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11. 뜨거운 보복(4)
사노는 나리타 국제공항의 한 카페에서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미 음료를 몇 잔이고 연거푸 마신 뒤였다.
상부에서 사노의 눈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보지 않고는 세은의 능력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사노 자신 역시도 실제로 보고도 못 믿을 만한 광경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나가와 카이는 궤멸이다.’
사노는 예상을 넘어서 확신하고 있었다.
문제는, 세은이 야쿠자들을 얼마나 죽이냐는 것이었다.
가장 최선의 방법은…… 세은이 적당히 무력시위만 하고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분위기를 보니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힘이 있는데 왜 참는단 말인가.
무소불위의 힘.
절대적인 힘은 그 무엇도 꺼릴 게 없을 것이다.
사노 자신이 세은이여도 대화로 해결하는 번거로운 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야쿠자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있는데…….’
일본 3대 야쿠자 조직 중 가장 커다란 조직인 야마구치 구미에서는, 인사권에 불만을 가진 조직원들이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고베 야마구치 구미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돌입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야쿠자의 세력 구성에 변화가 생기면 필연적으로 일본 정세에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의 일본 정부에 만족하던 미국은 변화를 바라지 않았다.
‘제발, 미스터 도. 부탁합니다.’
세은이 적당히 난리치기를 사노가 바라고 있을 때, 사노의 전화기가 울렸다.
따르릉―
“오! 미스터 이. 무슨 일입니까?”
―사노 부장님, 아직 나리타공항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혹시 이나가와 카이의 본산으로 가주실 수 있습니까?
이지호가 말을 이었다.
―지금 세은 씨가 모든 일을 끝마쳤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아직 사망자는 없으니 중재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왓? 정말입니까!”
믿을 수 없는 이지호의 말에 자신의 기도가 먹혔다고 생각한 사노가 기쁘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다행히 제가 붙여 보낸 일행의 설득이 조금 먹힌 것 같습니다. 세은 씨의 부모님도 다치신 곳이 없다고 하고요.
“아! 알겠습니다. 일단 상부에 간략하게 보고하고 바로 이나가와 카이로 가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한미일 삼국의 협력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는 한국 정부에 감사를 표합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끊은 사노가 곧장 상부에 전화를 걸며 공항을 나섰다.
* * *
“대체 언제 와요?”
세은은 이지호에게 연락한 이성우의 말을 듣고, 아직 나리타 국제공항에 상주하고 있다던 사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세은의 앞에 엔도를 비롯해 이나가와 카이의 간부들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저희가 오는데도 꽤 걸렸으니, 그 정도 걸릴 겁니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네요.”
“하하하…….”
이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혹여나 세은이 갑자기 폭발할까 봐 세은의 부모님들을 납치한 야쿠자들은 다른 곳에 가둬놓은 상태였다.
세은의 부모님들은 소진이 다른 곳에서 잘 모시고 있었다.
굳이 이런 상황을 부모님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세은과 이성우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건강한 것을 확인했으니 자세한 얘기는 돌아가는 비행기 길에서 해도 충분했다.
또 괜히 여기서 세은이 부모님을 뵈었다가는 다른 곳에 가지 못하고 부모님과 함께 있어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세은은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믿을 수 있는 놈들이 없어.’
결국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안보원이나, 미국을 보며 세은은 쓴 입맛을 다셨다.
‘적어도 날 도와줄 사람들은 몇 구해야 하려나.’
여태까지 계속 평범하게 사는 것이 목표라고 누누이 얘기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까지 벌어진 이상 평범하게 사는 것이 거의 물 건너갔다는 사실을 세은 역시 알고 있었다.
적어도 3대 야쿠자 조직 중 하나를 단신으로 깨버린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스터 도!”
사노가 급하게 내원으로 달려오며 외쳤다.
사노는 이미 이리로 들어오면서 처참한 이나가와 카이의 상태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정말로 죽은 사람은 없어.’
이지호의 말대로 죽은 야쿠자가 없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뭐, 직접 개입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세은의 말에 사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하하. 상부에 미스터 도가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했다고 하니 개입 허가가 나더군요.”
“이제 와서 중간에 끼어 들겠다?”
더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순순히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생각까진 없었다.
이지호의 말과 달리 세은이 공격적으로 나오자 사노가 당황했다.
“아, 아닙니다. 저는 그냥 미스터 도를 도우려…….”
“불과 몇 시간 전에…… 그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지?”
세은의 말에 사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할 말 없던 사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때야 세은이 혀를 차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해봐. 저 새끼가 두목이니까.”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세은의 말이 떨어지자 사노가 한층 얌전해진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던 엔도에게 다가갔다.
“하이. 미스터 이나가와.”
“누구냐?”
“난 이런 사람이야.”
사노가 품에서 배지를 꺼내 엔도에게 보여줬다.
“특수국토안보국이라…… 미국이군. 미국이 이 일에 개입되어 있나?”
“개입되어 있다면 있는 거지. 뭐, 좋은 쪽으로 개입하려고 했지만.”
자신의 제안을 망친 야쿠자들을 찾으려고 주변을 흘깃 둘러본 사노가 말을 이었다.
“당신의 멍청한 부하들이 다 일을 그르쳤어. 우리로서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건 동감하는 바다.”
엔도의 대답은 담백했다. 딱히 누군가를 탓하는 듯한 어조는 아니었다.
엔도가 사노를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터무니없는 걸 내가 건드리고 말았군.”
“다들 실제로 보면 그렇게 느끼지.”
정신이 들어와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던 엔도는, 세은이 자신의 타켓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갑작스런 습격에 세은의 부모님과 세은이 연결이 되지 않은 게 실수였다.
‘아니, 연결이 되었다 하더라도 똑같이 행동했겠지.’
상식을 넘어선 능력은, 실제로 당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을 힘이었다.
“우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엔도가 물었다.
사노는 그런 엔도에게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는 자네들을 살리고 싶네.”
그 말에 엔도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하지만 이제 미스터 도를 설득하는 것이 문제지. 자네 부하들이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신뢰를 줄 수 있을지가 문제야.”
그 말에 엔도가 대답했다.
“그럼 그들을 버리지.”
“그래도 되겠나?”
“연좌제에 당할 수는 없지 않는가?”
가족 같은 조직이지만, 불민한 자식 때문에 모든 가족이 다 죽을 수는 없었다.
엔도는 냉정하게 여섯 명을 버릴 생각을 마쳤다.
“그럼 이걸 가지고 미스터 도와 얘기해 보지.”
“잘 부탁하네, 미국 친구. 잘되면 나중에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지.”
“우리가 바라는 바일세.”
엔도와 개략적인 합의를 마친 사노가 세은에게 다가갔다.
“미스터 도. 대충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쪽에서는 한국에 갔던 여섯 명을 마음대로 해도 된답니다.”
“그게 전부야?”
“왓?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건 당연하 거고, 겨우 그게 전부냐고.”
세은의 말에 사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고작 여섯 명 잡아 죽이려고 여기까지 와서 이 난리를 치는 것 같아?”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글쎄? 그건 니들이 찾아야지. 내가 멈출 이유를 찾아봐.”
“그래도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하셔야…….”
“알아서 해.”
세은의 말에 사노는 결국 다시 엔도에게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 * *
“아,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예, 알겠습니다.”
일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돌아가려던 세은이, 잠시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파팟―
그러나 모퉁이를 돌자마자 세은은 빠르게 신형을 날려 어디론가로 향했다.
‘찾았다.’
이나가와 카이의 내원에서는 부상자들의 수습에 한창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한국에 왔던 야쿠자 여섯 명도 껴 있었다.
‘다 죽일 필요는 없겠지.’
이미 사노와 엔도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 뒷머리가 다 날아간 켄타라는 놈이 가장 큰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세은이었다.
다 죽여 버릴 이유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본보기도 보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번의 일도 자신이 무르게 행동해서 생긴 일이 아닌가.
어차피 한 명 정도야 경고의 의미로 알아서 넘길 것이 분명했다.
“끄으응.”
켄타의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부상자들의 수습에 더욱 열심히였다.
아까 전의 일로 코까지 부러져 민둥한 뒷머리와 함께 앞뒤로 엉망이었다.
그러나 세은은 웃음 한 번 터트리지 않고 유심히 그런 켄타를 지켜봤다.
‘지금.’
그리고 잠시의 기다란 끝에 드디어 켄타가 물건을 치우러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세은은 눈을 빛내며 그런 켄타를 따라갔다.
탁―
“야. 이 개새끼야.”
익숙한 목소리에 켄타가 흠칫 놀라서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이미 그의 눈에는 공포가 각인되어 있었다.
“괴, 괴물…… 어째서?”
“너는 새끼야. 사람을 잘못 건드렸어.”
“치, 칙쇼…….”
잔인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세은은 말했다.
“내가 시간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아는 게 좋을 거야.”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나온 세은은 빨리 일행에게로 돌아가야 했다.
세은은 차마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하는 켄타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쎄이 굿바이다. 이 원숭이야.”
털썩―
그리고 세은이 사라진 자리에는, 싸늘하게 식은 켄타의 시신만이 남아 있었다.
* * *
“몸은 괜찮으세요?”
“우리야 좀 놀라기는 했지만 괜찮다. 그나저나 너는 괜찮니?”
“저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 가족한테까지 손대는 일에 종사하는데, 너는 괜찮다니.”
세은의 어머니가 걱정이 가득 담아 말했다.
어머니의 진심 어린 걱정에 세은이 그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국가에서 큰일을 하나 보구나.”
가만히 모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큰일은 아니에요.”
“뭐, 너도 각성자…… 그런 거냐?”
담담하게 물었지만, 두 눈에 담긴 걱정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비슷해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숨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세은은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게 털어놓았다.
“그럼 몬스터들이랑 싸우는 거 아니니? 응? 우리 아들 괜찮은가 몰라.”
“전 보통 현장에는 안 나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세은이 또 다시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하여튼, 우리 걱정은 말고 나라 일을 하거라. 자식 앞길을 부모가 막으면 안 되지.”
“아니에요, 아버지. 제가 잘못해서 고초를 겪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아니다. 사내가 큰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계속 되는 부모님의 걱정에 세은은 기분이 좋았다.
이계에서는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자신을 걱정해 주던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위치였다.
이렇게 맹목적으로 자신을 걱정해 주는 부모님이 정말로 보고 싶었다.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보여주지.’
부모님과 집으로 들어가며, 세은은 단단히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