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39화 (39/225)

# 39

12. 돕는 자만을 돕는다(1)

“가신 일이 잘 처리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뭐, 나름 잘 되기는 했죠.”

“그래도 앞으로 일본 야쿠자들이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개입할 기미가 보이면, 바로 알아서 막아준다고 하니 괜찮을 겁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렇게 안 끝냈습니다.”

“하하, 당연합니다.”

세은의 무심한 대답에도 이지호는 밝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다행히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지호의 말에 세은이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거니와, 할 말도 없었다.

지금 세은의 머릿속에는 야쿠자들을 상대하면서 떠올렸던 동료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하기는 해.’

지구에서는 명확한 지위가 있지 않은 이상, 사람을 부리긴 힘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믿기란 더욱더 요원했다.

이번 일로 알게 되었듯이, 이미 세간에 노출이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주위를 지킬 사람이 필요했다.

‘일단 후보가…….’

당장 떠오르는 것은 채연이었다.

채연은 처음에 오러를 수련시킬 때도 느꼈지만, 오러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사이도 상당히 좋았다.

‘다만 온전히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했을 때도 유지될지가 관건이지.’

다음으로 떠올린 사람은 이성우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성우는 대한 길드의 길드장이니만큼 온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세은의 실력에 탄복해서 그를 돕는 데 거리낌이 없어서 그렇지.

누군가의 위에 섰던 사람은 지위에 대한 욕심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이 가진 야망이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소진 역시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채연이랑 먼저 얘기를 해봐야 하나.’

눈앞에서 쉴 새 없이 입을 주절거리고 있는 이지호는 아예 처음부터 후보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잠시 후면 안보원에 올 테니, 한 번 얘기해 봐야겠어.’

생각을 정리한 세은이 이지호를 따라 수련장으로 들어갔다.

“파이어 볼트!”

수련장으로 들어간 세은의 눈에 확 띄는 인원이 한 명 있었다.

“저 사람은?”

“아, 기억하십니까?”

세은의 혼잣말에 이지호가 자동 응답기처럼 반응했다.

“정재호입니다. 세은 씨가 처음에 전투 마법사의 재능이 있다고 한…….”

“그래서, 많이 늘었습니까?”

세은은 이지호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일이 생겨서 까맣게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예. 잠시나마 세은 씨에게 배운 것도 있고…… 세은 씨 말 대로 캐스팅 속도 자체가 다르더군요.”

‘음. 정재호라…….’

자신의 사람을 만든다고 해도 아무나 만들 수 없었다.

배신을 하지 않는 신의와 그 신의에 맞는 실력과 재능이 있어야 했다.

‘일단 지켜봐야겠어.’

정재호는 동급의 각성자를 상대할 때 상당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런 이유로 정재호 또한 채연에 이어 세은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차앗!”

정재호가 다른 각성자들과 착실히 훈련을 하고 있었다.

“먼저 갑니다.”

몬스터 웨이브가 나타났다는 가정하에 오러 각성자가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동시에 마법사들의 손에서 캐스팅이 시작되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내 앞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염의 마나, 타오르는 화염의 구. 파이어 볼트!”

그리고 역시나 압도적으로 정재호의 캐스팅이 빠르게 완성되었다.

“타핫!”

오러 각성자가 앞에서 먼저 폭발하는 타점을 향해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그러고는 후속 공격 없이 그대로 허리를 숙였다.

“파이어 볼트!”

드디어 캐스팅을 마친 다른 마법사의 마법이 오러 각성자의 위를 지나 타점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그사이 다시 정재호의 마법이 발동되었다.

거의 다른 마법사가 마법을 한 번 사용하는 동안 두 번을 사용하는 꼴이었다.

‘확실히 속도는 빨라.’

이 정도면 노력 여하에 따라 어지간한 각성들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성품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세은 자신과 함께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문제였다.

세은이 가만히 다른 각성자들 중에서도 쓸 만한 사람이 있나 살펴보고 있을 때, 채연이 수련장으로 달려왔다.

“오빠!”

빠르게 달려와서 반갑게 인사한 채연은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은 그 늙은 아줌마 없나?’

소진은 화령 길드의 길드장이었기 때문에 저번 일본에 다녀온 뒤로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채연이 더욱더 밝은 표정으로 세은에게 말했다.

“잘 쉬었어요?”

“응, 도와줘서 고마워.”

부모님을 모시느라 제대로 인사도 건네지 못한 세은이 채연에게 인사를 건넸다.

“에이. 뭘요. 당연하죠! 오빠가 도와준 게 얼마인데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채연의 분위기에 세은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아, 잠깐 커피나 한잔 마실까?”

“정말요? 그럴까요?”

세은이 먼저 무엇인가를 먹자고 한 적은 처음이기 때문에 채연이 반색하며 대답했다.

이지호가 같이 가려고 했지만, 채연의 귀여운 협박 어린 눈빛에 그대로 수련장에 남았다.

대충 채연이 세은에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은 주변 사람이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뭐, 외국 사람이랑만 결혼 안 하면 되지.”

이지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수련하 중인 안보원 요원들을 지켜보았다.

* * *

“길드요?”

“응. 다닐 만해?”

“사실 잘 모르겠어요.”

세은의 질문에 입가에 휘핑크림을 묻힌 채 채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냐면 길드에 들어간 이후로 제대로 게이트를 막으러 간 적이 없거든요.”

“왜?”

“왜긴 왜예요? 오빠 때문이지.”

채연이 당연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길드는 갑자기 왜요?”

“아니, 그냥.”

“혹시 길드 가입에 관심 있는 거면 우리 길드로 와요!”

세은이 길드에 흥미가 생겼다고 생각한 채연이 가입 권유를 했다.

그러나 세은은 가볍게 고개를 내젓는 것으로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단호한 세은의 행동에 잠시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던 채연은 다시 세은에게 물었다.

“그럼 길드는 왜 물어본 거예요?”

채연의 질문에 세은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세은은 다시 채연에게 물었다.

“길드 나와서 나랑 일할래?”

“네?”

갑작스런 세은의 제안에 채연이 다시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길드에서 나와서 독립적으로 같이 일 해볼 생각 없냐고.”

“그러니까 오빠랑 팀을 짜서 일하자고요?”

“그래, 그 말이야.”

“그런데 오빠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걸로 돈은 안 버신다면서요?”

처음에 세은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던 채연이 물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뭐. 팀원들 생기면 하기는 해야겠지.”

자신의 동료를 만들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가벼운 일로 부모님의 안전을 조금이라도 더 지킬 수 있으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하여튼, 잘 생각해 봐. 길드를 나오는 게 쉬운…….”

“저 할게요!”

세은이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채연이 반색하며 대답했다.

“어차피 오빠가 있어서 길드들도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는 걸요? 길드장님한테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자주 도와주면 되고.”

생각보다 채연이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자 세은이 두 눈을 껌뻑거렸다.

“아, 혹시 저 말고 다른 사람도 있어요?”

“아니, 아직은 없어.”

“그럼 저한테 제일 먼저 말한 거네요?”

“그렇지.”

“역시! 제가 제일 믿음직하죠?”

헤헤. 뿌듯해하는 웃음을 지으며 채연이 해맑게 말했다.

세은은 그런 채연에게 가장 중요한 얘기를 꺼냈다.

“나랑 같은 팀이 되면, 다른 곳보다 우리 팀이 우선이여야 해.”

“에이. 그건 당연하죠.”

“얼마 전처럼 미국이나 우리 정부가 내키지 않아하는 일을 할 수도 있어.”

“오빠!”

단점을 먼저 설명하던 세은에게 채연이 말했다.

“어차피 오빠 실력 하나면 다 막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이번 일도 오빠 부모님 때문에 그런 거고.”

채연은 맑은 눈동자로 세은을 바라보았다.

“그럼 돼요. 저는 오빠가 죄 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그러지만 않으면 좋아요.”

“그럴 일은 없지.”

“헤헤, 그럼 저는 좋아요. 무엇보다 사람들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너무나 순수한 채연의 모습에 세은은 부모님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을 해야 하나 살짝 고민했다.

‘뭐, 나중에 슬슬 얘기하면 되겠지.’

돈을 주고 경호원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당장 실력에 믿음이 가는 것도 아니니, 수련도 필요했다.

‘야쿠자 두목도 불완전해도 나름 오러 마스터에 한발을 걸쳤으니까.’

오러 홀이 없는 사람이 그 정도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랐던 세은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저쪽 세계에서도 오러 홀의 개념이 잡힌 것도 오러 마스터들 때문이었다고 했으니까.’

한국의 각성자들의 수준이 유난히 낮은 것인지, 그런 각성자들이 굳이 양지로 나오지 않는 것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세은은 일련의 경험을 비추어보았을 때, 한국에도 그 정도 수준의 각성자는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럼 일단 오러 마스터까지 단기간에 끌어올려야 해.’

여러 가지 수련법을 알고 있는 세은은 그중 채연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련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아! 그럼 저 말고 다른 사람들 또 있어요?”

“음…… 아마?”

그러나 이내 이어진 채연의 말에 다시 생각이 정재호에게로 향했다.

오러 각성자가 있으니 마법사도 있으면 좋았다.

“누군데요?”

“정재호.”

“아, 그 아저씨요?”

“아저씨?”

“내년이면 서른이라는데요? 그럼 아저씨죠.”

채연의 말에 세은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그러나 한 번 터진 웃음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사람이 들으면 슬퍼하겠네.”

한참을 웃어 살짝 결려 오는 광대를 만지작거리며 세은이 말했다.

“아저씨를 아저씨라고 하지 뭐라고 해요.”

채연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래. 알아서 해.”

“하여튼! 그럼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요?”

세은은 채연의 질문에 웃음을 완전히 지우고 대답했다.

“일단 우리는 지켜볼 거야.”

“네? 뭐를 지켜봐요?”

“게이트가 생기는 걸.”

“그럼 사람들이 죽잖아요?”

세은의 말에 채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럼 사람들이 많이 죽을 텐데요?”

실망감이 깃드는 채연의 표정에 세은이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리가 다 도와줄 수는 없어.”

“그렇긴 하지만…….”

채연의 말을 끊고 세은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수련법도 알려줘서 대부분이 수련을 하고 있으니 그렇게 피해도 크지 않을 거야.”

사실은 사람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신뢰가 완전히 깨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고기를 잡아서 먹여주기보다는,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게 확실해.”

거기다 지금 하는 말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언제고 자신이 전부 다 막아줄 수는 없는 일.

그리고 다행히 마나 링과 오러 홀이 생성된 각성자들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다.

세은의 말에 채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하긴 그렇겠네요. 전부 오빠가 해줄 수는 없으니까요.”

“응. 우리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정말로 위험해지면 나서면 돼.”

“아하.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세은과 채연이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멀리서 이지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 세은 씨!”

헐레벌떡 뛰어온 이지호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타이밍 좋게 외쳤다.

“게이트가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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