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10. 똑똑히 보여주마(2)
세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야쿠자들을 옭아매고 있던 밧줄이 끊어졌다.
오러를 끌어올려도 끊어지지 않던 밧줄이 너무 허무하게 풀렸다.
하지만 이미 세은의 도발로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올라 폭발한 야쿠자들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죽여주마!”
켄타가 가장 먼저 욕설을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세은은 그 와중에도 심드렁하게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 넘길 뿐이었다.
피잉―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뒤늦게 손을 위로 들던 세은의 모습에 켄타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건방진 조선놈의 얼굴이 터지면서 들려야 할 타격음이 들리지 않았다.
“……?”
터억―
오히려 무엇인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케, 켄타!”
아베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공장을 가득 채웠다.
어느새 만들어진 빛의 검에 깔끔하게 절단된 켄타의 팔이 주인을 잃은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크아악!”
뒤늦게야 자신의 팔이 절단된 것을 확인한 켄타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이 조센징!”
동료의 모습에 다른 야쿠자들이 동시에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저벅저벅 앞으로 마주 걸어갔다.
세은의 손에서 빛의 검이 그 어느 때보다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악―
세은이 입가를 끝까지 쫘악 끌어올려 웃음 지었다.
다음 순간, 한 걸음 더 앞으로 이동한 세은은 가장 앞에 있던 야쿠자의 복부을 꿰뚫고 있었다.
“꺼억…….”
순식간에 복부를 관통당한 남자가 단말마를 지르더니 그대로 절명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베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나마 가장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그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간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차갑게 식은 세은의 눈빛이 아직 야쿠자들을 노리고 있었다.
“더 드루와 봐. 이 쪽바리 새끼들아.”
세은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손에 들린 빛의 검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죽어랏!”
양쪽에서 야쿠자 두 명이 협공해 들어갔다.
그러나 세은은 이번에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콰쾅!
오러가 사람의 몸에 부딪혔다고 하기 에 너무 커다란 굉음이 귓가를 두드렸다.
동시에 오러가 폭발하며 강렬한 연기가 그들을 뒤덮었다.
“멍청한 놈!”
오러를 정면으로 맞선 세은의 모습에 기무라가 의기양양하게 욕설을 터트렸다.
그러나.
“이게 전부야?”
점차 옅어지는 연기 속에서 세은이 너무나도 멀쩡하게 서 있었다.
“어, 어떻게?”
기무라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공격해야 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 내 차례인가?”
너무나도 태연한 말투로 세은이 가볍게 야쿠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컥!”
순식간에 어깨를 관통당한 야쿠자가 자상 부위를 부여잡고 옆으로 쓰러졌다.
“크아악!”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악에 바친 기무라가 괴성을 지르며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세은이 가볍게 그의 공격을 탁 막아냈다.
발로 기무라를 거칠게 차내며 손에서 빛의 검을 소멸시켰다.
퍽―
“바카야로!”
그 와중에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팔이 잘린 켄타가 뒤에서 세은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입가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지만 독기로 가득 찬 눈은 아직 살아 있었다.
“새끼. 아직 눈깔이 안 죽었네.”
세은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팔을 휘둘러 켄타를 날려 보냈다.
“흐억!”
“에일린. 홀리 파이어.”
세은의 입에서 시동어가 나옴과 동시에 신성 마법이 발동되었다.
마치 처음 안보원에서 무력시위를 할 때처럼 신성한 불의 구가 공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스물아홉. 서른.
불의 구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날수록 공장 안의 모든 인원의 눈이 서서히 풀렸다.
특히 이미 이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던 이지호조차 새삼 세은의 능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면 미국에도 충분한 경고가 되려나? 감히 가족을 건드리려 하다니.’
세은이 단순히 분노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런 무력시위를 하는 것은 경고를 하는 의미가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들이었다.
자신이 이계에서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가족을 이들이 건드리려고 한 것이다.
거기다 꼭 일본 놈들만 이런 방법을 취하리란 법은 없었다.
여기서 물렁하게 대처를 했다간, 어느 누구나 가족에게 위협을 가할 게 분명했다.
그 사실이 세은은 너무 화가 났다.
과거 교황이었으나, 너그러운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을 먼저 건드리면 절대로 유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었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은 이미 이계에서 떨쳐낸 지 오래였다.
죄책감과 망설임에 많은 소중한 걸 잃었던 것이다.
타악―
세은이 손가락을 간단하게 튕기자 불의 구 중 하나가 방금 전 기절한 켄타에게 날아가 폭발했다.
“크아아아악!”
상상도 하지 못할 고열의 불에, 켄타는 뒤통수에서 작열하는 고통을 느끼며 또다시 기절했다.
“켄타!”
순식간에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공장 안을 가득 채웠다.
폭발에 켄타가 불에 타서 죽었다고 생각한 통역이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우에엑……!”
다른 사람들도 편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통역처럼 헛구역질을 내뱉지는 않았다.
탁―
기무라와 아베가 흠칫 놀라는 모습이 세은의 시야에 들어왔다.
세은은 반사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하는 야쿠자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새끼들. 겁먹기는.”
세은의 얼굴 가득 비웃음이 차올랐다.
세은은 전의를 상실한 기무라와 아베의 표정을 보며 고민했다.
‘……한 명만 남기면 되려나.’
배후를 캐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명은 살려놔야 했다.
그런 세은의 고민을 정리해 주는 사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스터 도! 최소한 죽이지는 말아주십시오. 취조를 할 때 각자의 말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흐음.”
손속에 전혀 거리낌 없는 세은이 혹시나 야쿠자들을 죽이기라도 할 것 같았는지 사노가 소리쳤다.
세은은 두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타악―
동시에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성스러운 불의 구가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에일린.”
조용히 여신의 이름을 읊은 세은이 안드라스와의 전투에서 사용했던 신성 마법을 발동했다.
“허억?”
갑자기 허공에서 빛의 끈이 생겨 자신들을 휘감자 기무라와 아베가 침음성을 질렀다.
그 모습을 뒤에서 온전히 지켜보던 사노가 너무 놀라 한참이나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세은은 마치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너무나도 담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자, 바로 취조를 시작…… 하기에는 통역분 상태가 좋지 않네요.”
뒤를 돌아보니 통역이 아직도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헛구역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스미스! 통역 정신 차릴 수 있게 바람 좀 쐬게 하고, 요원들 시켜서 현장 정리해.”
“예? 예!”
세은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사노가 스미스를 시켜 통역을 밖으로 내보내고 현장을 정리하도록 지시했다.
“미스터 도, 어디 전쟁이라도 참가하셨습니까? 적을 처단하는 데 전혀 망설임이 없으십니다.”
“전쟁?”
모든 지시를 내린 사노가 어느새 세은의 옆으로 와서 물었다.
세은이 사노의 질문에 이계에서 참전했던 수많은 전쟁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얘기를 사노에게 할 수 없기에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손속에 망설임이 없으시더군요.”
“문제라도 있나?”
“문제는 없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입니다.”
‘설마 사이코패스인가?’
뒤에서 사노와 세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지호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 셋을 순식간에 중상를 입혀 제압해 버린 세은의 모습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니야, 그러기에는 처음에 안보원에서는 아무도 안 죽였는데.’
이지호로선 그동안 봐온 세은의 모습들은 사이코패스라기에 너무 멀쩡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겉으로 멀쩡한 사이코들도 많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다치게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렇게 쉽게 사람을 찌르거나 다치게 하지는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이지호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그래, 그랬으면 여태까지 아무도 안 다쳤을 리가 없지.’
만약, 그가 정말 미친 사람이었다면, 게이트에서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쉣!”
“오 마이 갓!”
그사이 스미스의 지시를 받고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들어온 특수국토안보국의 요원들은, 새까맣게 타서 앞머리 밖에 남지 않은 켄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내 담담한 모습으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기절한 야쿠자들을 한곳으로 정리하고는 공장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현장이 정리되자, 머리카락 타는 냄새도 빠져나가니 정신을 차린 통역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처음과는 달리 차마 세은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아…….”
그런 통역을 잠시 살펴보던 세은이 그에게 다가가 어깨 위에 손을 턱하니 올렸다.
세은의 손이 자신의 어깨에 닿자 통역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우웅―
세은의 손에서 밝은 빛이 생성되어 통역에게로 스며들었다.
자신의 몸을 휘감아 도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덕분에, 통역의 심신이 빠르게 안정되었다.
“자, 그럼 취조를 시작하죠.”
통역이 안정된 것을 확인한 세은이 말했다.
세은은 얼빠진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만 보고 있던 야쿠자들에게 물었다.
“어디 소속이야?”
“…….”
“누가 시켰어?”
그러나 기무라와 아베는 세은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조직이 배신자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그들은 눈앞의 세은보다 조직이 보복이 두려웠다.
“이 새끼들 아직 덜 당했네.”
세은은 짧게 혀를 차고 한 마디 덧붙였다.
“아직 부족하지?”
세은의 협박에 그나마 더 멀쩡한 눈을 하고 있던 아베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차라리…… 죽여라.”
“호오.”
아베의 말에 세은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그러나 아베의 눈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직의 보복은 이보다 더욱 잔인하다. 그리고 보복이 아니더라도 조직을 배신할 수는 없지.”
“그래?”
아베의 대답을 들은 세은이 낮게 말했다.
“하지만 네 친구도 그럴까?”
“그게 무슨…….”
사악―
앞뒤를 다 잘라먹은 세은의 말에 의문을 표하는 순간, 순식간에 아베의 어깻죽지가 깔끔하게 절단되었다.
“커어헉!”
얼마나 깔끔하게 베였는지 바로 옆에 있던 기무라에게 피 한 방울조차 튀지 않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취조를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놀랐다.
오직 세은만이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이제 네가 얘기해 봐.”
통역가는 이제 오직 바닥만 바라보고 통역을 하고 있었다.
세은은 기무라를 보며 싱긋 웃음 지었다.
그러나 그런 세은의 눈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세은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은 기무라가 몸을 흠칫 떨었다.
“무, 무슨…….”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던 기무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세은과 아베를 번갈아가며 바라볼 뿐이었다.
“바로바로 안 나오네.”
기무라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누가 봐도 심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여간 원숭이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려요.”
세은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더욱 짙어질 것도 없을 그의 미소가 요사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멀쩡하게 돌아가고 싶으면…… 잘 봐.”
바닥에 널브러진 아베의 잘린 팔이 세은의 손에 들렸다.
세은은 아베의 잘린 팔을 어깻죽지에 가져가서 붙이고는 신성 마법을 발동했다.
“에일린. 리커버리.”
우우웅―
화려한 빛과 함께 아베의 팔이 감쪽같이 붙어 버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이, 이건 상상도 못한 이적입니다! 이런 것도 가능합니까?”
여태까지 세은의 능력에 충분히 놀랄 만큼 놀랐다고 생각한 사노였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적에 또다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노의 질문을 받은 이지호가 그의 대답에 대답하지 못했다.
명동에서 안보원 요원을 치료했다는 보고는 받았지만, 실제로 치유하는 모습을 본 건 그도 처음이었다.
“자, 눈 똑바로 뜨고 봐.”
치료가 끝나자 쇼크에 빠졌던 아베의 의식이 다시 돌아왔다.
다시 붙은 자신의 팔을 보고 아베가 놀라기도 전에,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말투로 세은이 기무라에게 말했다.
사악―
“크아악!”
아베가 일어나자마자, 세은이 이번엔 반대편 팔을 잘라 버렸다.
망설임 없는 잔인한 처사였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기절하지 못한 아베가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끊임없이 내뱉었다.
그 모습에 기무라의 동공이 더욱 거세게 흔들렸다.
그리고 잠시 몸부림치는 아베의 모습을 지켜보던 세은이 다시 그의 팔을 치료해 주었다.
대체 이게 무슨…….
자르고 치유해 주기를 반복하는 세은의 모습에 사노와 이지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 내가 허락하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어.”
세은은 담담히, 너무나도 담담하게 지금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말을 이었다.
우우웅―
그러고는 동시에 다른 야쿠자들의 상처도 죽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치료했다.
“어디 할 수 있는 만큼 버텨봐.”
마지막 통보를 받은 기무라의 목젖이 크게 꿀렁거렸다.
그에게 세은의 말은 마치, 사신의 통보처럼 들렸다.