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35화 (35/225)

# 35

11. 뜨거운 보복(1)

쾅―

단숨에 문이 날아가며 세은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 미스터 도. 저, 저희 확인…… 컥!”

세은을 발견하고 재빨리 변명을 하려던 사노는 순식간에 세은의 손에 목이 잡혔다.

“컥컥!”

막혀오는 숨에 사노의 얼굴의 새파랗게 질렸다.

“이 코쟁이 새끼야.”

“꺼억…….”

사노는 세은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오러를 끌어올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주, 죽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퍼억―

그러나 눈앞이 완전히 암전이 되기 전, 세은이 그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켁! 케엑!”

다급히 숨을 몰아쉬던 사노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세은이 입을 열었다.

“확실한 처리?”

세은의 손에 빛의 검이 생성되었다.

“확실한 처리란 이런 거야.”

사노의 한쪽 팔을 향해 세은의 검이 휘둘러졌다.

“아, 안 됩니다!”

그러나 뒤늦게 따라온 이지호가 몸을 날려 그 앞을 막아섰다.

그런 이지호의 모습에 세은의 눈썹이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비켜.”

이지호에게 최소한의 존댓말을 해주던 여태까지의 모습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세은의 입에서 반말이 튀어나왔다.

“미국의 각성자를 죽이면 문제가 생깁니다.”

“진짜 문제가 뭔지…… 보여줘?”

차갑게 가라앉은 세은의 두 눈에 분노가 일렁였다.

꿀꺽.

크게 한 번 침을 삼킨 이지호가 용기를 내어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서 미국 요원이 죽으면 국가적으로 외교 관계에 지대한 문제가 생긴다.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으로서 꼭 막아야 할 일이었다.

“이자가 죽으면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숭이들!”

이지호의 간절한 설득에 세은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빛의 검은 바닥을 향하도록 방향을 바꾸었다.

“하! 말은 잘하는군. 그래서 내가 저 새끼를 용서해야 한다고?”

“나, 나중에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당장은 사노를 온전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에, 이지호는 세은을 진정시키기 위해 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나중에 내가 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당장은 우선순위가 달라서 들어주는 거니까.”

그러나 일리가 있는 이지호의 말에 세은은 빛의 검을 소멸시킨 뒤, 맨손으로 아직도 바닥에서 켁켁거리고 있던 사노에게로 다가가 멱살을 틀어잡았다.

“야, 이 개새끼야.”

이지호는 옆에서 혹시나 세은이 사노에게 더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우리 부모님 소재랑, 개 같은 쪽발이 새끼들 위치 가져와. 그리고 그 새끼들 본진 위치도. 알았어?”

사노는 세은의 말에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당할 만큼 당한 야쿠자들이 순순히 돌아갈 것이라고 계산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이었다.

일본 야쿠자들의 독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십 분 준다. 알았어?”

통보를 마치고 세은은 사노의 멱살을 손에서 놓았다.

그제야 운신이 자유로워진 사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여태까지 들어온 정보를 세은에게 전달했다.

“이, 이게 여태까지 저희가 파악한 정보입니다.”

세은은 사노의 손에서 거칠게 종이를 빼앗아 빠르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야쿠자 여섯 명, 양양으로 도주 중. 양양에서 미리 준비된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

“저희 판단으로는 거의 양양에 도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노가 아직도 공포에 잠식된 눈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이미 양양에 도착한 것 같다는 사노의 말에 세은의 눈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다행히 미스터 도의 부모님에게는 아무런 위해도 끼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들도 도망가려면 한시가 급할 테니까요.”

“당연히 그래야 할 거야.”

사노의 말에 세은이 한 자, 한 자 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우리 부모님 몸에 상처 하나라도 나 있으면…… 너희 전부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너무 분명한 진심이 느껴져 소름끼치는 세은의 말에 사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몇 번이고 삼켜내었다.

제발 야쿠자 놈들이 멍청한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내가 만족할 만한 계획을 얘기해 봐.”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세은의 입가가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실내에 있는 그 누구도, 세은의 미소에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 * *

“켄타!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도쿄 롯본기 힐즈의 이나가와 카이 조직 본산에 복귀한 야쿠자들을 보고, 경계를 서던 조직원들이 말했다.

“큭…….”

그러나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던 켄타가 작게 신음을 흘린 뒤 그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야쿠자들의 뒤로, 세은의 부모가 끌려오고 있었다.

“뒤에는 뭐야?”

“흥. 조센징이다.”

“조센징?”

그러나 켄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뒤에서 따라오던 아베가 대신 조직원에게 세은의 부모를 넘기면서 말했다.

“주요 인질이다. 신체에 이상 없게 잘 감시해.”

“뭐야? 누구를 잡아오란 말은 없었잖아?”

“쿠미쵸가 알아야 할 일이다.”

보스의 얘기에 아무 말도 없이 아베에게서 세은의 부모를 인수받았다.

“명심해. 잘 대해야 된다.”

“하이하이. 알겠다고.”

아베는 불안한 눈으로 끌려가는 세은의 부모님을 바라보다가 재빨리 켄타를 따라 내원으로 들어갔다.

가뜩이나 평소에 다혈질인데다가, 더욱더 제정신이 아닌 켄타가 쿠미쵸에게 이상하게 보고를 할까 겁이 났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괴물의 부모를 잡아온 것은 월권 행위였다.

‘괴물이 이리로 오면…… 막을 수 있을까?’

폐공장의 천장을 가득 채우던 불덩이를 떠올리며 아베는 살짝 몸을 떨었다.

처음에 막무가내인 켄타를 따라 움직일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걱정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똑똑―

“쿠미쵸! 조선으로 파견 나갔던 와카슈 6명이 복귀했습니다.”

“들어와.”

입장 허락이 떨어지자 안에서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렸다.

문이 열리자 정좌를 하고 앉아 있던 이나가와 카이의 쿠미쵸, 이나가와 엔도가 보였다.

야쿠자 여섯 명이 안으로 들어가 엔도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래, 조센징 두 명을 데려왔다고?”

흘깃 부하들이 인사를 올리는 것을 쳐다본 엔도가,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려 자신의 애검을 마른 천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하이! 타켓의 부모입니다.”

아베가 대표로 대답했다.

“분명히 내려준 임무는 감시였는데…… 말이다.”

스릉―

잘 닦인 검을 앞으로 들어 검면을 비춰보며 엔도가 말을 이었다.

“거기에 허락 없이 비상 신호를 이용해 복귀까지 하고…….”

탁―

엔도는 잘 정비한 애검을 다시 검집에 꽂아넣었다.

“제대로 된 이유가 없다면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하잇!”

엔도의 말에 절도 있게 대답한 아베가 천천히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명령하신 대로 타켓을 감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국이 개입…….”

한동안 아베의 보고가 엔도의 집무실을 가득 채워 나갔다.

* * *

“빨리 안내해.”

밤비행기를 이용해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에 도착한 세은이 사노를 재촉했다.

이미 상당히 지난 시간 때문에 세은의 심기는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사노는 상부에 사건에 대해 보고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과 이런 식으로 엮이는 것이 좋지 않다는 판단이 떨어져 위치 정도만 도움을 주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사노가 상부의 결정을 세은에게 전했을 때의 세은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래? 뭐 상관은 없지. 알아서 해.」

차갑게 내려앉은 세은의 표정에 상부에 제고를 요청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타국에서의 활동이라 백악관의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국장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지금도 사노의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자네의 판단을 믿어. 하지만 백악관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해 개입을 불허하는군.」

“여기 정확한 이나가와 카이의 본산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다른 곳은?”

“그게…… 상부에서 승인이…….”

세은의 눈빛에 사노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런 사노를 도와준 것은 세은을 따라 일본까지 같이 온 이성우와 서채연, 그리고 김소진이었다.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본산을 털면 나머지 떨거지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성우의 말에 세은이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사노에게서 지도를 건네받았다.

갑자기 이성우와 채연, 그리고 소진이 세은을 따라 일본에 온 이유는 이지호 때문이었다.

「어떠한 형태로든지 개입을 절대 불허하네.」

오히려 미국보다 세은의 대한 가치를 잘 모르는 한국 정부는, 가뜩이나 좋지 않은 대일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칠까 아예 국가안보원의 개입을 불허했다.

결국 이지호가 자신이 잘 아는 각성자들에게 자신 대신 세은을 보좌할, 정확히는 제지할 수 있을 만한 각성자들을 세은에게 붙여주었다.

명분은 정부에 묶인 자신 대신 세은을 도와줄 사람들이었지만, 이지호는 그들에게 따로 부탁을 했다.

「혹시 세은씨가 너무 과하게 나가려고 하면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막을 수 있습니까?」

「세은 씨가 막무가내로 보여도 매우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적어도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여러분이라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이성우는 출발하기 전 이지호와 나눈 전화 통화를 떠올렸다.

그리고 굳이 이지호의 이런 부탁이 아니더라도, 세은의 부모님이 잡혀갔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한달음에 달려왔을 게 분명했다.

“그럼 미스터 도, 꼭 행운을 빌겠습니다. 저는 공항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사노는 제한되어 있는 여건에서 최대한 세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사노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은은 사노의 인사를 무시한 채 공항을 나섰다.

어느새 세은에게서 지도를 받아든 이성우가 택시를 잡았다.

택시가 출발하자 그제야 세은이 일행에게 입을 열었다.

“굳이 올 필요 없는데, 괜히 고생입니다.”

“아닙니다. 도움을 받은 게 얼마인데요. 꼭 와야죠.”

“맞아요. 오빠! 이럴 때 안 도우면 언제 돕겠어요?”

“다른 일도 아니고 부모님 일인데요, 신경 쓰지 마.”

의욕이 넘치는 일행의 말에 세은이 부모님이 납치된 후로 처음 진심으로 웃었다.

“뭐, 가서 도망치는 놈들만 잡아주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세은의 실력을 알고 있는 일행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혹시 비위 약하면 절대로 안으로 들어오지 마세요.”

“왜?”

“왜요?”

채연과 소진이 동시에 물었다.

그러나 세은은 두 여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앞좌석에서 뒤를 돌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이성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가능하면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세은의 눈에 깃든 분노를 읽은 이성우가 대답했다.

이성우 역시 자신의 부모님이 이렇게 일본 야쿠자에게 잡혔다면 어떻게 행동 할지 뻔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세은 씨는 충분한 힘까지 있으니 말이야.’

이리로 오면서 유일하게 일의 전말을 모두 들은 이성우가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은의 손속이 절대 유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말로 어지간하면 소진과 채연을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우웅―

그 뒤로는 침묵에 잠긴 택시가 도쿄의 밤거리를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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