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44화 (44/225)

# 44

13. 게이트와 수련(3)

“충분히 쉬었으면 움직일까?”

쉬는 동안 초원을 둘러본 세은이 말했다.

초원에는 크게 위협적인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와일드 피그와 놀 정도가 전부인가.’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는 놀과 동족 의식이 강한 와일드 피그 정도가 초원의 주류인 것 같았다.

‘놀은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돼지들이 문제네.’

놀은 단일 개체의 무력보다는 무리로 달려드는 물량을 조심해야 하는 몬스터.

반대로 와일드 피그는 그 숫자는 적은 대신 빠른 속도와 강인한 육체가 특징이었다.

거기에 동족 의식도 강해서 같은 동족이 도움을 요청하면 근처 모든 와일드 피그가 순식간에 달려온다.

‘하긴 실전인데 이 정도 긴장감은 있어야지.’

생각을 정리한 세은이 채연과 재호에게 훈련 방향을 설명했다.

“목표는 단순해.”

세은의 손이 멀리 지평선을 가리켰다.

“반대편 끝까지 가는 게 우리의 목표야.”

“네?”

“예?”

재호가 재빨리 세은에게 질문했다.

“끝이 안 보입니다만?”

“그러니까 훈련이죠.”

세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 그리고 저는 안 도와줍니다. 둘이서 잘 협력해서 이동하세요.”

“저희 둘이서요?”

채연이 세은에게 물었다.

세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같이 걷기는 할 텐데. 도와주지는 않을 거야. 수련이잖아? 도와주면 의미가 없지.”

“그렇기는 한데요…….”

수련이라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막상 세은이 도와주지 않을 것이란 말을 들으니 불안감이 들었다.

채연과 재호가 긴장하자 세은이 웃으면서 둘을 진정시켰다.

“설마 못 잡을 놈들을 잡으라고 하겠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몬스터들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아하! 네!”

“그렇다고 방심하지 말고. 방심할 만큼은 아니니까.”

“네! 알겠어요.”

“놀이야 명동에서 상대해 봤으니까 제쳐두고, 와일드 피그라고 멧돼지 같은 몬스터가 있는데 주의할 점을 알려줄게.”

“멧돼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정재호가 물었다.

“네. 다만 덩치가 더 크고, 송곳니가 코끼리 상어처럼 큰데다, 성격이 더 흉포해서 영역에 들어가면 막무가내로 공격하는 정도요. 단순하게 큰 멧돼지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이 안 드는데요.”

세은의 설명을 들은 재호가 핼쑥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마법은 잘 통합니까?”

“가죽이 두꺼워서 어지간해서는 안 통할걸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합니까?”

마법도 잘 통하지 않는다는 말에, 안 그래도 하얗게 질려 있던 정재호의 얼굴에서 완전히 핏기가 사라졌다.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뭐가 있어요? 범위 마법 말고요.”

“음…… 그러니까, 매직 애로…….”

“제일 강한 거요.”

정말로 모든 마법을 다 말하려는 정재호의 행동에 세은이 말을 싹둑 끊으며 말했다.

“아, 네. 제일 위력이 있는 건 파이어 볼트랑 윈드 커터 정도입니다.”

“윈드 커터 잘 써요?”

와일드 피그의 두꺼운 가죽을 베려면 절삭력이 있는 마법이 좋았다.

다만 윈드 커터는 시전자의 숙련도에 그 위력이 매우 달라지는 마법이었다.

바람으로 날카로운 절삭력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보원에서는 거의 파이어 볼트만 써서…….”

한마디로 잘 못 쓴다는 말이었다.

“그럼 일단 와일드 피그는 피해서 사냥하죠. 놀한테 윈드 커터 연습하세요.”

일단은 와일드 피그의 영역을 피해서 수련시켜야 할 것 같았다.

“놀은 익숙하죠? 바로 시작합니다.”

“네, 오빠!”

“네…….”

활기찬 채연의 대답과, 어딘가 힘이 빠져 보이는 재호의 대답이 들렸다.

그리고 게이트 안에서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 * *

“세상을 구성하는 힘. 모든 것을 정화하는 바람. 내 앞의 적을 응징하는 돌풍의 칼날. 윈드 커터!”

“깽!”

정재호가 시전 한 윈드 커터가 놀 의 어깨를 깔끔하게 베어냈다.

팔이 잘린 놀이 고통에 울부짖는 사이 채연의 화살이 놀의 숨통을 끊었다.

털썩―

마지막 놀의 숨통이 끊긴 것을 확인한 채연과 재호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허억, 허억. 너, 너무 많은데요?”

“원래 놀들이 좀 많이 몰려다녀요. 무리 생활을 하니까.”

“별로 강한 건 아닌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몰려오니까 힘드네요.”

“원래 숫자에는 장사 없어.”

우웅―

전투가 끝나고 자잘하게 난 상처들을 치료해 주며 세은이 말했다.

‘둘 다 원거리라 힘들 만도 하네.’

움직임이 빠른 채연이 시선을 끌고, 뒤에서 재호가 마법을 쓰는 방식으로 수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앞에서 제대로 어그로를 끄는 탱커의 부재가 아쉬웠다.

‘오러 유저 중 마땅한 사람이 없었는데.’

둘이 쉬는 동안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오러 유저 중에서 적당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필요한 포지션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은은 생각을 접었다.

“마나가 부족하지는 않아요?”

세은이 정재호에게 물었다.

재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질문에 대답했다.

“허억. 네, 아직은…… 헉, 괜찮습니다.”

“흐음…… 그럼 안 되는데.”

“……예?”

“마나가 한 번 고갈이 돼야 하는데.”

“왜, 왜요?”

명동에서 한 번 마나가 고갈 될 뻔한 적이 있던 정재호가 세은의 말에 움찔했다.

온몸을 극한까지 쥐어짜는 듯한 그 느낌은…… 다시 느끼기 싫은 고통이었다.

“비어야 다시 차죠.”

“마나는 계속 차는데요?”

“써야 단련이 됩니다. 그리고 몇 번 고갈이 돼야 나중에 갑자기 마나가 부족해도 대처가 가능하고.”

세은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허공에 마법이라도 난사를 시켜야 하나…….”

“…….”

세은의 말에 정재호가 다른 곳을 보며 딴청을 부렸다.

적어도 쉬는 시간에 마법을 난사해서 마나를 고갈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정재호의 모습에 세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놀을 좀 많이 몰아오면 어차피 자연스럽게 고갈될 테니까요.”

말을 마친 세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채연에게 말했다.

“어디에 놀이 많은지 보고 올 테니까, 쉬고 있어.”

“아, 네! 다녀오세요.”

“쿨럭쿨럭.”

세은의 말에 사레라도 들렸는지 사정없이 재채기를 하던 재호를 두고, 세은이 놀을 탐색하기 위해 움직였다.

“흐음…… 그러고 보면 여기도 끝이 있으려나?”

초원에서 적당한 무리의 놀을 찾던 세은이 갑자기 드는 생각에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마정석 때문에 게이트에 대해 조사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금처럼 여유가 있을 때 게이트를 한 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수련부터 좀 시키고…….”

몇 무리의 놀을 지나자 세은이 원하는 크기의 놀 무리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가려던 장소랑 방향이 조금 어긋나긴 하는데…… 뭐, 상관없겠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세은이 다시 몸을 돌려 채연과 재호에게로 돌아갔다.

* * *

파앙―

“왼쪽!”

활을 쏘고 뒤로 물러나던 채연에게 정재호가 경고했다.

“크앙!”

재호의 견제를 뚫어낸 놀 한 마리가 어느새 채연의 지척까지 접근해 있었다.

“에잇!”

“깽!”

시위를 당길 만한 거리가 확보되지 않자, 채연은 과감하게 활에 오러를 씌워 휘둘렀다.

활에 얻어맞은 놀이 깽깽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윈드 커터!”

틈을 놓치지 않고 정재호의 마법이 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하지만 놀들의 포위망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었다.

“아! 뭐가 이렇게 많아?”

다시 시위를 당기며 채연이 투덜거렸다.

말은 이렇지만 계속되는 실전 때문에 팔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건 정재호도 마찬가지였는데, 세은은 자신의 말을 지킬 생각인지 마나가 회복될 시간을 주지 않고 수련을 밀어붙였다.

덕분에 가장 많은 수의 놀 무리와 싸우던 와중 마나가 고갈되기 직전이었다.

그로 인해 마나를 아끼다 보니 채연에게 훨씬 더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아저씨! 마나 얼마나 남았어요?”

“마법…… 허억. 다섯 번 정도…… 면 끝나요.”

“네? 놀이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요?”

정재호의 말에 채연의 미간에 금이 그어졌다.

남아 있는 놀들은 대략 40마리 정도.

빠른 움직임으로 잡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거기다 정재호는 놀을 따돌릴 수 있을 정도의 신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마나가 없데요!”

상황이 여의치 않자 채연은 멀리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세은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세은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현장을 응시하며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파앙―

“깨앵!”

‘설마 진짜 안 도와주려고 그러나?’

자신의 말에 대답 없는 세은을 보며 채연이 생각했다.

그녀가 날린 화살이 놀의 목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바로 다른 놀에 의해 채워졌다

“위, 윈드 커터!”

조금만 더 있으면 입가에 침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의 정재호도 놀 한 마리를 처리했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은 좋지 않았다.

“방법을 좀 알려줘야 하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세은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계속 너무 정직하게만 공격하던 채연과 재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전을 겪으면 필요에 의해서 알아서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는 깨달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정재호부터.”

결국 힌트를 주기로 마음먹은 세은이 크게 외쳤다.

“마법을 쓰기 전에 위치 선정을 좀 잘해봐요.”

“예?”

갑작스레 들리는 세은의 말에 정재호가 당황했다.

아니, 당장 마법 한 번 시전하기 힘들어 죽겠는데 위치 선정을 잘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거기에 여기는 초원이라 다른 엄폐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컹!”

그사이에 놀 한 마리가 정재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가장 순수한 마나. 매직 애로우!”

급한 마음에 매직 애로우를 시전해서 놀에게 박았다.

다행히 놀은 매직 애로우로도 막을 수 있을 만큼 항마력이 약했다.

“지금 혼자 싸워요? 둘이 협력을 좀 해봐요.”

자신의 힌트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자 세은이 다시 한 번 말했다.

“탱커가 없는데 어떻게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대답하기도 힘들어 하는 재호를 대신해서 채연이 물었다.

세은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윈드 커터가 무슨 마법이야?”

“예?”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세은의 말에 채연이 대답하지 못했다.

“크르릉.”

놀들이 계속해서 공격을 하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마법에 특성에 대해서 채연이 잘 알 리가 없었다.

“자, 자르는 마법입니다만…….”

정재호가 힘겹게 세은의 말에 대답했다.

“그럼 그게 한 마리만 잡고 사라져요?”

“아!”

세은의 말에 채연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는지 탄성을 내뱉었다.

목표물을 타격하면 폭발하는 파이어 볼트와 달리, 윈드 커터는 소멸 직전까지 경로상의 모든 것을 벤다.

굳이 다른 마법들처럼 한 번에 한 마리만 타겟으로 노릴 필요가 없었다.

“아저씨! 제가 유인할 테니까 최대한 마법 경로에 최대한 많은 놀을 노려봐요.”

정재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채연 역시 한계가 오고 있었다.

파아앙―

여태까지는 정재호의 앞에서 그를 보호했으나, 이번에는 살짝 옆으로 벗어나서 놀들을 유인했다.

“이리로 와!”

“컹컹!”

“크르르르!”

갑자기 빨라지는 채연의 공격에 놀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이윽고 놀들이 채연을 향해 몸을 돌려서 이동하자, 대각선에 위치하게 된 재호의 앞에 놀들이 겹치게 되었다.

마나를 조절해서 튀어나오는 놈들을 한 마리씩 잡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오히려 마나를 더 불어넣었다.

“세, 세상을 구성하는 힘. 모든 것을 정화하는 바람. 내 앞의 적을 응징하는 돌풍의 칼날. 윈드 커터!”

사아악―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윈드 커터가 놀 무리로 파고들었다.

“깽!”

“깨앵!”

윈드 커터가 날아가는 경로에 있던 놀들을 한 번에 절단했다.

여섯 마리 정도를 한꺼번에 저승으로 보낸 윈드커터는 소임을 다한 뒤 소멸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놀들의 어그로가 정재호에게로 이동했다.

“어딜!”

그러자 채연이 다시 앞을 막아서며 놀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정재호는 채연이 시선을 돌리는 동안 놀들의 타겟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리를 움직였다.

“좋아요. 아저씨! 이렇게 한 번에 처리하면 될 거 같아요!”

“허억허억.”

경쾌해진 채연의 목소리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정재호의 거친 숨소리가 초원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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