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34화 (34/225)

# 34

10. 똑똑히 보여주마(3)

“이나가와 카이라…….”

결국 기무라의 입에서 소속된 조직을 알아내는 데 성공한 세은이 중얼거렸다.

“어딘지 알아?”

반쯤 정신을 놓은 야쿠자들을 한 구석에 던져놓고 세은이 사노에게 물었다.

사노는 세은의 대답에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일본 야쿠자 3대 조직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지금 거점은 도쿄의 롯본기입니다.”

“그리로 가면 되겠네.”

“왓? 미스터 도. 이들의 본진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당연한 거 아냐?”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으로 세은이 사노에게 대답했다.

사노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세은에게 말했다.

“아무리 같은 조직이 아니라지만 이나가와 카이를 건드리면 다른 야쿠자 조직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하하…… 저야 미스터 도가 걱정이 되어서 그렇습니다만…….”

피식.

세은이 코웃음을 쳤다.

“원숭이들 걱정이나 하시지.”

자신의 말에도 세은이 정말로 도쿄 롯본기로 달려갈 것 같자 사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래도 협상을 하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세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사노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 뭐가 불만이야?”

“예?”

“말하는 거 보니까 내가 원숭이들 잡는 게 싫은 거잖아. 뭐가 문제냐고.”

“험험.”

세은의 말에 사노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정곡을 찔러 들어오는 그의 말에 순간 당황한 탓이었다.

세은의 말대로 미국으로선 정치인과 관련 있는 야쿠자를 건드는 건 피하고 싶었다.

“야쿠자들이 들어선 자리에 갑자기 공백이 생기면 일본에 문제가 생겨서 그렇습니다.”

“흠…….”

“맞습니다, 세은 씨. 야쿠자들은 단순한 폭력배가 아니라 이런저런 이권 사업에 깊숙이 개입한 사업체나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경제를 생각해 주셔야 합니다.”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지호도 사노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지호까지 나서서 얘기하자 세은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뭐, 당장 도쿄까지 가기도 그렇고……. 그럼 알아서 책임지고 뒤처리해.”

“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확실하게 처리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의외로 순순히 세은이 물러서자 사노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세은은 대답하지 않고 이지호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그만 돌아가죠.”

“예, 출발하시죠.”

“결과 나오면 찾아가겠습니다. 미스터 도.”

세은과 이지호는 야쿠자들을 사노에게 맡긴 뒤 안보원으로 향했다.

공장 밖까지 세은을 배웅한 사노가 어느새 뒤로 다가온 스미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야쿠자들 풀어주고 그것들 이용해서 상부에 야쿠자랑 협상 허가 받아.”

“썰!”

* * *

“어이, 켄타. 안 오고 뭐해?”

사노 덕분에 풀려난 야쿠자들은 가만히 멈춰 서서 생각에 잠긴 켄타를 보고 말했다.

“빨리 돌아가서 미국의 제안까지 보고해야 해. 지체 할수록 우리 손해야.”

아베가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던 켄타를 재촉했다.

그러나 아베의 재촉에도 계속 고개를 숙이고 땅만 바라보고 있던 켄타가 무엇인가를 결정했는지 독기 어린 눈으로 아베를 바라보았다.

“어이. 아베. 이대로 갈 거냐?”

“무슨 말이야?”

“이대로 조센징 놈에게 쫓기듯 돌아가서 쿠미쵸에게 얻어맞았다고 일러바칠 거냔 말이다.”

켄타는 어금니를 빠득 깨문 채 말을 이었다.

“우리는 대 이나가와 카이의 와카슈―행동대장―다. 고작 조센징 한 놈에게 당해서 돌아간다는 건 할복급의 치욕이야.”

“켄타, 말은 똑바로 하는 게 어떤가.”

옆에 있던 기무라가 켄타에게 말했다.

“고작 조센징 한 놈이 아니야. 우리 모두가 달려들어도 손끝 하나 댈 수 없던 강자다.”

“아무리 강자여도 약점은 있는 법이지.”

악으로 가득 찬 켄타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러나 불과 방금 전에 세은의 신위를 직접 몸으로 느낀 아베가 황당하다는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물었다.

“그 괴물이 약점이 있다고?”

망설임 없는 손속과,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세은에게 약점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켄타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베,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본인보다는 가족을 건드리는 것이 낫다는 걸.”

“설마…….”

켄타의 말에 야쿠자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래, 우리는 그 건방진 조센징의 부모를 잡아서 돌아가면 되는 거다. 고작 감시한다고 이 난리를 친 놈이니…… 부모가 우리 손에 있으면 꼼짝 못하겠지.”

켄타의 벌겋게 달아오른 눈이 빛을 받아 광기로 번들거렸다.

* * *

“이번에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지호의 감사에 세은이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미국이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일본까지 가서 난리를 친다 해도 다 잡을 수 없겠죠.”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협조를 안 하면 실장님도 제대로 못 도와주실 거고.”

“그…… 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괜히 혼자서 나서느니 한 번 맡겨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을 뿐입니다.”

“하하, 그사이에 많은 생각을 하셨군요.”

“뭐, 가족이 걸려 있으니까요.”

세은은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제는 꽤나 세은을 겪어서 그가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이지호가 웃으며 세은의 말을 받았다.

“그나저나 미국 쪽에 조만간 사고 한 번 터질 것 같네요.”

“사고요?”

“오러를 심장에 쌓다보면 분명히 심장이 버터지 못합니다. 사고 한 번 날 겁니다.”

“그럼 미리 말해주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슬쩍 말해보니 믿을 것 같지도 않고, 실장님이 알고 계시다가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 들으면 제대로 된 방법 알려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미 오러를 심장에 쌓은 사람들이 따로 오러 홀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심장에 있는 홀을 없애야죠.”

“그 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세은이 대답했다.

“처음부터 다시 수련하면 됩니다.”

“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이지호에게 세은이 말을 이었다.

“하여튼, 빨리 수련에 박차를 가해서 내가 없이도 게이트 관리가 가능해지면 좋겠네요.”

“하하, 세은 씨가 도와주시는 덕분에 다들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모자라요.”

기본은 자신의 지식으로 닦아줄 수 있어도, 더 상위의 단계는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법이니까.

‘조교들을 육성해야겠어.’

“실장님.”

“네?”

“우리나라 능력자 중 실려 좋은 사람들 뽑아서 보내 주세요. 그리고 수련할 장소도 섭외해 주시고요.”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조교 좀 키우려고요.”

“조교…… 말입니까?”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좀 무리일 것 같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빠르게 키워야 할 것 같네요.”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노파심에 말하는데.”

세은이 잠시 말을 멈추고 이지호와 눈을 마주쳤다.

“안보원 내에서만 뽑지 마세요. 안보원만 실력이 느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공정하게 뽑도록 하겠습니다.”

안보원 사람을 조금 더 넣으려고 생각했던 이지호는 살짝 뜨끔한 속내를 감추고 대답했다.

‘그럼 일단 후보자가…….’

기간이 명확히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하루라도 빠를수록 좋은 일이었기 때문에 이지호는 속으로 후보자 명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지호와 세은이 각자 생각에 잠겨서 침묵이 흐르고 있던 집무실에, 보좌관이 급하게 달려 들어오며 외쳤다.

“크, 큰일 났습니다!”

* * *

“분명히 안에 있는 거겠지?”

“확실해. 며칠 동안 파악한 바로는 둘 다 집에 있을 시간이다.”

켄타의 으름장 섞인 말에 기무라가 살짝 불안감이 섞인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후…… 일단 따라오기는 했다만,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기무라가 주저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세은에게 당해 뒤통수가 반질반질하게 빛나고 있는 켄타가 악에 바친 어조로 말했다.

“칙쇼! 이 배신자 새끼! 주절주절 다 떠벌린 놈이 뭐가 잘났다고 떠드는 거냐!”

“어이! 켄타, 말이 조금 심하군.”

켄타의 거친 말에 아베가 둘 사이에 개입했다.

그 역시도 상당한 두려움이 두 눈에 깃들어 있었다.

차마 켄타를 혼자 보낼 수는 없어 따라왔지만,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기무라가 아니었다고 해도 우리들 중 누군가는 말하게 됐을 거다. 자르고, 고치고, 자르고, 고치고.

고칠 수 없다면 죽기 전까지 버티면 되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우리가 말하기 전까지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기무라만 탓할 수 없어.”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아베의 말에 켄타가 바닥에 침을 탁하고 뱉었다.

“바카! 그럼 놈이 포기할 때까지 끝까지 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 쿠미쵸가 우리에게 준 은혜를 잊은 거냐?”

당장이라도 아베에게 달려들 것만 같은 표정으로 켄타가 말했다.

하지만 그런 켄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기 때문에, 아베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너를 따라 여기까지 온 거다. 너의 계획이 성공하면 쿠미쵸를 마주할 최소한의 면목은 서겠지.”

“하! 그렇다면 더 이상 주절거리지 말고 따라와!”

아베의 대답이 마음에 들은 켄타가 다시 몸을 돌려 목표 대상의 집을 바라봤다.

그런 켄타의 뒤에서 다른 야쿠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지.’

처음 한국으로 파견을 나오면서 받은 임무와는 달랐다.

그들이 받은 임무는 감시와 동선 파악만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확실히 안에서 두 명이 움직이는군. 들어간다.”

켄타가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모두가 평등한 직급이었지만, 광기에 찬 켄타를 통제할 만한 사람이 이곳에 없었다.

켄타의 말에 다른 야쿠자들이 모두 긴장을 끌어올렸다.

‘무사히 조선을 떠날 때까지 그 괴물을 마주치지 않기를 바랄 뿐.’

그동안의 관찰로 괴물은 주말에만 이 곳으로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은 평일이니 마주칠 일은 없었다.

다만,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도망을 칠 수 있냐가 관건이었다.

원활한 도주를 인해 두 명의 동료가 먼저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진입!”

켄타가 먼저 빠르게 세은의 부모님 집으로 진입했다.

그 뒤를 따라 기무라와 아베를 비롯한 세 명의 야쿠자가 따라 들어갔다.

쾅!

현관문이 오러에 의해 거칠게 부셔지며 현관문이 날아가는 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 * *

“사, 사노 부장님 큰일 났습니다.”

스미스가 사노가 느긋하게 쉬고 있던 호텔방으로 뛰어들어 왔다.

그 급박한 모습에 사노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이번 일로 야쿠자들에 대한 협상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받은 다음 계획에 대해 고민하던 사노가 스미스의 행동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스미스의 말에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미, 미스터 도의 부모님이 납치당했다고 합니다!”

“왓?! 대, 대체 어떤 놈들이……!”

분명히 야쿠자들은 오늘 처리를 다 했는데…….

사노의 머릿속의 뒤죽박죽으로 엉켜들었다.

자신들의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은 놈들이 더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또다시 이어진 스미스의 말에 사노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풀어준 이나가와 카이의 조직원들입니다…….”

순간, 사노의 눈앞에 세은의 압도적인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퍽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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