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13. 게이트와 수련(1)
“식사는 잘 하셨습니까?”
저녁을 먹고 게이트로 돌아온 세은에게 이지호가 물었다.
세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실장님은 식사를 어떻게?”
“저도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아, 네.”
짧은 대화를 끝낸 세은이 처음에 앉아 있던 나무 아래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지호가 조심스럽게 세은의 옆으로 다가갔다.
“저…… 혹시 원하는 거라도 있으시면 말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지호의 말에 세은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이지호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라도 괜찮습니다. 일단 말씀을 해주셔야 저희 쪽에서도 판단을 할 수 있어서요.”
반응만 하면서 아무 말도 꺼내지 않는 세은의 태도에 이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흐음…….”
세은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람을 애태우는 그 모습에 이지호는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정부와 달리 제 개인으로 세은 씨에게 충분한 도움을 드리려고 애썼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생각해 주십시오.”
“그렇긴 하죠.”
이지호의 간곡한 말에 드디어 세은의 입이 열렸다.
세은의 대답을 들은 이지호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다른 곳이면 몰라도, 이 게이트는 너무 시내 한가운데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파트와 터미널이 지근거리라 다른 게이트 때처럼 상주인원을 두고 경계를 한다 해도 위치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그럴 것 같네요.”
“세은 씨가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정부에 실망하신 것 잘 압니다. 그래도 국민들을 위해서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세은이 자신을 턱을 쓱쓱 매만졌다.
“그럼 혹시 사람 좀 데려가도 됩니까?”
조건부 승낙이지만 이지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부탁이었다.
‘이 기회에 안에서 채연이 수련도 시키고 정재호 의견도 물어보고 해야겠네.’
원래는 조금 더 애를 태울 생각이었으나, 이지호의 말대로 게이트의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기는 너무 귀찮았다.
딱히 원하는 조건은 없었지만, 그 와중 정재호가 머리를 스쳤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일을 시작했으니 빨리 진행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원하십니까? 아마 길드 소속 사람들도 세은 씨가 원한다 하면 군말 없이 따라갈 겁니다.”
“길드 소속 아닙니다. 안보원에 정재호라고 있지 않나요?”
“아, 세은 씨가 처음에 마나 링을 가르친 요원 말씀이시군요.”
“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아? 정말로 한 명이면 충분하십니까?”
세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실력을 알고 있는 이지호도 더 이상 묻지 않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정재호 요원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예, 여기서 기다리죠.”
이지호가 정재호를 데려오기 위해 자리를 뜨자 채연이 세은에게 물었다.
“오빠! 아까 낮에 말한 대로 그 아저씨한테도 물어보게요?”
“응. 한번 물어는 보게.”
“한다고 하지 않을까요?”
“글쎄다. 공무원을 더 좋아할 수도 있지.”
“에이. 공무원도 먹고 살려고 하는 건데요. 그리고 오빠랑 있으면 위험해질 일도 없잖아요.”
채연은 당연히 정재호가 세은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세은도 채연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성격을 아직 정확히 모르기에 게이트로 데리고 들어가 심도 있게 관찰을 하려 한 것이었다.
급하게 평가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세은은 느긋했다.
오히려 채연의 실력을 빨리 끌어올리는 것이 더 급한 문제였다.
‘어중간한 실력자 여러 명보다는 확실한 실력자 한 명이 낫지.’
어중간한 하이에나 열 마리보다는 사자 한 마리가 낫다.
세은이 경험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실전만 한 훌륭한 수련이 없다.
그래서 이번 게이트에서는 조금 오래 머물러야 고민했다.
“세은 씨, 정재호 요원 데리고 왔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지호에게서 세은이 자신을 찾는단 얘기를 들었는지 정재호가 긴장한 채 인사를 건넸다.
“얘기는 듣고 온 거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동행으로 저를 지목했다고 들었는데요…….”
한 번도 게이트로 들어가 본 적이 없던 정재호가 말끝을 흐렸다.
긴장한 기색이 온 얼굴에 역력했다.
“거절해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너무 겁이 많아도 데려다 쓸 수도 없다.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뒤에서 몰래 정재호의 등을 손가락을 쿡쿡 찔렀다.
상관의 압박에 정재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괘, 괜찮습니다.”
처음 들어가게 될 게이트가 두렵기는 했지만, 세은과 함께라면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도 들었다.
벌써 게이트를 여러 번 닫았던 전적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잠시 후에 들어가죠.”
“오늘 말입니까?”
조금 더 굳은 정재호의 표정과는 달리, 이지호의 표정은 한층 밝아졌다.
“이번에는 들어가서 좀 오래 있을 수도 있겠네요. 식량 좀 챙겨주세요.”
“알겠습니다! 정재호 요원에게 준비시키겠습니다.”
이지호는 정재호를 재촉하며 식량을 챙기기 위해 사라졌다. 세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면서 채연에게 말했다.
“우리도 갈 준비하자.”
“네!”
“들어가서 수련할 거니까 준비해.”
세은은 이번 게이트에 수련에 알맞은 수준의 몬스터들이 있기를 바라며 말했다.
* * *
“축축하네.”
게이트 안으로 먼저 입장한 세은이 감상을 꺼냈다.
리자드맨이 튀어나온 게이트답게 늪지대가 형성된 게이트 안은 습기로 인해 매우 축축했다.
“습도가 높아서 기분 나빠요.”
뒤이어 따라 들어온 채연이 고개를 내저으며 불평했다.
수련을 하기에 알맞은 환경은 아니었다.
“일단 가보자.”
리자드맨들이 모두 게이트 밖으로 쏟아져 나왔는지, 텅텅 빈 늪지대를 바라보며 세은이 말했다.
게이트가 처음인 정재호는 눈치를 보며 둘의 뒤를 따라 걸었다.
“오빠, 발이 자꾸 빠져서 힘들어요.”
늪지대의 특성상 중간중간 갑작스럽게 발이 푹 빠지는 땅이 곳곳에 존재했다.
그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은데다, 체력 소모 역시 클 수밖에 없었다.
“헉헉.”
가장 체력이 약한 정재호는 벌써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땅히 쉴 곳이 없는데.”
채연과 재호의 체력이 떨어진 게 눈에 보였지만, 휴식을 취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신성력으로 체력을 회복시켜 주며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웅―
세은이 지속적으로 넣어주는 신성력으로 버티며 채연과 재호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헉헉…… 이 늪은 대체 언제 끝납니까?”
워낙 기본적인 체력이 바닥인 정재호는 신성력을 받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계속 가쁜 숨을 내쉬었다.
결국 참다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늪에 지쳐 세은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글쎄요. 이 게이트는 저도 처음이라.”
“아…….”
기약 없는 세은의 말에 정재호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신성력으로 체력은 회복시킬 수 있지만,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사자의 정신 문제였다.
너무 지쳐 보이는 정재호의 모습에 세은은 그를 다독였다.
“가다가 쉴 만한 고지대가 보이면 쉬다가죠. 조금만 더 힘내요.”
“아, 알겠습니다.”
세은의 말에 정재호가 숨을 고르며 다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어? 저기 마른 땅이 있어요!”
제발 쉬고 싶다는 정재호의 간절한 바람 때문일까.
십 분 정도를 더 걷자 일행의 눈앞에 드디어 쉴 만한 마른 고지대가 보였다.
“저기서 좀 쉬다 가자.”
“좋아요!”
“허억허억.”
세은의 말에 반색하는 채연과, 이제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하는 정재호였다.
‘영입하게 되면 체력부터 기르게 해야겠어.’
아무리 신성력을 넣어줘도 힘들어하는 정재호를 보며 세은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라도 체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좋았지, 손해 볼 일은 없었다.
“흐어어…….”
마른 땅에 도착하자마자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정재호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안쓰러운 그 모습에 채연이 수통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고, 고맙습니다.”
수통을 받아든 정재호는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크하아!”
물을 잔뜩 마신 정재호가 그제야 조금 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오빠도 드세요.”
“괜찮아. 목 안 마르니까 먼저 마셔.”
채연이 건넨 수통을 거절한 세은이 주변을 탐색했다.
모처럼의 고지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가는 방향을 잘 잡긴 한 것 같은데.’
늪지 식물들이 꽤 높게 자라서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멀리까지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거의 다 온 것 같네.”
“뭐가 보여요?”
“저쪽에 초원이 있는 것 같아.”
세은이 채연의 질문에 대답해 주며 자리에 앉았다.
‘딱히 몬스터는 없을 것 같은데.’
저번의 사막 게이트와 같이 늪을 벗어나야 몬스터가 있을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여러 가지 자연 환경이 나타나는 거야.’
세은은 모든 게이트들이 그냥 평범하게 초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초원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물도 마시고, 앉아서 쉬다보니 드디어 여유가 생긴 정재호가 세은에게 물었다.
“지금 속도면 삼십 분 정도요.”
“삼십 분이요?”
정재호는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드디어 끝이 보인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래도 끝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저는 계속 늪만 걷게 될까 봐 걱정이었습니다.”
정재호의 말에 세은이 피식 웃음 지었다.
“몬스터보다 늪이 나을 텐데요.”
“에이, 저도 차라리 몬스터가 나아요.”
채연이 발랄하게 대화에 참여했다.
“몬스터야 오빠가 있으니까 오히려 걱정이 덜하다구요. 그런데 늪은 정말로…… 으으.”
가볍게 몸을 떤 채연이 말을 이었다.
“공기는 말도 못하게 축축한데다가 발은 푹푹 빠지고, 정말 최악이에요. 최악!”
“맞습니다. 차라리 몬스터가 낫죠. 늪은 이제 정말 그만 걷고 싶습니다.”
정재호는 마른 땅을 손바닥으로 팡팡 내려쳤다.
두두두―
“응?”
둘의 얘기를 듣던 세은은 땅이 미약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왜요?”
“아니, 방금 땅이 울린 것 같아서.”
“네?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요?”
“저도 못 느꼈습니다.”
축 늘어져 누워 있던 정재호 역시 말했다.
그러나 세은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살짝 움직였는데.’
두두두두―
“움직이는데?”
또다시 느껴진 진동에 세은이 말했다.
“이번에는 저도 느낀 거 같아요.”
처음보다 조금 더 강해진 진동에 채연이 대답했다.
“저만 못 느끼는 겁니까?”
이번에도 진동을 느끼지 못한 정재호가 물었다.
그러나 세은은 정재호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감각을 땅에 집중했다.
‘지진이 아닌 것 같은데.’
두두두!
이번에는 정재호도 느낄 수 있을 만한 거센 진동이 느껴졌다.
“꾸오오오!”
커다란 울음소리가 일행의 귀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