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13. 게이트와 수련(2)
“뭐, 뭡니까?”
갑작스런 상황에 정재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말이 씨가 됐네.”
“예?”
세은의 혼잣말을 들은 정재호가 반문했다.
“몬스터가 더 낫다고 해서 그런가 보네요. 몬스터 나타났습니다.”
“어, 어디요?”
“바로 아래요.”
세은의 말에 정재호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나 흔들리는 땅밖에 보이지 않았다.
“땅밖에 없는데요?”
“바로 이 땅이 몬스터 등입니다.”
“……네?”
“쿠오오오!”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정재호를 위해서인지, 또다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동시에 더욱 격하게 땅이 흔들리며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중심 잘 잡아요.”
세은이 거대한 몸체까지 드러낸 몬스터를 관찰하며 경고했다.
어쩐지 늪지대에 갑자기 마른 고지대가 있다 했더니…… 거대 몬스터의 등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해요, 오빠?”
“일단 가만히 있어. 우리 때문에 일어건 건지, 그냥 일어나는 건지 모르니까.”
세은은 당황하는 일행을 진정시켰다.
그사이 정체를 알 수 없던 몬스터가 계속 몸을 일으켰다.
“으아아아.”
계속 높아지는 고도에 정재호가 신음했다.
어느새 주변에 일행보다 높은 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저기 오빠가 말한 초원이 보이네요!”
금세 상황에 적응한 채연이 말했다.
“이게 저쪽으로 움직여 주면 편하겠네.”
세은도 마찬가지로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오직 정재호만이 흔들리는 몬스터의 등 위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아저씨! 왜 그렇게 긴장했어요?”
“고, 고, 고소 공포증이 이, 있어…… 서요.”
“아하.”
사시나무처럼 떠는 정재호에게 채연이 다시 물었다.
“괜찮아요?”
그러나 정재호는 채연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이게 괜찮아 보이냐는 말을 속으로 꾹 눌러 담았다.
“악어인가?”
이윽고 거대 몬스터가 완전히 몸을 일으키자 드디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길쭉한 주둥이에 울퉁불퉁한 등껍질, 위협적인 근육이 가득한 꼬리까지.
흔히 볼 수 있는 악어의 모습이었다.
“이걸 피해서 리자드맨들이 밖으로 나온 건가? 아니면 얘가 리자드맨의 보스인가?”
생김새를 봐서는 이 게이트의 보스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세은은 당장 게이트를 닿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악어 몬스터를 피해 초원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내려가자.”
“어떻게요?”
“딸꾹!”
세은의 말에 채연의 질문과 정재호의 딸꾹질이 동시에 들려왔다.
“보니까 워낙 덩치가 커서 우리를 알아챈 것 같지도 않고, 조심히 내려가서 초원으로 가면 될 것 같네.”
“여, 여기를 어떻게 내려갑니까?”
“점프해서요.”
“딸꾹.”
태연한 세은의 말에 또다시 정재호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세은이 헛웃음을 지으며 재호에게 손짓했다.
“이리로 오세요. 뛰어내리게.”
“…….”
그러나 정재호는 섣불리 걸음을 떼지 못했다.
악어 몬스터가 천천히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거 지금 초원이랑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빨리 오세요. 늪에서 더 오래 걷기 싫으면.”
“아, 알겠습니다.”
대답과 달리 정재호는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결국 보다 못한 채연이 재호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저씨! 빨리 오세요. 늪을 더 걸을 거예요?”
“으아…….”
흔들리는 바닥과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정재호는 높이를 체감했다.
“꽉 잡아.”
채연에게 끌려온 정재호의 허리를 잡고, 반대 팔로는 채연을 잡은 세은이 일행에게 주의를 준 뒤 순식간에 악어 몬스터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으아아아아아!”
자유 낙하의 짜릿함에 정재호가 비명을 내질렀다.
세은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인상을 찡그리며 신성력으로 방어막을 만들었다.
쿠웅!
방어막과 늪지대가 사이좋게 충격을 흡수해서 생각보다 더 안정적인 착지가 가능했다.
다만 다리가 모두 늪에 박힌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채연과 재호를 먼저 위로 올린 세은이 가볍게 늪에서 빠져나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 악어 몬스터를 바라보니 꽤 커다란 소리가 났음에도 이 쪽을 신경 쓰지 않았다.
“우웨엑.”
정재호는 어느새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채연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런 정재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토악질을 하는 정재호를 보며 세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보다 겁이 많네.’
그러나 천성을 가지고 뭐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재호가 토악질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으허. 죄송합니다.”
“다 끝났어요?”
“네. 못 볼꼴을 보였네요.”
“그럴 수도 있죠.”
정재호가 정신을 차리자 세은이 일행을 데리고 초원으로 이동했다.
방금 악어 몬스터의 등 위에서 관찰했던 대로 삼십 분 정도 걷자 드디어 늪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와! 드디어 땅이에요!”
발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에 채연이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서, 설마 이것도 몬스터는 아니겠죠?”
방금 전에 호되게 당한 정재호가 불안함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평선이 보이는 걸 보니 몬스터는 아니네요.”
“그렇죠? 휴우…….”
세은의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그럼 이제 뭐하면 돼요?”
처음 게이트에서 수련을 한다는 말을 들었던 채연이 세은에게 물었다.
“좀 쉬어. 당장 몬스터도 안 보이니까.”
“아, 네!”
“재호 씨도 쉬시면서 얘기 좀 하시죠.”
“얘기요?”
갑작스런 세은의 말에 정재호가 물었다.
“별 얘기는 아니고요. 일단 앉으세요. 다리 아픈데.”
세은은 먼저 털썩 주저앉았다.
정재호는 세은이 할 얘기가 있다는 말에 살짝 긴장한 상태였다.
‘나한테 할 말이 뭐가 있지?’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세은과 따로 할 만한 말은 없었다.
‘이것 때문에 실장님한테 나랑 같이 가고 싶다고 한 건가? 무슨 일이지? 내가 잘못이라도 했나?’
정재호의 머릿속이 온갖 추측들로 복잡하게 엉켜들었다.
“안보원 일은 할 만해요?”
“예? 예. 좋습니다.”
“정말로요?”
“……그럼요.”
세은의 반복된 질문에 정재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안보원 일에 만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만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직장상사와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직장의 욕을 하는 행동은 절대 금해야 할 일.
직장과 관련된 질문에 정재호의 태도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일단 영입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해결해야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할 때나,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세은은 어느 정도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어차피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관심 있게 지켜본 정재호에게 영입 제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질문은 왜 하시는지…….”
“아.”
재호의 질문에 세은이 담담하게 말했다.
“혹시 저랑 같이 일할 생각은 없나 해서요.”
“예?”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정재호가 반문했다.
세은 역시 그런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에 여전히 담담하게 다시 말했다.
“저랑 같이 일할 생각이 없나 해서 물었습니다.”
“아, 저, 저기, 그러니까. 지금 그 말씀은.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당황해서 어버버거리는 정재호의 말을 끊고 세은이 대답했다.
“네. 제대로 들은 거 맞습니다.”
“아…….”
상상하지도 못한 제의에 정재호가 말을 잇지 못했다.
“뭐, 지금 직장에 만족하시면 어쩔 수 없고요.”
“아, 아닙니다!”
세은의 말에 정신을 차린 정재호가 급하게 대답했다.
“저야 영광입니다!”
“잘 생각하고 대답하세요.”
다른 말을 듣지도 않고 너무 쉽게 대답하던 정재호를 만류하며 말을 이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미국이랑 우리 정부와 저 사이에 약간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트러블이요?”
“자세한 건 지금 말하기는 좀 그렇고. 하여튼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저랑 같이 일하게 되면 정부와 부딪히는 일이 종종 생길 수도 있다는 겁니다.”
잠시 말을 멈춘 세은이 정재호의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정재호가 복잡한 표정으로 그런 세은의 눈을 마주 보았다.
“강요 아닙니다. 같이 일할 사람인데 자의로 합류해야죠.”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정재호가 쾌활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마나링을 알려준 분도 세은 씨인데, 은혜는 갚아야죠.”
“저도 필요해서 알려준 건데요.”
“그렇다고 해도 도움을 받은 건 받은 겁니다.”
“맞아요!”
뒤에서 쉬고 있던 채연도 가볍게 재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정부 다 합쳐봐야 세은 씨만 하겠습니까?”
정재호의 말에 세은은 아무 말 없이 웃음을 지었다.
“세은 씨와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정재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저도요!”
정재호의 영입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세은이 본격적으로 게이트에 들어온 이유를 그에게 설명했다.
“그럼 이제 같이 일을 하기로 했으니 게이트에 들어온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실전만큼 훌륭한 수련이 없는 관계로 수련을 위해 들어온 겁니다.”
“게이트에서 수련을요?”
일반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생각에 정재호가 되물었다.
“각성자들끼리는 살수를 쓸 수 없으니까요. 연습으로도 실력은 늘지만 실전이 최고죠.”
“그렇기는 할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재호 씨가 거절하면 채연이만 수련을 시킬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일을 하기로 하셨으니 재호 씨도 수련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수련이란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방금 말했지 않습니까?”
세은의 입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실전이라고요.”
“그, 그럼 몬스터를 저 혼자서 잡습니까?”
“왜 혼자예요?”
“역시! 세은 씨가 도와…….”
“채연이랑 같이 잡아야죠.”
세은의 말에 정재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런 정재호의 표정은 안중에도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자, 딱 이십 분만 쉬고 몬스터 찾아서 이동하겠습니다.”
“이십 분이요?”
손목시계를 보며 채연이 대답했다.
“그럼 저희 오늘 여기서 잘 거예요, 오빠?”
“상황 봐서?”
“힝. 준비 하나도 안 해왔는데…… 이럴 거면 제대로 말해줘야죠. 여기서 잘 수도 있다고.”
“미안, 미처 생각을 못했어.”
“아! 진짜 너무해요.”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잠자리를 걱정하는 채연의 태도를 보며 정재호가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지?’
정재호는 분명히 평범하지 않은 세은과 채연의 대화를 들으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