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11. 뜨거운 보복(2)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베의 보고가 끝나자, 엔도의 무심한 눈이 민둥민둥해진 켄타의 머리로 향했다.
“켄타.”
“하잇!”
엔도의 부름의 켄타의 고개가 더욱 깊숙이 숙여졌다.
천장에 달린 조명에 비친 켄타의 뒤통수가 반짝거리는 빛을 내뿜었다.
누가 봐도 매우 웃긴 광경이었지만, 실내의 그 누구도 웃음 짓지 않았다.
“임무 실패에다가, 월권 행위까지…….”
엔도의 입에서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올 때마다 켄타의 등의 긴장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거기에 미국에서 의견을 전하기 위해 풀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으로 그 의견을 차버렸군.”
쿵!
엔도의 무심한 말에 켄타가 바닥에 머리를 강하게 박았다.
“죄송합니다! 쿠미쵸!”
쿵! 쿵!
“아아, 시끄럽다.”
켄타가 계속해서 머리를 박자 엔도가 그를 제지했다.
“뭐, 결과만 보면 나쁘지는 않아. 너희의 말을 들어보면 그 조센징 놈이 꽤 강한 것 같지만, 혼자서 우리를 당해낼 수는 없는 일이지.”
엔도의 말에 아베의 머리에서 과연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조선놈들은 감히 함부로 우리에게 뭐라고 하지 못해. 미국 놈들이랑 대화를 해야겠다.”
“하잇!”
엔도의 말에 실내의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켄타는 공과가 있으니 체벌로, 나머지 인원은 반성으로 처벌을 끝낸다.”
“하잇! 쿠미쵸! 가히 대하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적어도 손가락을 잘리는 단지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켄타는, 생각보다 낮은 처벌에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쾅!
“크아악!”
그때였다.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조직원들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한데 뒤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엔도를 비롯한 실내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했다.
* * *
남녀 네 명이 이나가와 카이의 본산으로 다가오자 앞을 지키고 있던 조직원이 그들을 제지했다.
“누구냐?”
“혹시 여기가 이나가와 카이인가요?”
선수 시절, 일본 선수들과도 교류가 있어 어느 정도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채연이 물었다.
“알고도 물어보다니, 당장 꺼지는 게 좋을 거다.”
“오빠, 맞는 것 같은데요?”
“그래?”
채연의 말에 세은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앞으로 나서자 조직원들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어이, 내 말을 무시…….”
쾅!
조직원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세은의 손이 올라가 정면을 향했다.
“닥쳐.”
동시에 순식간에 본산의 정문이 폭발했다.
그 폭발로 인해 무방비 상태로 있던 조직원들이 튕겨져 나갔다.
“지금 매우 기분이 안 좋으니까.”
타다닥―
“뭐야?”
“습격이다!”
폭발음과 함께 안에 있던 조직원들이 단숨에 정문 쪽으로 뛰어 나왔다.
그러고는 어느새 정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온 세은과 일행을 발견했다.
“범인들이 저기 있다!”
“뭐야! 고작 네 명인가?”
생각보다 적은 침입자의 숫자에 야쿠자들이 머뭇거린 그 짧은 틈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날아온 빛의 화살 중 하나가 가장 가까이 있던 조직원의 오른손을 관통했다.
파앙―
“커헉!”
어느새 세은의 손에는 휘황찬란한 활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자, 내가 다 상대하는 동안…….”
팡― 팡― 팡―
세은의 손에서 빠르게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백발백중.
홀리 애로우 한 발에 한 명의 야쿠자가 전투불능의 상태로 빠졌다.
“미리 말한 대로 부모님 찾아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성우가 미리 세은과 의논한 대로 채연과 소진을 데리고 빠르게 세은의 부모님을 찾으려 흩어졌다.
* * *
택시를 타고 오면서, 이성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세은에게 말했다.
「현재 세은 씨 기분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죽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물론 부모님의 상해를 입으셨다면 모르겠지만, 사실이 확인되기 전에는 적당히 부상을 입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아시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이성우가 다시 고개를 돌려 택시 뒷좌석에 앉아 있는 세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단 조직원들보다는 대가리를 조져야죠.」
다행히 지금 싸우는 모습을 봐서는 자신의 설득이 잘 먹힌 것 같았다.
이성우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나가와 카이의 본산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흩어…… 컥!”
파앙―
일행이 흩어지던 걸 막으려던 조직원들은 세은의 화살에 의해 쓰러져 버렸다.
결국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쫓는 걸 포기한 채 세은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파이어 볼트!”
“라이트닝 볼트!”
캐스팅을 마친 마법사들의 마법이 세은에게로 날아갔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마법을 피하지 않고 가볍게 막아내었다.
콰앙!
“마, 말도 안 돼.”
쏟아지는 마법을 맞고도 그을림 하나 없는 세은의 모습에 몇몇 야쿠자가 아연실색했다.
탕! 탕! 탕!
각성자들이 아닌 조직원들은 뒤늦게 권총을 들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에일린, 홀리 웨이브.”
그러나 순식간에 만들어낸 광범위 방어 마법에 총알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두목 어디에 있어?”
저벅저벅 앞으로 나서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세은이 말했다.
“조센, 조센징이다!”
세은의 입에서 나오는 한국어를 듣고 한 야쿠자가 외쳤다.
파앙―
그러나 그 야쿠자는 조센징이라고 한 대가로 한쪽 팔이 관통당했다.
“어디서 원숭이 새끼가 건방지게 조센징이래?”
“막아! 상대는 겨우 한 명이다!”
“흐음. 이 정도면 거의 다 모였나?”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야쿠자들을 한 바퀴 쓰윽 둘러보며 세은이 중얼거렸다.
다른 일행들이 부모님을 찾기 편하게 깔짝깔짝 유인을 하려니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세은은 손에 들고 있던 빛의 활을 소멸시켰다.
그러고는 곧바로 빛으로 된 둔기를 생성해서 손에 쥐었다.
“역시 개새끼들은 패야 맛이라니까.”
세은이 둔기로 자신의 손을 툭툭 두들겼다.
어느 정도 다시 전열을 정비한 야쿠자들이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세은은 오히려 손가락을 튕겨서 빛의 파도를 취소했다.
“죽어라!”
퍽―
호기롭게 달려든 야쿠자가 세은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서 저 멀리 날아갔다.
그 뒤로는 일방적인 양상을 보였다.
세은은 쉬지 않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야쿠자들이 달려들면 막아내고, 때린다.
혼전으로 변해 버린 양상에 총알과 마법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외원이 순식간에 돌파 당했다.
“아, 죽을까 봐 범위 마법은 사용하지도 못하고.”
말 그대로 개떼 같은 야쿠자들의 숫자에 세은이 불평을 터트렸다.
이계에서 사람을 죽여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알게 되는 상황에서 살인을 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물론 부모님이 멀쩡하시지 않다면 상황은 바뀌겠지만, 아직까지 이성우의 말이 세은을 잘 설득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여섯 명은 그냥 둘 수 없지.’
단 사노의 부탁을 받아 풀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얌전히 돌아가지 않고 감히 작금의 사태를 일으킨 여섯 명은 확실히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그것들은 본보기였다.
감히 부모님을 건드린 놈들까지 멀쩡히 넘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살생부를 작성하며 거침없이 내원으로 입장하니, 이나가와 카이의 정예 조직원들이 세은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의 사주를 받고 온 놈이냐?”
이나가와 카이의 차기 두목 후보 중 하나인 나카노 고로가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세은이 검지로 볼을 긁으며 대답했다.
“뭐라는 거야, 원숭이 새끼가.”
“여기까지 어찌어찌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건방지게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오러 익스퍼트와 4서클 수준의 정예 조직원들을 뒤에 둔 고로로선 자신감에 넘쳤다.
표정과 어조로 고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한 세은이 코웃음치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
갑작스런 세은의 행동에 고로의 얼굴에 의문이 차오를 때였다.
세은의 가운데 손가락이 꼿꼿하게 위로 솟아올랐다.
“응. 엿이나 처먹어.”
“칙쇼!”
만국 공통의 욕에 고로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 건방진 조센징을 잡아!”
“하잇!”
고로는 목이 터져라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고로의 명령에 이나가와 카이의 조직원들이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각종 4서클의 마법들이 세은에게 날아왔다.
까앙―
그러나 세은은 가볍게 배트를 휘두르듯 빛의 둔기를 휘둘러 마법들을 되돌려주었다.
쾅!
오히려 되돌아간 마법에 의해 달려오던 오러 각성자들이 맞는 상황이 발생했다.
“마법 중지! 중지하라!”
결국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같은 팀에게 해가 되자 마법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마법이 없자, 오러 각성자들은 거침없이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형형색색의 오러들이 세은의 급소를 노리며 찔러 들어갔다.
“내가 잡았다!”
오러가 세은의 목에 거의 닿으려고 하는 순간 야쿠자가 외쳤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덧없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퍼억!
순식간에 휘둘러진 세은의 공격에 야쿠자가 바닥과 진한 포옹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위로 야쿠자들의 몸이 계속 겹쳐 쌓아지기 시작했다.
일발필중.
한 번 휘두르면 한 명의 야쿠자가 바닥에 쓰러져서 기절을 하거나, 신음을 흘렸다.
“이익! 멍청한 놈들! 다시 마법으로 공격해!”
오러 각성자들이 순식간에 전멸당할 위기에 빠지자, 고로는 같은 편에게 피해를 줄 것을 우려해 정지시켰던 마법 공격을 다시 지시했다.
하지만 처음에 통하지 않았던 마법 공격이 지금이라고 다시 통할 리는 없었다.
깡― 까앙―
오히려 오러 각성자들이 다 쓰러진 덕분에 마법을 그대로 마법사들에게 돌려줄 수가 있었다.
“배팅 볼치는 기분이네.”
시원하게 둔기를 휘두르자 스트레스가 그나마 조금 풀리는 것을 느끼며 세은이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온 신경은 부모님을 찾으러 간 일행에게 쏠려 있었다.
이렇게도 태연한 세은과는 달리 고로의 신색은 어느새 새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괴, 괴물…….”
상상조차 못한 상황에 고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어느새 내원까지 모두 정리한 세은이 고로에게 다가갔다.
“딱 보니까 네가 좀 높아 보이네.”
세은은 고로의 옷깃을 붙잡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던 고로는 표정과 어조롤 통해 세은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애썼다.
세은이 매우 담담한 말투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두목 어디에 있어? 응?”
“뭐라고 하, 하는 거냐.”
“대체 뭐라는 거야?”
퍽―
들어 올린 고로를 바닥으로 집어 던진 세은은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보스, 유 보스 웨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