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40화 (40/225)

# 40

12. 돕는 자만을 돕는다(2)

“그래요?”

세은은 그게 어떠냐는 듯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세은의 그런 태도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지호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갑자기 생겨나서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면…….”

“싫습니다.”

“아, 역시…… 예?”

당연히 이번에도 세은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지호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했다.

“싫다고 했습니다.”

“아, 그게, 저…….”

시리도록 냉정한 세은의 대답에 할 말을 찾던 이지호는 다시 말했다.

“이번에 게이트가 열린 곳이 대전입니다. 시민들의 피해가…….”

“길드들에 부탁하세요. 언제까지 제가 도와드려야 하는지?”

“그래도 세은 씨 한 분의 능력이…….”

“제가 혼자 다 할 수 없으니까 마나 링과 오러 홀 생성 방법도 알려주고, 수련 역시 도와주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 그렇습니다.”

이지호의 대답에 세은이 살짝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그럼 먼저 해결해 보시고, 얘기하세요.”

“……예.”

다시 세은을 설득하려던 이지호는, 매우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세은의 표정을 알아채고 설득을 포기했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렇지?’

이지호는 틱틱거리거나, 불편한 티를 내기는 했지만, 여태까지 잘 도와주던 세은이 갑자기 저러는 이유를 추리했다.

‘이유는 딱 하나인데 말이야.’

아무래 생각해도 세은의 부모님과 관련된 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여튼 하나도 도움이 되는 게 없어.’

이지호는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일이었다.

현장의 현자도 몰라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도 못하는 상부를 욕하며, 이지호는 전화기를 들어 각 길드장들에게 비상 연락을 돌렸다.

장소는 대전.

언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지 모르니 서둘러야만 했다.

* * *

세은은 채연과 함께 수련을 할 만한 마땅한 건물을 찾고 있었다.

다음 게이트가 열려서 몬스터 사체를 판매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안보원에서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리 건물을 알아보자는 세은의 말에 채연이 대답했다.

「저 돈 많은데요?」

각성자가 되고 안보원에서 월급으로 받은 건 물론, 수십여 개의 광고 수입 등으로 모은 돈은 건물을 하나 사기에 충분했다.

“아무래도 외곽이 좋겠어.”

“그렇죠? 그리고 아무리 저라고 해도 도심에서 원하는 건물을 사는 건 조금 무리예요.”

이지호에게 부탁한다면 적당한 건물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을 테지만, 이제 어지간해서 도움을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번 부탁을 거절하고 부탁하기에도 조금 그러니까.’

그동안 세은이 도와준 것에 비하면 이번에 한 번 거절했다고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세은은 이런 식으로 천천히 거리를 두는 게 좋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되돌려줘야 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안 돼.’

다행히 채연을 알아본 부동산 주인들의 전폭적인 협조 덕분에 적당한 매물을 몇 개 추릴 수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직접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급한 건 아니니까,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가보자.”

“네!”

마치 데이트라도 하는 듯한 기분에 채연이 잔뜩 들떠 있을 때였다.

위잉― 위잉―

채연의 휴대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응? 이 실장님이 무슨 일이지?”

잠시 의문을 표한 채연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세은! 세은 씨 옆에 있어?

간단한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지호가 다급하게 세은을 찾았다.

“네? 네. 옆에 있는데요?”

―빨리 바꿔줘!

이지호의 말에 채연이 휴대전화를 세은에게 건넸다.

“여보세요?”

―세은 씨!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셨습니까?”

“무음이라서요.”

세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금 큰일 났습니다!

“뭐가요?”

―대전에 몬스터들을 저희끼리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왜 막을 수 없어요?”

이지호는 세은의 물음에 빠르게 대답했다.

―물량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 포위망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시다시피 마법사들도 마나의 한계가…….

세은이 이지호의 말을 잘랐다.

“하여튼 막을 수는 있다는 말이네요.”

그 말에 이지호가 황급히 대답했다.

―어차피 게이트를 닫아주실 수 있는 분은 세은 씨뿐입니다.

너무 당연하게 말을 하는 이지호의 말에 세은이 대답했다.

“실장님, 지금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예?

“애초에 게이트를 닫은 건 제 호의였습니다. 제가 꼭 닫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그, 그건…….

“제가 닫지 않아도 잘 운영되고 있던 것 아닙니까? 외국 사례만 봐도 그렇고요.”

―…….

세은의 말에 전화기 너머의 이지호가 조용해졌다.

“포위망이 뚫린 정도가 되면 다시 연락주세요. 그때는 도움 드리겠습니다.”

민간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밀고 당겨야 하는 사실이 불편했지만,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건 꺼림칙한 일이었다.

어찌 되었건, 현재까지는 세은의 의도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 * *

대전의 게이트가 생성된 곳은 둔산선사유적지였다.

시외버스 터미널과 정부 대전청사가 옆에 있고, 반대쪽 방향에 아파트들까지 몰려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현재 각성자들은 기를 쓰며 좁은 선사유적지를 경계선으로 삼고 있었다.

아파트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거나 시외버스 터미널을 폐쇄 조치하는 건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폐쇄 조치를 취한 뒤 포위망을 넓힌다고 해도, 부서진 건물에 입주하던 사람들을 수용하는 것도 문제였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둔산선사유적지에 몬스터들을 묶는 것이 나았다.

“막아!”

“오른쪽으로 간다!”

안보원에서는 남쪽을, 대한 길드와 화령 길드, 그리고 태극 길드에서는 각기 다른 방위를 하나씩 맡고 방어하고 있었다.

이번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는 이족보행을 하는 파충류 몬스터, 리자드맨이었다.

“캬아악!”

한 손에 방패, 한 손에 곡도를 든 리자드맨들은 그 기괴함과 크기로 각성자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피부에 점액이 있어서 칼이 점점 둔해져!”

“물 계열 마법은 효과가 덜하다! 전격 계열 마법을 주로 사용해!”

각성자 관리법 개정 이후로 가장 커다란 길드 3개와, 안보원이 힘을 합친 만큼 포위망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선사유적지에는 리자드맨들의 시체가 쌓여갔다.

“크윽. 시체가 너무 쌓여서 움직임에 제한이 있습니다!”

“여유가 되면 시체를 뒤로 치워라!”

다행히 같은 소속끼리 한 방위를 맡게 하는 이지호의 전략을 잘 통해서, 돌발 상황에도 유기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버텨야 합니까?”

안보원 쪽에서 실전을 처음 겪는 요원들이 상사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상사들도 제대로 된 대답을 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짧으면 곧, 길면 이틀은 잡아야 하니까, 잔말 말고 잡아!”

“예!”

각성자들이 게이트에서 나오는 리자드맨들을 바로바로 사냥하며, 아슬아슬한 균형을 맞춘 지 거의 6시간이 지났다.

아무리 차륜전을 펼치고 있다지만, 계속되는 상황에 모두의 피로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쿵― 쿵―

그때, 게이트 안에서 지금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는 커다란 발소리가 들렸다.

“뭐지?”

세은에게 요청한 지원이 거절당한 이후로, 현장에서 손을 보태고 있던 이지호가 의문을 표했다.

쿠워어어어웍!

그리고 이내 커다란 발소리의 주인공을 만날 수가 있었다.

“거대 몬스터다!”

게이트와 가장 근접한 곳에서 리자드맨을 막고 있던 각성자의 입에서 경고가 튀어나왔다.

1미터 50센티미터 남짓하던 지금까지의 리자드맨들과는 달리, 지금 게이트에서 등장하는 리자드맨은 거의 3미터에 육박했다.

다행히 거대 리자드맨은 한 마리가 전부인 것 같았다.

“막을 수 있나?”

세은과 같이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거대 거미와 맞부딪힌 적이 있던 이성우가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 움직이지 말고, 휴식조! 전부 저 거대한 놈을 잡아! 포위망이 뚫리면 안 된다!”

“우리도 포위망은 유지한다!”

“포위망은 유지하고 휴식조가 나가!”

각 길드의 길드장들 역시 이지호의 대처를 보고 똑같이 지시를 내렸다.

아무리 휴식조들이 쉴 시간이라지만, 그렇다고 포위망을 풀 수는 없었다.

포위망을 푸는 순간 대전 시내에 리자드맨들이 쏟아져 나가는 대형 참사가 일어날 게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수웅―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커다란 곡도와 방패를 들고 있던 리자드맨이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거대한 팔에서 뿜어져 나온 힘이 풍압을 통해서 각성자들에게 전달되었다.

“하압!”

“차아앗!”

오러 사용자들이 거대 리자드맨의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콱!

“아, 안 통해!”

그러나 완숙한 오러 익스퍼트가 아닌 이상 거대 리자드맨은 피부로 공격을 튕겨내었다.

“젠장! 수준이 낮은 자는 뒤로 빠져라!”

“객기 부리지 말고 빠져! 목숨이 달린 일이야!”

결국 거대 리자드맨을 상대하는 인원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젠장, 게이트의 몬스터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 한라산도 그렇고.’

이지호가 거대 리자드맨의 위용을 보면서 손톱을 깨물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이미 몬스터들이 각성자들의 능력을 뛰어넘었다는 보고를 들었지만, 넓은 땅을 이용해 포위망을 넓게 사용할 수 있었다.

포위망이 넓으니 강한 몬스터도 각개격파가 가능해서 게이트 관리가 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사정이 달랐다.

‘앞으로도 꼭 세은 씨의 도움이 필요해. 정부, 이 멍청한 새끼들……!’

퍼억―

거대 리자드맨이 휘두른 방패에 오러 익스퍼트 한 명이 멀리 날아갔다.

날아가는 그의 입에서 피가 토해지는 것이 보였다.

‘저런 놈이 또 나오면 우린 전멸이야.’

거대 리자드맨들과 힘겹게 싸우는 모습을 보며, 이지호는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 * *

투두두두두―

헬기의 프로펠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세은은 또다시 채연에게 연락을 한 이지호의 간절한 부탁을 받고 헬기를 타기 위해 헬기장으로 왔다.

“도세은 씨?”

“맞습니다.”

“얼른 타시죠. 옆의 분은 서채연 씨 아닙니까?”

“같이 갈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세은은 채연에게 실전을 더 경험시켜 주기 위해 채연을 데리고 대전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이라고?”

“초록빛의 이족 보행 도마뱀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 거대한 놈들이 한 마리씩 나와서 포위가 뚫리기 직전이래요.”

“리자드맨이네.”

“리자드맨이요?”

“도마뱀이라며? 그럼 그놈들밖에 없지. 하여튼 거대한 리자드맨이라고?”

“네. 다행히 한 마리씩 나와서 어떻게든 막고는 있는데,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부상자가 나오는 바람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들데요.”

채연의 말에 세은이 물었다.

“거대 리자드맨이 얼마나 나오는데?”

“처음 여섯 시간 동안은 하나도 안 나왔는데, 지금까지 30분 간격으로 세 마리째인가 봐요. 저한테 처음 전화가 온 건 1시간 전이고요.”

“민간인 피해는 없고?”

“다행히 아직은 없다네요.”

“여태까지는 거대한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잖아?”

“그렇죠. 그런데 저번 한라산부터 조금 이상해요.”

‘한라산이야 안드라스 그 새끼 때문이긴 했는데…….’

점점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이 강력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기 들어보니까, 외국에서도 점점 몬스터들이 강해지나 봐요.”

“그래?”

그 부분에 관해서는 이지호와 얘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알려준 수련법이 없는 외국에서는 어떻게 거대한 몬스터들을 막는지 궁금했다.

‘일단 대전부터 정리하고.’

세은은 일단 대전에 도착하면 어떻게 어디까지 도와줘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헬기는 대전으로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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