가 커서 여기 내려놨는데 없어졌네.”
“얼마나 큰데요?”
“내 반만 해.”
“와! 그렇게 커요? 저번에 박쥐한테서 나온 건 작았는데?”
“악어 덩치가 크니까.”
채연과 대화를 하면서 계속 주변을 탐색했지만, 늪지대의 특성상 별다른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괜히 아깝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랬다.
“그냥 나가자.”
“네!”
미련을 접고 출구로 향하던 세은의 귀에 미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응?”
갑자기 걸음을 멈춘 세은의 태도에 채연과 재호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방금 못 들었어?”
“뭐를요?”
“예? 무슨 소리가 났습니까?”
의아해하는 둘의 질문에 세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러나 잠깐 들린 것 말고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세은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캬악!”
홱!
하는 소리와 함께 세은의 고개가 거대 악어의 시체 위로 향했다.
“저놈들인가?”
거대 악어의 시체 위에는 리자드맨 한 마리가 막 정상을 정복한 기념으로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살짝 이동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악어 시체 뒤쪽으로 리자드맨들이 매달려 있는 광경이 보였다.
“용의자가 도마뱀들밖에 없긴 한데…….”
세은이 뚫어지게 한곳을 응시하자 일행의 시선까지 그곳으로 향했다.
“아! 저거 리자드맨 아닙니까?”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까지 지긋지긋하게 리자드맨을 상대했던 재호가 말했다.
하도 밀려드는 놈들을 상대했더니 이제는 그 모습만 봐도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아, 저기에 있네.”
리자드맨들을 관찰하던 세은의 눈에 마정석이 들어왔다.
거대 악어가 죽는 소리를 듣고 정찰을 나온 것 같았다.
“이렇게 됐는데 마지막으로 수련 한번 하고 갈까요?”
“네? 지금 안 나가요, 우리?”
“지금 말입니까?”
“오래 걸리는 건 아니고, 저기 리자드맨들 보이죠?”
“네, 보입니다.”
“높은 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적에 대한 수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세은이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다 처리하고, 마정석 찾아오세요. 오늘의 마지막 수련입니다.”
“아…….”
“힝…….”
당장이라도 게이트를 나갈 생각에 부풀어 있던 채연과 재호의 어깨가 축 쳐졌다.
“리자드맨은 충분히 잡아봤는데요…….”
정재호가 세은에게 말했다.
충분히 잡아봤으니 수련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세은의 생각은 확고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갈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하나둘씩 거대 악어의 등 위로 올라가는 리자드맨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같은 몬스터라도 평지에서 맞붙는 것과, 서로 다른 지형에서 맞붙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특히 지형이 불리할 때의 적은 또 달랐다.
거기에 완벽하지는 않아도 공중 몬스터에 대한 대비 또한 어느 정도 될 터였다.
그러나 이런 것을 전부 설명하기 매우 귀찮았기에, 세은은 그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다시 말했다.
“안 잡으면 안 나가요.”
“히잉.”
“하아…….”
단호한 세은의 대답에 채연과 재호가 기운 없는 표정으로 천천히 리자드맨들에게 향했다.
“별로 세지는 않죠?”
“응. 할 만해. 그냥 숫자만 조심하면 될 거야.”
리자드맨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재호에게 채연이 물었다.
재호도 자신의 경험상 리자드맨들이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별거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래에서 하나씩 요격하면 되겠네요?”
“그 정도면 무난하게 끝날걸?”
“그럼 빨리 끝내고 나가요, 우리.”
“나도 같은 생각이야.”
사냥 방법에 합의를 본 채연과 재호가 각자 준비를 시작했다.
파앙―
채연의 화살이 먼저 바람을 가르며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리자드맨에게 날아갔다.
캭!
예상치 못한 공격에 리자드맨이 고통에 찬 울음을 질렀다.
“캬악?”
“카아아악!”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동료가 당하자 리자드맨들이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캬악!
캬으악!
그리고 이내, 악어 시체의 아래에 있던 채연과 재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윈드 커터!”
리자드맨들이 자신을 발견함과 동시에 재호의 마법 캐스팅이 끝났다.
스악―
바람의 칼날이 날카롭게 리자드맨 한 마리를 절단했다.
“캬아아아아!”
순식간에 두 명의 동족이 당하자 흥분한 리자드맨들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괴성을 질렀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무기를 아래로 던지기 시작했다.
“헉?”
가볍게 피하는 채연과 달리, 몸을 쓰는 것에 약한 재호가 크게 당황했다.
가뜩이나 늪이라 제대로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던 상황이었다.
거기다 높은 곳에서 날아오는 창이나 칼은 중력을 업고 더 위력적으로 내려꽂혔다.
“피해요!”
보다 못한 채연이 급하게 재호의 뒷덜미를 잡아 뒤로 집어 던졌다.
푹― 푹―
방금 전까지 정재호가 서 있던 자리에 여러 자루의 도검이 꽂혔다.
“고, 고마워.”
“조금 더 뒤로 가서 쏘세요.”
갑자기 급속도로 생성된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킨 정재호가 더 뒤로 물러났다.
수우욱―
“으앗!”
그러나 고지대에서 투척하는 도검은 생각보다 사정거리가 더 길었다.
“더 뒤로 가면 마법이 사정거리가 안 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채연과 재호가 당황했다.
그나마 채연이 고군분투하며 화살을 날렸지만, 리자드맨들의 수는 계속 늘어났다.
그리고 늘어나는 숫자만큼 공격 역시 점점 매서워졌다.
캬아악!
“옆! 옆에도 있어!”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아래로 직접 잡으러 온 리자드맨들까지 들이치기 시작했다.
파충류에 가까운 리자드맨들은 오히려 평지에서보다 늪에서 그 특성이 잘 발휘되고 있었다.
“늪에서 왜 이렇게 잘 걸어?”
자신과 다르게 늪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리자드맨들이 움직임을 보고 정재호가 소리쳤다.
“걔들 파충류잖아요.”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세은이 대신 대답했다.
“이런 젠장!”
만만하게 봤던 리자드맨들의 만만치 않은 저항에 자연스럽게 욕설이 나왔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내 앞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염의 마나, 타오르는 화염의 구. 파이어 볼트!”
당황한 재호가 가장 익숙한 마법인 파이어 볼트를 시전 했다.
그러나 늪지대의 특성상 파이어 볼트가 그 위력을 모두 발휘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세은은 한숨을 쉬며 재빨리 조언했다.
“주변에 이렇게 물이 많은데 무슨 화염 마법이에요?”
파앙―
“저, 전격 계열은 저도 피해를 봐서.”
채연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 재호가 반쯤 울상이 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전격 마법 쓰래요? 쓸 수 있는 마법이 그거밖에 없어요?”
좀 알아서 하기를 바랐지만, 이미 당황한 재호에게 그런 건 무리로 보였다.
새로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는 상황에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물이 많으니까 아이스 계열 써요. 얼려 버리면 되잖아요.”
“아! 네!”
세은의 말에 재호가 그제야 정신을 차려 다시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내 앞의 적을 얼리는 냉기. 영혼까지 얼리는 냉기의 구름. 프로즌 클라우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재호를 주 표적으로 삼고 몰려오던 리자드맨들이 갑자기 나타난 얼음의 구름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크에엑!”
한 번 숨을 쉴 때마다 폐까지 얼려 버릴 것 같은 냉기가 호흡기로 파고들었다.
거기에 파충류인 리자드맨들은 더욱더 온도 변화에 취약했다.
“좋았어!”
거기에 축축하던 늪이 낮아진 온도로 인해 얼어붙어, 단단한 발판까지 생겨났다.
“이제 위만 어떻게 하면 되겠네요!”
아래의 리자드맨들을 묶는 데 성공하자 한결 여유가 생긴 채연이 말했다.
방금 전까지는 위를 저격하랴, 아래에서 재호를 도우려 정신이 없었다.
“위는 진짜 어떻게 하지?”
재호가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위에서 던지는 도검을 피해가면서 하나씩 잡는 건 한계가 있으리라.
채연의 체력이 끊임없는 것도 아니었고,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공격을 피할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었다.
위에서 내리꽂히는 이 위력이라면, 재수 없이 눈 먼 공격에 즉사할 수 있었다.
“으음.”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둘은 잠시 서로의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나 위쪽의 리자드맨들을 공략할 방법을 고민했다.
“빨리 해. 여기서 언제까지 머물 거야?”
뒤에서 세은의 재촉이 들려왔다.
“원래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유리하지 않습니까.”
군대를 나와서 기본적인 전술에 대해 알고 있던 재호가 말했다.
“그럼 유리한 걸 없애야죠.”
“악어 시체를 치울 수도 없고 대체 어떡…….”
“아!”
채연이 뭔가 알아챘다는 듯이 탄성을 내질렀다.
“높이를 맞추면 되잖아요? 어차피 높이 때문에 집어 던지는 게 멀리 나가는 거니까.”
“높이를 어떻게 맞춰?”
“근처 나무에 올라가면 되죠!”
채연의 말대로 거대 악어의 시체는 죽은 지 시간이 꽤 지나 상당히 늪에 파묻힌 상태였다.
주변 나무 중에도 높이가 비슷한 것들이 몇 그루 있었다.
“아예 똑같은 높이는 아니어도 적당히만 올라가면 나무 위까지는 무기 못 던질걸요?”
“그럼 나무 위로는 내가 못 올라가니까, 아래에서 나무로 접근하는 걸 막을 게.”
어느새 프로즌 클라우드를 피해서 빙 돌아 접근하던 리자드맨 무리를 보며 재호가 제안했다.
“네! 그럼 저기 저 나무로 가요, 우리.”
다가오는 리자드맨들을 견제하며 채연과 재호가 적당한 나무로 이동했다.
채연이 나무 위로 올라가서 요격을 준비하는 동안 재호 또한 다시 마법을 발동해서 나무 주위를 방어했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프로즌 클라우드!”
이번에도 온도가 떨어지자 움직임이 멎는 리자드맨들이 속출했다.
마법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리자드맨들이 옆으로 돌아왔지만, 간간히 날아오는 윈드 커터와 위에서 요격하는 채연의 화살로 인해 족족 절명했다.
“좋아! 확실히 여기까지는 검이랑 창을 못 던지네요.”
“아무래도 검이랑 창은 무게가 있으니까. 이제 빨리 처리하고 가자.”
“네! 잠시만 기다려요.”
파앙― 파아앙―
채연의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한동안 늪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