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11. 뜨거운 보복(3)
밖에서 일어난 일대 소란에도 불구하고, 엔도는 느긋하게 다도를 즐기고 있었다.
“흐음.”
정확한 인원을 모르지만, 적어도 고로와 친위대가 나섰으니 금방 진압될 것이 분명했다.
“마땅히 들어올 만한 일이 없는데 말이다.”
엔도의 말에, 일렬로 정좌로 앉아 있던 간부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고로가 나섰으니, 이제 곧 침입자들의 얼굴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래야지.”
아베를 비롯한 여섯 명은, 더 궁금한 것이 있다는 엔도의 말에 다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쾅! 쾅!
그러나 고로와 친위대가 나선 뒤에도 끊임없이 울리는 폭발음에 아베의 가슴속에서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서, 설마?’
하지만 벌써 이렇게 들어왔을 리 없다고 생각하며, 아베는 애써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애썼다.
“조용해졌군.”
“하하! 이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의 낯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곧 모든 소란이 멎어들었다.
간부는 호창하게 웃으며 엔도에게 아부를 일삼았다.
끼익끼익.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목재로 이루어진 건물은 한 발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특유의 소리를 연주했다.
“누, 누구……!”
미처 끝맺지 못한 조직원의 외침과 함께,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드르륵거리며 미닫이문이 거칠게 열렸다.
탁!
“괴, 괴물!”
세은의 얼굴을 본 아베가 경악에 차서 외쳤다.
다른 다섯 명은 소리를 치지 않았지만, 아베와 같은 표정이었다.
특히 세은의 부모님을 납치하자고 선동했던 켄타는 벌써부터 극심한 공포에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야쿠자들을 흘깃 쳐다본 후 가장 상석에 오연하게 앉아 있던 엔도에게 물었다.
“네가 두목이냐?”
“누구냐?”
서로의 말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그러나 통역이 없는 관계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흐음……. 채연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정황상 엔도가 이나가와 카이의 두목이라는 것을 느낀 세은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일단…….”
머리가 반짝거리는 켄타의 겁의 질린 얼굴을 본 세은의 입가에 웃음이 피었다.
처음부터 눈이 마음에 안 들었던 개새끼.
일단 한 놈은 잡고 시작하려던 세은의 귓가에, 이성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은 씨! 부모님을 찾았습니다!”
“아, 정말요?”
희소식에 세은의 고개가 빠르게 이성우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아갔다.
“칙쇼!”
동시에 겁에 질려 있던 켄타가 반사적으로 튀어나가 세은에게 오러를 휘둘렀다.
퍽!
세은의 시선이 돌아간 틈을 타서 달려들었던 켄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 세은이 주먹에 맞고 그대로 바닥으로 강렬하게 추락했다.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바닥과 부딪친 켄타의 이마가 깨지며 빨간 피가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더불어 이마가 깨지는 소리까지 실감나게 귀를 자극했다.
“…….”
갑작스런 상황에 세은을 제외한 모두의 입이 침묵했다.
“부모님은 멀쩡하세요? 다치신 곳은 없고요?”
“아, 그, 그게…… 그렇습니다.”
잠깐 눈앞의 상황에 당황했던 이성우가 정신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좀 놀라신 것 말고는 아주 멀쩡하십니다. 다치신 곳은 전혀 없고요.”
“그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저 세은 씨…….”
이성우가 조심스럽게 세은을 불렀다.
세은은 이성우가 왜 자신을 부르는지 알겠다는 말투로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했다.
“예예. 알겠으니까, 채연이 좀 불러다 주세요. 말이 안 통해서 뭘 할 수가 없네요.”
“아! 알겠습니다.”
이성우가 재빨리 채연을 데리러 이동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멍하니 있던 이나가와 카이의 간부들이 하나같이 분노에 차서 자리를 박차 일어났다.
“이 조센징이 감히!”
“당장 죽여 주마!”
그러나 그런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하나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어이어이.”
엔도의 제지에 간부들의 욕설이 한순간에 뚝 그쳤다.
“경거망동들 하지 마라. 상황 파악이 그렇게들 안 되나.”
말 한마디로 간부들을 진정시킨 엔도가, 여전히 오연하게 입구에 서 있던 세은에게 말했다.
“젊은 조선인,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나?”
“이 새끼는 뭐라는 거야?”
세은이 일본어로 진행된 방금 전의 대화를 보며 말했다.
누가 봐도 불손한 태도에 간부들이 다시 발끈하려고 하자, 엔도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지금부터 내 허락 없이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면, 항명으로 간주한다.”
“하, 하이!”
미간을 찌푸리며 부하들에게 엄포를 놓은 엔도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세은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이렇게 패기 넘치는 젊은이가 좋아. 어떤 대가를 받고 여기로 왔는지 몰라도 세 배를 주지.”
엔도는 손가락 세 개를 피면서 말했다.
세은은 대충 분위기를 봐서 엔도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마, 말을 해야 하는데…….’
아베는 당장이라도 눈앞의 괴물이 돈을 받고 온 자객이 아니라는 사실을 엔도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엔도가 최후의 통첩을 한 이상, 입이라도 벙긋하면 바로 미간에 구멍이 날 것이 자명했다.
아베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답답해하고 있을 때, 이성우의 말을 전해들은 채연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오빠!”
“어. 왔어?”
“네네. 저 찾으셨다고요?”
“자꾸 일본어로 쫑알거리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아아. 네, 잠시 만요.”
그러나 서채연이 먼저 말을 걸기 전에, 유명한 양궁 선수인 그녀를 알아본 엔도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 아가씨는 한국의 양궁 선수가 아닌가?”
“절 아세요?”
“그럼, 나도 올림픽은 꼭 챙겨보지. 그리고 아가씨는 한국 정부의 각성자가 아닌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던 엔도의 눈매가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한국 정부가 이 일에 개입한 건가?”
“소식이 늦으시네요.”
엔도의 말에 채연이 대답했다.
“저는 프리랜서로 일한 지 오래 됐고, 지금은 사람을 찾으러 온 거예요.”
“사람을? 여기서? 그렇다기에는 매우 과격한데.”
“당연하죠.”
엔도의 담담한 말에 채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납치를 한 주제에 그렇게 말하는 것도 웃기지 않나요?”
“납치?”
채연의 말에 엔도는 바로 방금 전에 켄타의 돌발 행동이 이해가 됐다.
“아아, 저 바보 같은 놈이 저지른 일인가?”
엔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베를 불렀다.
“아베.”
“하잇!”
아베가 재빨리 엔도의 부름에 대답했다.
“인질들은?”
“상처 없이 잘 데리고 있으라고 전달해 놨습니다.”
둘의 대화에 채연이 한 마디를 보탰다.
“이미 저희가 찾아서 구출했어요.”
“오, 혹시 상처라도 났었나?”
“아니요. 좀 놀란 것 말고는 멀쩡하시더라고요.”
“그럼 다행이군. 그럼 이 정도로 서로 물러나는 게 어떠한가?”
“저 새끼가 자꾸 뭐라는 거야?”
일본어로 이뤄지는 대화에 답답해진 세은이 채연에게 물었다.
세은의 물음에 채연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부모님도 다치신 곳 없고 하니까 이대로 끝내자는데요?”
“그래?”
채연의 말에 세은의 눈에 웃음이 깃들었다.
“누구 마음대로?”
세은이 아직 정좌로 앉아 있는 엔도를 내려다봤다.
“시작은 마음대로지만, 끝낼 때는 아니란다.”
채연이 세은의 말을 통역하자 엔도의 웃는 얼굴에 살짝 금이 그어졌다.
“허허, 젊은 친구가 참으로 오만하군.”
스릉!
엔도의 검이 갑자기 스스로 검집에서 뽑혔다.
“호오, 괜히 건달 두목이 아닌가보네?”
오러를 이용해 자신의 애검을 뽑는 엔도의 모습에 세은이 감탄을 터트렸다.
“아직 오러 마스터는 아닌 것 같고, 중간에 걸친 반편이인가?”
‘아, 안 돼. 아무리 쿠미쵸라도 저 괴물에게는 무리다.’
엔도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챈 아베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를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엔도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화해를 거절하면 끝이 좋지 않을 수밖에.”
이윽고 엔도의 애검이 완전히 검집에서 빠져나와 번쩍번쩍거리는 빛을 반사했다.
“내가 아무리 일본어를 못해도 이건 알겠네.”
세은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드루와. 이 허접 새끼야.”
“칙쇼!”
노골적인 세은의 도발에 엔도가 욕설을 내뱉으면 달려들었다.
“안 됩니다! 쿠미쵸!”
뒤늦게 아베가 엔도를 말렸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진 뒤였다.
쾅!
“컥?”
분명히 먼저 달려든 쪽은 엔도였지만, 세은의 손에 목이 붙잡힌 엔도는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 뒤의 벽에 처박혀 있었다.
세은이 달려들던 엔도의 목을 잡아챈 뒤, 앉아 있던 자리 뒤편 벽으로 몸을 날려 처박아 버린 것이다.
“내가 오러 마스터들이랑 얼마나 싸운 줄 알아?”
갑작스런 상황에 실내가 난장판이 되었다.
그러나 세은은 태연하게 자신의 할 말만 이어 나갔다.
“그런데 오러 마스터도 아닌 반편이 새끼가 감히 달려들어?”
“쿠미쵸!”
“하아아압!”
세은에게 잡힌 엔도를 지키기 위해 실내의 야쿠자들이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에일린, 홀리 파이어.”
순식간에 캐스팅이 끝나며 성스러운 불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세은에게 달려들던 야쿠자들이 순식간에 다시 튕겨져 나갔다.
“크으으.”
“크흑.”
그리고 세은의 공격이 다시 이어졌다.
콰앙!
순식간에 건물의 천장이 통째로 날아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에 목이 붙잡힌 엔도의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
“네 부하들이 내 얘기 안 하디?”
엔도의 목을 붙잡은 상태로, 세은이 친절하게 물었다.
아베의 보고가 겁에 질려 과장했다고 판단한 게 실수였다.
“커억, 커억…….”
“오빠! 그러다 죽겠어요!”
목덜미를 제대로 틀어잡혀 기도가 막힌 엔도의 얼굴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채연이 소리쳤다.
“후우.”
채연의 말에 세은은 한숨을 쉬며 엔도를 바닥으로 거칠게 집어 던졌다.
여러 점에서 지구가 이계보다 좋았지만, 근본적으로 이계와는 달랐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아예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제일 불편했다.
‘이런 놈들은 씨를 말려야 하는데.’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세은은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몰래 죽인다…… 든가.’
이미 수십 명의 인원이 엉망이 된 바닥에서 끙끙거리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끝나셨습니까?”
세은의 부모님을 소진에게 맡겨 안전한 곳으로 모신 뒤, 빠르게 돌아온 이성우가 참혹한 현장을 살펴보며 물었다.
말 그대로 사망자는 없었지만, 중상자는 있었다.
“대충 끝났습니다.”
세은의 눈이 날카롭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엔도를 향했다.
“이제 얘기 나눠봐야죠.”
“무슨 얘기요?”
채연이 세은에게 물었다.
“뭐, 이런저런 얘기. 이대로 돌아간다고 이 새끼들이 그냥 넘어갈 것 같지도 않고.”
“하긴…… 그렇죠?”
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은 씨?”
“네?”
이번에는 이성우가 세은을 불렀다.
“혹시…… 이지호 실장에게 어떻게 할지 물어보는 게 어떻습니까?”
이성우의 말에 반대를 하려던 세은은, 그래도 이지호가 자신을 돕기 위해 세 명을 동행시킨 것을 떠올렸다.
‘뭐, 이왕 협조하기로 한 거 조금 더 해보지.’
결정을 마친 세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