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12. 돕는 자만을 돕는다(3)
“쿠워어억!”
‘젠장! 지원은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또다시 거대 리자드맨이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같은 차륜전은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휴식조라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실 휴식조 자체가 거대 리자드맨을 상대하기 위한 대기조라 할 수 있었다.
“이제 다들 마나와 체력이 한계입니다!”
박동원이 다급하게 외쳤다.
“나도 알아!”
이지호가 짜증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 상기시킬 필요가 없었다.
박동원의 외침은 그저 모두의 사기를 떨어트릴 뿐이었다.
“지원이 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버텨!”
그러나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이 소리를 들었던 각성자들은 이지호의 말에도 구긴 표정을 펴지 못했다.
후웅!
거대 리자드맨의 곡도가 위협적으로 공기를 갈랐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저 무식한 공격이 스치기라도 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할 것이다.
“제대로 피해!”
체력을 아끼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던 근접 각성자들이 가장 먼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무거워진 다리가 생각만큼 빠르게 반응하지 못하는 탓이었다.
“크악.”
가장 가까이 있던 각성자의 팔에 리자드맨의 곡도가 스쳤다.
“으아아아!”
풍압이 사정없이 살을 짓이기며 각성자의 한쪽 팔을 날려 버렸다.
고통에 울부짖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다른 각성자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쾅!
“으윽!”
“이 새끼들아! 앞을 봐!”
거대 리자드맨은 부상자가 생기자 눈을 빛내며 그 쪽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약한 자를 먼저 잡는다. 리자드맨들의 본능적인 사냥법이었다.
“부상자 구할 때까지 시선을 끌어!”
“옛!”
쾅! 콰앙!
수많은 마법이 거대 리자드맨에게 직격했다.
“죽어!”
시야의 사각에서는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기 위해 근접 각성자들이 달라붙었다.
“쿠어웍!”
그러나 거대 리자드맨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부상자를 목표로 육중한 걸음을 옮겼다.
후웅!
“젠장!”
옆에서 시선을 끌려던 각성자들을 내쫓기 위해 휘두른 묵직한 곡도에, 부상자를 제대로 호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 살려줘…….”
팔이 잘려 나간 고통으로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각성자가 애처롭게 신음했다.
그러나 다른 각성자들의 노력에도 거대 리자드맨은 피냄새가 가장 진한 부상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안 돼!”
갖은 방해에도 부상자와의 거리를 점한 리자드맨의 우악스러운 손이 앞으로 뻗어져 나갔다.
“으아아아!”
가까워지는 흉측한 손에 부상자의 입에서 공포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스악―
“쿠워……?”
당장이라도 부상자를 움켜쥘 것 같던 리자드맨의 손이 갑자기 그대로 멈췄다.
“뭐, 뭐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누군가의 입에서 의문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쿵!
“쿠아아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위용을 자랑하던 리자드맨의 팔이 깔끔하게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팔 가져와.”
“네! 오빠!”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이지호의 고개가 돌아갔다.
“세은 씨!”
이지호는 반가운 마음에 세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홀리 애로우.”
그러나 세은은 이지호의 외침에 대답하지 않은 채, 빛의 활을 만들어 거대 리자드맨을 노리고 시위를 놓았다.
파아앙―
파공성과 함께 리자드맨의 목이 깔끔하게 관통당했다.
“오빠 팔 여기 있어요!”
그리고 그사이에 채연이 잘려 나간 각성자의 팔을 찾아서 가져왔다.
“대충 위치 맞춰봐.”
“네!”
“고쳐줄 테니까 가만히 좀 있어요.”
고통과 공포로 얼굴이 엉망이 된 각성자를 진정시키며 세은이 말했다.
세은이 각성자를 진정시키는 동안 채연은 잘린 팔을 상처 부위에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됐어요!”
채연의 말에 상태를 확인한 세은이 나지막이 마법을 시전 했다.
“에일린. 리커버리.”
우우웅―
강한 빛을 내며 각성자의 팔이 천천히 붙기 시작했다.
강력한 힘에 의해 짓이겨져 소실된 부분 역시 마치 기적처럼 천천히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미친…….”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이적에 누군가의 입에서 감탄의 욕설이 튀어나왔다.
당사자조차 믿을 수 없단 눈으로 치료되고 있는 자신의 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움직여 봐요. 어디 문제는 없는지.”
이마에 살짝 고인 땀을 훔쳐내며 세은이 말했다.
그의 말에 각성자는 말끔하게 치료 된 자신의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어,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럼 됐네요. 앞으로는 조심해요. 오늘은 운이 좋았으니까.”
“네, 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각성자를 뒤로한 세은이 가까이 다가온 이지호를 바라보았다.
“이제 됐습니까?”
“정말 감…… 예?”
퉁명스러운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말을 모두 끝내지 못하고 반문했다.
“거대 리자드맨이 나오면 알아서 처리할 테니 다른 잡다한 것들은 알아서 처리하시죠.”
“아, 알겠습니다.”
세은의 심기가 여전히 불편한 것을 알아챈 이지호가 일단은 뒤로 물러났다.
처음과 같이 휴식조와 방어조를 나눠서 로테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다.
“휴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세은의 등장으로 휴식 시간이 보장되자 각성자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말이야. 지쳐서 죽는 줄 알았어.”
로테이션이 제자리를 찾으니, 리자드맨을 상대하던 각성자들의 손에도 한결 여유가 깃들었다.
다시 사기가 오르는 것을 확인한 이지호가 슬며시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는 세은에게 다시 다가갔다.
“세은 씨.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하하, 진심입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지호가 말했다.
“그나저나 할 만한가요?”
그런 이지호의 말을 무시하고 세은이 물었다.
“거대 리자드맨만 아니면 할 만합니다. 세은 씨 덕분에 다들 실력이 많이 늘…….”
세은이 다시 이지호의 말을 끊었다.
“직접 와서 보니 별게 아니더군요. 저 정도는 스스로 해야 하니 더 열심히 수련시켜야겠네요.”
‘그야 당연히 당신이 보기에는 별게 아니지.’
그러나 이지호는 차마 속에 있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세은의 말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맞습니다. 수련이 더 필요하기는 하죠. 이 정도 돌발 상황 정도는 넘길 수 있어야 하니까요.”
“당연하죠.”
세은은 담담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다음 거대 리자드맨이 나올 때까지 여기 있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세은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어느새 채연이 근처 편의점에서 시원한 음료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 * *
콰앙!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 리자드맨이 손에 쥐고 있던 곡도를 휘둘러보기도 전에 세은의 마법을 맞고 절명했다.
“더 이상 리자드맨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쓰러진 거대 리자드맨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게이트에서는 리자드맨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 휴식을 취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마!”
“옛!”
이지호는 아직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부하들의 끈을 조였다.
그리고 세은에게 앞으로의 일을 묻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대충 끝난 것 같네요.”
처음 부상을 입은 각성자를 치료할 때를 제외하고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세은이 말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가도 되나요?”
“아, 저 그게…….”
“더 도와줄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제 평소처럼 게이트에 들어가 게이트를 닫아달라고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보여준 세은의 태도라면 단칼에 거절당할 것이 분명했다.
세은도 이지호가 하려는 말을 알았지만 당장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럼 우리 밥 먹을까요?”
“대전에 맛집 있어?”
“검색해 보면 되죠!”
세은과 얘기를 해서 돌아가는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 채연이 화제를 돌렸다.
“일단 대전은 빵이 유명하잖아요.”
“그럼 밥 먹기 전에 빵부터 먹을까?”
“헤헤, 그럴까요?”
세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럼, 저희가 아직 밥을 못 먹어서 간단하게 먹고 있을 테니 문제 생기면 연락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완곡한 거절의사를 내뿜는 세은의 행동에 이지호가 다시 한발 물러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식사를 못했군.’
긴장이 풀리자 그제야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교대로 돌아가면서 식사들 하게 해. 너무 멀리가지는 말고.”
“예! 알겠습니다.”
이지호는 박동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각자 위치에서 쉬고 있던 클랜장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 * *
“오빠, 그럼 언제 게이트 닫을 거예요?”
유명한 빵집에서 구입한 빵을 먹으며 채연이 세은에게 물었다.
“흐음…… 글쎄?”
스마트폰으로 제대로 된 밥집을 찾고 있던 세은이 액정에서 시선이 떼지 않고 대답했다.
“당장 문제가 안 생기면 조금 기다려도 될 것 같은데?”
세은은 말을 하다가 남아 있는 빵을 몽땅 입안에 우겨넣었다.
“그리고…… 몬스터 웨이브…… 꿀꺽, 끝난 게이트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말도 없고.”
“그렇긴 그렇죠.”
“일단 하는 거 봐서. 정부에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은은 음료를 마시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래도 와보니까 너무 시내라 걱정이 돼서요.”
그 틈을 타서 채연의 걱정이 흘러나왔다.
“일단 어떻게 될지 기다려 보자.”
“언제까지요?”
“서울에 올라가기 전까지.”
“그럼 얼마 안 남았는데요?”
“그렇다고 다시 내려오기는 귀찮잖아.”
세은의 말에 채연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세은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밤까지 우리가 이렇게 있으면 애가 타는 건 저쪽이니까 뭔가 반응이 있을 거야.”
“그럴까요?”
“그럼, 그렇지.”
식당 검색을 끝낸 세은이 휴대전화의 화면을 껐다.
“그러니까 일단 밥부터 먹자.”
세은의 입가에 씩 미소가 걸렸다.
“빵 빨리 먹어. 다른 거 먹으러 가게.”
“아? 네, 네.”
채연이 급하게 빵을 먹는 소리만이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